차가 있는 명문가 사람들 ③│농암종택 긍구당



자연 美의 발견자

농암이 태어난 긍구당에
앉아 차를 노래하다

석천(본지 편집위원)

낙동강 상류가 굽이쳐 흘러가는 청량산 자락에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가 태어나고 자란 농암종택이 있다. 1975년 안동댐이 수몰되자, 서원에 딸린 정자와 별당,바윗돌을 현재의 위치에 옮겨 놓았다. 농암 후손들은 고향을 잃고 다시 농암이 어린 시절을 보낸 분강촌으로 온 지도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농암의 17대손 이성원씨가 종택을 지키며 후손으로서 농암의 정신을 널리 선양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성원 씨가 《천년의 선비를 찾아서》라는 책에 농암종택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종부인 이원정 씨는 다도를 실천하고 있어 농암종택의 차향이 세상 밖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5월 26일 오랜만에 농암종택을 찾아 종부인 이원정 씨가 우려내는 차향에 흠뻑 빠져들었다. 농암종택 내 차실은 <어부가(漁父歌)> 중 󰡐��어사가󰡑��를 따서 이름을 정했다. 이처럼 농암종택에 차향이 배어오고 있었다. 종부 이원정 씨가 우려낸 한 잔의 차를
음미하면서 17대 종손인 이성원 씨가 들려준 500여 년 전 농암의 선비 정신을 더듬어 보았다.

조선을 대표할 만한 선비는 누 후세 사람들은 영남에서는 농암과 퇴계를 꼽고, 호남에서는 송강 정철을 손꼽는다. 농암은 강호의 미(美)를 추구하던 청백리며 문학가였다. 또한 농암은 국문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자연을 노래한 이른바 강호 문학 형성에 결정적인 영항을 끼쳤다. 퇴계는 농암에 대해 말하길 󰡒��농암은 벼슬을 버리고 분강(汾江)가로 염퇴(恬退)했다. 부귀를 뜬구름처럼 여기고 회포를 물외(物外)에 붙였다. 때로는 조각배를 타고 물안개가 낀 강 위에서 즐겁게 읊조리거나 낚시 바위 위를 배회하며 물새와 고기를 벗하고 망기지락했으니 강호지락의 진(眞)을 터득했다󰡓��고 했다. 또한 한문과 우리말이 덧붙여진 <어부가>를 지어 영남 지역의 가단(歌壇)에 큰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윤선도의 <어부사시가(漁父四詩訶)>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강호시가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 농암의 정신사를 탐색하는 것은 천복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을 대표할 만한 선비는 누구인가.

자연미의 발견자, 농암을 엿보다

때때옷의 선비로 널리 알려진 농암, 그 내력은 이렇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부모의 생신 때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부린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효성이 지극한 농암을 두고 명예를 버려 명예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농암은 세조 13년(1467)에 아버지 이흠(李欽)과 어머니 안동전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부터 골격과 외모가 범상치 않았고 성격이 활달하여 사냥을 좋아했다. 그가 학문에 열중하기 시작한 것은 19세 때 예안향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29세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고 31세에 관시에 장원하였다. 32세 때 연산군 4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어느 날 농암의 부친이 용수사에서 잠을 자는데 꿈에 신인이 나타나 󰡒��적선하는 집안은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나고 보니 농암이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와 아버지가 속으로 이상하게 여겼다.

농암의 세계는 영천 이씨로 고려 초에 평장사를 지낸 문한(文漢)을 시조로 한다. 농암은 효성과 충절, 선비 정신이 뛰어나 사계의 사표가 되었다. 그는 벼슬이나 재물에 초연함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중국 동진시대에 유행한 유상곡수연을 그대로 옮겨온 강호지락은 시와 술과 달과 강물이 어우러졌다. 김인국, 이언적, 주세봉, 이황 등 당대의 인물들과 노닐던 강호지락을 농암은 퇴계에게 물려준다고 했다. 농암의 사상을 퇴계가 이어가면서 영남학을 일구어 냈다.

차향이 피어난 긍구당

농암이 태어난 긍구당(肯構堂)에 차향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은 종부인 이원정 씨가 워낙 차를 좋아해 정식으로 다도 공부를 배운 뒤 종가 종택 안 어사가에 차실을 마련하면서부터이다. 종택에 차향이 퍼져나간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유맥에 차향이 피어나게 되었다.

필자가 많은 고가를 찾아다녔지만 종부가 직접 차에 몰입한 경우는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었다. 게다가 용수사에 그 옛날 일직 손씨가 차나무를 밀양으로 옮겨갔다는 전설의 발원지가 이 인근에 있었다. 또한 김생이 쓴 낭공 선사 행적비 또한 가송리에서 멀지 않은 태자리에 있어 불가와 유가의 차맥이 흘러온 곳이다. 농암종택이 자리한 가송리는 협곡을 끼고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산과 강과 선비의 체취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강호 문학의 산실 농암종택의 들머리에 이르니 긍구당이 나온다.

긍구당은 농암 이현보가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했던 곳이다. 고조부인 이현이 지은 것을 이현보가 87세 되던 해(1533)에 맏아들 이문량이 손질을 보았다.
600년을 내려오며 농암가의 전통을 이어온 집이다.



-<차의 세계> 6월호 참조

기사 작성일 : 2008-06-11 오전 11:34:38
차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