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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보현암벽상서전후입산기
 글 쓴 이 : 금난수  이메일 등 록 일 : 2008-06-26 오후 8:09:18 조 회 수 : 1144

보현암벽상서전후입산기

청량산(淸凉山)은 산림 가운데 가장 빼어난 곳이다. 나귀를 타고 지팡이를 짚고 찾아다니며 구경하는 경우나 질박한 옷을 입은 채 오래도록 머무는 경우에 있어서도 다른 산과는 매우 다르다.

나는 정미년(1547년, 명종 2년) 봄에 이 산을 두루 거치며 들어가 본 뒤에야 비로소 산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기유년(1549년, 명종 4년) 겨울에 이비원(李庇遠), 이임중(李任仲)과 함께 산에 들어가 상선암(上仙庵)에 머물렀다. 구경서(具景瑞), 윤이직(尹而直), 권자반(權子胖), 김대보(金大寶) 가 이미 이 암자에 우거하고 있어서 날마다 구경서 등 여러 사람과 서로 모여서 독서한 것을 강론하였다.
경술년(1550년, 명종 5년) 봄에 또 이 암자에 묵었다.
신해년(1551년, 명종 6년) 음력 7월에 또 연대사(蓮臺寺)에 묵었는데, 퇴계(退溪) 선생께서 송행시(送行詩)를 지어 주셨다.
임자년(1552년, 명종 7년) 여름 6월에 산에 들어가 홀로 안중암(安中庵)에서 한 달을 머물고는 만월암(滿月庵)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다시 한 달 쯤 지나 안중암으로 돌아왔다.
병진년(1556년, 명종 8년) 여름에 다시 연대사(蓮臺寺)에 묵었다가 금강굴(金剛窟)로 거처를 옮기고 한 달을 머물렀다.
정사년(1557년, 명종 8년) 겨울에 구여응(具汝膺)과 함께 산에 들어가 여응은 문수암(文殊庵)에 머물고 나 홀로 이 암자〔普賢庵〕에 묵었다.
무오년(1558년, 명종 9년) 겨울에 또 이인중(李仁仲) 삼형제와 함께 산에 들어가 세 사람은 문수암에 묵었고 나는 또 이 암자에 묵었다.
갑자년(1564년, 명종 19년) 정월에 두 아들 경(憬)과 업 을 데리고 문수암에 묵었다가 금생굴(金生窟), 대승암(大乘庵), 중대암(中臺庵), 별실암(別室庵) 등으로 옮겨가며 묵었다.

대개 정미년부터 지금 갑자년까지 거의 20년 동안 이 산을 다녀간 것이 열두세 번이 된다. 예전에 지은 시들을 더듬어 보니 이미 지나간 흔적이 되어버렸고, 이비원, 이임중, 이인중은 모두 고인이 되었으니, 또한 그 감회를 금할 수 없다. 그 가운데 더욱 부끄럽고 가슴 아픈 것은 산에 들어 갈 때에는 마음과 생각을 깨끗이 하고 책상에서 책을 보며 몸과 마음을 정리하여 본원(本源)을 함양해서 뒷날에 도를 받아들이는 바탕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다른 세속의 업무에 휘둘리거나 일 때문에 곧장 산을 나와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산문(山門)을 나서자마자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이 사물의 끝없는 변화를 만나게 되자 마침내 지켜낼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조금 얻은 것도 함께 다 잃어버려, 모든 언행(言行)에 있어서 한 가지도 볼 만한 것이 없게 되었으니, 도리어 세상 속에 빠져 사는 것만 못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헤매고 있으니 끝내 소인이 되어버림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로써 사람이 수양하는 것은 학업에 힘씀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는 것이지 처해 있는 곳의 시끄럽고 조용한 것과는 관계가 없음을 알았다. 뒷날 산에 들어가는 사람은 나를 보고 경계로 삼으라.
--------성재 금난수---




여러 번 청량산을 찾은 것에 대해 기록하다

淸凉是山林之最勝也. 驢笻之探歷樸被之畱漣. 與他山迴別矣. 余於丁未春. 歷入玆山. 始識面目. 己酉冬. 與李庇遠李任仲. 入山栖上仙庵. 具景瑞尹而直權子胖金大寶. 則已寓諸庵間. 日與景瑞
諸人. 相會講論所讀書. 庚戌春. 又棲斯庵. 辛亥孟秋. 又栖蓮臺寺. 先生送行詩. 壬子夏六月. 入山獨棲安中. 畱一月. 移寓滿月. 月餘. 還安中. 丙辰夏. 又棲蓮臺. 移寓金剛窟. 畱一月. 丁巳冬. 與具汝膺. 入山. 畱汝膺于文殊. 獨棲斯菴. 戊午冬. 又與李仁仲三昆季. 入山. 三人則寓文殊. 余則又棲斯庵. 甲子正月. 率憬兩兒. 寓文殊. 移棲金生大乘中臺別室等庵. 蓋自丁未以後至今. 甲子幾二十年. 往來于玆山者. 十有二三焉. 摩挲舊題. 已成陳迹. 而李庇遠李任仲李仁仲. 皆爲古人. 又不勝其感懷矣. 其中尤有所可愧可恨者. 方其入山之時. 洗心滌慮. 對案觀書. 收拾身心. 涵養本源. 以爲他日受用之地. 而被他俗務擾奪. 或因事卽出. 做功不專. 纔出山門. 耳聲目色. 接事物無竆之變. 則竟未能保. 其些少所得. 而並失之. 其於動靜云爲無一可觀. 反不如沒頭塵土之俗流. 至今貿貿. 終不免小人之歸. 是知人之所養. 在用功之如何. 不係於所處之閙靜也. 後之入山者. 於余戒之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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