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官 이현보

기사입력 | 2008-05-30 경북일보

연산군(융)은 세자시절 허침과 조지서 두 스승밑에서 공부했는데, 수업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장난만 일삼았다.
허침은 그러나 항상 웃는 얼굴로 좋게 타일렀는데, 조지서는 야단을 치면서
父王(성종)에게 일러주겠다고 위협했다. 융은 등극하자 마자 조지서를 죽여버렸다.

연산군은 임금이 돼서도 경연(經筵)을 몹시 싫어했다.

왕에게 유학 경전·역사·정치를 강론·토론하는 자리가 경연인데,
실은 '왕권의 전횡'을 막는 제도적 장치였다.
그래서 세종대왕 처럼 경연에 열심이었던 왕은 성군이 됐으나
연산군 같은 왕은 폭군·암군이 됐다.

연산군은 사림파를 숙청한 무오사회를 일으켰고, 생모인 폐비 윤씨
사사(賜死)사건을 기화로 인수대비 등 주모자 일당을 처단하는
갑자사화를 일으켰고, 환관 김처선을 죽였으니,
주변에는 '예스맨'뿐이었다.
연산군은 "나는 10여년간 경연에서 고금의 치란을 대략
알게됐으니 꼭 경연에 나갈 것은 없지 않은가" 물었다.

천만부당한 일이지만, 승정원 승지들은 "성상의 학문이 높고 밝으시니,
꼭 경연을 열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했고,
의정부, 대간, 육조 판서들도 "경연이란 것은 정지할만하면
정지하는 것이 맞습니다" 며 비위를 맞췄다.

이 '참 나쁜 시대'에 벼슬길에 나간 선비가 농암 이현보 선생이다.
그가 처음 맡은 직책이 史官이었다.
"사관은 政事를 정확히 기록해야 하니, 임금과 가까운 자리에 앉고,
정청에도 참석해야 합니다" 건의를 했다가, "저자가 임금을 업신여긴다"며
불경죄로 호된 벌을 받았다.

그러나 연산군은 좀 미안했던지, 삭탈관직시키지 않고
오히려 정6품 정언(正言)으로 승진시켰다.

한참후 농암은 "서연관들이 세자의 교육을 잘못시키고 있다" 탄핵했다가
왕의 분노를 사 안동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소주도병(燒酒陶甁), 농암의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겉은 오지병 같으나
속은 소주처럼 맑고 엄하다'는 뜻.
70세에 모친의 생일을 맞아 때때옷 입고 재롱을 부렸다는 농암.

유교문화박물관이 '때때옷 선비, 농암 이현보'라는 주제로 유품전시회를 열고 있다.
영천이씨 농암종택에서 기탁한 자료 4천628점이 전시됐다.

난세를 이겨낸 선생의 곧은 정신을 느껴볼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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