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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1544년 신재 주세붕의 ‘유청량산록’에 대한 농암의 발문
 글 쓴 이 : 농암  등 록 일 : 2015-05-26 오전 11:17:07 조 회 수 : 536

 

 

                                 주신재의 ‘청량산록’ 발문을 쓰고 아울러 내가 지은 ‘취시가’를 보여주었다.

                                                       (書周景遊淸凉山錄後兼示醉時歌)

 

 

 

 

발문에 앞서 보낸 장편 ‘취시가醉時歌’는 곧 농암 늙은이가 예안 고을원(任鼐信)과 황금계(황준량黃俊良) 등과 더불어 귀먹바위, 자리바위에서 놀 때 취한 나머지 배 위에서 지은 것으로 참석자 모두가 따라 지었다.

 

풍기군수 주경유 선생은 본래 산수를 좋아하고 벗도 좋아하여 내가 놀던 분강汾江과 영지산靈芝山 자락으로 몸을 굽혀 놀러온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다만 신령한 청량산淸涼山은 바라보면 두어 번 정도는 찾아가 쉬어 갈만한 거리에 있었지만 부임 이후 기근과 흉년을 만나 이를 수습하고, 옛 절터에 문성공 사당을 짓고 새터에는 선성학사를 옮기느라 여가가 없었다. 그런 연유로 약속을 했지만 오지 못하고 더러는 오다가도 돌아가기를 너 다섯 번이나 하였다. 어찌 답답하지 않았으랴!

 

갑진년(1544년) 4월 초, 선생이 집신과 평복 차림으로 자제들을 데리고 나에게 와서 ‘청량산에 가려고 합니다’ 하기에, 기뿐 나머지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가 ‘소원을 풀었습니다’ 하고 맞이하여 초당草堂으로 안내했다. 작은 술잔에 회포를 풀고 난 뒤 보내드렸다. 청량산에 도착한 며칠 후, 선생이 편지를 보냈는데 회로에 용수사龍壽寺에서 다시 뵙기를 바란다고 했다. 날짜가 되어 달려가니 선생이 먼저와 있었다. 군 관리들이 와서 음식을 준비하여 모인 사람들이 마시고 환담했다. 곧이어 선생을 수행한 6, 7인의 유생들이 미친 듯 흥겨워하며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고, 간혹은 읊고 간혹은 노래도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공자孔子께서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맞으며 돌아오는 모습과 흡사했다. 즐거움이 고조되고 취기와 춤이 무르익은 이후 헤어졌다.

그 후 몇 달 뒤 선생이 사람을 시켜 ‘유산록 한 질(遊山錄一帙)’과 ‘취시가 화답 시’를 보내고 “원 시를 보내며 아울러 저의 유산기의 발문을 지어주십시오” 했다. 내가 받아보고 발문을 지어 보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선생의 청량산 유산은 일반 선비들이 명승을 찾고 중이나 만나고 집이나 방문하는 그런 가벼운 여행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한 번 산에 들어가면 힘써 육체를 수고롭게 하면서 자세히 관찰하고 가파르고 험준한 곳까지 7, 8일간 찾아다니며 고승, 현사들의 수양 유적들을 변석하고 그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았다. 그리고 해괴하고 허탄한 이야기들은 조리 있게 분석하여 여러 봉우리 가운데 이름이 없던 것은 이름을 부어하고, 불합리한 것은 고쳐서 높은 봉우리, 그윽한 암자들이 모두 선생의 흉중에 있는 시로 나타내어 드디어 산천초목이 모두 빛이 나게 하였다. 청량산의 신령이 아마 그 늦게 만남을 한탄할 일이지만 다행히 남악저주南嶽櫧州의 주자朱子를 천 백 년 후에 다시 만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어찌 위대한 일이 않으랴!

 

나는 이제 늙어서 글을 짓지 못하는데 어찌 발문을 지을 수 있으랴! 다만  ‘취시가’ 의 화답시와 유산 당시에 오고 갈 때의 일들을 회고하여 후일에 잊어버리는 일이나 없도록 하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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