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각江閣

 

 

 

 

 

 

  농암의 자연사랑은 지극했다. 그래서 퇴계는 “아! 선생은 바라보면 신선神仙 같아 진실로 강호江湖의 진락眞樂을 얻었다”고 하고, 자신이 그 진락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진락’은 자연 사랑이고, 그 사랑의 함축이 ‘류상곡수流觴曲水의 풍류’이다. ‘류상곡수’는 지난날 최고품격의 풍류모형이었고 자연 사랑이었다. 농암은 퇴계와 더불어 분강의 가운데 ‘자리바위(簟石)’에서 펼쳐진 유상곡수의 풍류에서 강과 달과 배와 술과 시가 있는 풍경을 연출했다. <농암집>과 <퇴계집>에 이런 글들이 있다.

 

 

 

   “이윽고 날이 저물어 달빛에 물빛은 흐릿한데, 분강 한 가운데 ‘자리바위’에 촛불을 켜니, 강물은 여기서 좌우로 나누어져서 흘렀다. 한 줄기는 내가 앉은 자리 곁으로 흐르고, 아래에 퇴계가 앉아 있었다. 내가 취하여 희극을 하는데, 술잔에 술을 부어 ‘조그만 뗏목(木禁)’에 올려 흘려보내니 경호景浩(퇴계의 자)가 아래에서 웃으면서 받아 마시기를 왕복 서너 차례, 중거仲擧(황준량의 자)의 무리들이 이 정경을 보고 부러워했다.”

 

 

   “농암상공께서 성주城主와 황滉을 불러 천석泉石에서 유상遊賞하시고자 했지만 그날 비가 와서 성주는 왔으나 황은 가지 못했다. 며칠 뒤 다시 부르셨다. 황과 중거 및 여러분이 배를 띄워 ‘자리바위’에서 놀음을 만들었다. 이리하여 이날 강각江閣에 유숙留宿했는데 상공께서 詩로써 그 사실을 기록해두었다.”

 

 

 

  농암은 명예를 버려 명예를 얻었다. ‘강호지락江湖之樂’은 곧 인생의 행복이었고 그런 생애가 문학을 낳았다. 문학은 ‘강호지미江湖之美’로 나타났고, 거기 ‘인간지락人間之樂’이 있었다. 퇴계는 농암이 거니는 경관은 ‘진경眞境’이며, 농암의 강호유상은 ‘진락眞樂’이며, 농암은 진정 강호를 이해한 ‘진은眞隱’이라 했다. 국문학사에서 농암을 ‘강호가도의 창도자’라는 도남 조윤재 박사의 언급은 우연이 아니며, 퇴계의 문학은 여기서 다시 이기철학이 스며들어 철학적 사유가 곧 시적 변용이 되는 피안의 ‘경敬’의 세계에 도달하고 있다. ‘강호지락’의 낭만적 미의식과 이기理氣철학의 학문적 사색이 깊이를 더해갔으니, 거기 우리고유의 진정한 문화의 도, ‘풍류風流’가 있었다.

 

 

  ‘강각江閣’은 1512년 전후, 애일당 아래 분강의 강가에 농암이 지은 집으로, ‘영남가단’의 모태가 된 건물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이곳에는 퇴계뿐만 아니라 김안국金安國, 이우李堣, 이언적李彦迪, 주세붕周世鵬, 이해李瀣, 황준량黃俊良, 조사수趙士秀, 임내신任鼐臣 등의 많은 명현들이 함께했다. 그런 분위기의 풍류에서 나온 작품이 농암의 ‘어부가漁父歌’였다.

‘어부가’는 이후 퇴계의 ‘도산12곡’에 영향을 주었고, 이한진李漢鎭의 ‘속어부사’, 이형상 李衡祥의 ‘창보사’ 등에 이어지고, 드디어 윤선도尹善道의 ‘어부사시사’로 이어졌다. 윤선도는 ‘어부사시사’의 서문에서 “어부사를 읊으면 갑자기 강에 바람이 일고 바다에는 비가 와서 사람으로 하여금 표표하여 유세독립의 정서가 일어나게 했다. 이런 까닭으로 농암 선생께서 좋아하셨으며 퇴계 선생께서도 탄상해 마지 않으셨다”고 했다.

 

  안동지역에서는 17세기 김응조金應祖, 18세기 권두경權斗經, 19세기 이휘영李彙寧 등의 문집 기록에 “분강에서 농암의 ‘어부가’를 다 함께 불렀다”고 하여, 학술적 계승이 아닌 현장연출로서 수백 년의 집단적 전승이 있었음을 밝혀놓았다. 그래서 국문학사에 송순宋純-정철鄭澈로 이어지는 ‘호남가단湖南歌壇’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다고 했다.

‘어부장가’ 9장 가운데 그 9장은 이러하다.

 

 

 

 

                     한 번 낚싯대를 들고 배에 오르면,

                     세상의 명예와 이익은 아득히 멀어지나니,

                     배 붙여라, 배 붙여! 배를 매고 보니 지난 자취가 여전히 남아 있구나.

                     찌그덩, 찌그덩, 엇 샤!

                     엇-샤! 소리에 강산은 더욱더 푸르러 가네.

 

  

 

***강각 관련 다른 시

              

                                                                               江 閣

                                                          -달과 강과 배와 술과 시가 있는 풍경-

   애일당, 강각 아래 분강에는 귀먹바위 농암과 더불어 ‘점석簟石’이라는 자리바위가 강 가운데 있었고, 이들 바위에서는 농암 특유의 강호풍류가 펼쳐졌다. 여기에는 달과 강과 배와 술과 시가 있는 풍경이 연출되었고, 이 모임에는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온계溫溪 이해李瀣, 퇴계退溪 이황李滉, 송강松岡 조사수趙士秀, 어은漁隱 임내신任鼐臣,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등 많은 선현들이 함께 했다. 이는 물론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의 풍류風流’와 ‘진현晋賢의 유상곡수流觴曲水의 모형’을 잇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담백하면서도 진솔한 품격의 한국적 풍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퇴계와 함께 한 ‘유상곡수’의 당시 광경을 농암은 이렇게 묘사해 놓았다.     

  “‘자리바위(簟石)’의 유상遊賞을 퇴계와 금계(錦溪 黃俊良)와 아들, 동생들이 함께 했다. 조그만 배를 타고 ‘귀먹바위(聾巖)’ 아래로부터 배 줄을 풀어 천천히 흘러가서, ‘사자바위(獅子石)’를 지나 ‘코키리바위(象巖)’에 이르러 배를 바위에 의지해 묶어 놓고, 주변을 두루 구경하고 나서 다함께 올라가서 만져보고 놀기를 오래하였다.

 그러다가 이윽고 아래로 내려와 바로 자리바위에 이르니, 이때는 쌓인 비가 새로 개이고 먼지와 더러운 것들이 깨끗하게 씻기어 매끄럽기가 마치 구슬 같았다. 빗물이 돌 사이의 틈에 고여 있고, 이 지세를 따라 자유롭게 앉았다. 조그만 술상을 차려 예를 갖추긴 했으나 지극히 자연스럽게 했다.

 이리하여 종일토록 환담하다가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구름이 달빛을 가리어 물빛이 흐릿하여 촛불을 켜 밝히니 바위는 분강 한가운데 드리워 있고, 강물은 여기에서 좌우로 나누어져서 흘렀다. 한 줄기는 내가 앉은자리 곁으로 흐르고 그 아래는 퇴계가 앉아 있었다.

 내가 취하여 희극을 하는데 술잔에 술을 부어 나무 가지로 임시로 만든 조그만 뗏목에 올려 띄우니  퇴계가 아래에서 웃으면서 받아 마시기를 왕복 서너 차래, 금계의 무리들이 이 정경을 보고 부러워했다.”

                                                                                                      『농암집』‘醉時歌’

 

*농암선생의 시(1)

       蘸水奇巖有舊名      물속 기이한 바위 옛 이름 있었는데,

       遊人探勝自篷瀛      遊人이 사랑해 스스로 신선이 되었다네.

       雨餘江漲波光碧      비 온 뒤 물빛 푸른데,

       夜久烟沈燭影明      밤 물안개에 촛불 그림자 선연하다.

       坐石四隅隨地勢      바위모양 따라 네 구석에 앉아,

       流觴兩處剩歡情      술잔을 양쪽으로 띄우니 기쁨이 넘친다.

       醉來還泛中流棹      취하여 배를 타고 강 가운데로 흘러가니,

       飛沫西風洒面淸      휘날리는 서풍에 낯이 씻기어 상쾌하다.

       雨餘泛舟遊簟石次退溪  비온 뒤 배를 띄우고 점석에서 유상하며 퇴계의 시를 따라 짓는다

                                              『농암집』‘醉時歌’

*퇴계선생의 시(1)

       投老歸田豈爲名      벼슬을 던짐이 어찌 명성을 위함인가

       陪遊泉石似登瀛      모시고 泉石에서 노니 선경에 오른 듯.

       賜書屢賁楊三逕      여러 번 책을 하사 받은 楊憶과

       欶水寧論賀四明      欶水의 賀四明을 어찌 비유하리!

       雨送雙鳧雖絶勝       비속에 신선을 보내니 경치 더욱 빛나고,

       風吹一葉更多情       바람이 불어오니 더욱 다정하다.

       林間小閣通宵夢       숲 속 소각에 밤새도록 꿈인데,

       陡覺神魂分外淸       문득 깨어나니 정신이 분수밖에 깨끗해진다. 

       聾巖相公邀城主及滉遊賞泉石, 其日雨城主來而滉不往, 後數日再招, 滉與仲擧諸人泛舟爲簟石之遊, 仍留宿江閣, 相公令詩以寄其事  농암 상공께서 성주와 황을 맞이하여  천석에서 유상하고자 했다. 그날 비가 와서 성주는 왔으나 황은 가지 못했다. 며칠     뒤 다시 부르셨다. 황과 금계 및 여러 분이 배를 띄워 ‘자리바위簟石’의 놀음을  만들었다. 이리하여 이날 江閣에 유숙했는데, 상공께서 시로써 그 사실을 기록하셨다.

                                                                                                        『도산전서』三, 詩      

*농암 선생의 시(2)

     脚疾難將御李舟      각질로 李膺의 배를 몰기 어려운데

     危欄獨倚送中流      가파른 뱃전에 기대어 중류로 흘러가네.

     日斜江面波紋靜      날은 저물어 수면 잔잔한데,

     霜後林梢落葉稠      서리 후 나무는 앙상한 낙엽만이.

     堂上蹁跣嫌獨樂      마루 위 춤추는 독락이 싫어,

     蘺邊採擷揷誰頭      울타리 국화 따서 누구머리에 꽂아줄까.

     繁絃急管兼花酒      노래 소리에 꽃술을 더했으니,

     輪興全般作勝遊      흥을 실어 모두가 경치를 즐기네. 

     簟石遊次李應敎韻錄呈行軒,  자리바위에서 퇴계의 시를 따라 짖고 그의 가는 길에 보낸다.

     前日畏風未諧簟石之遊懈謝之餘獲覩寄豚兒長律詩雖寄兒意主於翁故不敢虛辱奉賡耳  전일 바람이 두려워 자리바위 유상을 함께 못함이 유감스러웠는데, 지금 시를 보내온  것이 비록 아이들에게로 되어 있으나 뜻이 나에게 주로 한 것이므로 감히 욕되게 할 수 없어 화답하고자 한다.

                                                                                                           『농암집』‘醉時歌 小序’

*퇴계선생의 시(2)                                

      罇酒相携許入舟       배에서 술 마시고 노는 것 허락 받아,

      仍於高座笑臨流       높은 자리에서 웃으며 흘러가네.

      玲瓏玉界窓瓏靜       영롱한 옥계의 창문은 고요하고,

      縹紗仙娥鼓笛稠       아리따운 신선 계집아이 피리소리 조밀하다.

      世路向時眞失脚       세상 길 나아감이 진실로 잘못되었는데,

      菊花今日滿簪頭       국화는 오늘따라 갓 위에 가득하다.

      何因得脫浮名繫       어찌 뜬 명예에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면서,

      日日來從物外遊       날마다 모시고 쫓아다니는 物外의 유상.

      昨拜聾巖先生退而感作詩二首 어제 농암선생을 뵙고 물러나면서 느끼는 바가 있어 2수를 짖는다.

                                                                                                                『도산전서』三, 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