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선생 유적지_분강촌 ::::::::: 농암종택

<사랑방 안동>에 대한 회고

2002년 여름, <사랑방 안동81호>에 원고 한편 보냈다. 이후 3회에 걸쳐 연재했다. 제목이 ‘예던길을 따라서’였다. 도산면 단천리에서-가송리-청량산을 걸어가는 옛길 안내서 같은 글이었다. 옛날 선인들이 천사-단사-백운지-매내-올미재-너분들을 따라가는 청량산 길이었다. 100편 이상의 기행문이 남아 있고, 10000편 이상의 시가 남아 있다. 유산기로는 거의 금강산과 견줄만하다. 이 길을 퇴계는 ‘그림 속’이라 하고,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했다. 남인의 시인, 묵객, 학자들이 일생에 한 번 걸어보는 꿈의 길이었다. 걸어 보니 과연 무인지경의 그림 속 같은 풍광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돌아와 다시 문헌을 뒤적여 보니 정말 예사로운 길이 아니었다.

도산 길은 과거 ‘도산9곡’이라 명명했고, 이곳은 그 가운데 7, 8, 9곡에 해당되는 지역이었다. 매내에서 올미재는 차령통행이 불가능한 옛길 그대로의 길이었다. 4킬로미터, 1시간 정도 거리. 칸트가 걸어 전 세계인이 걷는다는 유명한 ‘철인의 길’ 열 배 이상의 유서 깊고 멋진 길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지점에서 쓴 퇴계의 시가 있어 소개한다.

구비구비 맑은 여울 曲折屢渡淸凉灘

우뚝 솟은 높은 산 突兀始見高高山

맑은 여울, 높은 산 숨은 듯 다시 보이고 淸凉高高隱復見

무궁한 모습 시심을 북돋우네. 無窮變態供吟鞍

그래서 글을 써서 알리고 가치를 공유하며 잘 보존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권기윤 교수에게 ‘도산9곡도’를 그려보라고 권유하고 그 지점, 지점을 안내하며 몇 차례 걷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부지까지 매입된 강변 5m 도로계획은 극적으로 철회되었다. 백운지-매내-올미재 길은 그렇게 보존되었다. 이름도 내가 쓴 글과 같이 ‘예던길’로 명명되었다. 내게는 숙명 같은 일이었다.

그 무렵 나는 백수였고, <안동> 편집위원장인 권세홍은 만날 때마다 밥을 사주었다. 그래서 미안하기도 해서 내가 “글은 내가 써 줄태니 밥은 귀하가 사시라”고 해서 계속해서 쓰게 되었다. 이후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강의를 위해 글을 쓰게 되었는데, 이런 ‘안동의 글’들이 생각 있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문화충격을 주었고, 드디어 2008년에는 <천년의 선비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다. 인문서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신문마다 신간소개를 했고 장문의 ‘서평’까지 실렸다. 명색 ‘글 쓰는 사람’이 된 셈이 되었다. 책의 부제로 붙인 말처럼, 이 길이 ‘한국문화1번지’라 했는데, 여러분이 공감하고 동참해왔다. ‘청량산문화연구회’, ‘도산9곡 문화연대’ 같은 모임도 생겨났고 참여도 했다. 또 적지 않은 사람이 가송리 오지의 필자 집을 찾아와 사인을 받아갔고, 대화를 하게 되었고, 드디어 도산9곡에 국책사업인 3대문화권 사업이 실현되는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 좀 더 소개하면 도산2곡’에 세계유교박물관, 한국태마파크 등의 건물과 예안현복원, 도산7곡에 육사문학관 확장과 유림유토피아, 전 구간 ‘예던길 조성’ 등의 사업이다. 뿐만 아니다. 2010년에는 중국 복건성 무의대학에 가서 ‘도산9곡과 유교문화’라는 제목의 강의도 했다. 그때 무이대학과 한국국학진흥원은 도산9곡과 무이9곡에 대해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했고, 이후 해마다 교환방문 하고 있다. 실로 이 강변 일대에 파천황의 변모를 가져오게 했다. 먼 후일 수많은 문화기획들이 펼쳐지고 담겨지고 발효되는 현장으로 길이 사랑 받으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 땅에 태어나서 나라와 지역사회에 조그만 기여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문득 자신에게 관대해진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도산8곡 올미재에 옛 유적들을 이건하여 4곡에 있던 선조들의 유적들을 보존하게 되었으니 그 또한 더 할 수없이 기쁘다. 이런 여러 과정과 인연들을 떠올리니 <안동>이 나의 인생에 스쳐간 영향이 결코 적지 않다. 그 <안동>이 종간하며 사랑방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제 한 말 써 달라 하니 문득 감회가 새롭다. 만난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쉼 없이 편집, 간행해온 김복영, 권세홍 두 분의 노고와 후원자 여러분의 지역사랑의 진정성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를 표하면서 이런 두어자 글로서 인사를 대신하고자 한다.

2014년 10월

강호문학연구소 이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