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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1552년 퇴계 이황의 주세붕의 유청량산록에 대한 발문(周景遊淸凉山錄跋)
 글 쓴 이 : 퇴계 이황  이메일 등 록 일 : 2008-06-21 오전 12:00:32 조 회 수 : 1224

 

 

                                   주경유의 청량산록에 대한 발문(周景遊淸凉山錄跋)

 

 

안동부의 청량산은 예안현의 동북쪽 수십 리 지점에 있는데 이황의 선려(先廬)가 그 노정의 절반쯤에 있다. 새벽에 출발하여 이 청량산까지 가면 해는 정오가 채 안 되고 배도 불러 있으니 이 산은 비록 다른 지방에 있으나 실은 우리 집 산인 것이다. 나는 어릴 때에 부형을 따라 작은 노을 짊어지고 이 산을 오가며 글을 읽은 것이 몇 번인지 알 수가 없다. 고요한 속에서 경서를 연구하여 깊이 깨닫지 못하고서 가벼이 세로(世路)에 나갔으니 이리저리 오갈 때에 심경지(沈慶之)와 공치규(孔稚圭)의 무리는 곁에서 몰래 비웃고 기롱할 것이다.

 

돌아보건대, 신선산은 연하(烟霞)의 밖에 옥처럼 아름답게 솟아 있는데 수십 년 이래로 산경을 걸어 본 것은 겨우 한두 번이었다. 1549년(명종 4) 봄에 나는 풍기군수로 가서 다행히 주선생 경유(景遊)의 유산록을 고을 사람에게서 얻어서 세 번 가량 반복해 읽어 보았더니 감탄되는 마음이 발작하였다. 얼마 안 가서 풍기군수를 그만두고 산 아래의 전원으로 돌아가 4년 동안 와병 중에 있었으나 역시 한 번도 동문을 찾아가 보지 못했는데 이제 경사(京師)에 와서 선생과 더불어 낮은 벼슬에 있으면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게 될 줄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하루는 선생이 혼연히 찾아와서 책 한 권을 보여 주었는데 곧 전번의 유산록으로 전에 얻어 본 것에 비하여 10분의 4~5를 더 보탠 것인데, 이에서 그 보지 못한 것들을 더 보게 되었다. 바로 한숨 쉬며 말하기를, “위대하도다. 선생의 이 산에서 얻은 것이여! 혼돈상채에서부터 천지의 형체가 이미 이루어진 시기에 이르기까지는 몇 천 년, 몇 만 년이 되는지 알 수 없는데, 하늘은 특이한 것을 간직하고 땅은 기특한 것을 숨기고 있다가 곧 선생의 글을 기다려서 발로하였으니, 어찌 이 산이 일대 좋은 기회를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산의 여러 봉우리는 모두 축서(竺書:불서)의 황망한 말과 제불의 음혼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것은 참으로 신선지역의 욕이며 우리 유학자들의 수치가 되는 것이다.

 

이제 선생이 그 봉우리 이름들을 차례로 고쳐서 그 치용을 통쾌하게 씻어 버렸으니 그 산령(山靈)을 위로하고 정채(精彩)를 빛나게 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가.”하였다. 후일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는 그 책을 한 벌 베껴서 석실(石室) 속에 간직할 예정이다. 그러면 그 책은 필시 수호되어 천년토록 썩지 않을 것이니, 나의 이름을 그 책 끝에 붙인 것이 큰 다행이 되지 않겠는가.

 

                                           임자년 9월 8일에 진성 이황 쓰다. - 이황(李滉), 『퇴계전서(退溪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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