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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1887년 이유헌의 청량산 유산기
 글 쓴 이 : 이유헌  등 록 일 : 2012-12-06 오전 10:02:14 조 회 수 : 1124

 

 

 

 

            학부學夫 우해찬禹海纘과 함께 청량산을 유람하며 쓴 시와 서문

                          (與禹學夫海纘遊淸凉幷序)

 

 

 

 

 

 

 정해년(丁亥年, 1887, 고종 22) 4월, 달성(達成) 우형(禹兄)이 선성(宣城) 아문으로 그의 재종형(再從兄)을 내방하던 날, 분양(汾陽)의 긍구당(肯構堂)으로 나를 찾아왔다. 안부 인사를 하고는 나를 부추켜 “선성에는 부화(浮華)한 풍속이 없고, 가기(歌妓)와 같은 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바라네. 산수를 유람하고 싶은 마음이 간간이 들지만, 돌아갈 기일이 임박하므로 마냥 지체할 수는 없다네. 그러나 청량산은 거리가 멀지 않거니와, 40년 동안 그 명성에 대해 익히 들어왔으니, 지금 유람하지 않는다면 어찌 다시 도모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나를 위해 뜻이 같은 선비를 맞이한 뒤, 함께 산속에 들어가 며칠 동안 마음을 후련하게 펼쳐보지 않겠는가?”라 말하였다. 나는 절하고 사례하며 “함께 가겠습니다.”라 대답하였다.

 

 그리고 곧장 말을 버리고 도보로 걸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도중에 시냇가에 사는 여러 벗들의 집에 들렀으나, 아쉽게도 뜻밖의 사정 때문에 함께할 수 없었다. 동행한 자는 통인(通引) 신동(申童)뿐이었다. 그에게 길을 안내하게 하고는 구불구불 이동하여 연고(淵皐)로 들어갔다. 고산(孤山)을 바라보니, 좌우의 절벽 그림자가 못의 바닥까지 떨어지고 푸른 강물은 수위가 불어나 배 없이는 건너기 어려웠다. 이에 노선생(老先生)께서 지으신 ‘구름 낀 산을 서글피 바라보며 한참을 홀로 앉았다네.[悵望雲山獨坐久]’라는 시구를 노래하며 근체시 한 수를 입으로 읊조림으로써 슬픈 정한을 드러내었다.

 

 마침내 강가를 따라 올라가 광석점(廣石店)에 들어갔다. 술이 절반쯤 기울었을 때, 해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강을 건너자 산길은 어둑했고 돌이 깔린 오솔길은 이리저리 꺾이고 굽어 있었다. 때로는 형초(荊草)를 깔고 자리에 앉기도 하고, 때로는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서 있기도 하였다. 열 걸음에 한 번씩 쉬며 천천히 길을 가다보니 어느새 달이 떠올랐다. 동천(洞天)이 활짝 펼쳐지자, 흡사 신선이 사람을 기다린 듯하고, 원숭이와 학이 주인을 맞이하는 듯하였다. 문을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이 정결하고 창문이 넓고 맑은 것이 바로 오산당(吾山堂)이다. 마루에 올라 문을 두드리며 오산당 하인에게 저녁 식사를 준비하도록 분부하였다. 이리저리 배회하며 사방을 둘러보니, 뭇 봉우리는 줄 지어 우뚝하고 온 숲은 우거져 있었다. 새들은 온화한 소리로 지저귀는데 운무는 때론 어둡게 때론 밝게 피어올랐다. 마치 천지가 개벽하기 이전의 혼돈의 기운처럼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우형(禹兄)은 내게 공경히 읍하며 “우리 모두 쓸쓸한 속세 사람이거늘 고작 하루의 노력을 기울여 이러한 신선의 경계에 도달했다네. 이는 큰 기러기와 고니가 세속의 속박에서 벗어나, 구름 낀 하늘까지 날아오른 것보다 훨씬 훌륭한 일이지.”라 말하였다. 그리고 서로 베개 삼은 채 마루 위에 널브러져 누웠으나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때 식모(食母)가 식사를 올렸는데 음식은 조밥과 채장(菜醬)이 전부였다. 형편없는 접대를 괴이하게 여기며 그 까닭을 물어보자, 식모는 괴로워하며 “쌀과 장이 모두 부족합니다. 어렵사리 마련한 것이 겨우 이 모양입니다.”라 대답하였다. 나는 한 그릇을 모두 비운 뒤, 우형을 돌아보며 “오늘 우리는 운무(雲霧)를 실컷 먹었다고 이를 만합니다. 그러니 어찌 옛날사람이 탈속반(脫粟飯)을 먹었던 것과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라 말하였다. 그리고 한바탕 크게 웃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닭이 울고 동방에 먼동이 트려 하였다. 의관을 정제한 뒤 무릎 꿇고 앉아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한 번 암송하였다. 퇴도(退陶) 선생과 우리 벽오(碧梧) 선조, 문하의 제자, 여러 현인들이 이곳에 와서 도(道)를 강론하시던 모습을 회상해보니, 그 문하에서 옷자락을 걷어잡고 친히 얼굴을 마주한 채 명령을 받들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태양이 막 떠오르자, 우장(禹丈)은 신동(申童)에게 벼루를 가져오게 하여 봉우리와 집을 그리면서 말하기를 “내가 사는 곳은 삭막하고 쓸쓸하단다. 이번에 이 산을 한번 유람하는 것은 한바탕 지나는 꿈이라고 말할 만하니, 하산하고 나서 어찌 이 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겠느냐! 이 때문에 화폭에 담아 돌아간 뒤, 작은 병풍에 걸어 아침저녁으로 바라보겠다. 예전사람이 말한 바, ‘문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천만 겹의 강산을 모두 볼 수 있다.[不出門庭, 觀盡千萬重]’는 것이 바로 이게 아니겠느냐!”라 말했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봉우리 이름을 하나하나 적으려 했으나, 봉우리들의 순서를 알 수 없었다. 이에 신동으로 하여금 암자의 승려를 찾아가 물어보게 하였다. 신동이 돌아오더니 “고준(高峻)하고 수려(秀麗)한 자태로 남쪽을 진무하는 봉우리가 축융봉(祝融峯)입니다. 동쪽에 있는 탑 모양의 봉우리가 금탑봉(金塔峯)인데 이 봉우리는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금탑봉 뒤에 있는 봉우리가 경일봉(擎日峯)이고 마찬가지로 세 개의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경일봉 위에 자란봉(紫鸞峯)이 있고, 그 바깥 봉우리 중에서 기다란 것이 장인봉(丈人峯)입니다. 그 안쪽 봉우리 가운데 종장이 되는 것이 자소봉(紫霄峯)인데 도합 아홉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소봉 서쪽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것이 탁필봉(卓筆峯)이고, 탁필봉 서쪽에 돌연히 솟아 있는 것이 연적봉(硯滴峯)이며, 연적봉 전방에 있는 야위고 수척한 봉우리가 선학봉(仙鶴峯)입니다. 연대(蓮臺) 서쪽에 연꽃 모양으로 봉긋 솟은 것이 연화봉(蓮花峯)이고, 연화봉 뒤편의 봉우리 중에 금압(金鴨)처럼 생긴 것이 향로봉(香爐峯)입니다. 내장인봉(內丈人峯)과 이상의 봉우리들을 합하여 십이봉(十二峯)이라 통칭합니다.”라 말하였다. 그 이름은 대개 주신재(周愼齋) 선생께서 정하신 것으로 지금까지도 유전되고 있다. 그 봉우리의 자태를 살핀 뒤에 그 이름을 돌아보면, 정말 기가 막히게 명명했다고 이를 만하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탄식하며 우형에게 “옛날 주자(朱子)께서는 여산(廬山)에서 빼어난 경치를 마주칠 때마다 이름을 붙이셨지요. 이 산 또한 신재(愼齋)를 만나 각각의 이름을 얻게 되었으니, 어찌 우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라 말하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외청량(外淸凉)으로 나갔다. 어풍대(御風臺)에 오른 뒤, 천 길이나 높은 절벽을 우러러 바라보았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숙한 골짜기를 내려다보았다. 사방을 한껏 조망하니, 더러운 속세와 아득히 떨어진 곳에서 저 홀로 우뚝 솟은 형상을 내 몸에서 증험할 수 있거니와,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모는 경지 또한 이와 흡사하다. 어풍대에서 내려와 산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여 치원대(致遠臺)에 올랐다. 총명수를 들이키니, 마치 단사(丹砂)를 복용하고 현포(玄圃)를 밟은 것처럼, 가슴이 상쾌하고 뼈가 서늘해졌다. 장차 금탑봉으로 향하려 하는데, 푸른 덩굴이 얼기설기 뒤엉켜 있고, 절벽이 깎아지른 듯 가팔라, 개미처럼 몸을 땅에 바싹 붙인 채 올라갔다. 발밑은 미끄럽고 현기증마저 느껴지는 바, 두려워하며 경계할 만하였다.

 

 금탑봉 정상에 도착하니, 사립문으로 가려진 두옥(斗屋)이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영감 한 명이 밖으로 나와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내가 빙그레 웃으며 “주인 영감께서는 아마도 요순(堯舜)의 백성인가 봅니다!”라 말하니, 영감은 “무슨 말이요?”라 물었다. 나는 “나무를 엮어 거처를 만들고, 산밭을 경작하여 먹을 것을 마련하며, 세상 밖의 영욕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으니, 옛날과 비교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라 말하였다. 그와 더불어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영감은 “그대들이 산에 들어온 시기가 다소 늦은 것 같소. 며칠 전에 화산백(花山伯)께서 기생과 악공을 거느리며 풍류를 한껏 펼쳤지요. 생황과 노랫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지고 대포소리가 쩌렁쩌렁 진동하니, 뭇 산이 울고 계곡이 화답하며 그 음향이 저 하늘까지 뻗어 갔지요. 그때 산에 들어왔다면 빼어나고 장엄한 풍광이 지금보다 한층 나았을 겁니다.”라 말하였다. 나는 웃으며 “선비가 산을 유람할 때 아름다움을 품평하고 사실을 기록하면 충분한 것이지요. 어찌하여 분잡하고 화려한 형상을 취하겠습니까?”라 대답하였다.

 

 그리고 금탑봉(金塔峯)에 오른 뒤, 남쪽으로 축융봉(祝融峯)을 조망하며 “낭랑하게 읊조리며 하늘을 날 듯 내려오네[朗吟飛下]”라는 시구를 노래하였다. 그 형세를 상상해보았지만 형산(衡山)의 빼어난 풍광이 이곳보다 뛰어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을 감탄하다가 다시 산성(山城)을 바라보니, 오래된 돈대와 황폐한 성가퀴가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아! 천승(千乘)의 임금으로서 병란을 피하여 한 귀퉁이 땅에서 조석의 안일을 도모하다니! 옛일에 느꺼워하는 감회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 들어 장인봉(丈人峯)을 바라보았는데, 중후하고 후덕한 모습으로 한가운데에 의젓이 서 있었다. 서쪽으로 의상봉(義相峯)을 조망하니, 절의(節義)를 지닌 선비가 위태로움에서 홀로 몸을 일으켜 전장에서 앞장서듯이 늠름하여,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상을 자아냈다.

 

 이외에도 봉우리가 너무 많아 그 형상을 하나하나 거론하기 어려웠다. 비록 차례대로 올라가 조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허기와 갈증이 동시에 엄습하였다.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없으니 어떻게 오를 수 있으랴! 이에 서글픈 심정으로 잠시 머무르며 눈을 부비고 멀찍이 바라보았다. 소백산(小白山) 죽령(竹嶺)은 서북쪽 방향으로 웅장하게 서려 있고, 학가산(鶴駕山)과 공산(公山)은 남쪽 가장자리에 나지막하였다. 한 번의 조망을 통해 폭원(幅圓)의 거대함과 산해(山海)의 웅장함을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이에 지팡이를 내던지고 탄식하며 “동산(東山)에 올라 노(魯) 나라를 작게 여기고, 태산(太山)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기셨다는 말씀을 거의 징험할 수 있겠구나!”라 말하였다.

 

 금탑봉에서 내려와 김생굴(金生窟)에 들어갔다. 김생굴은 층층의 바위 아래에 위치했는데 주변이 공교롭게 깎여 있고 그 깊이는 널찍한 집과 같았다. 가파른 낭떠러지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조물주가 빚은 것이다. 그 굴의 이름은 신라시대 김생(金生)이 머물던 곳이기 때문에 붙여졌다. 예전에 읽었던 선배의 기록에 의하면, 청계산 산중에는 10여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며 연대(蓮臺)의 사찰 몇 곳을 제외하고는 현전(?현존?)하지 않는다. 굳이 옛날 이름을 모두 적을 필요가 있겠는가!

 

 정오 무렵 연대암(蓮臺菴)에 들어가 점심을 얻어먹었다. 이날은 바로 승도(僧徒)의 재일(齋日)이었다. 뭇 승려가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법당에서 염불하였다. 얼마 후에 경쇠를 세 번 치자, 동시에 밥이 담긴 바리때를 들었다. 그리고 반쯤 먹었을 때도 경쇠를 쳤고, 공양을 마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신 삼대(三代)의 위엄스런 예법이라고 한것이 반드시 이와 같으리라. 신시(申時)쯤 되었을 때 산에서 빠져나와 강을 건넌 뒤, 작은 봉우리에 올라 땅에 앉은 채 풍광을 바라보았다. 석양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었는데, 깎아지른 절벽은 거울처럼 밝았다. 결단코 이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불정점(佛亭店)에 들어가 어제 읊조린 시편을 적었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읊조리며 “시냇가 바위에서 먹을 갈아, 청량한 시를 쏟아내었네.[磨墨溪邊石, 寫出淸凉詩]”라 했는데,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해질 무렵 취한 몸을 가누면서 때론 지팡이를 팽개치고 미친 듯이 노래 불렀다. 어디선가 산들바람이 살포시 불어오자 해당화 향기가 바람에 실려 왔고 시냇가 새들도 우리를 향해 지저귀었다. 돌아오는 흥취가 점점 깊어지는 바, 다시 속세로 나왔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였다. 온혜리(溫惠里)를 지나며 노송정(老松亭)에 잠시 들렀다. 도중에 신동을 전송한 뒤, 우형을 모시고 긍구당(肯構堂)으로 돌아와 하룻밤 머물렀다.

 

 이튿날 일어나서 우형을 전송하며 “기이합니다! 산천의 맑은 기운이여! 우리나라의 우두머리 산은 태백산(太白山)만한 것이 없거니와, 태백산의 줄기 하나가 동쪽으로 뻗어내려 청량산이 되었습니다. 황지(潢池)의 물도 태백산에서 발원했는데, 그 지류가 흘러와 낙동강이 되었지요. 두 곳 모두 천고의 명승지가 되었으니, 중국의 무이산(武夷山)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또한 선경(仙境)으로 말한다면, 청량산의 자소봉(紫霄峯)과 선학봉(仙鶴峯)은 무이산의 능소봉(凌霄峯)과 금계암(金鷄巖)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청량산이 중국에 있다 하더라도, 분명히 천하의 명승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퇴도(退陶) 선생께서 천 년 뒤에 태어나 고정(考亭)의 학통을 계승하고는 이 산에서 도학을 강설하셨으니, 땅이 그 사람을 얻은 것이요 사람이 그 땅을 얻은 것입니다. 청량(淸凉)이란 이름은 무이(武夷)와 더불어 만세토록 불후할 것이니 어찌 위대하지 않겠습니까!”라 말하니, 우형은 “그렇다네.”라 대답하였다.  이에 이상과 같이 기록하는 바이다.

 

 

 

 

산중에 들어오니 흰 구름 자욱하고          入山之後白雲多

기이해지는 경치에 흥취도 깊어 가네.       境益奇奇興亦加

향초 덮인 제방에 나그네길 나뉘는데        芳草堤邊分客路

맑은 시냇가에 농부의 집 한가롭구나.       淸溪水畔有農家

 

종일 숲속에서 시시각각 산새 만나고        穿林半日逢逢鳥

봄기운 완연하니 곳곳에 꽃이 피었네.       滿地皆春處處花

신선이 사는 산 응당 멀지 않으리니         知是仙山應不遠

구불구불 돌길이 희미하게 이어지네.        依微石逕眼中斜

         

                                         <면천을 지나며 過綿川>

 

 

 

푸르고 거대한 바위 위에 놓여 있는 정자    亭在蒼巖巨石頭

성옹(惺翁)은 호젓한 곳에 거처 정했었지.   惺翁當日卜居幽

매화 핀 옛 골짜기에 푸른 학이 날아오고    梅花古洞來靑鶴

밝은 달 서늘한 못에 흰 갈매기 내려오네.   明月寒潭下白鷗

 

선생의 시편이 응당 절벽 위에 남아 있거늘  夫子題應留絶壁

나그네 지팡이는 급히 영주(瀛州)로 향하네. 遊人笻促向瀛州

한 척의 자그만 고깃배는 지금 어디로 가나? 漁舟一葉今何去

강 너머에서 배회하며 근심 이기지 못하네.  隔水徘徊不勝愁

 

                                         <고산을 바라보며 望孤山>

 

 

 

청량산 역시 하나의 무이산이니             淸凉亦一武夷山

선학과 금계가 흡사한 자태로다.            仙鶴金鷄彷佛間

시인묵객은 남다른 경치 읊조리며           別景付之騷客口

장인봉의 후덕한 모습을 바라보네.          德容瞻彼丈人顔

 

태초에 조물주가 남겨주신 덕택에           太初造物眞留待

우리 도의 연원이 절로 순환되었지.         吾道淵源自有環

보건대 모두 인(仁)과 지(智) 좇았거늘      見得皆從仁智者

부끄럽게도 후생은 한가함만 도모하네.      後生堪愧肯偸閑

 

                                         <입산 入山>

 

 

 

지금껏 사람들이 오산당을 말하니               至今人說吾山堂

불후한 기풍 백세토록 영원하네.                不朽遺風百世長

낙동강의 북쪽 연원은 승경으로 전해지고        洛北眞源傳勝地

교남(嶠南)은 학문을 숭상하는 이름난 고장이네. 嶠南崇學獨名鄕

 

벽을 메운 책은 오묘한 이치 찾기 어렵거늘      圖書滿壁難探妙

난간 앞 난초와 계수는 꺾을 만큼 가깝다네.     蘭桂臨軒可擷芳

방에 들어가 함장(函丈)이 앉던 자리 추억하니   入室追惟函丈位

맑은 대낮에도 예전처럼 향로봉 마주하고 있네.  依然淸晝對爐香

 

                                         <정사에서 유숙하며 宿精舍>

 

 

 

청량산 가운데 우뚝 솟은 장인봉은          淸凉高出丈人峯

변함없이 전아하고 후덕한 모습이요         典雅依然有德容

뭇 봉우리가 좌우로 늘어선 형상은          左右羣巒羅列象

삼천 제자가 겹겹이 시종하는 듯.           三千學子侍重重

 

                                        <장인봉(丈人峯)>

 

 

 

축융봉은 남쪽에서 솟아 동서쪽을 진무하는데  祝融南出鎭西東

그 명성은 백세토록 형악(衡岳)과 나란하다네. 衡岳遺名百歲同

날 듯 내려온다는 회옹(晦翁)의 시구 읊조리자 詠罷晦翁飛下句

술 한 잔 없는 우리의 오늘 유람이 가련하네.  還憐今日酒盃空

 

                                        <축융봉(祝融峯)>

 

 

 

높다란 저 하늘까지 솟은 아홉 층 봉우리    峯出重霄高九層

나그네는 여기서 더 이상 오르기 어렵다네.  遊人到此盖難登

푸른 바위와 깎아지른 봉우리가 삼엄하니    蒼巖絶壁森嚴地

눈앞은 아찔하고 마음은 두렵기 그지없네.   眼欲眩迷心欲兢

 

                                        <자소봉(紫霄峯)>

 

 

 

학을 탄 신선 이곳에 오지 않았거늘         此地不來駕鶴仙

흰 구름 높은 봉우리에 꽂혀 있도다.        高峯徒揷白雲天

지난밤 꿈깨자 금계(金鷄) 소리 들리는데    昨夜夢覺金鷄響

달빛 가득한 빈 산, 내 마음 상쾌하여라.    月滿空山意爽然

 

                                        <선학봉(仙鶴峯)>

 

 

운무 걷힌 산에 아침 햇살 빛나는데        霧捲山顔朝日暉

소쩍새 울고 나자 난새가 날갯짓하네.      杜鵑啼罷彩鸞飛

처음에는 구름 가에서 창공으로 들어갔거늘 初從雲際入靑空

다시 취미(翠微) 지나며 정상으로 향하네.  更向峯頭歷翠微

 

                                        < 자란봉(紫鸞峯)>

 

 

만리 아득한 풍경이 눈앞에 빼곡한데平      看萬里眼森森

정상을 한번 밟고 호쾌히 한번 읊조리도다.  一蹴峯頭快一吟

산과 바다의 운무는 운치가 끝이 없으니     嶺海雲烟無限趣

우선 금탑봉을 샅샅이 뒤지며 만끽하리라.   先從金塔盡推尋

 

                                        <금탑봉(金塔峯)>

 

 

 

어디를 가도 뭇 봉우리는 빼어난 자태이거늘    往往羣峯絶勝多

한 봉우리가 서쪽에 연꽃처럼 봉긋 솟아있네    一峯西出揷蓮花

연화봉의 빼어남은 뭇 봉우리의 으뜸이요       蓮花絶勝羣峯最

산이 연꽃을 얻었으니 더더욱 빼어난 게지.     山得蓮花絶勝加

 

                                        <연화봉(蓮花峯)>

 

 

 

뾰족이 솟은 끄트머리는 볼수록 기이한데       頴出尖頭看更奇

볼수록 기이하니 억지로 표현하기 어렵네.      更奇莫狀强題詩

적선(謫仙)이 오로봉에서 독서한 뒤            一自謫仙五老後

꽃 핀 붓을 청량산에 새로이 꽂은 것이리.      淸凉新揷筆花枝

 

                                        <탁필봉(卓筆峯)>

 

 

 

요순(堯舜)의 시대처럼 태평한 천지에서        堯舜乾坤世泰安

공손히 일출 맞이하니 상서로운 구름 걷히네.   寅賓日出瑞雲還

봉우리에서 밭을 가는 자에게 말하노니         寄語峯頭耕食者

태평시절의 한빈했던 맹약 한탄치 마세.        明時莫恨舊盟寒

 

                                        <경일봉(擎日峯)>

 

 

 

봉우리 앞에서 지팡이에 기대 물소리 듣노라니   倚杖峯前聽水聲

연적(硯滴)에서 떨어지는 맑고 찬 물방울 인 듯. 惟疑硯滴滴淸冷

봉우리를 뚫어 봉우리 속의 물을 얻었다면       鑿峯若得峯中水

탁필봉의 젖은 붓으로 채색 그림 그렸겠지.      卓筆濡毫彩墨生

 

                                         <연적봉(硯滴峯)>

 

 

 

하늘로 피어오르는 봉우리의 자욱한 안개       峯烟靄靄上穹蒼

백주대낮에 그 누가 향로에 향을 꽂았을까?     晴晝燻罏誰揷香

응당 장인(丈人)께서 󰡔주역󰡕을 손에 쥔 채    知是丈人手執易

종일토록 힘쓰며 흐르는 세월 아쉬워하리라.    乾乾終日惜流光

 

                                         <향로봉(香爐峯)>

 

 

 

외청량(外淸凉) 아래의 높다란 이 대(臺)에 서니  外淸凉下此高臺

저 멀리 구름 낀 산까지 환하게 시야에 들어오네. 萬里雲山一眼開

문득 얼굴을 스치며 지나는 신선의 바람          便覺仙風初拂面

흡사 낭풍전(閬風巓)과 봉래산에 오른 듯.        身如登閬涉蓬萊

 

                                          <어풍대(御風臺)>

 

 

 

고운(孤雲)이 떠난 뒤, 텅 빈 오래된 대(臺)에    孤雲一去古臺空

오늘에야 비로소 나그네 발걸음이 이르렀구나.    今日遲回野客蹤

가야산(伽倻山)에 남긴 훌륭한 자취 알고 싶거늘  欲識伽倻留勝迹

홍류동(紅流洞) 안에는 청량한 바람 가득하리라.  紅流洞裏滿淸風

 

                                           <고운대(孤雲臺)>

 

 

 

바위 끝에 있는 총명수(聰明水)                 聰明之水在巖端

맛은 달콤한데다 어찌나 차가운지.              其味惟甘其性寒

옛 현인이 머물던 곳을 추억하며                追想古賢棲息處

조석마다 반석 위로 샘솟아 오르네.             朝朝暮暮水登盤

 

                                           <총명수(聰明水)>

 

 

 

푸른 절벽에서 세차게 떨어지는 맑은 폭포는     蒼崖飛瀑水淸淸

푸른 하늘 백주대낮에 우레처럼 포효하는구나.   雷吼靑天白日明

바위 아래 동굴은 널찍한 건물만큼 깊은데       巖下窟深如广屋

이제는 그 옛날 김생을 다시 볼 수 없도다.      至今不見古金生

 

                                           <김생굴(金生窟)>

 

 

 

산은 고요한데 바위는 어찌 움직이나?           山靜石何動

바위는 움직여도 산은 움직이지 않도다.         石動山不動

위태로운 바위가 절벽에 놓여 있어              危石臨絶壁

아마도 바위가 저절로 움직이나 보다.           疑是石自動

 

                                           <흔들바위(動石)>

 

 

 

연화봉(蓮花峯) 아래의 연대사(蓮臺寺)          蓮花峯下蓮臺寺

반은 구름 속으로 솟고 반은 바위에 걸터앉았네. 半入雲間半架巖

법력이 높은 늙은 스님은 근 백세나 되었고      有術老僧年近百

침묵하는 금불상은 입을 세 번 꿰매었네.        無言金佛口緘三

 

차 끓이는 돌 아궁이에 가는 연기 향기로운데    烹茶石竈烟香細

대나무대롱 관통하는 샘물은 감미롭기도 하네.   通竹山泉水味甘

신선 땅 두루 밟아 오늘 여기에 이르니          徧踏仙區今到此

심신이 다시 확 트인 호쾌한 사내로세.          心神更豁是豪男

 

                                            <연대암(蓮臺菴)>

 

 

 

<금탑봉으로 향하기 전에 초가집 노인에게 주다 將向金塔峯贈茅屋老翁>

 

기일(其一)

나막신 신고 넝쿨 덮인 희미한 돌길 지나며      穿屐藤蘿石徑微

힘겹게 꼭대기에 올라서 사립문을 두드렸네.     勞登絶頂叩柴扉

그 집 노인은 어찌나 옛 기운 물씬 풍기는지     中有老翁多古氣

그와 잠시 담소하며 돌아갈 일 까맣게 잊었네.   移時談笑却忘歸

 

 

기이(其二)

바위 밭 갈며 물 마셔도 가난한줄 모르니        耕巖食水不知貪

오늘 산속에서 먼 옛날 사람을 만났구려.        今見山中太古人

큰길에서 격양가 부르는 노인을 부러워 마소!    莫羡康衢歌壤老

주인옹(主人翁)의 즐거움도 그와 다름없으니.    主翁之樂亦其倫

 

 

 

당시 고려를 뒤덮던 전쟁 기운 이미 걷혔거늘    東土當年戰氣收

청량산의 성가퀴는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구나.  淸凉城堞獨空留

무성한 봄풀 사이에 전해오는 행궁의 자취는     行宮遺跡餘春草

나그네로 하여금 탄식과 수심 자아내게 하도다.  長使遊人起歎愁

 

                                         <산성에서 옛일을 회고하다 山城懷古>

 

 

 

학부(學夫) 우씨 어르신(禹氏) 그림에도 뛰어나    學夫禹丈善於畵

청량산(淸凉山) 열두 봉우리를 모두 그려내었네요. 盡出淸凉十二峯

나도 집으로 돌아간 뒤, 유람 과정 기록할 터이니  我亦歸家將欲誌

어느 것이 진면목에 가까운지 한번 비교해 보지요. 較看誌盡孰眞容

 

                                         <우형의 청량도에 적다 題禹兄淸凉圖>

 

 

대(臺) 오르고 동굴 찾고 푸른 바위에서 휴식하고        登臺尋窟憩蒼巖

평지를 주유하다가 다시 운무 덮인 봉우리 올랐지.       平地周遊更上嵐

의상봉(義相峯)의 높음은 의당 나약한 자를 세울 수 있고 義相峯高宜立懦

총명수(聰明水)를 마시면 탐욕이 청렴으로 바뀌네.       聰明水飮可廉貪

낭랑하게 읊조리자니 백 편의 시가 아깝지 않거늘        朗吟不惜詩篇百

어찌 굳이 세 잔의 막걸리 마셔야 호기가 생기리오!      豪氣何須濁酒三

오늘 산 밖으로 나가면 훗날의 약속을 남기신 채         今日出山留後約

학부(學夫)께선 달성(達城) 남쪽으로 돌아가시리.        學夫歸駕達城南

 

                                         <회암 선생의 산행시에 삼가 차운하다 敬次晦菴先生山行韻>

 

 

 

 

 

  위 글은 나의 증조부(李裕憲 1870∼1900, 자, 경희敬熙, 호 낙애洛厓, 농암14대 종손)께서 18세에 쓰신 청량산 기행문이다. 18세 청년이 썼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수준이 높다. 60대 학자의 글과 같은 원숙한 맛이 느껴진다.

   

 큰 키, 옥같은 외모와 천재적인 제주를 지녀 스승인 서산 김흥락 선생과 친지들의 여망을 한 몸에 받았지만 온 마을을 덮친 장티프스 전염병으로 인해 불과 31세의 나이로 하직하셨다. 그럼에도 많은 시문을 남겨 지금‘낙애유고洛厓遺稿’의 문집을 남겼다.  

 

 위 글은 최근 청량산박물관에서 펴낸 <옛 선비들의 청량산 유람록3>권에 수록된 내용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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