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사랑] 공(公)과 사(私)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11.25 23:16

문신 유호인(兪好仁)은 고향 부근 수령으로 나가 모친을 봉양하고 싶었으나 그를 곁에 두고 싶었던 성종은 불허했다. 매년 간절히 요청하자 성종은 재위 19년(1488) 의성(義城) 현감으로 임명하고 경상 감사에게 "내 친구인데 어머니 때문에 현감이 된 것이니 잘 보아주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감사는 산하 수령들의 인사고과인 전최(殿最)에서 유호인을 하등(下等)으로 보고했다. 성종이 화를 내자 "나라에서 수령을 두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은혜를 베풀기 위한 것인데, 유호인은 청풍명월이나 읊조리고 관사(官事)는 돌보지 않으므로 하등으로 보고했다"고 당당하게 답변했다.

차천로의 '오산설림(五山說林)'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성종실록'에 따르면 유호인의 의성 현감 시절 경상 감사는 성숙(成?)이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유호인은 산음(山陰)현감 시절 백성의 괴로움을 돌보지 않고 시만 읊다가 파면되었다"라고 전한다. 학문은 있지만 공직에는 맞지 않는 인물이란 뜻이다.

박한주(朴漢柱)가 연산군에게 "후원에서 말 달리고 공 차며 용봉장막(龍鳳帳幕)을 펼쳐 놓고 잔치하는 때가 많으니, 임금께서 어찌 이러한 정사를 하십니까"라고 간하자, "용봉장막이 네 물건이냐"라고 크게 화냈다.

박한주는 "모두 백성들의 재력에서 나온 것이니 신민(臣民)의 장막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라고 답변했다고 '연려실기술'은 전한다. '

연산군일기'는 사간원 헌납(獻納) 박한주가 사간원 정언(正言) 신징(申澄)과 후원의 장막에 대해 간쟁한 때를 연산군 3년(1497)으로 전하는데, 이 때문인지 박한주는 연산군 10년(1504)의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사형당한다.

중종 때의 이현보(李賢輔)는 고향인 경상도의 감사가 되자 "친구들이 있는 곳이어서 한번 사적인 인사길을 열어 놓으면 행정의 법도가 무너지게 된다"며 사적 방문을 엄금해 자제와 친척이 감히 공관으로 찾아오지 못했다고 전한다.

전직 경찰총수가 청와대 386들이 회의석상에서 서로를 '형'이라고 불렀다고 말한 데서 생각난 일화들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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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연려실기술 별집 제8권:관직전고(官職典故)-감사(監司)

○ 중종조에 농암 이현보(李賢輔)가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감사는 그 직책이 풍헌(風憲 규찰의 직책)을 겸하고 있는데,
본도(경상도)는 곧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한번 사사로이 인사하러 오는 길을 열어 놓으면
행정의 법도가 무너지게 된다고 여겨 방지책을 준절(峻截)하게 세우니,
자제와 친척이 감히 공관으로 찾아와 기다리는 자가 없었다.


동각잡기 하(東閣雜記下) 본조 선원 보록 2

○무인년(중종 13, 1518년) 이현보(李賢輔)가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에,

감사는 직책이 풍헌(風憲)을 겸하였는데, 본도(本道)는 친척과 친구들이 있는
곳이니, 사사로이 통하는 문을 한 번 열면 정법(政法)이 무너지게 된다고 하여,
한계를 엄하게 하여 자제와 친척이라도 감히 공관(公館)에 출입하는 자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