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선생 유적지_분강촌 ::::::::: 농암종택

金容傑指導敎授

博士學位請求論文

李滉,李珥理氣論爭의 政治社會的性格에 관한 硏究

-16세기 士禍, 黨爭에 대한 對應과 관련하여-

이 논문을 박사학위 청구논문으로 제출합니다

1998년 12월 일

誠信女子大學校大學院

漢文學科韓國漢文學專攻

李性源

一. 緖論

二. 理氣論爭의 初期樣相

1. 徐敬德의 理論에 대한 李滉의 視角

2. 李滉의 주장에 대한 李珥의 視角

三. 對決政局과 李滉의 理氣分屬論

1. 對決政局의 推移

2. 李滉哲學의 새로운 검토

3. 對決政局의 向背와 理氣分屬論

4. 理氣分屬論의 窮極的指向點

四. 分裂政局과 李珥의 理氣妙合論

1.分裂政局의 推移

2.對決政局에 대한 哲學的認識

3.分裂政局의 推移와 理氣妙合論

4.理氣妙合論의 時代的性格

五. 結論

李性源의 博士學位論文을 認准함

審査委員印

誠信女子大學校大學院

一. 緖論

1. 硏究의 前提

2. 硏究의 方向

二. 理氣論爭의 初期樣相

1. 徐敬德의 理論에 대한 李滉의 視角

2. 李滉의 주장에 대한 李珥의 視角

三. 對決政局과 李滉의 理氣分屬論

1. 對決政局의 槪觀

2. 李滉哲學의 새로운 검토

3. 對決政局의 向背와 理氣分屬論

4. 理氣分屬論의 窮極的指向點

四. 分裂政局과 李珥의 理氣妙合論

1. 分裂政局의 槪觀

2. 對決政局에 대한 哲學的認識

3. 分裂政局의 推移와 理氣妙合論

4. 理氣妙合論의 時代的性格

五. 結論

一. 緖論

1.硏究의 前提

한국 性理學史에서 ‘理’와 ‘氣’, 혹은 ‘主理’, ‘主氣’의 논쟁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조선전기 대표적 지성인 李滉(1501-1570), 李珥(1536-1583)가 논쟁함으로써 미증유의 영향을 역사에 남겼다. 그리고 이들을 추종한 학자들에 의해 계속적인 시비공방의 불씨로 작용했다. 또한 이 논쟁은 조선시대의 이들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비록 연구의 차원이기는 하나 性理學硏究史와 관련해서도 역시 지금까지도 명쾌한 결론이 드러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¹⁾ 아마 하나의 명제에 대해 그토록 오랜 세월을 두고 학술적인 논쟁을 한 역사적 사례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진술이 역설적으로 이 방면의 기성 연구의 성과가 아직은 많은 부문 과제를 갖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성리학의 연구, 즉 이기이론의 부문이 진정 규명이 어려운 난해성에 기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접근의 시각에 대한 연구방법론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에 맞서게 된다.

성리학은 사실 중국 송나라에서 성립된 철학 이론이고, 그 학문을 체계화, 정밀화한 사람은 朱喜(1130-1200)이다.²⁾ 흔히 朱子라고 불리우는 인물이다. 한국의 성리학은 절대적으로 주자의 이론을 신봉했기에 바로 ‘朱子學’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거의 문제시되지 않았던 학문이 어떻게 한국에 전래되어서는 그토록 치열하고 복잡하게 전개되었는가, 무엇 때문에 다른 해석이 나타나며 대립되는 견해가 계속해서 제기되었는가?³⁾

조선전기 지식인들, 특히 16세기 사림파 계열의 문인, 관료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파고로 떠올라 결국은 당대의 문화전반을 주도하게 되는 이 논쟁의 정치, 사회적 성격은 무엇인가?

가령, 徐敬德(1489-1546)과 이황, 이황과 奇大升(1527-1570), 그리고 이이로 이어지는 초기논쟁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논리와 언어는 대립하면서도 저마다 확신에 차여 있다. 서경덕은 자신의 학설이 “천년의 역사에서 아무도 밝히지 못한 진리를 터득했다”고 자부했으나⁴⁾, 이황으로부터는 여지없는 비판을 받았다⁵⁾. 그런 이황 역시 오랜 기간 자신의 학설을 조절하고 정하였지만 기대승, 이이 등으로부터 또 다시 비판받았다⁶⁾. 이이는 또한 자신의 학설이야말로 “비록 주자가 다시 태어나더라도 (내 이론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며, 이황의 이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다. 비록 이론적 대립은 없었다 하더라도 성리학의 이론천착과 실천궁행이라는 관점에서 지대한 구실을 한 趙光祖(1482-1519), 李彦迪(1491-1553)은 또한 이황, 이이로부터 각각 다르게 비판을 받아 매우 흥미롭다. 다시 말하면 조광조는 이이로부터는 극찬 받았지만 이황으로부터는 적지 않은 결함이 있는 인물로 지적 받았고,⁷⁾ 이언적은 이황으로부터는 매우 존경받았지만 이이로부터는 매우 역시 부정적 비판을 받았다.⁸⁾ 이런 사실은 이론적 대립의 외적인 부분이지만, 이론적 대립의 구조를 보다 선명하게 밝혀주는 토대가 된다. 이들이 거의 동시대 인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논쟁의 핵심은 주로 성리학의 理, 氣 라는 글자를 중심 되는 개념으로 하여 전개되었으며, 거기에 따라 파생된 다양한 보조개념들이 시비를 증폭시켰다. 이러한 논리의 시비는 중세시대의 지적환경을 고급문화의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매우 심대한 구실을 하였고, 나아가서는 조선시대의 역사를 이끌어간 가장 정체 있는 사상체계가 되었다. 그런 분위기는 이후 등장하는 ‘실학’이라는 학문의 부상과 관계없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인물에 대한 이들 상호간의 외연적 평가는 적지 않은 부문이 비록 정치적 평가와 관련되는 것이지만, 역시 학문적 대립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⁹⁾

특히 이황과 이이의 논쟁은 주지하다시피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라는 각기 다른 학파의 결성을 잉태시켰고, 이후 계속되는 이기논쟁과 정치논쟁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황과 이이의 연구 혹은 성리학의 전반적 연구는 지금 이 시기의 지배층의 내부, 특히 사림집단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정치, 사회적으로 변용 시켰는가의 유기적 관계에 대한 천착은 아직 충실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사실 성리학의 이데올로기적 구실의 규명이 핵심적 과제이지만, 아직까지의 연구의 성과는 가령 이이의 철학이 철학적 존재의 원리를 따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실천론으로 적용되었다든지¹⁰⁾, 이황의 철학이 역사적 측면에서 사림집단의 집권에 주요한 구실을 한 것으로의 평가¹¹⁾에 머무르고 있다. 그 만큼 학문자체의 논리성 천착에 깊이 경도 되어 있어서 연구의 범위 역시 제한성을 지니면서 조심스럽게 수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심성에 대해 한편으로는 ‘반성적 차원’에서 이런 자세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논리의 제기도 없지 않다.¹²⁾

역사상 명멸했던 모든 철학과 사상은 시대의 현실을 바탕으로 형상화되었음을 상기할 때, 성리학의 이, 기의 논쟁 역시 당시의 정치적 동향인 사림집단과 훈구집단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의 산물인 ‘士禍’와 그 이후에 이어지는 사림집단의 분열인 ‘黨爭’과 무관하게 전개되었다고 볼 수 없다.¹³⁾ 사화와 당쟁은 이 무렵의 사림집단 개개인에게는 바로 눈앞의 삶 자체였던 것이다. 더구나 이 무렵 성리학은 ‘道學’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부상되었음을 염두에 두고 보면 더욱 그러하며, 또 도학에 근거하는 ‘公論’이라는 이론투쟁과 바로 연계되어 있다.

이황, 이이의 성리학의 학문적 개화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여건에서 획득한 것이라는 기성의 연구성과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초기 서경덕의 이론을 이황이 왜 그토록 비판하며, 이 비판을 왜 이이가 다시 비판하는가에 대한 검토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기의 논쟁과 대립이 아무런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게 전개된 것이라면, 이황의 서경덕에 대한 학문적 입장은 설명되지 않으며, 이이 또한 존경하는 선배에게 학문적으로 그렇게 대치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의의 방향은 당시의 이런 상반되는 학문적 태도가 당시 정치, 사회적 추이와 어떻게 구조적으로 기능하며 연계되어 있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그리하여 성리학의 연구는 이제 그 제한성을 넘어서 발전적인 연구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¹⁴⁾

따라서 논의의 기본적 조건은 이들 각 개인의 언. 행의 구체적 분석이 이들 각 개인의 철학과 사상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는가를 정치하게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호 유기적 관계를 규명해야 정당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상적으로는 서경덕, 이황, 이이의 이론적 대립의 구조와 더불어 조광조, 이언적을 동시에 포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본 논문은 초기 주리, 주기 논쟁의 대표적 인물인 이황, 이이에 대한 부문을 그 집중적 대상으로 하며, 나머지 인물은 그 연관성의 차원에서 규명토록 한다. 그러므로 논의의 방향 역시 이황에게는 ‘士禍와 道學’이 중심 되는 테마가 되며, 이이에게는 ‘黨爭과 公論’이 그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2. 硏究의 方向

이렇게 하기 위해서, 본 논문은 크게 3가지 부문으로 나누어서 연구하여 그 논지를 이끌어 가고자 한다.

첫째는 이기논쟁이 시작된 초기양상에 대한 검토이다. 이 검토의 주요 사항은 서경덕이 주장한 기일원론의 이론체계와 이에 대응하는 이황의 자세와 논리의 시각, 그리고 이들 양인의 논의와 시비를 목격한 이이의 시각을 분석한다. 여기서 검토한 논의의 귀결은 결국 이황과 이이의 주장과 논쟁이 어떻게 대립하고 상이한가를 비교 분석한다.

서경덕의 이론과 주장은 사실 이황, 이이의 논쟁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이황의 시각과 사상의 한 단면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이황은 자신의 무수한 성리학적 이기이론에서 정치적 색채를 전연 드러내고 있지 않다. 이황에 대한 기성의 많은 연구의 집적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의 이론과 철학체계가 알기 쉽고 시원스럽게 소개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황을 이런 측면에서만 검토한다면 이황은 ‘학자’라는 말은 대체로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황은 가장 현실주의적 정치가라는 편이 필자의 시각이다. 왜냐하면 서경덕에 대한 이론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그의 본심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경덕이 찬양한 ‘氣’ 개념에 대한 노골적 비판과 부정은 자신의 이론정립은 물론 나아가서는 정치적 목표를 염두에 둔 고도의 외곽을 분쇄하는 초기 대응의 수단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황의 서경덕에 대한 비판의 검토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이가 서경덕과 이황을 동시에 비판하는 것도 자신의 이기이론의 정립과 시국에 대한 시각에서 비롯된다. 이이는 특히 이황의 理 개념을 정면에서 바로 비판하는 데서 오는 정치적 중압감을 서경덕과 더불어 함께 조망하는 것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氣 개념에 대한 자신의 긍정과 이황의 전면적 부정에서 서경덕이 그 중간자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이가 자신의 논리를 수립하는 일을 이 무렵의 이황의 존재로 볼 때 결코 쉬운 일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이는 이황을 극복하고 시국에 알맞은 철학의 제시와 이론을 정립하여 자기시대의 대표적 지성으로 국정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황이 서경덕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이가 서경덕과 더불어 이황을 포괄해서 바라보는 시각의 연구는 이 논문의 예비적 단초를 제공한다.

둘째는 초기양상의 분석에서 드러난 각 개인의 주장을 근거로 이황에 대한 부문을 먼저 분석한다. 이황 주장의 핵심은 ‘이와 기를 분리하여 소속시킴’, 즉 ‘分屬’에 그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필자는 이를 ‘理氣分屬論’이라 편의상 부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황의 방대한 성리학 관련의 이론은 대체로 이원론적 입장에서 분속을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기에 대한 논의가 분속에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자신의 이론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굽히지 않고 있다. 사실 조선시대의 이른바 주리, 주기의 논쟁이란 따지고 보면 이황의 ‘분속’과 거기에 따르는 ‘理’의 독자성, 능동성, 운동성 등의 의미부여에 대한 타당성의 공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황은 자신의 주장을 끝내 고수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는 자신의 주장이 자기시대의 시국상황과 조화롭게 조응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황의 철학이 이제까지의 일반적 시각인 이상론이라는 관점보다는 보다 일관되게 현실적이라는 구조체계가 내재하고 있음을 이 단원에서 증명한다.

즉 이황의 이기이론에 대한 연구는 이황시대의 특징인 士禍政局에 어떻게 대응하는 구조를 내재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또한 이기에 대한 분속의 고수는 이와 같은 시대상황의 정치적 구조의 연관성에서 만 규명되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분석된 이기이론이 거시적으로 이황이 주장한 ‘道學’과 어떠한 연관성을 지니는가. 즉 이기 분속을 주장한 이황의 궁극적 지향점과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이다. 도학과 도학자에 대한 개념과 분석을 통해 당시 대표적 도학자의 당사자인 이황의 존재와 위상 그리고 이기분속론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추적하는 것이다.

셋째는 이이의 검토이다. 이이시대는 이황시대와 동시대이면서도 매우 다른 국면이 전개된 시대이다. 즉 이황시대와 이이시대는 사화진행기와 사화종식기의 시차를 가지면서, 두 사람의 입장 역시 전자가 전생을 거의 野의 입장에 있었다면 후자는 이미 與적인 입장에서 시국을 진단하고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두 사람의 이론이 상이한 양상으로 전개된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며, 또한 대립의 구조를 지닐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이의 사상과 철학이 지금 와서 이황과 흡사하다면 그의 논리는 시대상황을 고민하지 않은 그야말로 현학적인 것이 머무르고 만다. 여기에 이이철학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이의 이기에 대한 견해는 이황과 다르게 이와 기의 妙合에 모아지고 있다. 이와 기의 묘합은 이와 기의 분속을 고수한 이황과는 숙명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묘합’은이이시대의 현안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논리이다.

이이의 이기이론은 ‘이기묘합론’으로 요약된다. 이 이론은 곧, 이이시대는 사화가 종식된 다음에 곧 이어서 발발한 사림들의 격화된 분열을 조정하고 정립하고자 하는 이론인 것이다. 훈구집단의 존재와 사화 발생에 대한 모순이 종식될 무렵, 또 다른 분열과 대립은 이이에게 ‘妙’ 라는 처방을 도출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무렵의 정치적 추이를 검토하면서 분열되는 사림집단의 향배와 이이의 대응을 이이의 이기이론과 더불어 그 무렵 흔히 거론되는 ‘公論’의 추적과 아울러서 분석한다. 이이는 그 자신이 이러한 분열의 중심고리에 위치했고, 그 칼날을 양손에 쥐고 있는 정치적 위상이 이러한 공존과 조화의 묘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이의 부문은 이이의 이기이론이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형상화되었음을 증명한다.

이렇게 추출된 이론, 즉 이황의 이기분속론과 이이의 이기묘합론의 연관성과 차별성이 시대상황과 어떻게 조응하는 가를 종합하는 것으로 결론부문으로 정리한다.

二. 理氣論爭의 初期樣相

1. 徐敬德의 이론에 대한 李滉의 視角

이기논쟁에서 이황의 서경덕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이기논쟁의 초기양상과 이황을 이해하는데 소중한 단초가 된다. 왜냐하면 이황의 서경덕의 기일원론에 대한 혹독한 비판은 이황의 저의를 탐색하는 자료는 물론 이후 이이의 동향과 대응을 검토하는데도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황은 몰 후 사관으로부터 “한번도 타인의 잘잘못을 말한 적이 없고 ,한번도 국사를 논한 적이 없다¹⁵⁾”라고 평가받을 만큼 일생을 근신하며 조심스럽게 처신한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지만, 서경덕의 학설을 평가하는데는 극도로 민감하고 단호하다. 이황이 학문자세에서 이런 경우는 매우 예외적인 것으로, 단순한 학문일반에 대한 대립적 견해의 차이로마는 이해되지 않는다. 서경덕이 자신의 학설을 어떻게 의식했던지 관계없이 이황의 안목에는 지극히 위험스럽고 불온한 학문으로, 그가 그리는 세계에 치명적인 결과가 미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황은 ‘理가 있는 다음에 氣가 있다’고 하여 기에 선행하는 이의 존재를 말했지만, 서경덕은 ‘기밖에 따로 이가 있지 않다’고 하며, 이의 존재는 기의 조리에 불과하다고 했다¹⁶⁾. 서경덕에 의하면 세계는 기에 의해 충만 되어 있으며, 모든 현상은 기의 굴신, 이합, 취산과 관련되어 있어서, 기는 스스로 움직이고 열리고 닫힐 수 있는 독자적 작용력을 지녔다. 그래서 기는 기 자체가 이미 ‘틀 스스로 그러하며(機自爾)’, ‘스스로 능히 그러할 뿐이며(自能爾)’, ‘스스로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自不得不爾)’으로 오로지 기가 스스로 그렇게 되는 당위의 조리이다¹⁷⁾.

서경덕은 자신의 이러한 학설이 짧은 시간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오랜 기간 선현의 학문을 연구하고 거기에 자신의 경험과 사색, 자연의 관찰에서 얻어진 온축된 것으로,‘천고의 비밀을 풀었다’라고 할만큼 확신에 차 있었다¹⁸⁾.

그러나 이황은 서경덕의 학설이 “스스로 궁심, 극묘하다고 했으나, 마침내는 理를 보아 얻음이 투철하지 못했다¹⁹⁾”고 했으며,“그의 견해는 기수 일변도에 치우쳐 그 논리가 이를 기로 오해함을 면하지 못하였고, 간혹은 기를 이라고 한 곳도 있다²⁰⁾”고 지적했다. 이황이 서경덕의 학설을 비판하는데는 항상 이의 이해에 대한 불철저성이 지적되고 있다. 전통의 성리설을 신봉하고 이의 존재와 그 가치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며 ‘理尊氣卑’, ‘理貴氣賤’ 등의 입장을 견지한 이황의 입장에서 볼 때, 이의 존재를 기의 속성으로 이해하는 서경덕의 학설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황에게 세계의 존재원리는 기의 작용이 아니라 이인 것이다.

이로 볼 때, 이황의 단호함은 ‘이황의 확신’에 의한 것이고, 서경덕의 주장 역시 ‘서경덕의 확신’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황의 확신과 서경덕의 확신은 상반되고 있다.

이황이 확신하는 세계는 “이는 기를 뛰어넘어 존재하며, 비록 기가 소멸되더라도 이는 영원한 것”으로, 사물이 있기 전에 사물의 이치가 선행해서 존재한다. 그래서 ‘군신이 있기 전에 군신의 이가 있다²¹⁾’고 했다.이에는 이미 ‘그런 까닭(所以然)’이 있기에 ‘당연히 그러한 것(所當然)’이다. 그래서 天이 있기 전에 天理가 존재하며, 군신이 있기 전에 군신의 이가 선행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오직 이가 일정한 분수가 다르게 작용할 뿐이다. ‘이일분수(理一分殊)’가 그 논리이다. 그러나 서경덕에 의하면 군주가 신하를 거느리고 남편이 아내를 거느리고, 군자가 소인을 다스리고, 중국이 오랑캐를 복종하게 함은 선행하는 이의 원리에 의해 저마다의 분수 때문이 아니라 오직 (陰陽의) 기에 의해 그렇게 될 뿐이다. 세계의 질서에 대해 서경덕은 이렇게 주장한다.

“양은 음을 겸하나 음은 양을 겸하지 못한다. 양은 온전하고 음은

반쪽이며, 양은 충분하나 음은 결핍되어 양은 높고 음은 낮다. 이

것이 바로 군주가 신하를 거느리고, 남편이 아내를 거느리며, 군

자가 소인을 다스리고, 중국이 오랑캐를 복종시키는 이치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음양지분(陰陽之分)’이며 ‘이의 필연(理之必然)’

이다²²⁾”.

세계의 질서원리는 태극의 이가 선행하여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음양의 기가 작용’하여 ‘스스로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이의 필연이다.‘스스로의 원리’는 易과 관련을 가진다.

“음양의 기가 생성하고 생성하며 변화하고 변화하여 그치지 않은

까닭이 바로 ‘태극의 묘리(太極之妙理)’이다. 만일 변화를 떠나

서 그 오묘함을 말한다면 이는 易 을 모르는 사람이다²³⁾.”

세계는 ‘변화하고 변화하며 생성하고 생성하는 것’으로,‘변화를 떠나서는 그 오묘함을 모르는 일’이다. ‘이의 필연’과 ‘태극의 묘리’는 어디까지나 기의 ‘이치’일 뿐이다. 그래서 서경덕은 “군신이 있기 전에 군신의 이가 있고, 부자가 있기 전에 부자의 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군신, 부자는 각각 의리와 은혜로서 맺어짐이 성이며, 또한 사물의 법칙²⁴⁾”이라고 했던 것이다. 서경덕에 있어서 윤리적 인간관계의 이치와 질서는 그 덕목을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 당위적 선천적 법칙이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견해는 확실히 동양의 전통적인 인식논리의 하나인 ‘비은’, ‘체용’의 이원론적 세계관과는 괘적을 달리한다²⁵⁾. 주리적 이원론을 고수하며, 고인을 보지 못했어도 고인의 길을 가고자 했던 이황에게 서경덕의 길은 분명 색다른 길이었다.

2. 李滉의 주장에 대한 李珥의 視角

이이는 수정주의자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는 서경덕과 이황의 논쟁에서, 표면적으로는 서경덕을 반대하고, 이황을 수용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이이의 학설은 서경덕의 연장선에서 이해되고, 이황과 대립되는 위치에 있다. 지금 와서 이이를 서경덕과 더불어 주기론의 계열로 보는데는 의의가 없다.²⁶⁾ 이런 사정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理, 氣에 대한 이이의 견해는 ‘不相雜’, ‘不相離’로 설명되고, 그 관계는 ‘일이이(一而二)’,‘이이일(二而一)’의 ‘理氣之妙’로 요약된다. 불상리에 무게가 실리면 일원론이 되고, 불상잡에 치우치면 이원론이 된다. 그러나 이이는 그 상태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라는 원칙을 견지했기 때문에, 이이의 주장은 대체로 이원론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기호발(理氣互發)을 주장한 이황과 다르게 ‘氣發’만을 주장하므로 주기론자로 분류된다. 이원론을 견지하기 때문에 이황의 편에 서 있지만, 한편으로 주기론을 고수하기 때문에 서경덕과 밀착되어 있다.²⁷⁾ 이이의 이기지묘는 이런 선배들의 학설을 자신의 말처럼 묘하게(妙) 절충시킨 수정주의적 견해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이는 이황으로부터 전면적으로 거부당한 서경덕에 대하여 일정한 각도에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이가 이황을 비평할 때 서경덕과 함께 언급함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가령 이이의 다음과 같은 말들을 음미해 보자.

a) “그(서경덕)의 저술이 꼭 성현의 뜻에 부합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이른바 學者라는 사람들이 성현의 말만 의양依樣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얻는 바가 적은데, 경덕은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나아

가서 자득自得의 妙가 적지 않아 문자 언어로는 배울 수도 없습니다²⁸⁾.”

b) “대게 퇴계는 의양이 많으므로 그 말이 구애되며 조심스러운데, 화

담은 자득이 많으므로 그 말이 즐겁고 자유롭다...조심스러우니 잃을

것이 적고 자유스러우니 잃을 것도 많다. 차라리 퇴계의 의양을 본받

을지 언정 화담의 자득을 본받을 필요는 없다²⁹⁾.”

위의 a).b)의 기록에서, 이이의 서경덕과 이황에 대한 시각은 기본적으로 일부 긍정, 일부 부정의 입장을 취한다. ³⁰⁾긍정의 표현을 서경덕에게는 ‘자득의 묘’로 규정하고, 이황에게는 ‘의양의 맛’으로 특징 짖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자득의 묘는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나아가서 즐겁고 자유로운 점’이며, 의양의 맛은 ‘구애되고 조심스러위 잃는 것이 적다’는 것이다. 서경덕은 성현의 뜻에 부합되지 않으면서도 ‘오묘함(妙)’을 갖추고 있고, 이황은 성현의 뜻에 부합되지만 마음속에 얻음이 적은, 그런 가운데도 또 다른 ‘맛’을 지닌 것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정말로 흥미로운 점은 이이의 이러한 ‘표현의 묘와 맛’에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이이는 A)의 글에서 “학자(學者; 이황을 지칭함-필자주)들이 성현의 말만 의양하기 때문에 얻는 바가 적다”고 하면서도, B)의 글에서는 “차라리 이황의 의양을 따를지 언정 서경덕의 자득을 본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점이다. 자득의 ‘학문적 매력’과 의양의 ‘사회적 비중’에서 그는 절충적인 선택과 비판을 동시에 내린 셈이다. 이런 표현의 이중성 속에 이이가 감지하고 있는 자기시대의 안목과 세계관과 처신의 한 단면이 교묘하게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이는 이황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따르지 않았다³¹⁾. 이황은 이기가 ‘결코 이물로 되어 있다(決是二物)’고 했지만³²⁾, 이이는 이기가 이물도 되고 일물도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미 언급한 ‘불상리’, ‘불상잡’의 논리이다.

“왜 이기가 일물이 아닌가? 이기가 비록 떨어질 수 없이 오묘하게

합하여 있지만, 서로 섞일 수 없으니 일물이 아니다. 그러면 왜 이

물이 아닌가? 비록 이기가 이는 스스로 이이며, 기는 스스로 기라

고 말 할 수 있지만, 혼연히 선후, 이합이 없이 섞이여 있어서 이물

로 볼 수 없으니 이물이 아니다.”³³⁾

불상리, 불상잡의 논리에서 이물과 일물이 포괄되는 것이지만, 이이는 이기가 ‘일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a)“대게 이의 근거도 하나이고, 기의 근거도 하나이다. 기는 이를 떠날

수 없고, 이는 기를 떠날 수 없다. 그러므로 이기는 하나이다. 어느

곳에서 다른 점을 볼 것인가!”³⁴⁾

b)“‘이기의 묘’란 보기 어렵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저 이의 근원은

하나 뿐이므로, 기의 근원도 하나 뿐이다. 기가 유행할 때 서로 다르

고 가지런하지 않으므로 이도 유행할 때 서로 다르고 가지런하지 않

다. 기는 이를 떠나 있지 않으며, 이는 기를 떠나 있지 않다.“³⁵⁾

이이의 절충은 이황이 불상잡에 비중을 두어 이물의 분속을 주장한 반면, 위의 a) ,b)의 언급처럼 철저하게 불상리를 견지하며, 그 관계를 ‘이기의 묘(理氣之妙)’로 요약해버린 것이다. 이런 사정은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사단대칠정(四端對七情)’의 대결구조로 이해한 것에 비해, 이이는 ‘칠정포사단(七情包四端)’의 입장을 취한 사실³⁶⁾과 무관하지 않으며, 인심과 도심의 문제에서 “이가 기를 지배하면 도심이 되고, 기가 이를 지배하면 인심이 된다”는 주장과 상응한다.

요컨대 이이의 주장은 “작용하는 것이 기이고 작용하는 까닭이 이”라고 하여, 서경덕의 자득의 묘와 이황의 의양의 맛을 포괄하여 새로운 자득을 이끌어 냈다. 사실 이이는 ‘理通氣局’, ‘道心本然之氣’라는 문자를 창출하고 이는 이제까지 성현이 사용하지 않았던 ‘자득의 문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자득의 골간은 어디까지나 ‘이기는 하나의 묘합’이라는 결론으로 귀착되어 있으므로, 말하자면 ‘결시일물(決是一物)’인 셈이다. 결시일물은 결시이물과 대립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퇴계의 분대(分對)와 율곡의 합간(合看)은 각각 발명됨이 있다”는 이항로의 지적³⁷⁾은 매우 온당한 표현으로 보인다. ‘분대’는 ‘분속’의 의미를 지닌 용어이며, ‘합간’은 ‘묘합’과 상통하는 용어이다. 이와 기를 분속시켜야 함은 이황의 주장이고,³⁸⁾ 이와 기를 묘합시켜야 함은 이이의 주장이다. 이와 기의 분속과 묘합, 즉 ‘理氣分屬’과 ‘理氣妙合’은 이황 이이의 이기이론의 결정적 상이점이다.

이러한 용어의 표현은 이황. 이이의 사상을 각각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며, 한편으로는 그들의 시국인식과 세계관에 깊은 연관을 가진다.

이황. 이이의 이기에 대한 이론의 특징을 도표화 해 보면,

<도표 1>

李滉	決是二物	不相雜	分屬
李珥	決是一物	不相離	妙合

그러나 이이에게는 이황과의 이러한 논리의 대립³⁹⁾에 따르는 엄청난 중압감이 짖누르고 있었고, 그는 그러한 분위기를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다.

“道理(학술적 논리)로서 이 문제(이, 기 이론의 견해차-필자주)를 논한

다면 모르거니와, 그 (형세)의 강약으로 말한다면 ‘일 퇴계가 열 이이를

이기며(一退溪足以勝十李珥),...그 형상은 마치 여러 마리의 호랑이가 한

마리의 양을 때려잡는 것과 같다(是群虎搏一羊).”⁴⁰⁾

위의 진술은 이이가 이황에 대한 감정 깊이의 한 단면으로, 거부와 복종이 교차되는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⁴¹⁾. ‘거부’는 자신의 학술적 논리에 관한 우위의 굽힐 수 없는 자부심이고, ‘복종’은 형세의 강약에 따른 절대적 열세의 현실 인식이다.⁴²⁾ 새로운 자득을 전개하는 이이에게 이는 실로 심각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진리가 주류에 서지 못하고 형세가 그 자리를 압도하는 형국이 현실이라는 인식에서, 이이의 세계관은 이황의 세계관과 엄청난 각도에서 대립하고 있다. 세계관이 별로 다르지 않다면 이기의 개념적 시비에서 “군호가 일양을 때려잡고, 일 퇴계가 열 이이를 이길”필요가 없는 것이다. 군호에 대항하는 일양은 천지에 존재하지 않은 법이다.

그러나 위의 진술에서 이러한 분석은 아직 피상적 검토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로 이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실은 “학술적 논리가 형세의 강약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는 인식”이 단순한 인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시국에 대한 논리’, 혹은 ‘인생의 존재 조건에 대한 논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확신이 있었기에 이황은 물론 주자의 이론에도 부분적으로 대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⁴³⁾

주기론의 입장과 철학을 제시했던 김시습의 일생에 대해, 이이가 이황과 전연 상반되는 평가를 한 사실⁴⁴⁾은 이러한 자신의 세계관과 무관하지 않다.

三. 對決政局과 李滉의 理氣分屬論

1. 對決政局의 槪觀

어느 시대이든 정권쟁취를 위해 정파들이 각축함은 일반적 현상이다. 조선시대에도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연산군 시대에서 명종 시대에 이르는 기간은 뚜렷이 구분되는 두 개의 집단이 첨예하게 대결하여 정치보복의 참화가 계속해서 발발한 특이한 시대였다. 따라서 이 시대의 정국을 편의상 ‘대결시대의 정국’이라 이름해 본다.⁴⁵⁾ 그러나 그 ‘대결정국’의 향배는 대결에 가담한 하나의 집단이 일방적으로 패배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역사는 그 현상을 ‘士禍’로 표현했다. 말하자면 ‘사림의 참화’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에는 이들 사림집단을 괘멸시킨 막강한 상대의 정치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이황은 이 시대 중핵적인 사림의 일원이였고, 대결정국을 온 몸으로 체험해간 관료이며 학자였다. 그러니까 그의 생애(1501-1570)는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선조로 이어지는 재위기간으로 이어진다. 이 기간, 이황은 무오사화(1498년)와 갑자사화(1504년)를 들었으며, 기묘사화 (1519년)를 목격했고, 을사사화(1545년)를 직접 체험했다. 이들 사화의 성격은 훈신, 척신으로 구성된 기득권 세력이 재야와 유생 등의 사림세력과 대립하여 참극을 연출한 사건들로, 초야에서 발신한 이황에게는 당시 정국의 역학관계와 잔혹함을 피부로 체감하는 기간이 된다. 이른바 훈구파와 사림파가 격돌한 것이다.

무오사화는 사림파와 훈구파가 사초를 빌미로 정면 대결을 한 결과였고,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생모 문제를 빌미로 궁정의 훈구 관료들이 사림을 포함한 비판세력들을 한꺼번에 제거해 버린 사건이다. 두 차례의 사화에서 사림파는 거의 괘멸 해버렸다. 이황은 이들 사화와는 직접적인 관련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19세에 목격한 기묘사화는 청년 이황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정변이었다. 기묘사화는 주지하다시피 개혁정치를 부르짖은 사림의 우상 , 조광조의 정치적 괘적과 함깨 한다. 조광조의 최후 재판진술은 다음과 같다.

“망령스럽게도 나라의 병통이 모두 이익에 혈안되어 있다고 생각

되므로, 이러한 폐단을 막아 국가의 명맥을 영원히 새롭게 하고자

했을 뿐, 조금도 다른 사심은 없었습니다.“

개혁은 현실의 모순을 혁신하려는 의지의 소산이고, 그 본질은 기성의 파괴에 있다. 기성은 현실적인 질서이고 혁신은 미래지향적인 가치창출의 능동적인 움직임이다. 조광조가 진단한 나라의 시급한 현안은 3가지로 요약되고, 그 혁신의 일환으로 그는 유가 본연의 이념확산을 도모했다. 첫째는 반정과 더불어 반대급부로 보상된 정국공신들의 과다한 토지광점과 대량승진에 따르는 국고탕진과 이농과 유민화 현상, 둘째는 무고한 사람을 고발하여 공신이 되려는 사회적 풍토의 심화현상, 셋째로는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야기된 도덕심의 결여와 무사안일주의 풍토를 지적했다.

반정공신으로 명명된 정국공신들은 앞에서 책봉된 여러 종류의 공신들에 비해 수적으로 엄청났고, 포상면에서도 파격적이었다. ⁴⁶⁾ 공신들은 각종 이권과 특권이 등급에 따라 부여되었는데, 이것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들의 지위를 확고히 해주는 것이었고, 상대적으로는 왕권의 악화와 민생의 침탈을 의미했다. 이들의 토지광점과 대량승진은 토지사유화와 봉급의 과다지출로 이어지는 그 유래가 없는 파행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신악이 구악을 빰치는 것’이었다. 이들의 신보수화 귀족화는 이 무렵 진출하는 재야의 사림세력과의 마찰은 필연적이었다. 사림파의 중진인 金安國의 상소는 그 무렵의 사림파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지금 공신들이 스스로 과다한 토지를 점령하여, 국가세금이 줄어들어 국

고는 결핍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노비를 점유하여 양민이 줄어들어 군

액 또한 막대하게 감소했습니다. 우리 나라가 건국한지 100년도 체 못되어

공신의 책봉이 무려 8-9차례, 훗날 공신들은 장차 무엇으로 포상하시렵니

까....공신들의 음가, 증직은 본인에게만 수여하여도 옳지 않은 일인데 하물

며 그들의 부자에게도 승급함은 말이 되겠습니까.“⁴⁷⁾

지평에 등용된 許硡은 “공신들에게 주어진 노비는 3천명에 다하고 그들에게 포상된 토지는 국토의 절반에 해당한다”고 상소했고,⁴⁸⁾ 韓忠은 사직의 배수진을 치고 올린 상소문은 가진 자와 없는 자, 특권층과 빈민층을 대비해서 소상하게 개진한 것으로 훈구파를 크게 자극시켰다. 한충의 상소문은 그가 감옥에서 삶을 마감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⁴⁹⁾ ‘국토의 절반, 노비 3천명, 대량의 파격적 승진’ 등의 결과는 국가재정을 압박하고 이에 따라 민생을 더욱 도탄에 이르게 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반정공신들은 모두 ‘君’으로써 당상관으로 뛰어올라 당상관의 숫자만 무려 100명에 이르고 있었다.

조광조가 진단한 현안은 이 공신들의 문제가 주요한 것이었고, 사실 위의 두 번째, 세 번째 현안은 공신문제에 따르는 부수적 현상이기도 했다. 따라서 반정공신에게 집중된 이권과 특권의 환수, 즉 ‘僞勳削除’는 조광조의 개혁 정치의 최후 결단이었다. 그는 이일을 수행하고자 문장력을 우선하는 훈구파의 인제 선발방식을 배제하고 도덕을 갖춘 인사들을 추천하여 뽑을 수 있도록 하는 현량과를 설치하고자하여 그 결실을 보았다. 현량과의 설치는 표면상으로는 인제 선발의 문제지만 한편으로는 세력의 확장에 있으며, ‘위훈삭제’는 훈구파의 권력기반을 경제적, 사회적으로 송두리째 뽑아버리려는 비장한 계획이었다. 현량과의 설치를 허락 받은 조광조가 올린 상소문은 이 무렵 사림파가 바라보는 시국을 대변하는 것이다.

“전하깨서는 정성으로 고심하시어 백성으로서 단 한 사람이라도 헐벗은

사람은 따뜻하게 해주고 악한 자를 착하게 하여 우리 나라를 태평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한지 어언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가 잘못됨

은 정치에 반드시 그 근본된 길을 찾지 못한데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 근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근본은 임금이 도를 구현하는데 있는 것

입니다. 도를 펴는 마음으로 정치의 근본을 삼아야 할 것입니다. 정성은

도를 실행하는 요체이며, 무릇 천리인 까닭에 나라를 경영하는데 도를 얻

으면 기강과 법도를 힘쓰지 않더라도 저절로 정돈될 것입니다.

“헐벗은 사람은 따뜻하게 하고, 악한 자를 착하게 선도하며 우리 나라를 태평국가로 만드는 것”, 그것이 정치이다. 그리고 그 근본은 도를 구현하여 정성으로 실천하는 것이 요체란 조광조의 주장은 곧 자신의 신념이며 나아가서는 사림세력의 이념이었다. 젊고 도덕적으로 무장된 패기로 원로급의 정객들을 사정없이 비판한 이들은, 나아가서 그들을 소인들의 이익추구집단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런 개혁정치는 역으로 훈구파의 갖가지 모의와 반격의 책략을 받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개혁은 좌절되었다. 소장정치인들의 활기차고 이상적인 개혁정치는 이로써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런 조광조의 생애를 결산하여 훗날 이황은 그 일대기며 결산인 ‘行狀’을 지었다. ⁵⁰⁾

기묘사화에 이어 일어난 을사사화는 이복형제들인 인종과 명종의 죽음과 등극을 둘러싸고 외척들이 대립해서 일어나 것이었다. 왕권의 급격한 이양기에 나타나는 권력쟁탈의 대립이 그대로 나타났다. 즉 어린 명종을 수렴청정하는 문정왕후와 아직까지 권력을 잡고 있던 인종의 외척을 비롯한 측근들을 몰아낸 사건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사림이 피화될 성질이 아니었지만 이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사림세력을 도륙해버렸던 것이다. 문정왕후의 추종자들은 핵심적인 상대세력의 죄상을 국왕에 보고함으로써 그 치죄를 들고 일어나, 끝내는 상대세력을 처형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이 기회에 구명에 노력한 사림의 이언적, 권벌을 곧 ‘護逆’등으로 몰아 체직하고 결국은 귀양시켜 버렸다.

이렇게 뚜렷한 명분 없이 정권을 탈취한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안정시키고자 사화를 더욱 확대시켜 나갔다.⁵¹⁾ 즉 위협적인 요소가 보이는 잔존 사림을 실력으로 제거하기 위한 공작적 옥사를 계속해서 일으켰다. 명종2년 이른바 ‘良才驛壁書事件’과, 3년 安名世의 옥사, 4년 李洪胤 역모사건 ⁵²⁾등이 그것이다. 이런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사림세력들을 거의 괘멸되어 버렸다. 이들은 이후 강력한 후원자 문정왕후가 죽는 명종20년까지 권력을 천단했다. 이런 사화를 통해 사림세력은 중앙정계에서 거의 도태되어 버렸다. 이황은 이 사화에 형 李瀣가 희생되었고, 그 자신은 削奪官職의 수모를 겪었다.⁵³⁾ 그러나 이 무렵 중앙정계에서 사림세력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지방에서 사림은 다음세대를 위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향약의 시행과 서원건립을 도모하는 등의 사업을 함으로써, 그 기반과 이념을 생각보다 급속히 확충하고 있었다. 이황은 이런 기간에 이와 같은 일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이를 수행하고자 이황은 중앙정계를 스스로 떠나 외직을 자청했고 곧 은퇴해버렸다. 당시 그는 국정 참여의 무의미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중앙정부의 파행적인 국정수행은 국정전반을 위기국면으로 몰아왔고, 농촌은 피폐해저 외직으로 물러난 그로서도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는 조용히 시골로 물러나 사색에 잠겨 나라를 근본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의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대안으로 훗날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고 수행할 우군으로서 유일한 대체세력인 사림의 결속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후진의 교육과 정신무장이었다. 교육은 ‘서원창설’로 나타났고, 정신무장은 사림 개개인에 끊임없이 ‘敬의 실천’을 주장했다. 그 자신이 한국 최초의 서원을 건립했음은 물론이고, 이때까지 건립된 20개의 서원 가운데 절반 정도에는 직접 운영에 관여했다.⁵⁴⁾ 이런 과업을 수행하고자, 그는 경륜을 펼 수 적절한 연령인 49세에 과감하게 관직을 포기했던 것이다. 이 무렵 향리의 선배 李賢輔에게 보낸 편지는, 이황의 저간의 심사가 소상하게 드러나고 있다.

“조정의 지시는 간절하여 백성보기를 자기마음 아푼 듯이 하라 하지만,

은혜가 아래로 미치지 못하고 주민들이 삶의 근심과 고통으로 사방으로

유리되어 그 아푼 마음을 위로 전달할 수 없으니 이 모두가 수령이 직분을

다하지 못한 죄입니다. 명령을 해도 행해지지 아니하고 세금을 재촉해도

거두어지지 아니하여 장부에 빠진 것이 많아 위로 책망이 쌓이기만 합니

다. 위로는 윗사람을 섬기지 못하고 아래로는 아랫사람을 다스리지 못하며

가운데는 내 한 몸도 추스리지 못하며 주변으로는 친구하나 구해주지 못

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녹을 탐식하니 이것이 저가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

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어찌 따로 常情과 먼 다른 일을 하고자 하겠습니까.⁵⁵⁾

“명령을 해도 행해지지 않고, 세금을 재촉해도 거두어지지 않은 농촌 실정”이 그 시대의 향촌 실정이었던 것이다. 중앙정부의 파행정치에 환멸을 느껴 외직으로 나왔지만, 향촌 역시 이미 민생이 도탄에 빠져 심각한 민심이반과 생산기반이 붕괴되고 있었던 것이다. 경상 우도를 선도하고, 같은 연배의 曺植(1501-1572)이 당시 시국을 ‘위기’라고 진단하고, 자신은 그 적폐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하고 관직을 사양함도 이러한 시국 때문이었다. 이황이 눈을 돌려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고 서원을 창설함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절실한 대안에서 나온 것이다.

이황의 봉직기간은 34세 급제 이후 49세의 풍기군수 까지가 실질적인 기간이며, 이후 50세에서 몰하는 70세 까지는 실재 재직기간은 합처 봐야 2년도 체 되지 않는다. 연산군 치하의 양대사화를 거치면서 잔존한 사림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그 후 중종반정과 더불어 사림이 등용되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호지방의 鉅族의 후손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는 가운데 발신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황의 이러한 처신은 당시의 정치적 역학관계로 볼 때는 매우 현실적인 처신이기도 했다.⁵⁶⁾ 또한 영남 사림파는 전통적으로 특유의 ‘治人’보다는 ‘修己’지향의 성향이 강하여 과감한 개혁보다는 성리학 자체의 연구에 몰입하는 ‘爲己之學’ 쪽을 지향하는 경향이 농후했다.⁵⁷⁾ 至治에 대한 그의 괘도 수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무렵 이황이 새삼스럽게 ‘道學’을 새로이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도학자들은 전일의 학자들과는 조금 다른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조식의 일상을 묘사한 글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남명 선생은 새벽에 일어나 의관을 갖추고 띠를 매고서는 자리를

바로하고 어깨와 등을 꼿꼿하게 하여 앉았으며 바라보면 조각 같

았다.“

“의관을 갖추고 띠를 매고 꼿꼿하게 하는 자세”는 곧, ‘敬’의 자세이다. 한자로는 ‘冠帶而坐’ 표현한다. 이러한 자세는 도학을 주장하고 사림을 선도한 金宏弼, 鄭汝昌, 李彦迪 등의 인물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이에 의해 ‘唱名道學’을 했다는 조광조의 처신은 이런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 그 한 예로 조광조가 생원이 되어 성균관에 입학하니, 그 때 대부분의 유생들이 이런 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매우 자유분망 했다. 조광조의 술회를 보면, 이때까지만 해도 “여름에 옷을 걸치지도 않았으며 마음대로 나가고 눕고 했으며, 누가 이러한 행동을 하면 몹시 비웃고 멸시했다”고 했다. 그 표현을 ‘赤脫出臥’라 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부형들로부터 노골적으로 제지당했다”고 했다

. 수많은 적탈출와하는 학생들 속에 홀로 비웃음과 멸시를 무릅쓰고 ‘관대이좌’ 한 인물이 조광조였다. 적탈출와 하는 무리들로부터 비웃음과 멸시당함도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부형들로부터의 노골적인 제지는 이들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부형들은 이런 행동이 가화에 미친다고 판단하여 극력으로 제지했다. 따라서 조광조 같은 인사는 아주 극소수였다. ‘적탈출와’하는 인사들은 이들 ‘관대이좌’ 하는 인물들의 돌출적 행동을 차츰 적대시했다. 그들은 그들의 길이 참다운 인생의 길이라 확신하며 구도적 자세로 정진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자신의 학문을 ‘도학’이라 명명하면서, ‘도학정치구현’을 부르짖었다.

‘적탈출와’ 하는 무리들이 드디어 공격을 가했다. 그들은 “근래 선비들이 독서에는 힘쓰지 않고 단지 벽을 향해 잠잠히 앉아 있는 것만 높게 생각한다”⁵⁸⁾고 하며, 도학자의 태도를 맹렬히 비난했고, 이런 측면은 결국 ‘관대이좌’하는 부류의 대량 참화로 마감되었다. 이미 언급한 것 처럼 조광조의 이런 행동은 이 무렵 성리학적 소양을 갖춘 신진 사대부의 일상생활이었다. 이황의 일상생활 역시 이런 사림계열의 처신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도학’을 자임하여, “새벽에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종일토록 단정히 거처했음”은 물론이고, 그런 행동을 “어제도 그렇게 했고 오늘도 그렇게 했다”라고 했다. 그 ‘관대이좌’ 하는 자세에서, 시국을 조응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이황의 모습이 바로 대결시대의 정국을 살아가는 한 지성적 지식인의 자세였던 것이다.

2. 李滉哲學의 새로운 검토

이황은 이, 기 이론에 대해 방대한 이론과 다양한 개념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 이론과 개념이 결국 ‘주자는 내 스승입니다’고 고백한 한마디에 의해, 혹은 이이의 지적처럼 ‘依樣’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 각도의 인식은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 날 까지도 계속해서 오해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요컨대 이황이 주장한 理가 形而上者임에도 불구하고 發하고 動하고 到하는가에 대한 이론⁵⁹⁾이 불투명하며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⁶⁰⁾그러나 이황의 깊이와 넓이와 면모는 좀더 숙고해서 검토할 의의를 절실히 느낀다.

이황의 이기이론은 주지하다시피 제자 기대승과의 7년여에 걸친 왕복편지에 그 핵심적 주장이 담겨있다. 그런데 그 오랜 시간 두 분의 쟁점은 놀랍게도 사실 하나의 명제에 매달려 있었다.⁶¹⁾ 표면적으로 논쟁의 시초는 이황의 ‘四端은 理之發이요, 七情은 氣之發이다’라는 견해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어 ‘四端은 理發而氣隨之하며 七情은 氣發而理乘之하다’로 매듭 되었지만,⁶²⁾ 그 논쟁의 초점은 항상 이황의 이기에 대한 ‘分屬’의 주장과 기대승의 치열한 반대 의견이 그것이다. 기대승은 7년여에 걸쳐 번번히 “이와 기를 二物로 보며 분속分屬적으로 설명함을 저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논의의 핵심인 사단칠정론에 있어서도 “선.악 역시 이기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分屬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그 표현을 ‘兼理氣有善惡,分屬未安’이라 했다.⁶³⁾ “이기 모두에 선악이 있는 까닦에, 분속은 저가 생각하건대 정말 미안한 일입니다”가 그의 굽힐 수 없는 지론이다.⁶⁴⁾ 요컨대 기대승은 이기가 一物이라는 주장이다.

이황 역시 이기의 관계를 ‘혼륜(混淪)되어 分開할 수 없다’는 주자의 ‘불상리(不相離)’를 물론 인정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황은 ‘이기는 혼륜될 수 없다’는 ‘불상잡(不相雜:서로 섞일 수 없음)’을 유난히 강조한다. 그는 이기가 결코 섞일 수 없는 이물(決是二物)이라 했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별도로-‘이기가 일물이 아님을 변증함(非理氣爲一物辯證)’이란 -글을 쓰기까지 했다. 이황의 ‘비이기위일물변증론’은 기대승의 일물론에 대한 이물론으로의 답변인 셈이다. 이 글은 이황이 기대승에게 준 수많은 편지 가운데 하나이다.

왜 그랬을까?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토록 오랜 기간 이 하나의 명제에 대한 공통의 답안을 도출하지 못했을까? 이런 의문에 다음의 글은 우리가 정말로 이황의 신념을 이해하게 되는 주목되는 단서가 된다.

“공덕을 쌓고 학업을 넓히는 이유는 여러 학설들의 차이점을 살피고

피차의 득실을 헤아려서 先哲들의 언행을 검증하고 실재의 사리를

판단함으로써, 기존의 잘못된 견해를 씻어버리고 새로운 지식을 이

룩하기 위함입니다.”⁶⁵⁾

위의 글 역시 기대승에게 보낸 이황의 편지 일부이다. 여기서 ‘공덕을 쌓고 학업을 넓히는 이유’를 이황은 “실재의 사리를 판단하여(參之以事理之實), 기존의 잘못된 견해를 씻어버리고(濯去舊見), 새로운 지식을 이룩하기 위함(以發新知)”이라고 했다.

‘실재의 사리 판단’과 ‘잘못된 견해의 씻음’, 그리고 ‘새로운 학설의 수립’이라는 이황의 고백은, 우리가 이제까지 이황과 이황철학을 이해하는 자세를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이황은 이런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여러 학설들의 살피고 피차의 득실을 헤아리며 先哲들의 언행을 검증해야 한다”는 전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황의 이 발언을 수용한다면, 우리는 그의 철학사상이 형이상학적인 관념론의 차원에서 보다 철학 하는 목적을 지닌 학문으로 규명해야 할 당위가 있으며, ‘주자의 학문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평가는 새롭게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철학의 정의가 ‘실재에 관한 문제’, ‘인식에 관한 문제’, ‘가치에 관한 문제’등을 규명하는 것⁶⁶⁾이라면, 이황철학이 이러한 철학의 조건과 부합하는 것인가에 대한 검토는 더욱 절실하다.

그렇다면 이황에게 실재의 사실을 판단해야할 현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는 이 현안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러한 인식에서 대응하는 철학적 논리는 어떠한 구조로 형상화 되어 있는가, 요컨대 그가 수립한 새로운 학문은 무엇인가?

이미 논의한 ‘이기는 일물이기에 분속적으로 볼 수 없다’는 이론은 기대승의 관점이고, ‘이기는 결코 이물로 분속되어 있다’는 것은 이황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이런 일관된 주장은 밑바탕에 바로 ‘선악의 분속’을 논리화하는 준거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깊은 뜻이 있다고 보여진다. 사단칠정론이 이 선악의 분속문제에 집중적으로 천착되어 있음은, 선악의 이기론적 개념의 학문적 이론구조를 분명하게 하면서, 한편으로는 인간심성의 사회적 문제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3. 對決政局의 向背의 理氣分屬論

이황에게서 ‘실재에 관한 문제’, ‘인식에 관한 문제’, 그리고 ‘가치에 관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한꺼번에 인식할 수 있는 글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다음의 상소문은 이러한 문제들을 동시에 시사해주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잘 알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장차 무슨 도리로 하늘의 뜻을

감당하시고 재앙의 싹을 소멸시키겠습니까? 옛날 공광(孔光)은 ‘천도

는 반드시 두려위 할 것이 없다’하였고, 안석(安石) 또한 천변은 반드

시 두려위 할 것이 없다‘라고 하였으나, 이야말로 간사하고 속이고 아

첨하는 말로써 진실로 하늘에 크게 죄를 얻는 일이옵니다.”⁶⁷⁾

위의 상소에는 4가지 정도 내용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곧 이황의 철학적 과제를 근본적으로 규명하는 ‘天道’의 조건과 맞물려 있다. 그리고 그 이론은 그가 앞서 주장한 이기의 분속이론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그 4가지의 내용은,

첫째, 하늘(天)에 대한 이황의 근본적 시각은 무엇인가?

둘째, 하늘의 뜻을 어기는 대재앙의 싹은 무엇인가?

셋째, 공광. 안석같은 인물은 과연 누구를 지목하는가?

넷째, 큰 죄를 지은 이들 악인들이 과연 천벌을 받을 것인가?

이황은 기본적으로 천도는 不變하며 善의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천도를 어기는 행위를 인도의 악과 연관시켜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善이 인도와 천도를 이어주는 고리가 된다는 인식⁶⁸⁾에서 비롯된다. 이는 유가의 궁극적 목표인 천인합일의 명제를 구현하는데 선은 실마리라 되고 악은 장에가 된다는 인식이 철저히 전제되어 있다. ⁶⁹⁾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크게 죄를 지은 악인들이 선의 보호 차원에서 천벌을 받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러한 논리는 퇴계에게 理. 氣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계되고 있다.

이황에게 하늘天은 理와 동일한 개념이므로(天則理),⁷⁰⁾ 천도를 어기는 행위는 곧 氣의 작용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재앙의 싹은 곧 기’이며, ‘재앙의 소멸은 이’라는 관점에서, “기에 가리어 이가 숨어 버리면 악이 된다”⁷¹⁾라고 했다. 이 표현은 “權姦이 當國하여 왕에 가리운 바가 되어 사림의 화가 일어났다”는 사신의 평⁷²⁾과 매우 흡사하다.

이황은 모든 현상을 이와 기로 이해하기 때문에, ⁷³⁾시국에 대한 인식 역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지금 재앙의 싹을 뿌리며 천도를 어기는 집단과, 재앙을 소멸시키고자 천도에 순응하는 집단의 혼륜된 모습이 시국의 현실이라는 인식이다. 전자는 악의 집단이며 후자는 곧 선의 집단이다. ‘악의 집단’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훈신과 척신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이며, ‘선의 집단’은 사림과 유생으로 지목되는 野적 세력이다.⁷⁴⁾ 두 집단은 결코 혼륜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국은 이 두 집단이 뒤섞여 있어서 파행적 정쟁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황은 이런 상황을 “현우(賢愚)가 혼효하여 국정이 날로 문란하다”⁷⁵⁾라고 했다.

국정의 현장에서 ‘賢과 愚’, 두 집단의 대립된 공존과 모순된 혼효는 조광조. 이언적등의 선배들이 극복하려다 좌절한 것⁷⁶⁾으로, 사림집단에게는 절대절명의 시대적 현안이었던 것이다. “현우의 혼효를 막아야만 至治를 볼 수 있다”는 선배의 지적을 이황 또한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분속, 즉 군자. 소인의 변별은 현과 우의 구분과 마찬가지로 선악적 차원에서 그 純一性의 확보를 지향하고 있다.⁷⁷⁾ 조식과 더불어 재야. 재조의 사림집단을 실질적으로 선도하는 이황의 입장에서 이에 무관하지 않았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비록 조식처럼 격렬한 문자와 임명거부로 맞서지는 않았지만, 이황에게 ‘현우의 혼효’와 ‘국정의 문란’은 그의 생애에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무겁고도 무서운 눈앞의 과제였다. 그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던 것이다. 조광조가 ‘순수의 집단과 난잡한 집단’으로 표현한 ‘純雜’은 이황이 비슷한 용어인 ‘邪正’이란 표현을 하여 ‘사악한 집단과 정의의 집단’으로 다시 구분하고 있다. 이황은 당시 정국을 이렇게 개진했다.

“무오. 갑자사화는 말할 것도 없고, 중종조의 기묘사화는 한 시대의

현인. 군자에게 크나큰 피해를 입혔사옵니다. 그로부터 사악한 자

와 바른 자가 한대 뒤섞여(邪正相雜) 간사한 자가 사사로이 원한

을 갚을 때는 반드시 己卯의 여습으로 몰았습니다...그래서 권간들이

뜻을 얻어 잇달아 정권을 농락했기 때문에 사림의 화(士林之禍)는 차

마 말로 다할 수 없사옵니다.”⁷⁸⁾

국정파행의 원인을 이황은 일차적으로 ‘邪와 正의 공존’에 있고, 그 이차적인 결과는 항상 ‘사림집단의 재앙’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황의 이러한 진단은 비록 사림집단의 이익과 견해를 대변한다 하더라도 당시의 정국추이와 그대로 부합한다. ⁷⁹⁾그런데 사와 정의 공존은 우와 현의 공존과 마찬가지로 모순된 집단의 공존이기에 파행적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는 사실 사, 혹은 우의 집단에 의해 전개되는 국정전횡의 파행을 국가적 위기와 사림집단의 안위차원에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기 개념을 이황이 ‘이와 기를 분속시켜 이물로 이해하려는 태도’ 즉 ‘이기분속론’은 바로 대립되는 두 집단의 양립할 수 없는 공존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두 집단의 공존상태는 극단의 화합할 수 없는 모순된 집단의 혼효이기에, 하나의 집단이 또 다른 상대의 집단에 대해서 소멸, 혹은 제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국정에 나타난 현의 집단과 우의 집단, 혹은 정의 집단과 사의 집단을 학문일반의 영역으로 변이 시켜서 공존할 수 없는 뚜렷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전개한다.⁸⁰⁾

그는 이기의 관계를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결시이물(決是二物)의 분속된 요소들로 파악하면서, ‘非理氣爲一物辯證論’을 제시한 것이다. 그것은 ‘사와 정, 우와 현의 공존(邪正相雜.賢愚混淆)’을 ‘분명한 모순된 공존(理氣不相雜.理氣分屬論)’으로 이론화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황의 이기불상잡의 강조와 이기분속론 고수는 결시이물의 이론적 체계를 보다 선명하게 구체화하는 이론인 셈이다.

이러한 이론을 도표화해 보면,

<도표 2>

賢 .愚	理. 氣
混淆	分屬

正. 邪	理. 氣
相雜	不相雜

다시 말하면 이황의 이론은 현우가 혼효되어 있기에 이와 기는 분속 시켜야 하는 것이며, 사와 정이 서로 섞여 있기에 이와 기가 서로 섞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황이 理의 개념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함은 이의 지칭이 바로 사림집단을 의미하며,⁸¹⁾ 그 집단은 정권창출을 위한 사사로운 정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역사를 감당해야할 막중한 책임이 부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림 개개인은 역경속에서도 “항상 不變하고 날로 피폐해가는 世波 속에서도 우뚝히 두 발을 굳게 딛고 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⁸²⁾고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등뼈를 곧게 세우고 두 발을 굳게 딛고 서 있지 않고서는 진흙 구덩이에 빠지는 것을 면하기 대단히 어렵다”⁸³⁾고 했다. 뿐만 아니니라, 이황은 “사림의 화가 일어나면 사림 개인에 대한 상해를 가져올 뿐만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국가의 명맥마저 끊길 수도 있다.”하여, 사림의 존재를 나라의 명맥과 같은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있다.⁸⁴⁾ 즉 사림의 안위가 국가 위기의 구제에 시금석으로 작용한 것이다.⁸⁵⁾

이황의 ‘이선기악(理善氣惡)’, ‘이귀기천(理貴氣賤)’, ‘이존기비(理尊氣卑)’ 등의 유사한 표현⁸⁶⁾은 바로 대립된 두 집단의 투쟁적 국면의 성격을 반영한다. 이와 기는 공존(理氣相須)하면서도 투쟁하는 관계(理氣相害)인 것⁸⁷⁾이다. ‘相須’는 이기의 일반적 관계를 나타낸 것으로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니나, ‘相害’라는 표현은 이와 기의 적대적 관계를 직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치의 개념으로 분류되는 것만이 아니라 적대하면서 투쟁하는 관계인 것이다.

이기의 개념을 선. 귀. 존 한 것과 악. 천. 비한 것의 철저한 분속적 대비는 이기의 相害 속성을 나타내면서, 한편으로는 사림집단과 훈구집단의 처절한 대결구도와 연계되며, 이러한 논리는 이미 이황이 기대승에게 내밀하게 고백한 ‘실재의 사리의 판단’과 ‘새로운 이론의 수립’과 일치한다. 당시의 상황에서 이황철학은 두 집단의 처절한 대결구도의 정국동향과 연계하지 않고는 어떠한 설명도 합리적인 설득력을 지니기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이기이론에서 이황의 이론이 이른바 “이기를 끝까지 구분하려는 의도”와 “그 모순됨”의 주장⁸⁸⁾은 이와 같은 시대적 성격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이황의 논리를 도표화 해보면,

<도표 3>

天道에 순응하는 집단

天道를 거역하는 집단

善의 집단

｜

士林 집단

｜

理의 구조

惡의 집단

｜

勳舊 집단

｜

氣의 구조

그런데 이들 두 집단의 공존과 투쟁국면은 이를 주장하는 집단이 상대를 기의 집단 논리로 규정하면서, 명분에서 절대적 우위에 위치한다. 이러한 논리는 이가 하늘의 이치, 즉 천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믿기 때문에 궁극적 승리, 즉 理勝氣敗는 필연적 귀결로 전제되어 있다. 비록 형세의 향방에 따라 일시적으로는 기의 집단이 득세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이것은 사욕으로 비롯된 각종사건에 불과한 것이기에 역사발전에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한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공광. 안석같은 무리의 출현과 같은 돌발적 사건일 뿐이다.

이황은 자신의 주장에 대해 확신의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천도는 멀다 하나 사실은 가까운 것”⁸⁹⁾이라 하였으며, “자기시대가 비록 말세에 가깝다 하더라도 천도는 변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낙관적 견해를 피력했다.⁹⁰⁾ 그렇기 때문에 理發의 견해에서도 “이가 능히 自到하지 않을까 근심하지 않는다”⁹¹⁾고 하였다. 천도의 불변과 災異의 현상이 악인의 출현과 관련함은 조광조, 이언적의 견해와 일치한다.⁹²⁾ 이러한 천도의 불변논리는 자기시대가 이미 ‘천도가 무너진 시대’라는 인식에 기인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자기시대의 시국을 이렇게 진단한다.

“오늘날 천변이 하늘에 나타나고 사람의 일은 땅에서 일어나, 큰

재앙이 거듭 발발하여 나라의 운수는 꼭 막혀 백성은 불안하며

변방이 허술해서 군사는 부족하고 식량은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

서 백성들은 (나라를)원망하며 신하는 분노하니, 우리 나라가 어느

때 이렇듯 위기에 처한 일이 있었습니까?”.⁹³⁾

그러나 이황에게는 사실 천도의 실존을 굳게 믿는다 하더라도 시국의 추이는 계속해서 천변의 발생 즉, 선의 집단이 궤멸되는 추세이므로, 정국의 현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지혜가 필요했다. 역사에서 ‘士禍’라고 명명된 사건은 곧 ‘사림의 무고한 재앙’인 것이다. 이것이 天變이며 災異며 소인의 군자 능멸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천변의 현장에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상황은 계속해서 위기의 국면으로 전개되기에, 더욱 다양하고 강도 있는 대응논리가 모색되어야 했다. 이제는 하늘이 움직여야 했고, 이도 발해야(理發) 했다. 그래서 천도가 붕괴되는 위기 국면을 타개해야 했다.

이황에게 천벌 받을 악인이 천수를 다 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늘과 이는 그렇게 무력하고 그렇게 무의미한 존재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그는 “하늘은 하나의 이로써 만물에 명령을 내린다”고 하며, “이는 極尊無對하여 사물에 명령을 내린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절대적 도덕율의 상징인 태극의 존재를 강조하기 위해 ‘태극도설’을 그리는가 하면, ‘사단칠정론’, ‘인심도심론’등의 보조논리를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황에게 문학의 행위 역시 예외일 수만은 없다. 이황의 문학과 문학적 행위는 악이 발호하면 발호할 수록 이를 견제하는 선의 온존한 세계를 지향했다. 그가 혹애한 매화의 세계는 그런 의도에서 쓰여지는 선의 공간이며, 매화는 곧 악에 고고하게 맞서고 있는 이황 자신의 표상이다. 그의 청정한 이미지의 한시들은 극단의 악과 대결하는 극단의 선의 세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악이 패배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준거를 순결하고 청정무구한 자연의 모습에서 心象化 하고 있다. 이황에게 선이 그토록 소중함은 “선이 곧 천명 본연의 모습”이라는 인식 때문이다⁹⁴⁾.

이러한 천도의 불변인식은 이황에게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세대에 눈길을 돌리게 하고 있다. 그들을 선의 집단으로 의식화하는 일이다. 그는 개인에게는 자기무장인 ‘敬’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집단의 의식화에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서원을 활용하였다. 경은 개개인의 악의 근저와 대결하는 긴장되고 엄숙한 상태의 선의 집중화 노력이고, 서원은 사림의 집단의식의 교육 현장이었다. 그는 사림집단이 수권세력의 중추세력이 될 것을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서원건립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이는 관학(성균관과 향교)의 학문적 분위기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⁹⁵⁾

이렇게 볼 때, 그는 사실 정치현장에서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셈이었다. 악을 격파하는 논리를 계속해서 제시하는 동시에, 한편으로 차분하고 사려 깊은 인물을 길러 진용을 다시 구축하는 일이었다.

기묘사화와 관련하여 그가 조광조의 실패의 원인을 ‘학문의 부족’으로 단정지움은 예사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⁹⁶⁾ 그는 젊은 이념가의 과격성이 일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류를 저지른 사실을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 한 예로, 중 普雨에 의해 승과를 설치하자 제자들이 모여서 과거거부의 입장을 표명하자, ‘그런 약속은 지나치다’라고 하며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기묘사화에 부연하여-의식화 교육을 받은-성균관의 학생들이 학교를 비우고 집단데모를 전개한 사실에 대하여 “관을 비우는 것은 임금을 협박하는 행위”이며, 집단데모에 대해서는 “악의 집단이 선의 집단을 탄압하는 구실만을 제공하였다” 고 진단했다. 조광조의 처형에 학생데모가 적지 않게 기여했음은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황을 바라보면, 이황은 현실논자이며,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시국과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의 학문적 이론과 행동의 신중함은 집권세력을 직접적으로 비판. 자극하지 않음으로써 사림세력의 정치적 입지의 확충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치밀함은 자신의 글을 최대한 활용 수단으로 하면서 두 가지 방향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엄청난 효력을 발휘한다..

그 하나는 임금을 우군으로 삼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는 그 자신 특유의 끊임없는 취임. 사퇴와 깊이 연계되어 있다. 그의 계속되는 취임. 사퇴는 현실적으로 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 지위에 나아갈 수 없는 정국 추이에 대한 판단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理 우위적 입장에서 군주의 도덕적 임무를 한층 강화시키는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모든 역사의 치란. 성쇠의 운명적 현안이 모두 군주의 한 마음에 있음을 주목하고, 군주의 도덕적 마음가짐을 사직소를 빌미로 끊임없이 개진한다. 군주의 도덕적 마음가짐이야 말로 악의 집단을 단숨에 분쇄하는 효과적이면서도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거듭되는 취임과 사퇴, 그리고 그때마다 올려지는 무수한 사직소는 곧 자신의 독특한 정치행위의 일환인 동시에, 파행정국의 암울한 정치현장을 임금이 하루 빨리 인지하고 개선하라는 독촉장인 셈이며, 임금 역시 그 책임의 일단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전일 국정의 현장에서 임금의 한 마음에 모든 것을 걸고 혁신을 주도하다가 좌절한 조광조의 사례를 볼 때, 이황의 온건하면서도 조용한 진언은 매우 현실적인 대응방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와 같은 계획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사림집단에게 편지의 방법을 적절하게-아니 매우 중요하게-이용하고 있는 점이다. 그의 문집에 대량으로 목격되는 사우 .친지들과의 무수한 왕래편지⁹⁷⁾는 물론 당시의 교통사정의 어려움이 고려될 일이지만, ‘이황의 편지의 방식’은 남다른 특성을 지녔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는 편지를 자신의 의지와 사상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인식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편지를 끊임없이 주고받음으로써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사림집단의 연대적 결속력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편지는 말하자면 극도의 좌절감과 열세에 처해있는 사림집단 개개인에게 보내는-격려를 동반한-이론과 행동의 지침서인 셈이다. 이황은 그 자신의 시간표를 지켜보면서 내일을 기약했고, 꾸준히 실행했던 것이다. 선조 정국이 전개되었을 때, 훈구의 소멸과 더불어 이황의 문인과 영향권의 인사들이 수권집단에 중핵이 된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황은 조용하면서도 치열하게, 사림세력의 알찬 결속을 도모하면서 한편으로는 악의 세력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임금을 자신의 편이 되도록 노력했다. 사림집단의 결속과 임금의 자세전환이 시국을 개조할 축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황의 이러한 일련의 처신은 당대 사우(師友)들로부터 ‘기세도명(欺世盜名))’, ‘위아지학(爲我之學)’등의 문자로 혹독하게 비판받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으며, 후인들에게도 이황의 사림집단의 비중을 고려할 때 손상이 있는 인물로 오해받는 근거자료가 된다.⁹⁸⁾ 그렇지만 그의 의도는 군주의 正心과 관련된 견제의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가령 명종 20년 이황의 나이 65세 때, 임금이 편지로 상경을 독촉했으나 그는 곧 올라가지 않았다. 이에 대한 이황의 변명과 사신의 평이 이를 시상한다.

-이황의 변 :

“지금 조정에서 사람을 등용하고 버림이 그 정당함을 잃어 현

우(賢愚)의 구별이 없으니, 이것을 신은 크게 의혹 하는 바 입

니다.”⁹⁹⁾

-사신의 평 :

“현인이라 불러놓고 어질지 않은 사람으로 대우하니, 이것이

황이 종신토록 조정에 나오지 않은 이유이다.”¹⁰⁰⁾

이황의 이런 처신은 그의 나이 68세 때, 사대부로서 생애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문형(文衡)-대제학-의 임명을 거절하는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 문형의 자리를 거부한 경우는 이황이 처음일 것이다.

이로 볼 때, 이황의 주리론 역시 이이의 주기론과 마찬가지로 시국의 전개상황과 긴장된 대결국면에서 형상화한 이론이다. 그 이론은 철저하게 체험세계에 대한 인식논리와 대응구조로 짜여져 있다. 그런데 이황의 주리론과 주기론이 다같이 악의 집단에 대한 대응. 극복의 논리이면서도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예각적으로 부딛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이의 시대와 이황의 시대가 동시대 속에서도 ‘사화진행기’와 ‘사화종식기’의 시차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정은 이이가 천벌 받을 악인으로 지목한 인물이 자신을 위해할 수 없는 역사 속의 정리된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황의 시대는 그럴 수 없었다. 악인은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¹⁰¹⁾

이황의 각종 상소문에서 갑자, 무오, 기묘사화는 수시로 언급되지만 을사사화가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연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차가 있었기에 이이는 을사사화와 관련된 인물과 성격에 대하여 사정없이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이이는 이황보다는 종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악이 선을 이길 수도 있다”는 묘한 형국의 목격에서 ‘이기묘합론’을 거론했으며, 이황은 “악은 결코 선을 이길 수 없다”는 신념에서 ‘이기분속론’을 고독하게 견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이의 이론은 사화종식과 더불어 전개된 사림집단의 분열상을 동시에 극복하고자하는 보다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주리론은 사림파의 훈구파에 대한 대결의 논리이다. 이이가 자기시대에 예민했듯이, 이황 역시 시국의 추이를 투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황은 선의 집단인 사림파가 악의 집단인 훈구파에 결코 합쳐질 수 없는 이물(決是二物)이기에 분속되어 있다고 했다. 이물의 분속 향배는 훈구파의 절대적 우세로 나타났다. 말하자면 악이 선을 압도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사람파와 훈구파의 대결에서 사림파가 비록 현실적으로는 수세에 있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승리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발론을 주장했다. 이황의 이발론은 이러한 정국의 동향과 관계되는 것이기에, -그 특징이 항상 이가 기를 압도하는 구조로 짜여지고- 주기론을 주장한 서경덕이 전반적인 도학의 기여에 대한 인정¹⁰²⁾에도 불구하고 비판되는 까닭이다. 이러한 이황의 완강한 이발론은 자신의 역사적 통찰에 결부되어 제거된 것이기에, 자신으로는 시국의 현안에 대한 최선의 현실적 대한인 셈이다.

사실 이황은 자신의 학문의 목적을 “사물을 탐구하고 그 이치를 궁리함으로써, 비와 악을 제거하고 시와 선의 이치를 구하기 위함일 뿐이다.”¹⁰³⁾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이황은 이이가 지신의 ‘심학도설(心學圖說)’의 논리적 약점을 따지고 들자 “선유들의 논설의 옳지 않는 점만 찾아 그것을 폄하하고 배척하려 할 뿐, 그것의 바르고 정당한 도리를 질박해 나가려는 뜻은 적다”¹⁰⁴⁾라고 지적했다. 이황의 이러한 의미 언급한 기대승에게의 고백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에게 이런 깊은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발(理發)은 잘못된 견해입니다.’라는 기대승의 집요한 학문적 오류의 지적도, 끝내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기대승은 물론이고, ‘이황은 침잠이굴(沈潛理窟) 했다’¹⁰⁵⁾는 이이 역시 이황의 꿈과 이상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요컨대, 이황은 이기의 문제를 학문일반으로 볼 때는 기도 인정되며 인심도 부정학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시국의 기조논리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어쩌면 이런 논리의 추인은 악의 집단의 만행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지 않을까 우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선전기 그러니까, 이황의 시대에는 적어도 사림집단의 입장에서는 악의 집단에 의한 선의 탄압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사림집단의 정신적 버팀목인 성리학적 이념이 그때까지의 다소 소극적이고 정적인 학문적 영역에서, 역동적인 사회성을 지닌 ‘도학(道學)’이라는 학문의 이름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외면하고 이기의 논쟁을 이해함은 또 다른 공리공론으로 흐를 개연성을 성리학은 그 학문자체의 내재적 개념의 특성에서 이미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성리학의 대표적 학자로 표상되는 이황에게, 이기의 개념은 중세시대의 하나의 매력있는 철학적 사유체계의 학술적 탐구의 차원에서만 수용되지 않았음이, 이제까지 논의에서 확연해졌다.

4. 理氣分屬論의 窮極的指向點

그러면 이황의 이기분속론의 깊은 뜻은 어디에 있는가? 단순한 사림과 훈구의 대결논리, 즉 사화의 극복논리에 머무르고 마는 것인가. 도대체 그가 부르짖은 ‘道學’은 무엇인가?

이황은 “기에 이가 타는 것이 없으면 利慾에 빠져 禽獸가 된다”¹⁰⁶⁾라고 했다. ‘이욕 되로 살면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 된다’는 말은 유가적 가치관으로 보면 보편적인 말이지만, 이황의 이 표현은 일반론과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기에 이가 타지 않으면’이라는 전제하에서의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다. ‘금수만도 못한 인간’은 다름 아닌 이욕에 혈안이 되어 사림집단을 도륙하고 민생을 황폐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나라를 야만국으로 전락시키는 훈구집단을 지목한다. 이황의 철학적 고민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금수같은 악의 집단’이 지배하는 국가는 분명 오랑캐의 나라이다. ‘오랑캐’는 요즈음의 용어로 보면 ‘야만국’을 의미한다.

이황이 ‘우리 나라가 야만국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인식은, 그가 국가를 상대로 올리고 있는 각종의 글에서 비록 온건하게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는 그의 본심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하여 말의 수위를 조절하며 그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그가 ‘그 시기’라고 판단한 시기가 왔다. 무진년(1568년 선조1년)이 바로 그런 시기였다. 그는 여태까지 참았던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정리해서 나라에 올렸다. 이 때 올려진 무진육조소戊辰六條疏, 무진사직소戊辰辭職疏, 무진경연계차戊辰經筵啓箚등의 거듭된 상소문은 이제까지의 상소 가운데 가장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무렵은 이미 악의 집단이 거의 소멸된 시점이었고,¹⁰⁷⁾자신에게 모든 여망이 집중된 선조 시대의 정국이 전개된 것이다.

그는 여기서 악의 집단에 의해 저질러진 시국의 황폐함을 전에 볼 수 없는 격렬한 논조로 개진하고 있다. 그는 먼저 악의 집단의 정국운영의 형태를 “임금으로 하여금 아부토록 하며, 위. 아래가 서로 당으로 굳게 결속하여 아무도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도록 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피팍받는 사림세력의 괘멸상을 이렇게 피력했다.

“만일 어떤 강직한 선비가 있어 칼날을 무릅쓰고 일을 범하게 되면,

반드시 귀양을 보내어 죽이거나 (다져서)양념을 만들고(虀),(빻아서)

가루(粉)가 된 다음에야 그만 두옵니다.”¹⁰⁸⁾

이황의 이러한 극단적 어휘의 구사는 그가 조식에 비해 온건재야의 온화한 무언의 정치가가 아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이러한 악의 집단에 의해 저질러진 시국의 사회상은 “이익을 꽤하는 폐단이 고질화되어 있으며, 그 폐단은 구체적으로 포악한 관리들이 가택을 수색하고 장정을 잡아가며 협박하고 독촉함이 성화보다 급하여, 뼈를 깎는 듯한 착취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그 결과 “부모와 사랑하는 처자를 버리고 사방으로 숨어 다니며, 장정들은 떼를 지어 도적이 되고 노약자는 구렁에 떨어져 죽어 가며, 이로써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런 사태는 자칮하면 백성들의 분노와 원망으로 이어 저서, 종국에는 국가의 존망과 결부된다는 구체적 사례를 한. 위. 당. 송의 패망에 기여한 농민봉기를 지적했다.¹⁰⁹⁾

지금 국가적 위기는 바로 이런 사태에 연유하여 우리 나라가 야만국으로 전락됨을 자못 우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황은 “우리 동방에는 옛날부터 성인이 살고자 했고, 또한 기자 같은 성인이 살았던 곳”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새삼스럽게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¹¹⁰⁾성인이 도학을 했기에, 도학을 해야할 당위가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나라에는 지금 도학을 올바르게 하는 사람이 없기에 사상의 위기가 온 것이다. 전시대에 도학을 한 사람이 없지 않지만 그들이 문자와 저술을 남기지 않았기에 제대로 과업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 동방에 도학자가 없지 않았지만 문헌을 찾아볼 수 없으니,

그 조예의 얖고 깊음을 상고 할 수 없다. 우제주. 정포은은 시대가

멀고 한헌. 일두같은 학자들은 들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지만, 문

헌을 찾을 수 없으니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다. 참고로 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오직 회재 한 분이 있을 뿐이다.....조예가 깊지 않고

서야 능히 이럴 수 있겠는가!”¹¹¹⁾

이황에게 도학은 문명국과 문명사회를 이루는 결정적 학문이기 때문에, 그는 도학을 한 사람의 공적을 누누히 치하하면서도 한결같이 ‘문자와 저술이 없었다’는 지적을 했다.¹¹²⁾이는 단순한 아쉬움의 탄식이 아니다. 도학의 내용이 담긴 문자와 저술은 문명국의 기반을 다지는 절대적 자료가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였던 것이다.¹¹³⁾‘도학’과 ‘문명국’으로의 염원은 서두에서 사마천이 개탄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집단고통’을 일거에 해결하는 결정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황에게 이러한 인식이 있었기에 그나마 문자와 저술을 남긴 이언적이 더욱 소중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언적의 업적을 아낌없이 찬양했다.¹¹⁴⁾그리고 그 자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엄청난 저술활동 역시 이러한 문명국의 문화의식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황의 왕성한 제자의 강학과 놀라운 서원창설운동은 이러한 과업과 맥락을 함깨 함은 물론이다.

이황은 우리 나라가 ‘혼란에서 질서로’, ‘야만국에서 문명국’으로 그나마 명맥을 이어온 연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 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여 하나가 되었고, (이를 계승한)

고려는 5백 여 년 동안 세상에 도리가 일어나고, 문화의 풍토가

차츰 열리어 중국으로 유학하는 학자가 많아지고 경학(도학)

이 따라서 성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혼란이 질서로 변하

였고, 중화를 사모하여 오랑캐를 면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우

리 동방은 현재 ‘문헌의 나라(文獻之邦)’,‘군자의 나라(君子之國)’

라고 일컫는 것도 다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¹¹⁵⁾

이러한 인식은 서경덕의 발언에도 나타난다. 그가 그 자신의 저술에 부기하여 “이 글(鬼神生死說)이 비록 문장으로는 졸렬하지만, 천성(千聖;중국의 많은 성인들)이 이르지 못한 경지이 견해이다. 중간에 잃어버리지 말고 후학들에게 전하여, 온 세상에 우리동방에 학자가 나왔음을 알게 하라”¹¹⁶⁾고 언급함도 역시 도학적 문헌이 지닌 이런 문명의식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도학적 문헌의 중요성은 이이 또한 이들과 견해를 같이하는 점이고,¹¹⁷⁾ 그 자신이 짧은 생애에고 불구하고 많은 저술을 남긴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황은 사관으로부터 생애에 “한번도 타인의 잘잘못을 말한 적이 없다”라고 평가받았지 만, 이는 사실과 꼭 부합되지는 않는다. 사실 이황만큼 타인의 잘잘못을 거론한 인물도 역사상 흔하지 않다. 그는 그의 문집 한 부분을 ‘논인물조(論人物條)’라고 엮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을 비판했으며, 문집 곳곳에 인물평이 산재되어 있다. 여기에는 정몽주를 비롯하여 김종직. 서경덕. 조광조. 이언적. 조식 등의 허다한 인물들이 비판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판대상은 전시대는 물론이고 동시대의 인물까지 거의 망라되어 있다.

그런데 이황이 비판한 부류는 대체로 사림계보에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황이 잘잘못을 거론하지 않는 대상이 있다면 훈구세력의 인물들이다. 이런 분류의식은 매우 주목되는 점으로, 전자의 인물들이 얼마간의 하자에도 불구하고 역사발전에 기여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며, 후자는 직접적인 위해의 상황도 상황이지만 역사에 기록조차 남길 가치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의 문집에 패도로 권력을 움켜잡고 술수로 정치를 천단한 인물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점은 이러한 역사의식에 기인한다.

요컨대 문명국의 건설을 위해 도학에 기여하고 안하고가 그의 인물에 대한 기준인 셈이다. 이황에게 이런 기준이 있었기에, 서경덕을 그렇게 비판하면서도, 또 다른 각도에서 평가하는 까닭은 그런 연유가 있기 때문이다.¹¹⁸⁾

이황에게 도학¹¹⁹⁾은 중국성인의 고급학문의 차원에서 귀중한 것만이 아니다. 도학은 바로 중국을 문명국으로 존재하게 하는 결정적 학문이다. 성인은 문명을 이룰 주체자이며 도학은 그 정수인 것이다. 이는 사실 중국의 역사적 궤적과 부합된다.

도학을 흔히 ‘성학(聖學;성스러운 학문)’이라고 하는 것과, 이황. 이이의 핵심적 저술을 각각 ‘聖學十圖’, ‘聖學輯要’등으로 표현함도 이런 문명의식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하다. 지금 우리 나라가 도학을 해야할 당위성은-서두에서 지적한 ‘공광. 안석 같은 악의 집단에 의항 대재앙’인-천도가 무너지는 반문명적 전개와 더불어, 중국을 의식한 자주적 화의론(華夷論)의 수립에 그야말로 위기가 왔기 때문이다. 이황이 우리 나라를 ‘동로東魯’라고 하며, ‘성인이 살고자 했고 성인이 살았던 곳’으로 지칭함도 이러한 위기의식과 문명의식을 함께 반영하는 표현이다. 도학이 이처럼 중요함은 ‘도학이 바로 하늘의 학문(道之大原出於天)’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또한 도학은 전통유학에서 유래된 하나의 학문적 개념이지만, 한편으로는 시대모순에서 파생되어 증폭된 것이기에 저술을 중요시하는 그런 한가한 학문만도 아니다. 다분히 사회적 이념성을 띄고 있다. 이이가 도학 또는 도학자의 구비요건으로 ‘저술’과 더불어 ‘거취’의 올바른 처신법을 강조함은 도학의 성격을 적절하게 지적하는 말이다.

요컨대, 이황의 철학과 사상은 우리 나라를 야만국으로 전락시키는 악의 집단을 축출하고, 문명국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에서 結晶된 것으로, 그는 이를 온몸으로 성찰하고, 온몸으로 인식하며 온몸으로 실천하려고 했던 한 지성적 지식인의 고뇌에 찬 생애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생애는 기본적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미래에 희망을 품으면서, 우리 나라를 진리의 나라로 끌어올리려는¹²⁰⁾ 크고 원대한 우리민족 모두의 이상과 함께 한다.

四. 分裂政局과 李珥의 理氣妙合論

1. 分裂政局의 槪觀

이이의 정치적 개화는 선조시대와 함깨하고, 선조시대의 전개는 사림세력의 분열과 함께 한다. 훈구세력의 몰락과 이어서 집권한 사림세력은 처음 희망에 부풀어 전일이 펴지 못한 포부를 펴고자 했다. 그러나 주도권을 두고 선조의 신정이 시작되자 바로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림집단 내부에서 대립과 분열이 일어남은 당시 정국의 최대 현안이었다. 분열의 초기현상은 전 시대의 대결정국의 결과인 사화정국의 청산에 모아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때까지도 사화의 여진이 잔존하고 있었고,¹²¹⁾ 이 청산을 두고 사림세력 사이에 그 처리의 방법론을 두고 노장과 소장간의 마찰을 빚고 있었던 것이다. 선조 즉위 2년, 사신의 평은 이 무렵의 정국 동향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때 왕이 신정을 펴고 정사에 온 힘을 기울렸는데, 신진의 선비

(新進之士)는 모두 이황을 종주로 삼고, 그 문에서 강학하며 무리를

이루어 挽回世道와 激濁揚淸을 숭상하여 논의하니 時人들이 ‘小己卯’

라고 지목했다. ....(그러나) 新進之士는 舊臣의 前輩가 流俗에 빠졌다

고 경시했다. 이에 구신들도 신진들에 불평이 가득하여 역시 무리를

이루기 시작했다....이에 양자의 형색과 한계가 뚜렷이 구별되어서는

항간에서 ‘老.小黨’으로 지목하기 시작했다.¹²²⁾

소장관료들에 대한 ‘소기묘’로의 지목과 노장 재상들을 ‘유속에 빠진 구신’ 이란 표현은 이 분열과 대립이 이 무렵 매우 감정적으로 흐르고 있음을 나타낸다. 대립은 아직까지 전일의 사화정국의 공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림의 시국에 대한 안목이 빚은 선후배의 대립이었다. 그리고 그 대립의 주요한 요소는 과거청산과 개혁 속도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재상의 대표적 인물인 이준경은 이들 신진들의 세도만회의 급진적 논의를 ‘過激’ 혹은 ‘過銳’라고 하고, 이들의 이러한 집단적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¹²³⁾ 이준경의 이른바 ‘破朋黨之私’라는 遺疏의 골자가 그것이다. 이 유소는 소장층을 자극했다. 분열정국에서 이이의 등장은 이준경의 유소에 대한 반응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 유소에 노골적이고 격렬하게 반응했다.

“당시의 舊臣들은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행실은 비루하고 재주는

없는 자 들이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구신 역시 모두 모난 것을 잘

라 원을 만들고, 술 찌꺼기를 먹고 마신 나머지에 나왔으니 절의의

선비(節義之士)를 어찌 구신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 公論이 불허하

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¹²⁴⁾

이이는 훈구세력들이 정권을 천단할 때 이들 구신들은 지조를 굽힌 자로 평가했다. 이준경의 유소는 사실 사림의 분열을 염려한 노재상의 충정에서 올려진 것이지만, 이이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자신을 비롯한 젊은 신진들을 또 다시 붕당의 언어로 휩쓸리어 지난날 사화정국의 빌미를 주는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을 까 우려했던 것이다. 이이의 격렬한 반대의 소는 이러한 측면을 우려했던 것이지만, 사태는 이준경이 우려했던 바와 같이 동과 서로 갈려지는 구도가 등장했고, 곧 바로 폭발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사신의 평은 “사림의 선후배가 서로 불화하여 分黨의 조짐이 있었다”¹²⁵⁾고 만 했다.

동. 서의 분열은 바로 심의겸과 김효원의 개인적 감정에서 촉발된 것은 주지의 일이다. 그런데 이 사안을 바라보고 조정하는 시각은 이른바 동인에 소속된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김효원을 지지했고, 서인들은 물론 김의겸을 옹호했던 것이다. 여기서 이이는 상당한 기간 兩非論의 중립적 입장에서 양측을 중재했다. 그러나 이이의 중재는 동인들이 배척하는 심의겸을 옹호하는 것이 빌미가 되어 점점 서인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심의겸은 왕실의 외척인 이양의 인척이기에 전일의 훈구의 잔재인물로 지목하여 축출을 주장했고, 이이는 ‘심의겸도 사림이다’하며 그의 옹호를 주장했던 것이다.¹²⁶⁾ 이이의 이런 입장에서 결국 양인의 추방을 건의했고 그대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이는 이런 와중에 점점 그 자신이 대립의 정점에 위치하게 되어 이른바 ‘이이의 시비’¹²⁷⁾를 촉발시킨 것이다.

이이는 그 자신이 소장관료에서 차츰 나이가 들어 노장으로 지위와 신분이 격상되어 갔다. 그래서 자신의 위치와 전일 중립과 중제를 취한 자세가 차츰 신진들에게 적대적 입장으로 몰리는 형국이 되어갔다. 이이 자신이 곧 ‘舊臣’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무렵 이미 이이는 서인으로 지목되었고, 이이 자신이 스스로 서인의 입장에서 신진들과 대립해 갔다. 이에 따라 이이의 입장을 변명하는 세력에서 “이른바 구신이란 선조초의 신진들이다. 지금 비록 나이가 많아졌으나 신정에 등용되어 과거청산에 힘썼다. 윤원형, 이양 때의 용열한 구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이이 옹호의 상소가 올려가곤 했던 것이다.¹²⁸⁾

그러나 나가있던 김효원이 돌아오자, 동인들은 이이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동인은 병조판서로 있는 이이가 야인 니탕개의 침입 때 왕명으로 궐내로 들어가다가 현기증을 일으켜 內兵曹에 누웠다가 그대로 나온 것을 專擅과 慢君의 죄명으로 탄핵했다. 이 때의 이이의 탄핵은 조정 관료들은 물론이고 성균관 유생과 경상도 유생, 그리고 전라도 유생들이 가세하여 옹호와 배척의 소를 번갈아 올려 엄청난 물의가 일어났다. 이른바 ‘이이의 시비’의 도화선이 되어 대립이 격화되었다. 이 무렵 이이의 입장은 이러한 동인의 공격에 도태를 모면하기 위한 새로운 방향의 모색이 그를 중심으로 하는 서인의 과제가 되었고 이이는 여기에 적극 대처했다. ¹²⁹⁾

이이는 이런 과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신진들의 권력의 핵인 낭관의 기능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¹³⁰⁾ 이는 낭관의 기능을 축소시켜 제도적으로 그 힘을 제한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이이는 사직의 배수진을 치고 낭관권의 핵심인 ‘自薦制’를 혁파하고자 까지 했다.¹³¹⁾ 그리고 전일 소장 관료이던 시절 자신의 최대 이론이던 ‘공론’마저 부정하기 시작했다. ¹³²⁾ 이런 대응에 대립하고 있는 소장관료들이 이이를 다시 공격했다.

“공론은 만승의 천자도 굴복해야 하거늘 오히려 재상의 지위에

있는 자가 공론을 멸시하며 꺼리지 않음이 이에 이르는데 이게

진정 옳은 일인가. 실로 그 폐단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왕안석

이 교만하여 왕명을 멸시하고 言者들을 배척하는 습관이 이이에

게도 있는 것이다.“¹³³⁾

이런 동인의 공격은 이 무렵 동서의 분열이 극도로 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자학자에 의해 배척받는 왕안석을 이이와 비교하는 것은 동인이 이이의 공격으로 권력의 핵심인 공론과 자천재가 허물어지고 있음에 대한 반격이기도 했다. 선조 12년 이이는 지금의 공론은 공론이 아니라 사론으로 변질되었다고 했고, 이러한 공방은 선조 17년, 이이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소멸되지 않았다. 이 무렵 정치적 향배는 이이 자신이 성혼과 더불어 서인의 세력을 온몸으로 부축하는 형국이었다. 이이의 죽음과 더불어 서인은 몰락했고, 이 후 반격의 성격을 띤 정여립 옥사가 발발하여 동인이 거의 괘멸되는 악순환이 이어졌음은 주지의 일이다.

이이의 정치적 생애에서 사화에 이어 일어난 당쟁은 그 사안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이이 자신이 이 소용돌이의 정점에 위치했음으로 인해 그는 분열과 대립의 국면을 죽는 순간까지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에게 나타나는 붕당의 조정은 숙명적인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공론을 일으킴으로써, 혹은 사직을 배수진으로 하면서 이의 극복을 도모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붕당의 발발과 조정 그리고 또 서인으로 지목되는 과정의 전반이 바로 이이의 정치여정인 셈이다.

따라서 이이의 생애와 이 무렵의 언어는 붕당에 대한 시비공방에 그 주류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李珥의 是非’는 이이를 두고 벌어진 격렬한 논쟁을 직선적으로 기술한 말이다. 그 만큼 이이가 선조정국에서 붕당에 차지하는 비중을 크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기간 이이가 역임한 주요한 관직으로는, 30대에는 호조좌랑, 예조좌랑, 정언, 이조좌랑, 지평, 부교리, 춘추관기사관 등을, 40대를 전후해서는 직재학, 병조참지, 동부승지, 우부승지, 대사간 등을, 45세 이후에는 대사헌, 예문관 재학, 동지중추부사, 대제학, 이조판서, 형조판서, 우참찬, 판돈령부사 등을 역임하여, 년령에 비해 파격적이 직함을 지켰으며, 자신이 사직하지 않은 한 요직에서 거의 밀려난 적이 없었다. 그 만큼 선조의 신임이 두터웠고, 그 두터움은 그가 분열정국에 적극적인 입장이 되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까닭에 선조정국에서 이이는 항상 분열정국의 전개에 가장 핵심적인 존재로 위치했고, 이런 사실은 이이의 정치적 업적 뿐 만이 아니라, 그의 사상과 철학에도 어떠한 각도에서든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2. 對決政局에 대한 哲學的認識

理. 氣에 대한 이이의 이론은 이황과 대립된다. 이황이 이기가 二物이라고 한 반면 이이는 기대승과 마찬가지로 一物이라 했다. 이황이 불상잡을 주장한 반면 그는 불상리를 주장했다. 또한 그 상관관계에 있어서도 이미 언급한 것처럼 전자의 이기분속(理氣分屬)에 대립하는 이기묘합(理氣之妙)을 제시했다. 이이의 이러한 이황과의 대립적 논리의 전개는 오로지 이이 자신의 역사인식과 시국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이의 이론은 사림집단과 훈구집단의 첨예한 대립의 산물인 ‘士禍’의 역사적 성격을 검토하는 바탕 위에서 형상화되고, 다음에 이어지는 사림집단의 분열 즉, ‘朋黨’의 발생에서 완성되고 논리화되고 있다. 이이의 사상은 사화종식기와 붕당발생기¹³⁴⁾의 과도기적 시대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우선 이이는 대결정국의 산물인 士禍의 역사적 성격을 냉정하게 진단하고 있었다.

a).“모인(某人)이 (天罰을 받지 않고) 천수를 다함이 어찌 정상이리요

마는, 세상이 공평하지 못하고 상벌이 부당하면, 악인이 잘살고 선인이

곤궁해지는 것이 또한 理 이다.¹³⁵⁾”

‘천벌 받을 악인의 천벌 받음’은 이황이 확신한 천도의 이치이다. 이황에 의하면 공광과 안석 같은 인물이 천벌 받음은 필연의 법칙이다. 그러나 이이의 입장에서 볼 때 ‘某人같은 천벌 받을 악인’이란 처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이에게 ‘천벌 받을 악인’이란 가치 차원의 판단이지, 존재의 차원에서 볼 때 ‘천벌 받지 않음’이 현실인 것이다. 이이가 존재의 원리를 보다 주목하게 된 것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의 실존적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천도에 대한 지극히 상반되는, 즉 불변과 가변의 인식은 이황, 이이의 철학과 사상이 동일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바탕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기이론에서 ‘분속’과 ‘묘합’이라는 논쟁이 등장함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이이의 가변은 이미 언급한 “군호가 일양을 때려잡는 형국”이란 극단적인 용어와 더불어 엄청난 중압감을 견디고 나온 견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사실 이이시대는 이황이 지목한 부류의 천벌 받아 마땅한 악인이 천벌을 받지 않고 천수를 누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이는 그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며 이런 악인이 죽은 뒤 벼슬을 깎는 정도는 그 죄악에 만 분의 일도 안 된다고 개탄했다.¹³⁶⁾ 이이가 목격한 이런 현상은 실로 심각한 현안으로 사유체계의 획기적인 전환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보다 합리적인 시각을 가져야 할 당위가 있어야 했고, 거기에 따르는 새로운 논리의 수립이 절실히 필요했다.

‘천벌 받을 악인의 천벌 면함’은 사실 동양의 역사에서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과제이다. 중국정치사를 냉정하게 조망한 사마천 역시 “만약 천도가 참으로 존재한다면 이런 일(악인이 천수를 누림)이 과연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심히 의혹 스러울 뿐이다”하며, 도척에 비해 백이, 숙제, 안연 등의 불우함과, 누구인지 구체적 이름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사마천 시대의 악인들이 천수 누림을 그는 하늘을 향해 분노했던 것이다.¹³⁷⁾ 이처럼 사마천을 비롯한 동양의 지성인들이 진실로 고민하며 그 해법을 찾지 못한 이 문제에 이황과 이이가 지금 각기 다른 처방으로 그 답안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황, 이이의 성리학적 성과와 그 명성의 위대함과 그 본질적 규명은 사실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이황은 이미 거론한 바처럼 “안석, 공광 같은 악인들은 반드시 천벌을 받는다”고 하고, “그들의 횡횡은 긴 역사에서 볼 때 한시적 성격을 띄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천도의 불변은 이황의 논리이다. 따라서 이황이 서경덕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기대승의 치열한 공격에도 끝내 이와 기를 분속하고자 하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음은 이러한 천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논리와 신념은 악인집단을 끝내 역사에서 소멸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그 신념이 ‘이기분속론’의 주요한 요소를 이룬다.

그러나 지금 이이는 “천벌 받을 악인도 상황에 따라서는 천수를 누릴 수도 있다”고 하여 이황과 결정적으로 다른 천도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중국에서도 그 해답의 어려움을 이황, 이이가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고 그 논리성을 전개하고 있다. 이황. 이이가 재평가 되어야 한다면 바로 이런 부문에 대한 정치한 연구가 요망된다. 물론 이런 시각과 판단은 이황이 절박한 野의 입장에 있었다면, 이이는 이미 조금은 여유로운 與의 입장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¹³⁸⁾ 그리고 그 논리를 이기이론으로 전개했다.

이이의 위의 발언을 다시 도표화 해보면,

<도표 4>

1)主理論

2)主氣論

惡人

｜

天罰

｜

理

惡人

｜ …… 형세 변화

天壽 (氣의 작용)

｜

理

“악인의 천벌 받음이 理이나, 악인의 천수 누림이 또한 理”라고 한 이이의 주장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황과 정면으로 맞서는 충격적 발언이다. 이황은 “천벌 받을 악인이 반드시 천벌 받음이 理이고 天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이는 “천벌 받을 악인이라도 형세에 따라 천수를 누릴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군자가 소인을 이기고, 선이 악을 이기고, 사림이 훈구를 이기는 것은 무너질 수 없는 절대적 이치이건만, 사태는 계속해서 반대의 현상을 재현하고 있었다. ‘천벌 받을 某人’은 소인이며 악인이며 훈구의 표상이다.¹³⁹⁾ 그러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흥분할 수마는 없기에 이론의 심화는 더욱 필요했다. 이이에게 이런 상황이 현상적인 ‘氣’라는 글자를 중요한 개념으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b)“대체로 德의 크고 작음을 논하지 않고 힘力으로만 승패가 결정

됨이 어찌 하늘의 본연이랴 마는 이것이 勢 이다. 세가 이미 그러하

다면 理 또한 그러하다. 이것이 天이다. 그런즉 某人이 천수를 다함

은 理의 本然이 아니라면 옳지 마는 가가 홀로 그렇게 작용하고 이가

없다면 옳지 않다. 천하에 어찌 理외에 氣가 있겠는가.”¹⁴⁰⁾

“‘정의(德)’에 의하지 않고 ‘무력(力)’에 의한 승부가 어찌 천도이랴 마는 ‘형세(勢)’가 그러하다면 이것 또한 理고 天이다”라는 이이의 이 진술은, 그의 이기이론과 더불어 天道에 대한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¹⁴¹⁾ ‘力’, ‘勢’ 등의 단어는 곧 무엇을 나타내는가. 그것은 氣의 내재를 전제한 기의 힘(氣力)이며, 기의 세(氣勢)인 것이다. 이이는 ‘氣’라는 단어를 그런 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¹⁴²⁾ 사실 위의 a).b)의 인용문은 이이가 절친한 친구인 成渾의 질문에 대한 답변의 일부로, 성혼은 그 질의에서 氣라는 글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매우 주목된다.

“ 이모(李某)의 행위¹⁴³⁾는 그 죄악이 극히 무거운데 마침내 천수를 다 했으

니, 이것은 천도가 무지(天道無知) 탓인가, 아니면 기의 작용(氣之作用)

인가?”¹⁴⁴⁾.

위의 짤막한 편지의 문답은 사마천이 고민한 “악인의 천수문제”를 또 다시 재론한 것으로 이이의 답변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이의 답변에서 뜻밖에 이제까지 거론되는 학술적 용어인 이, 기의 개념이 단순한 관념적 학술개념으로만 존재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단서는 이, 기 개념, 혹은 이기논쟁이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李某의 行爲','天道의 無知','氣의 作用'등의 용어는 바로 이기이론이 정치적 구조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따라서 이이의 이와 같은 발언은 이황의 이기이론 역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있음을 다시 한번 되세기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런데 위의 성혼의 질의는 성혼만이 갖는 시국의 의문이 아니라 사림집단의 전체적 위기의식의 절박한 대변으로 보아야 한다. 이제까지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는 천도의 불변 혹은 천명의 소리를 믿어 왔지만¹⁴⁵⁾ 하늘은 그렇지 만도 않았다. 세계관을 수정해야 할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¹⁴⁶⁾. ‘하늘 무서움’보다 ‘형세 무서움’을 절감했던 것이고, 그 상황에서 이이의 천도의 가변논리가 등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혼이 즉 당시의 사화정국을 바로 ‘천도가 무지한 탓인가’ 아니면 ‘기의 작용’인가 하는 직선적 질의를 이이에게 던진 것이고, 이이는 이에 기에 의한 천도의 가변을 언급한 것이다. 그래서 ‘형세’가 곧 ‘하늘’이라는 또 하나의 놀랍고 새로운 理가 유추된 것이다. 불변하는 진리인 천도는 하늘에만 있지 않았다. 악인이 천벌을 받음이 天이고 理이지만, 악인에게도 기가 작용하면 천벌 받지 않음이 이이고 천인 것이다. 이이에게 “천벌 받을 악인이 천수를 다 살고”, “선을 하는 자는 경계하고 악을 하는 자는 서로 권장하는 시대”의 충격적인 목격이 그의 철학을 형성시킨 시대적 요인이다. 이러한 바탕이 주기론을 형성시키는 핵심적 요소이며, 한편으로는 전통적 주리론으로 부터 이탈하려는 본질에 속한다. 요컨대 천도의 불변은 이황의 理이고 천도의 가변이 이이의 理인 것이다.

위의 글을 다시 도표화 해보면,

<도표 5>

主理論

主氣論

德

｜

理

｜

天

力

｜…… 氣의 작용

理

｜

天

이러한 이이의 천도 이론은 ‘사단칠정론’, ‘인심도심론’등 그의 다른 개념의 이론에도 그대로 연계되고 있다. 이이에 의하면 악은 이미 사단이 칠정에 포괄되어 있어서, 선 .덕과 같은 개념만이 理를 가지지 않는다. 힘(力), 세(勢)에도 존재하여 악이 꼭 징계 받아야 할 조건이 없다. 즉 악이 천벌을 받아야 할 불변의 이를 상정하기 어렵다. 이이는 또한 ‘인심이 동의하는 것이 공론이고 국시’라고 했기 때문에, 이황처럼 도심과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인심은 인욕의 성격을 지닌 악으로 규정된 개념이 아니라 선이 내재된 개념이다. 그래서 이이는 ‘기품에 선악이 있는 까닭에 이에도 선악이 있다’¹⁴⁷⁾라고 했다.

따라서 이이에게 덕과 힘, 도심과 인심, 이와 기 등의 개념은 상호 투쟁적인 관계로 대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개념들이 바로 선악의 혼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혼륜 상태는 칠정이 사단을 포괄하듯이 힘, 인심, 기 등이 덕, 도심, 이 등을 포괄하면서 묘합된 하나의 구조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이에게 이러한 개념들이 ‘묘합된 하나의 구조로 존재한다’는 이론의 전개는, 이황이 ‘분속된 상태의 둘로 존재한다’는 이론과 대립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朋黨이 존재하는 근원적인 당위를 인간심성의 차원에서 검토한 결과이다.

또한 위의 인용문의 원문 끝에는 細筆의 주석으로 “이 단락은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연구하여) 무엇인가 얻음이 있다면, 비로소 이기불상리의 妙를 볼 수 있을 것이다”¹⁴⁸⁾하여 이 부문의 진술이 내재하는 중요성을 거듭 지적해두고 있다. 즉 ‘이기불상리의 묘’란 곧 ‘이기지묘’를 말하는 것이고, 그 ‘무엇인가의 얻음’은 곧 이이의 이기에 대한 이론이 당시의 사화정국과 무관하지 않음을 그대로 밝혀 놓은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이의 철학과 사상이 시국의 전개상황과 유리된 것이 아님을 증언하는 대문이기도 하다.

결국 이이의 이기묘합론은 이황의 이기분속론과 마찬가지로 시국의 전개상황과 긴장된 대결국면에서 형상화한 이론이다. 그 이론은 철저하게 체험세계에 대한 인식논리와 대응구조로 짜여져 있다. 그런데 이들 이론은 다같이 악의 집단에 대한 대결. 극복의 논리이면서도 방법적인 측면에서 예각적으로 부딛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이의 시대와 이황의 시대가 동시대 속에서도 ‘사화진행기’와 ‘사화종식기’의 시차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정은 이이가 천벌 받을 악인으로 지목한 인물이 자신을 위해할 수 없는 역사 속의 정리된 인물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황의 시대는 그럴 수 없었다. 악인이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3. 分裂政局의 推移와 理氣妙合論

성리학은 세계를 말하고 인간을 말한다. 세계는 기로도 설명되고, 이로도 설명되며, 또는 이기로도 설명된다. 서경덕은 기의 세계를 믿었으며, 이황은 이에 이한 세계를 염원했고, 이이는 이기를 아우르는 세계를 제시했다. 세계관이 다르다 함은 ‘이념(理念)’이 다르다는 뜻이다. 이념이란 ‘이치(理)’가 있다는 저마다의 ‘생각(念)’이다. 이치가 있다는 저마다의 생각이 그야말로 자신의 신념으로 굳어지면 사상이 되고, 그 사상이 논리를 갖추면 철학이 된다.

‘군호의 시대’에 ‘일양의 위치’의 고독 속에서도 자신의 언어를 토로한 이이는 분명 서경덕을 따를 수 없었고, 그렇다고 이황을 맹신할 수도 없었다. 사태는 기성의 이론과 사고체계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절박했다. 이이시대는 이이시대의 정국이 전개되었고,‘이이시대의 정국’은 분명 이황 시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기존의 논리와 처방으로는 치유될 수 없었다. 이이의 철학과 사상의 형성은 시국의 전개양상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정치적 현상으로 이이시대는 ‘사화의 종식’과 ‘당쟁의 발발’을 연속적으로 목격, 체험하는 기간이 된다. 이이에게 전자는 ‘충격의 목격’이었고, 후자는 ‘곤혹의 과정’이었다. 사화가 이념투쟁이라면, 당쟁은 노선투쟁의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사화가 대립’이라면 ‘당쟁은 분열’이었다. 대립이 종식되었을 때, 모든 모순도 함께 없어져야 했지만 사태는 전연 그렇지 못했다. 아니 사태의 본질은 모순이 재발한 것만이 아니라, 시국의 현실이 전일에 준동했던 훈구집단의 시대보다 더욱 악화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이의 고뇌는 여기서부터 싹이 트는 것이며, 그의 사상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함께 형상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이의 철학적 시각은 ‘士禍’ 다음에 이어지는 사림집단의 분열인 ‘黨爭’의 시대적 과제의 대안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이황과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이이에게 이기의 개념들이 ‘묘합된 하나의 구조로 존재한다’는 선언의 보다 중요한 원인은 선의 집단인 사림집단이 또 다시 선. 악으로 분열되는 눈앞의 현실 때문이다. 사림집단의 분열은 이이가 예견하지 못한 또 하나의 현실로써 묘합해야 하는 필연의 당위를 가진다. 이이의 철학은 흔히 그의 치적의 하나로 거론되는 ‘당쟁의 조정’이 바로 이러한 바탕에서 제기된 것이다. ¹⁴⁹⁾

훈구집단의 소멸과 더불어 전개된 선조 시대의 정국은 사림집단의 바로 분열해버렸고, 그 자신이 분열정국에 휘말렸던 것이다. 분열된 사림은 격렬한 이론투쟁을 하였다. 그 이론은 이른바 ‘공론公論’이었다. 공론은 ‘다수의 올바른 의견’의 뜻을 지녔으며, 한편으로는 선비들의 衆論이고 또한 士論이었다. 대립되는 집단은 서로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논리가 공론이라고 하며, 상대 집단의 논리를 ‘사의私議’로 규정하였다. 공론을 지닌 집단이 곧 군자의 당이 되었다. 사림의 공론에 대한 집착은 사실 전일 사화정국이 전개될 때 훈구세력에 의해 사림이나 재야의 논의가 모두 外議,혹은 浮議로 규정되며 극심하게 배척받았다.

분열의 초기 그러니까, 재상과 낭관의 대립이 시작된 이른바 ‘노.소당’의 분열 때 이이가 이준경의 유소를 비판하면서 “이는 공론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며, 그 최대의 이유를 공론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론에 의한 이론투쟁에서 正論의 성격을 지닌 公議. 淸議. 淸論등과 邪論인 浮議. 外議. 私論등의 유사한 단어가 다양하게 등장했다. 초기 이이는 분열과 대립의 중심고리에 위치하고 있었다.¹⁵⁰⁾ 그러면서도 그가 두 집단에 비교적 무겁게 인식된 것은 바로 이이 자신이 공론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론이 그의 철학사상의 골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인심이 동의하는 바를 공론이라고 하고, 그 공론을 국시라고 한다. 國

是는 모두가 모의하지 않더라도 다같이 수긍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

늘날 국시라는 것은 이와 달리 논자는 스스로 옳다고 하나 따르지 않

는 자도 있다.”¹⁵¹⁾

‘다같이 수긍하는 것’은 공론이고, ‘논자만 옳다고 하는 것’은 사의이다. 공론과 사의는 정치집단의 계속되는 이합, 집산에서 집단의 논리와 배척의 논리가 된다. 또한 공론과 사의의 격렬한 이론투쟁은 정권의 주도권 쟁탈과 맞물려 있음은 물론이다. 이런 와중에서 이이 자신의 정치적 위상은 은연중 대립된 집단의 한 가운데서 이론의 날카로운 양날을 한 손으로 움켜지는 형국이었다. 이이는 이러한 정국을 정면에서 맞설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다같이 수긍하는 공론으로 국면을 타개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공론은 인심이 동의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이는 여기서 분열되는 정쟁의 관행과 인심의 속성을 주목하고, 정쟁과 인심의 추이를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립’과 ‘분열’, 이것은 이이가 세계에 부딛치서 계속해서 목격한 숙명적인 명제였다. 그는 이를 ‘붕당(朋黨)’이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인성의 본질적 문제로 인식하며 보다 포괄적으로 사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공론으로 피력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인들 붕당이 없었겠느냐. 오직 군자, 소인을 가릴 뿐이다.”¹⁵²⁾

위의 발언은 이이의 철학사상과 무관한 듯 하나 사실은 이이철학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이미 천벌 받을 악인이 천수를 다 사는 현실을 차분히 인정했듯이, 군자와 더불어 소인은 언제든지 존재하는 것이다.

서경덕은 존재의 관점에서 기의 작용을 주목했지만, 이황은 가치의 관점에서 이를 중요시 했다. 이기이론의 두 원칙인 이기불상잡과 이기불상리에서 이황. 이이는 기본적으로 두 원칙을 수용했다. 그러나 수용하는 입장과 시각의 차이에서 이황은 가치의 원리인 이의 세계를 염원했기 때문에 이원론적 주리론을 수립했고, 이이는 존재의 원리를 주목하여 이원론적 주기론을 수립했다.

이황의 이원론적 주리론은 ‘사화를 극복하는 논리’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이의 이원론적 주기론은 ‘당쟁을 극복하는 논리’의 성격을 내재하고 있다. 전자는 대결의 논리이며, 후자는 처방의 이론으로 그 내용적 특성을 지닌다. 이황은 존재의 원리에서 이기분속을 주장하며, 가치의 원리에서 이선기악의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이이의 관점은 존재의 원리와 가치의 원리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묘합 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기묘합을 주장했다. 이이는 주리론자들의 사상이 명분론적 이우위론에만 머물러 사태를 해결하는데는 부족한 이론으로 보았다. 부정할 수 없이 엄연히 존재하는 기의 생성. 변화의 현실적 실상을 간파하지 않고는 국면전환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이의 이러한 철학은 당시의 정치적 현안을 처리하는 소신과도 일치한다. 즉 분열을 촉발한 심의겸, 김효원을 자신의 적극적인 중재에 따라 모두 외직으로 보내는 妙의 처방에 그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이에게 기가 강조됨은 현실을 보다 직시하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이가 서경덕. 이황을 동시에 비판함은 이러한 연유에 기인하는 것이다.

붕당에 대한 이이의 이러한 사상은 붕당론의 이론을 보다 정립하는 차원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소견을 피력한다.

“자고로 붕당을 논하는 것은 구양수의 이론의 같은 것이 없고, 주자의 ‘答

留正之書‘ 보다 절실한 것이 없다. 전하께서 시험삼아 구해보면 군자. 소인

의 정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¹⁵³⁾

이이의 이러한 견해는 전일의 대립정국을 거치면서 분열정국에 이르는 사이 ‘붕당’에 대한 새로운 발상과 이론의 정립을 도모하는 논리이다. 이이의 이런 논리는 결국 선조로부터 “나도 주자의 설을 따라 李. 渾의 당에 들어가길 원하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너희들도 나를 이.혼의 당으로 생각해도 될 것이다”¹⁵⁴⁾라는 소회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전일 부정적으로 거론되던 붕당이 이제는 왕으로부터도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엄청난 변모가 나타난 것이다. 분열정국의 극심한 사태를 이이가 이런 논리로 수습(妙)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이는 동인의 “모호하게 양편을 다 옳다하여 시비를 명백히 하지 않으니 천하에 어찌 다 옳고 다 그른 일이 있겠습니까” 또는 “시비는 명백히 하지 않을 수 없고 처치는 화평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공격을 받아 “이런 말들은 그럴 듯 하기는 하나 실은 요령이 없는 것입니다”¹⁵⁵⁾하여, ‘요령 없는 운영의 묘’에 대한 결여를 지적하고 있다.

군자. 소인의 분류는 곧 가치의 원리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인들 붕당이 없겠느냐’의 표현은 존재의 원리를 주목하는 발언이다. 이원론적 주기론은 존재의 원리에서 이기는 일물이기에 주기론이 강조되는 것이지만, 가치의 원리에서 이기는 이물이기에 이원론이 성립된다. 이기는 일물이라는 주기론이 강조되면 기 자체의 음양적 운동법칙에만 머물러 모순의 선악적 판단과 해결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선과 악은 각각 독자적 영역을 가지기 때문에 현상학적 이해로만 그친다.

따라서 이이의 관점은 붕당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분열된 두 집단의 성격을 선악의 가치적 차원에서 변별하여 그 성격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선조초에 나타나는 정치적 현상인 사림집단의 노. 소 분열과, 이 후 이어지는 동. 서의 대립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이이는 물론 당쟁을 중재하는 입자에서 노력했지만, 그 자신은 분열과 대립의 중심고리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는 그야말로 누구든지 승복할 수 있는 공론을 일으켜야 했다.¹⁵⁶⁾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위상과 극복의 논리가 그의 철학사상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¹⁵⁷⁾

그리나 이러한 이론의 형성은 어디까지나 훈구집단을 제압한 ‘사림집단의 완전한 국정장악’이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임금에게 개진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안은 매우 많습니다만 가장 긴급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이 듣기로는 예로부터 국가가 믿고 유지하는 것은 오직 士林이라

합니다. 사림은 나라의 元氣입니다.....(그래서)사림이 패망하면 그 나라

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난날의 역사와 문헌이 증명하는 것 입니

다.”¹⁵⁸⁾

‘사림이 패망하면 나라가 망함’은 이황의 ‘국가위기와 사림의 안위’를 동시에 지적함과 일치된 견해이다. 이들의 이러한 시각은-사림집단의 당파적 이익보다는-국가존망의 역사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래서 이이는 비록 지금 사림집단이 분열하고 있지만 그 뿌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대립하고 배척해야할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당시의 사림집단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림이 성하고 화하면 나라는 흥하고, 사림이 다투고 분열하면 나라

는 어지러위지고, 사림이 망하거나 없어지면 나라는 망한다. 동한. 당.

송이 그러했다. 그런데 지금 사림은 화합한다고 할 수 있는가....심의

겸을 許하는 자는 선배사림이고 김효원을 허하는 자는 후배 사림일

뿐이다. 선후배가 모두 사림이다.”¹⁵⁹⁾

동서분열의 장본인은 모두 사림집단에 소속된 선후배일 뿐이다. 사림집단은 그 분열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감당할 세력이기에 화합해야 하는 존재이다. 화합의 정도에 따라 興.亂.亡이 결정된다. 동한과 당. 송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와 기가 이물로 분속될 수 없으며 일물로 묘합되어야 하는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기는 어디까지나 결시이물이 아니라 결시일물로 화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부언하고 있다.

“沈. 金이 모두 사림으로 黑白, 邪正의 구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참

으로 증오하는 점이 있어서 꼭 서로 해치려는 것도 아니다.“¹⁶⁰⁾

흑과 백, 사와 정의 혼륜은 앞 시대의 선배들의 최대 현안이지만, 이이의 시대에 대립하는 당사자들은 그야말로 ‘邪正이 相雜’한 전 시대의 정국이 아니다. 이이의 정국에 대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전시대의 邪의 집단, 혹은 악의 집단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견해의 차이로 충돌하는 모두가 곧 정의 집단인 것이다. 그런데 그 정의 집단이 지금 다시 분열하고 있는 것이다.

‘화합’은 이이가 이루어야 할 최대의 과제이지만, 묘하게도 상태는 ‘하나이면서 둘(一而二)’이기 때문에 분열의 속성을 지니다. 그러나 그 분열은 또한 ‘둘이면서 하나(二而一)’이기 때문에 화합되어야 하는 숙명의 과제를 내재하고 있다. 존재의 원리가 강조됨은 분열을 극복하는 수단이며, 가치의 원리가 강조됨은 공론을 부각시키는 수단이 된다. ‘분열을 극복’하면서 ‘공론을 부각’시키는 노력이 이이사상의 주요한 골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이사상은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두 집단의 존재원리를 인정하고, 다시 그 존재의의를 가치적 차원에서 규명하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 규명논리가 바로 그의 이기이론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이는 사림집단을 바로 선의 집단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사림집단이 역사를 감당해야 할 세력이기에 선의 집단으로 인정했다. 그렇지만 사림집단이 선의 집단으로 성격지위 지려면 ‘화합’이라는 전제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집단은 화합만이 목표가 아니라, 바로 백성의 생계 즉, 민생을 추스릴 수 있어야 진정한 선의 집단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미 천벌 받을 악인들이 사라진 다음에 與의 입장에서 분열정국을 수습해야할 이이에게 이기를 분속적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논리는 수용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런 정국의 급변이 ‘群虎속에서 속박 받는 一羊’으로서의 처지를 극복하는 신념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대안이야말로 이미 목격했고, 또 자기시대에 미증유의 사태로 발발할 수 있는, 저 사마천이 지적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집단고통’을 구제할 수 있는 철학이 바로 이이의 하늘인 것이다.

이이의 이기묘합론은 선조 초기 사림집단의 분열인 당쟁의 이론투쟁의 구도와 분리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합리적 설득력을 지닐 수 없다.

4. 理氣妙合論의 時代的性格

이황의 이기분속론이 ‘도학’이라는 명제아래 야만의 소멸과 문명의 부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이이의 이기묘합론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붕당을 극복하는 차원의 이론에 그치는 것인가? 이이는 자기시대의 역사현장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책무를 무엇이라 생각했고, 그의 사상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는가?

이이가 주목하고 있는 최대의 관심사는 ‘민생’에 있고, 이를 위해 개혁을 주창했다. 이 무렵 민생의 문제는 농민의 이농으로 인한 유민의 군도화 현상으로,16세기의 최대의 사회문제로 부각되어 있었다.¹⁶¹⁾ 당시의 여러 사료는 이를 증언하고 있으며, 이이 또한 “약자는 塡于溝壑하고 강자는 起爲盜賊”¹⁶²⁾이라 했으며, 농촌의 광범위한 이농현상을 목격하고 한마디로 ‘十室九空’이라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직선적 논의인 ‘盜賊策’이라는 글을 쓰기까지 했다. 이러한 민생의 문제는 당쟁의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현안으로, 개혁의 절대적 당위성을 띄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신이 개혁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오직 민생의 곤란을 구제하기

위함입니다.”¹⁶³⁾

이이의 민생을 위한 개혁이론은 매우 정밀하다. 그는 우선 정치의 시대적 역할을 중요시 했다.

“시무는 어느 때나 일정한 것이 아니고 각각 마땅한 바가 있다.

그 대체를 요약하면 창업, 수성, 경장 세가지 일뿐이다. 수성할

때를 당하여 경장에 힘쓴다면 이것은 병도 없는데 약을 먹는

것과 같아서 도리어 병이 생기고, 경장해야 할 때 수성에만

힘쓴다면 이것 또한 병에 걸려있는데도 약을 물리치고 누위

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¹⁶⁴⁾

위의 글에서 창업, 수성, 경장을 오늘의 용어로 바꾼다면 창조와 계승과 개혁의 의미로 설명될 거이다. 이이는 자신의 이러한 정치관에 근거하여 자신이 처한 시대를 부조리와 부정이 누적되어 시폐가 고질화된 경장의 시기로 인식했다. 그의 이러한 개혁사상은 근본적으로 유가적 이상국가의 건설에 기초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구체적으로 그의 개혁적인 발언 몇 가지를 떠올려 보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¹⁶⁵⁾

“지도자가 덕을 쌓음이 정치의 근본이다.”¹⁶⁶⁾

“예로부터 훌륭한 지도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국가를 바르게 하였다.”¹⁶⁷⁾

이런 발언들은 정치의 요체를 ‘正治’로 보고 기본적으로 민본주의와 휴머니즘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이는 “국가의 흥망이 한 사람의 지도자에 달려있다”고 단언하면서, 모든 개혁의 방향을 지도자, 즉 임금의 확고한 의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금이 의지를 확고하게 정립하여 정치의 실질적인 효력을 추구하고,

기강을 바로 잡음으로써 내각을 가지런히 하고, 검약을 숭상함으로써

나라경제를 여유 있게 하고, 언로를 넓힘으로써 여러 개책을 수립하고,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공직을 바르게 하고, 폐단이 있는 악법을 개혁

함으로서 민생을 구제해야 합니다.”¹⁶⁸⁾

위의 글은 ‘시무구사’ 중의 한 대문으로, 지도자의 확고한 정치의지와 기강확립, 지도층 검약, 경제안정, 언로개방, 인제등용, 악법개페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이이의 개혁적 의지는 48세의 몰하는 그날까지 ‘육조계’, ‘진시사소’ 등의 건의문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이의 이러한 시국에 대한 개혁적 대안은 이미 ‘동호문답’을 통해 종합적으로 나타낸바 있다. 동호문답의 목차는 그의 개혁의 주요한 현안이 무었인가를 시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가.論君道

나.論臣道

다.論君臣相得之道

라.論東方道學不行

마.論我朝古道不復

바.論當今之時弊

사.論務實爲修己之要

아.論安民之術,論敎人之術

자.論正名爲治道之本.

이이의 이러한 총체적 개혁안은 이미 전제한 것처럼, 근본적으로 민생의 문제에 귀결되고 있다. 이이는 경험과 현실을 무었 보다 중요시했으므로 모든 현상의 가변을 인정한다. 그래서 절대적 불변의 개념인 천도 마저 가변적일 수 있다는 논리를 피력했다. 하늘의 가변은 주로 기. 세. 힘의 요소들이 작용한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이를 현실론자로 보는 견해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¹⁶⁹⁾ 악이 선을 이기는 현실은 우연적인 요소로, 역사발전에 아무런 의미를 줄 수 없다는 인식이 유가의 천리의식이며 정치관이다. 또한 勢가 작용하면 理가 가변적일 수 있다는 특수한 이를 이황 역시 인정한 바 있다.¹⁷⁰⁾ 그러나 세에 의한 가변적인 이를 天의 개념에까지 소급함은 엄청난 파격이며, 철저한 현실론의 성격을 지닌다. 이이는 이렇게 주장한다.

“도에 있어서 병립할 수 없는 것이 시비(是非)이며, 일에 겸비할 수

없는 것이 이해(利害)이다. 그러나 이해가 급하다고 시비를 고려하

지 않는다면 의리에 어긋나며, 시비만 생각하고 이해를 살피지 않는

다면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權)에 어긋난다. 변화의 대처에는 일정

한 기준이 없으며, 일에 대처하는 방법에도 불변의 항구적 제도는

없다. 오직 중도(得中)의 마땅함(合宜)이 있을 뿐이다.¹⁷¹⁾

위의 발언은 이이 현실론의 내용적 특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문이다. ‘시비도 고려하고 이해도 살피는 중도의 마땅함’이 그가 말하는 이기묘합론의 요체이다. 원칙과 현실을 한꺼번에 대처하는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래서 이이는 ‘변화의 대응에는 기준이 없으며,원칙과 방법에도 불변의 항구적 제도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에게 이런 사상이 있기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옛부터 성현은 때를 따라 변통하는 것입니다. 天運으로 말하더라도

세월이 오래되면 歷數가 반드시 틀리므로 시대마다 아는 사람이

나와 개정해야 합니다. 만일 시대를 따라 고치지 않는다면 天象이

어긋나고 四時가 순서를 바꿀 것입니다.”¹⁷²⁾

“시대마다 천운이 다르므로 아는 사람이 나와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천리가 가변적일 수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더욱 구체화하는 논리이다. 이이의 이러한 사유체계는 원칙보다는 현실이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이이는 “不變하는 것은 天地의 常經이나 變通하는 것은 古今의 通誼”¹⁷³⁾라고 하며, ‘隨時變通’에 따르는 제도에 있어서도 “각 시대의 상황인식에 따라 고처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히는 것이다.

“이른바 時誼라고 하는 것은 ‘수시변통하여 법을 만들고 백성을

구함‘을 말함이다. 정자가 易을 말하여 ‘때를 알고 세를 인식(知

時識勢)함’이 역을 배우는 큰 방도라고 하고, 또한 말하기를 ‘때

를 따라 變易함이 곧 常道‘라고 하였다.“¹⁷⁴⁾

“때를 알고 세를 인식함(知時識勢)과, 때를 따라 변역함이 상도(隨時變易乃常道)”라는 표현은 이이의 철져한 현실주의적 인식론에 근거하는 발언이다. 勢는 이미 德을 능가하는 하나의 常道의 흐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이는 정치의 요체에도 이 ‘지시(知時)’의 중요성을 바로 주장한다.

“신이 생각하건데 정치에 귀한 것은 知時이며, 일은 그 實效를 중요

시 해야한다. 정치를 하면서 시의를 알지 못하고 일을 당해서 실효

를 힘쓰지 않는다면 비록 성인과 현인이 서로 만났다 하더라도 그

정치의 효과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¹⁷⁵⁾

이런 표현은 또한 理의 개념에 있어서도 ‘본연의 이’ 에 대립되는 ‘유행의 이’가 있다고 하면서 ,“유행의 이를 버리고 별도의 본연의 이를 구함은 진실로 옳지 않다.¹⁷⁶⁾”라고 하여 그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이에게 유행의 이가 본연의 이에 우선한다는-절대시에 가까운- 논리는 그를 주기론자로 지목하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의 형상화는 “천벌 받아 마땅한 자가 천수를 살기에”, 자기시대는 “이미 어린아이가 물에 빠진지 오래된 시대¹⁷⁷⁾”이며, “선을 하는 자는 경계하고 악을 하는 자는 서로 권장함이 만연된 시대”라는 시국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의 인식은 발호 했던 훈구집단의 준동 여파와 이어서 전개된 사림집단의 분열에서 더욱 악화된 시국의 동향에서 총체적 진단과 극복의 차원에서 공론이라는 설명으로 나타났다.

이이에게 이런 사상의 형성 역시 선의 세력인 사림집단의 위축과 이어서 전개된 사림집단의 분열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그 대안으로써 형상화되었다. 그렇게 형성된 이이의 철학과 사상은 이후 전개되는 공론을 바탕으로 하는 붕당정치의 정립에 가장 정체 있는 토대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이의 의한 사림세력들의 공론에 의한 붕당정치의 토대는 그의 사후 추종자들이 ‘서인’의 존재를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들이 ‘公論之人’이라하여 이이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¹⁷⁸⁾

그러면 이이에게 진정한 理와 하늘은 무엇인가? 그것이 곧 민생이었던 것이다.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생각하고, 백성은 생계를 하늘로 생각하니,

백성이 생계를 잃는다면 국가가 (하늘을 잃어버림이니) 의지할

곳이 없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理다.”¹⁷⁹⁾

그런데 여기서 민생이 곧 理라는 주장은 이미 거론한 힘. 세에 의한 ‘현실의 기’ 논리와 더불어, 이기개념의 정치, 사회적 성격을 표방하는 논리가 되고 있다. 민생과 현실은 어느 시대이든 바로 시국의 최대 잦대이며 목표이다. 두 가지는 동전의 표리 같아서 어느 것도 소홀할 수 없다. 그래서 지도자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운영의 묘를 이론적으로 모색하며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민생의 적폐와 현실정치의 심각한 괴리현상을 아울러 해결하는 보다 합리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바로 ‘이기묘합론’이 그 논리이고 철학이다. 이이에게 이기묘합론은 이러한 시국의 전개상황에서 형상화한 이론이다.

“하늘이 곧 민생이고 민생이 곧 불변의 이”라는 인식은 이이사상과 철학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때문에 그의 사상에서 도출되는 이기묘합론의 성격, 결시일물의 일물, 합간의 의의는 모두 현실을 주목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론의 형성에는 이황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훈구집단을 제압한 ‘사림세력의 완전한 국정장악’이 전제되어 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의 현안은 매우 많습니다만 가장 긴급한 것을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신이 듣기로는 예로부터 국가가 믿고 유지하는 것

은 오직 ‘士林’이라 합니다. 사림은 나라의 원기입니다....(그래서)

사림이 패망하면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난날의 역

사와 문헌이 증명하는 것입니다.”¹⁸⁰⁾

16세기, 그러니까 이이가 살았던 시대는 완강한 주리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시대를 남다른 안목과 자각으로 고군분투하며 주기의 변화논리를 확립하고, 이제까지 학문일반으로 인식되었던 성리의 세계를 정치일반, 사회일반으로 확산시키면서 시대모순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삶을 우리는 이이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이이는 근본적으로 자기시대가 “천운을 개정할 이치를 아는 사람이 나와서 변화를 도모할 시대”라고 믿었으며, 자신이 그것을 자임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이의 출현은 이이시대의 부여된 삶의 조건을 염두에 둘 때, 그의 다양한 활약은 역사의 진폭을 지니는 진동성의 진원지로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다음의 글은 그가 올린 마지막 상소로써 개혁에 대한 의지와 나라에 대한 충정이 얼마나 간절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문이다.

“만약 전하께서 신의 계책을 믿으시고 굳게 지켜서 시행한지

3년이 지나도 민생이 불안하고 나라의 재정이 부족하여 양병

이 여의치 않다면 비록 신에게 부월(斧鉞)의 형벌을 내리더라

도 신은 실로 달게 받겠습니다.“¹⁸¹⁾

근본적으로 이이의 철학과 사상은 원칙과 변화, 개혁과 조화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포용력을 가지면서 그 궁극적 지향점을 “진실로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면 다 행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다 행할 수 없다.”¹⁸²⁾고 하여 나라와 민족의 안녕과 행복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그이 사상을 이후 일군의 실학파 지식인들의 사상과 연계시켜 이해하려는 시도는 우연이 아니다.¹⁸³⁾

五.結論

이제까지의 논의를 추출하여 그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해본다.

역사상 명멸했던 모든 철학과 사상은 그 시대의 시대적 상황의 산물로 본다. 시대상황이 외면된 공허한 관념론이 지식인에 공감되어 확산된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특히 전기)에 있어서 성리학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지배이념이 되었다. 이를 부정하고 조선시대를 이해함은 그야말로 공리공론이 아닐 수 없다.

서경덕, 이황, 이이가 살았던 16세기는 최초의 이념시대의 등장으로 본다. 이념시대의 등장은 시국상황의 역사성에 기인함을 전제한다. 성리학이 세삼스럽게 ‘道學’이라고 명명됨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의 눈에는 자기시대의 역사적 상황이 ‘위기의 시대’라고 인식했다. 위기는 ‘사상의 위기’와 ‘정국의 위기’와 ‘민생의 위기’로 요약된다. 위기의 표현을 이황은 ‘말세’로, 이이는 ‘천벌 받을 악인이 천수를 다 사는 시대’로 표현했다. 이러한 인식은 범칭 ‘훈구’로 표현되는 집권세력의 파행적 정국운영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서경덕, 이황, 이이 등은 성리학적 도적주의의 논거에 기초하여 이러한 역사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서경덕은 조식처럼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들을 양성함으로서 시국에 맞섰다. 서경덕은 특히 학문을 성취함으로서 극복하려했고, 또 극복한 것으로 자부하였다. 그는 자신의 학문이 ‘千聖이 이루지 못한 점을 깨달았다’고 했으며, 자신을 지목하여 ‘동방에 성인이 태어났음을 알게 하라’고 했다. 이런 표현은 그 자신의 신분적 한계와 우리 나라의 중국에 대한 문명의 열세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함축되어 있다.¹⁸⁴⁾

그의 사상이 ‘생성하고 생성하며 변화하고 변화하는’가변의 현실을 주목하여 이른 바 ‘기의 철학’을 주장함은 훈구, 중국에 의해 고착화된 불변의 세계질서에 가변의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새로운 질서의 태동에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군과 신, 군자와 소인, 중국과 오랑캐 등의 결정논리를 음양의 변화원리에서 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 그 이론을 그는 ‘음양의 분’이라고 했으며, 또한 ‘이의 필연’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사물의 법칙’이며 ‘성의 본질’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경덕의 사상과 철학은 아직 정치현실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의 논리로 밀착되어 있지 않다. 그의 학설이 대체로 학문일반의 영역에서 관념적인, 사변적인 논리로 전개되어 있음은, 그가 정치현실에서 자의든 타의든 배제되어 있는 재야인사로의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사정은 생전에 그의 문하에 드나들던 많은 제자들이 사후 대부분 이황, 이이 계열로 흡수되거나 초야의 은사로 머물은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그의 사상이 사후 곧 이단으로 지목됨은 시국의 현안과 바로 연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황의 정치적 환경은 서경덕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그는 서경덕과 달리 관직의 진출에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이미 자신이 체제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의 정치적 위상은 은연중-악의 집단으로 간주된-부정한 정치세력과 대립하고 있는 또 다른 정치세력의 중핵에 위치했으므로, 자신이 소속된 정치세력의 이익, 즉 권력다툼의 궁극적 승리를 시국의 중대한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황은 자신이 중핵이 된 사림집단이야말로 시국의 위기를 타개하고 문명국을 이룩할 유일한 대체세력으로 인식했다. 그는 사림집단이 훈구집단을 몰아내고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는 당위적 확신을 가지고 있엇다. 그 날을 위해 그는 명분과 논리 그리고 후진의 양성과 교육의 확충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사림집단이 궁극적 집권을 하는데 뚜렷한 기여를 하였다.

이황은 신분과 처지가 달랐기에, 세계에 대응하는 사고의 틀이 전연 다른 각도에서 형상화 되었다. 이황은 어디까지나 체제 안에서의 개조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서경덕의 학설이 세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이론의 바탕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서경덕을 존경하고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의 단호한 조치는 이러한 가능성의 싹을 조기에 진압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서경덕의 학설이 “전혀 정밀하지 못하여 병통이 없는 곳이 없으며, 질박하고 고상한 것 같으나 사실은 허황하고 복잡하다”고 까지 했다.

이황의 사상은 체험세계에 대한 인식논리와 대응구조로 짜여있다. 그런 만큼 철져하게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정국의 추이를 훈신,척신으로 구성된 집권세력과 이에 맞서는 유생,사림의 재야세력의 대결구도로 이해했다. 전자에서 집권세력은 역사에서 한시적 득세의 집단으로 필연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모순의 악의 집단이었다. 그런데 정국의 추이는 이들 악의 집단에 의해 선의 집단은 계속해서 유린되고 백성들의 삶은 황패화되어 우리나라가 거의 야만국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행 전반에 걸쳐 옴몸으로 대결했다. 그러한 용기는 그의 역사적 안목,즉 천도를 어기는 악의 무리는 언젠가는 망한다는 천리의식에 비롯되었다. 그의 주리론적 세계관은 이러한 시국에서 형상화 되었다. 그래서 그는 논리전개의 무리를 무릅쓰고 理發,理動,理到 등의 이론을 계속해서 제기했다.

이황은 세계의 모든 현상을 이와 기로 이해하기 때문에, 시국에 대한 인식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이황은 이와 기가 공존하면서도 투쟁하는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또 이,기의 보편적 상관관계의 설명인 불상리 ,불상잡의 이론에서 불상잡을 유난히 강조하면서, ‘이와 기는 결코 섞일 수 없는 결시이물(決是二物)’이기에 분속되어 있다고 했다. ‘이기분속론’은 이황의 이기이론에 대한 핵심적 주장이다. 그리고 그 주장은 당시 대결정국의 향배와 깊은 연관을 지닌다.

이황은 당시 파행적 정국으 모순을 ‘賢愚가 混淆’하며, 혹은 ‘邪正이 相雜’되어 있어서 그런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진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혼효’는 ‘分屬’시키고,‘상잡’됨은 ‘不相雜’으로 정돈되어야만 했다. 이황의 ‘이기불상잡’,‘이기분속론’은 대립되는 두 집단의 공존을 모순된 집단들의 공존논리로 이론화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분속의 성격은 이의 논리가 기의 논리를 명분과 이치에서 앞도적 우위에 위치한다. 이황의 이기불상잡과 이기분속론은 사림세력과 훈구세력의 존재논리이며 구분논리이며 가치논리이다. 이황이 언급한 ‘이선기악’,‘이귀기천’,‘이존기비’의 논리는 바로 대립된는 두 집단의 정치, 사회적 성격을 규정하는 발언이며,그 연장선에 ‘인심도심설’, ‘사단칠정론’ 등의 여타 보조논리가 계속해서 도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 집단인 사림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괴멸되는 형국이 전개되기에,그는 관직의 사퇴와 임명거부,천도의 불변논리 등의 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끊임없이 동원하였다.끝없는 사퇴와 임명거부,그리고 연이은 사직서의 제출은 임금의 마음을 돌려 정국을 단번에 전환시키려는 의지의 소산이자 소망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림세력에 대한 수 많은 편지는 자신의 사상과 의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인식하는 동시에,극도의 좌절감과 열세에 처해있는 사림집단 개개인에게 보내는-격려를 동반한-이론과 행동의 지침서인 셈이다.그는 자신의 역사 시간표를 지켜보면서 내일을 기약했고 꾸준히 실천에 옮긴 것이다. 선조정국이 전개되었을 때 이황의 문인과 영향권 인사들이 수권집단에 중핵이 된 사실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이황은 천도가 무너지는 역사적 위기를 구하고자 ‘도학’을 부르짖었다. 도학은 시대를 구제할 유일한 학문으로 인식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악의 집단에 의해 야만국으로 전락을 극도로 우려했다. 중국이 문명국으로 존재함은 바로 ‘도학’이라는 학문이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 역시 이제까지 도학으로서 문명국의 위신과 체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전개되는 시국의 정황은 야만국으로 보아 손색이 없을 만큼 위기로 치달았다. 그는 자신의 역사적 책무를 우리나라를 문명구으로 전환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악의 집단의 소멸에 결정적 구실을 했음은 문론이고,우리나라를 ‘이성이 지배하는 진리의 나라’로 격상시키는데 지데한 기여를 하였다. 이황에게 ‘도학’은 다름아닌 문명국의 학문이다. 따라서 이황의 이기이론에서 강조되는 不相雜과 理氣分屬은 이러한 역사적 소명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이이의 철학과 사상은 이이시대의 정치,사회적 특성을 반영한다. 정치적 현상으로 이이시대는 ‘사화의 종식’과 ‘당쟁의 발발’을 연속적으로 목격, 체험하는 매우 예민하고 과도기적인 기간이 된다. 사화가 대립이라면 당쟁은 분열이었다. 사화가 이념투쟁이라면 당쟁은 노선투쟁이었다. 대립이 종식되었을 때 모든 모순도 함깨 소멸되어야 하지만 사태는 전연 그렇지 않았다. 사태는 훈구집단이 준동하던 시절보다 더욱 악화된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선의 집단이며 수권집단이라 믿었던 사림집단이 또다시 선악의 가치적 차원에서 분열하여 전일에 대치했던 집단들처럼 군자, 소인을 거론하며 투쟁관계로 돌입해버린 것이다.

이이는 여기서 분열하는 정쟁의 관행과 인심의 속성을 주목하고,정쟁과 인심의 추이를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대립과 분열’은 이이가 세계에 직면해서 부딛히는 숙명적인 경험의 명제로,그는 이를 ‘朋黨’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인성의 본질적 문제로 인식하고 보다 포괄적인 사유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시대인들 붕당이 없었겠느냐,오직 군자.소인을 가릴 뿐이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이는 “분열되는 두 집단은 모두 사림이다”라고 하여 본질적으로 분열할 수 없는 집단이라 했다. 이런 주장을 이이는 ‘公論’이라는 말로 표혔했고, 그 공론은 그대로 이이의 철학사상의 이론적 구조와 일치한다.

‘군자,소인의 분류’는 가치의 원리이고, ‘어느 시대인들 분당이 없겠느냐’의 표현의 존재의 원리를 주목하는 발언이다. 이이의 관점은 붕당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동시에 분열된 두 집단의 성격을 다시 선.악의 가치적 차원에서 변별하여 그 성격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원론적 주기론은 바로 존재의 원리와 가치의 원리를 포괄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현실적 고민은 분열된 두 집단이 분열되어서는 안되는 ‘다 같은 사림집단’인 것이다. 사림집단은 그 분열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감당해야할 세력이기에 화합해야 하는 존재이다. ‘화합’은 이이가 이루어야할 당대 최대의 당위이지만 상태는 ‘하나이면서 둘’이기 때문에 분열의 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 분열은 또한 ‘둘이면서 하나’이어야 하기 때문에 화합되어야 하는 숙명의 과재를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사림의 존재구조는 이이의 이기이론에서 강조되는 ‘一而二’,와 ‘二而一’,그리고 理氣妙合의 이론과 밀접하게 부합되어 있다.

이이에게 존재의 원리가 강조됨은 분열을 극복하는 수단이며, 가치의 원리가 강조됨은 화합되지 않은 두 집단의 성격을 부각시키는 수단이 된다. 이런 까닦에 이이는 이기는 비록 이물이지만 일물로 묘합되어야 하는 당위가 거기 있는 것이다. 동.서로 분열되는 사림집단의 화합은 이이시대의 최대 현안이며 극복해야 하는 절대적 과제이기에, 이이는 이와 기가 그 모순 속에서도 묘합되어야 하는 당위를 이기의 이론으로 도출한 것이다. 이이의 ‘이기묘합론’은 이런 환경에서 형상화되었다.

그런데 이이의 이러한 이론은 붕당의 일차적 경험이었던 사화의 역사적 성격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배태되고 있다. 그는 “천벌 받을 악인이 천수를 다 사는 현실”과 “힘으로만 승패가 결정됨이 어찌 정상이며 하늘의 본연이랴”라는 전제를 하면서도,“氣. 勢가 작용하면 그럴 수밖에 없고 그런 현상은 또 다른 理이며 天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진단은 자기시대가 “선이 배척받고 악이 권장되는 시대로, 선을 행하는 자 문득 부형으로부터 꾸중을 받는 현실”을 주목했던 것이다. 이이 역시 ‘현우의 혼효’와 ‘사정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이들 우와 사의 집단이 계속해서 득세한 역사적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조선 전기의 주리, 주기의 논쟁은 눈앞에 전개된 사화와 당쟁의 체험을 자신의 역사적 안목에서 이해, 극복하려는 각기 다른 논리와 대립이다.

이황의 ‘이기분속론’은 ‘사화를 극복하는 논리’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이의 ‘이기묘합론’은 ‘당쟁을 극복하는 논리’를 내재하고 있다. 전자는 대결의 논리이며 후자는 화합의 이론으로 그 내용적 특성을 지닌다. 이황은 존재의 원리에서 이기분속을 주장하며, 가치의 원리에서 이선기악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런데 이이의 관점은 존재의 원리와 가치의 원리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묘합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기묘합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사화의 시대와 당쟁의 시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천벌 받을 악인이 천벌을 받음은 필연의 이”라고 함은 주리론의 세계관이고, “천벌받을 악인에게도 기가 작용하면 천벌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주기론의 세계관이다. 전자는 이황의 논리이고, 후자는 이이의 논리이다. 이황, 이이는 각각 그들의 주장을 ‘하늘(天)’이라 했다. 이로써 주리론과 주기론은 결정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표방했다.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달랐기에 인간에 대한 이해의 시각도 사뭇 달랐다. 주리론은 선, 악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주기론은 선과 악의 공존을 인정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따라서 하늘의 개념 역시 주리론은 가치의 원리 차원에서 이해되었지만, 주기론에 있어서 하늘은 바로 존재의 원리였던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상이한 형성은 정치동향의 추이와 깊은 연관에서 이루어졌으며, 민생에 대한 비통한 현실을 아울러 구제하려는 포괄적 의도가 함축되어 있다.

이황에게 훈구집단은 악의 집단이다. 악의 집단은 역사상 한시적 성격의 집단이기에 소멸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따라서 선의 개념을 내재한 이를 강조하고 기를 惡, 卑, 賤 등의 대립되는 개념으로 규정했다. 악, 비, 천 등의 개념은 당시 정국추이와 이황의 성품을 고려해 볼 때, 사림집단과 대립하는 훈구집단의 성격과 결부하지 않고는 어떠한 해석도 이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황에게 이런 정치적 깊은 의도가 있었기에 주기론을 주장한 서경덕이 여지없이 비판받았으며, 기대승, 이이의 주장 역시 끝내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의 개념이 이황에겐 훈구집단의 성격과 관련되어 가치의 원리에서 인식된 개념이지만, 이이에게 기의 개념은 가치의 원리가 아니라 존재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이런 사정은 불변하는 천도가 있어 악인이 천벌 받음이 필연의 이치이건만 사태는 전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악인은 엄연히 천수를 누렸고, 가까스로 소멸된 악의집단의 대체세력인 선의 집단, 즉 사림세력이 또다시 선악을 다투며 극도로 분열해버린 것이다. 이이에게 ‘사림세력의 분열’은 이미 경험한 붕당의 존재와 더불어 인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검토를 절실히 요구했다. 따라서 이이는 현실적 상황인 기의 힘(氣力)과 기의 세(氣勢)의 작용을 주목하고 이를 또 다른 理와 天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이는 주리론자들의 사상이 명분론적 이우위론에만 머물러 사태를 해결하는데 부족한 이론으로 보았다. 부정할 수 없이 엄연히 존재하는 기의 생성, 변화의 현실적 실상을 간파하지 않고는 국면 전환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이에게 기가 강조됨은 현실을 직시하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그런 안목에서 주창된 이기묘합론은 분열되는 사림집단을 규합하는 철학적 논리가 된다. 그런 철학적 논리의 기저는 바로 국정의 개혁과 민생의 구제하는 시대적 요청의 산물임은 주지의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어디까지나 이황, 이이에 국한되고, 이, 기 개념의 정치, 사회적 성격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분석되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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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논문 요약

서경덕, 이황, 이이가 살았던 16세기는 최초의 이념시대의 등장으로 본다. 이념시대의 등장은 시국상황의 역사성에 기인함을 전제한다. 성리학이 새삼스럽게 ‘道學’이라고 명명됨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의 눈에는 자기시대의 역사적 상황이 ‘위기의 시대’라고 인식했다. 위기는 ‘사상의 위기’와 ‘정국의 위기’와 ‘민생의 위기’로 요약된다. 위기의 표현을 이황은 ‘말세’로, 이이는 ‘천벌 받을 악인이 천수를 다 사는 시대’로 표현했다. 이러한 인식은 범칭 ‘훈구’로 표현되는 집권세력의 파행적 정국운영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서경덕, 이황, 이이 등은 성리학적 도적주의의 논거에 기초하여 이러한 역사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황의 정치적 환경은 서경덕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그는 서경덕과 달리 관직의 진출에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이미 자신이 체제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의 정치적 위상은 은연중-악의 집단으로 간주된-부정한 정치세력과 대립하고 있는 또 다른 정치세력의 중핵에 위치했으므로, 자신이 소속된 정치세력의 이익, 즉 권력다툼의 궁극적 승리를 시국의 중대한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황은 자신이 중핵이 된 사림집단이야말로 시국의 위기를 타개하고 문명국을 이룩할 유일한 대체세력으로 인식했다. 그는 사림집단이 훈구집단을 몰아내고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는 당위적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날을 위해 그는 명분과 논리 그리고 후진의 양성과 교육의 확충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사림집단이 궁극적 집권을 하는데 뚜렷한 기여를 하였다.

이황은 신분과 처지가 달랐기에, 세계에 대응하는 사고의 틀이 전연 다른 각도에서 형상화 되었다. 이황은 어디까지나 체제 안에서의 개조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서경덕의 학설이 세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이론의 바탕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서경덕을 존경하고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의 단호한 조치는 이러한 가능성의 싹을 조기에 진압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서경덕의 학설이 “전혀 정밀하지 못하여 병통이 없는 곳이 없으며, 질박하고 고상한 것 같으나 사실은 허황하고 복잡하다”고 까지 했다.

이황의 사상은 체험세계에 대한 인식논리와 대응구조로 짜여있다. 그런 만큼 철저하게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정국의 추이를 勳臣, 戚臣으로 구성된 집권세력과 이에 맞서는 儒生, 士林의 재야세력의 대결구도로 이해했다. 전자에서 집권세력은 역사에서 한시적 득세의 집단으로 필연적으로 소멸되어야 할 모순의 악의 집단이었다. 그런데 정국의 추이는 이들 악의 집단에 의해 선의 집단은 계속해서 유린되고 백성들의 삶은 황폐화되어 우리 나라가 거의 야만국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 행 전반에 걸쳐 온몸으로 대결했다. 그러한 용기는 그의 역사적 안목, 즉 천도를 어기는 악의 무리는 언젠가는 망한다는 천리의식에 비롯되었다. 그의 주리론적 세계관은 이러한 시국에서 형상화되었다. 그래서 그는 理氣不相雜과 理氣의 分屬을 강조하면서, 논리전개의 무리를 무릅쓰고 理發, 理動, 理到 등의 이론을 계속해서 제기했다.

이황은 세계의 모든 현상을 이와 기로 이해하기 때문에, 시국에 대한 인식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이황은 이와 기가 공존하면서도 투쟁하는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또 이, 기의 보편적 상관관계의 설명인 불상리 ,불상잡의 이론에서 불상잡을 유난히 강조하면서, ‘이와 기는 결코 섞일 수 없는 결시이물(決是二物)’이기에 분속되어 있다고 했다. ‘이기분속론’은 이황의 이기이론에 대한 핵심적 주장이다. 그리고 그 주장은 당시 대결정국의 향배와 깊은 연관을 지닌다.

이황은 당시 파행적 정국으 모순을 ‘賢愚가 混淆’하며, 혹은 ‘邪正이 相雜’되어 있어서 그런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진단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혼효’는 ‘分屬’시키고, ‘상잡’됨은 ‘不相雜’으로 정돈되어야만 했다. 이황의 ‘이기불상잡’, ‘이기분속론’은 대립되는 두 집단의 공존을 모순된 집단들의 공존논리로 이론화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분속의 성격은 이의 논리가 기의 논리를 명분과 이치에서 압도적 우위에 위치한다. 이황의 이기불상잡과 이기분속론은 사림세력과 훈구세력의 존재논리이며 구분논리이며 가치논리이다. 이황이 언급한 ‘이선기악’, ‘이귀기천’, ‘이존기비’의 논리는 바로 대립되는 두 집단의 정치, 사회적 성격을 규정하는 발언이며, 그 연장선에 ‘인심도심설’, ‘사단칠정론’ 등의 여타 보조논리가 계속해서 도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 집단인 사림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괴멸되는 형국이 전개되기에, 그는 관직의 사퇴와 임명거부, 천도의 불변논리 등의 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끊임없이 동원하였다. 끝없는 사퇴와 임명거부, 그리고 연이은 사직서의 제출은 임금의 마음을 돌려 정국을 단번에 전환시키려는 의지의 소산이자 소망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림세력에 대한 수 많은 편지는 자신의 사상과 의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인식하는 동시에, 극도의 좌절감과 열세에 처해있는 사림집단 개개인에게 보내는-격려를 동반한-이론과 행동의 지침서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역사 시간표를 지켜보면서 내일을 기약했고 꾸준히 실천에 옮긴 것이다. 선조 정국이 전개되었을 때 이황의 문인과 영향권 인사들이 수권집단에 중핵이 된 사실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이황은 천도가 무너지는 역사적 위기를 구하고자 ‘도학’을 부르짖었다. 도학은 시대를 구제할 유일한 학문으로 인식했다. 그는 우리 나라의 현실이 악의 집단에 의해 야만국으로 전락을 극도로 우려했다. 중국이 문명국으로 존재함은 바로 ‘도학’이라는 학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역시 이제까지 도학으로서 문명국의 위신과 체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전개되는 시국의 정황은 야만국으로 보아 손색이 없을 만큼 위기로 치달았다. 그는 자신의 역사적 책무를 우리 나라를 문명국으로 전환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악의 집단의 소멸에 결정적 구실을 했음은 물론이고, 우리 나라를 ‘이성이 지배하는 진리의 나라’로 격상시키는데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이황에게 ‘도학’은 다름 아닌 문명국의 학문이다. 따라서 이황의 이기이론에서 강조되는 不相雜과 理氣分屬은 이러한 역사적 소명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이이의 철학과 사상은 이이시대의 정치, 사회적 특성을 반영한다. 정치적 현상으로 이이시대는 ‘사화의 종식’과 ‘당쟁의 발발’을 연속적으로 목격, 체험하는 매우 예민하고 과도기적인 기간이 된다. 사화가 대립이라면 당쟁은 분열이었다. 사화가 이념투쟁이라면 당쟁은 노선투쟁이었다. 대립이 종식되었을 때 모든 모순도 함께 소멸되어야 하지만 사태는 전연 그렇지 않았다. 사태는 훈구집단이 준동하던 시절보다 더욱 악화된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선의 집단이며 수권집단이라 믿었던 사림집단이 또다시 선악의 가치적 차원에서 분열하여 전일에 대치했던 집단들처럼 군자, 소인을 거론하며 투쟁관계로 돌입해버린 것이다.

이이는 여기서 분열하는 정쟁의 관행과 인심의 속성을 주목하고, 정쟁과 인심의 추이를 보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대립과 분열’은 이이가 세계에 직면해서 부딛히는 숙명적인 경험의 명제로, 그는 이를 ‘朋黨’이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인성의 본질적 문제로 인식하고 보다 포괄적인 사유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시대인들 붕당이 없었겠느냐, 오직 君子. 小人을 가릴 뿐이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이는 “분열되는 두 집단은 모두 사림이다”라고 하여 본질적으로 분열할 수 없는 집단이라 했다. 이런 주장을 이이는 ‘公論’이라는 말로 표현했고, 그 공론은 그대로 이이의 철학사상의 이론적 구조와 일치한다.

‘군자, 소인의 분류’는 가치의 원리이고, ‘어느 시대인들 분당이 없겠느냐’의 표현의 존재의 원리를 주목하는 발언이다. 이이의 관점은 붕당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분열된 두 집단의 성격을 다시 선. 악의 가치적 차원에서 변별하여 그 성격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원론적 주기론은 바로 존재의 원리와 가치의 원리를 포괄하는 이론이다. 그런데 현실적 고민은 분열된 두 집단이 분열되어서는 안 되는 ‘다 같은 사림집단’인 것이다. 사림집단은 그 분열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감당해야할 세력이기에 화합해야 하는 존재이다. ‘화합’은 이이가 이루어야할 당대 최대의 당위이지만 상태는 ‘하나이면서 둘’이기 때문에 분열의 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 분열은 또한 ‘둘이면서 하나’이어야 하기 때문에 화합되어야 하는 숙명의 과제를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사림의 존재구조는 이이의 이기이론에서 강조되는 ‘一而二’,와 ‘二而一’, 그리고 理氣妙合의 이론과 밀접하게 부합되어 있다.

이이에게 존재의 원리가 강조됨은 분열을 극복하는 수단이며, 가치의 원리가 강조됨은 화합되지 않은 두 집단의 성격을 부각시키는 수단이 된다. 이런 까닭에 이이는 이기는 비록 이물이지만 일물로 묘합되어야 하는 당위가 거기 있는 것이다. 동. 서로 분열되는 사림집단의 화합은 이이시대의 최대 현안이며 극복해야 하는 절대적 과제이기에, 이이는 이와 기가 그 모순 속에서도 묘합되어야 하는 당위를 이기의 이론으로 도출한 것이다. 이이의 ‘이기묘합론’은 이런 환경에서 형상화되었다.

결국 조선 전기의 주리, 주기의 논쟁은 눈앞에 전개된 사화와 당쟁의 체험을 자신의 역사적 안목에서 이해, 극복하려는 각기 다른 논리와 대립이다.

“천벌 받을 악인이 천벌을 받음은 필연의 이”라고 함은 주리론의 세계관이고,“천벌 받을 악인에게도 기가 작용하면 천벌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주기론의 세계관이다. 전자는 이황의 논리이고, 후자는 이이의 논리이다. 이황, 이이는 각각 그들의 주장을 ‘하늘(天)’이라 했다. 이로써 주리론과 주기론은 결정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표방했다.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달랐기에 인간에 대한 이해의 시각도 사뭇 달랐다. 주리론은 선, 악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주기론은 선과 악의 공존을 인정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따라서 하늘의 개념 역시 주리론은 가치의 원리 차원에서 이해되었지만, 주기론에 있어서 하늘은 바로 존재의 원리였던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상이한 형성은 정치동향의 추이와 깊은 연관에서 이루어졌으며, 민생에 대한 비통한 현실을 아울러 구제하려는 포괄적 의도가 함축되어 있다.

기의 개념이 이황에겐 훈구집단의 성격과 관련되어 가치의 원리에서 인식된 개념이지만, 이이에게의 개념은 가치의 원리가 아니라 존재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이런 사정은 불변하는 천도가 있어 악인이 천벌 받음이 필연의 이치이건만 사태는 전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악인은 엄연히 천수를 누렸고, 가까스로 소멸된 악의집단의 대체세력인 선의 집단, 즉 사림세력이 또다시 선악을 다투며 극도로 분열해버린 것이다. 이이에게 ‘사림세력의 분열’은 이미 경험한 붕당의 존재와 더불어 인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검토를 절실히 요구했다. 따라서 이이는 현실적 상황인 기의 힘(氣力)과 기의 세(氣勢)의 작용을 주목하고 이를 또 다른 理와 天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이는 주리론자들의 사상이 명분론적 이우위론에만 머물러 사태를 해결하는데 부족한 이론으로 보았다. 부정할 수 없이 엄연히 존재하는 기의 생성, 변화의 현실적 실상을 간파하지 않고는 국면전환을 기대할 수 없었다. 이이에게 기가 강조됨은 현실을 직시하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그런 안목에서 주창된 이기묘합론은 분열되는 사림집단을 규합하는 철학적 논리가 된다. 그런 철학적 논리의 기저는 바로 국정의 개혁과 민생의 구제하는 시대적 요청의 산물임은 주지의 일이다.

1. 李滉 부문

Lee Whang‘s thought is composed with preceptive logic and responding system to experience the real world. So it has thorough sociality. He understood the political situation as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 party in power made up of Hoon shin(勳臣) with the out of power called Salim(士林). The party in power was the contradictory evil group that would have to be ruined because it had such a transient political power in history. However, by the evil group the good on e kept being trampled and people's lives were devastated. For him Cho-shon seemed to be reduced to a savage country. So he stood against the evil group with spiritual and prctical efforts. His courage was from his historical point of view, namely, that the evil group disobeying the will of Heaven would be ruined someday. His view of the world-主理論 was established in this social situation. Emphasizing 理氣不相雜 and 理氣分屬, he raised 理發理動理到 and so forth in spite of a little unnaturalness in developing his opinion.

As he understood all the things in the world with 理 and 氣, his way of understanding the political situation was based on these thoughts. He thinks that 理 and 氣 exist together and at on ce confront each other. Emphasizing 不相離, 不相雜 especially 不相雜 of the two which explain the general correlation 理 with 氣 , he said that 理 and 氣 exist independently because they were 決是二物 which could never be mixed. 理氣分屬論 is the main thought in his theory of 理 and 氣. And his opinion was deeply related to the shift of the political situation standing opposite each other.

He diagnosed that 賢愚混淆, 邪正相雜 caused the contradictions of the crippled political stituation. To overcome these causes he should detach 理 from 氣, and arrange the state of the two being mixed.理氣不相雜, 理氣分屬論 had been elaborated by him which explain the coexistence of contradictory groups. In this state of 分屬理 takes far priority of 氣 in moral justice(명분) and reason(理치). 理氣不相雜과 理氣分屬論 explain existence and value of 士林 and 勳舊 and discriminate between them. 理善氣惡, 理貴氣賤, and 理尊氣卑 which he mentioned determin the very two groups' political, social characters. He suggested in succession the supplementary logic such as 人心道心說, 四端七情論 and so on.

Despite, as the political situation for Salim(士林)-the good group-grew worse and worse, he stood out this situation with every means ; resignation his public office, refusing to accept the appointment, claiming the eternal will of Heaven and so on, which were his will and wish to change King's mind and the political situation at on ce. And he wrote to Salim group a lot of letters to communicate his thought and will. They were also read as a practical and theoretical guide with his encouraging them by Salim(士林) group who got discouraged and were inferior in political power. Watching his time table, he prepared himself for the future and he put his thought into practice steadily. It is never accidental that disciples and followers of Lee Whang took the important roles in government when Shon-cho dynasty was opened.

As he regarded Dohak(道學) as the on ly subject that could save his country from the political crisis when the will of Heaven was disobeyed, he claimed 도학 to pass through the crisis. He was so worried that Choshon should fall to a savage country by the evil group. He thought that thanks to 道學 China had been advanced in civilization and Choshon had maintained its internal structure and dignity as the civilized country. But under the political circumstances unfolded in his time, 朝鮮 was not too much to be thought of as a savage country. Worried about this political crisis aroused by the evil group, he was devoted to promote 조선 to the civilized country again. As the result of his efforts, the evil group was ruined and 조선 was promoted to the nation of truth controlled by Reason. To him 道學 was the subject to civilize his country, so he emphasized 不相雜, 理氣分屬 of 理氣 theory with the historical responsibility.

2. 李珥 부문

李珥‘s philosophy and thought is a mirror of the political, social characters in his time. Those days was a transitional period when they experienced in succession the end of 士禍(Calamity of savants) and the outbreak of 黨爭(Party strife). 士禍 is the ideologic dispute, and 黨爭 is the line struggle. Although all the contradictions should be cleared off when the dissension was come to an end, the political circumstances did not become such a condition but got worse and worse than the previous time when 勳舊 group was in power. 士林 which was regarded as the authorized group and the good on e was divided and started the political struggle with which part was good or evil like the group which they had been against before, making what was a man of virtue and what was a mean person a subject of discussion.

He paid attention to the attribute of the political dissension and human mentality, so he began to understand the shift of them in more fundamental level. He looked upon dissesion and division which he experienced in the real world as the substantial problems of humanity, and he started to establish his more comprehensive thinking system. So he said, "Weren't there any factions(朋黨) in any historical period. There are on ly some uncontroversial differences between a man of virtue and a mean person,“ But the other part of him said that both of the two groups were the same 士林, and therefore they should not be divided. He named this thought 'an impersonal opinion(公論)‘, which accords with his theoretical system.

He discriminated a man of virtue(君子) from a mean person(小人)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 of value and said " Wasn't there a faction(朋黨) in any historical period?", for he paid attention to the principle of existence. He both recognized the existence of the faction(붕당), and emphasized the different characters of the two divided groups with the problem what is good and evil. 二元論的主氣論 includes the principle of existence and that of value. But it is the matter of fact that the two groups belonged the same group, 士林 which must not be divided into two. 士林 must be in harmony among its own members because they were responsible for history in spite of their disunion. Reconciliation was the ideal political state for 李珥 to accomplish, on the contrary the internal state of 士林 under the actual condition had the attribute of disunion because of its state both to be on e and to be two. But its dissension had the problem to have to be unified because it must be on e though it was divided. This existential system of 士林 corresponds 一而二二而一 and 理氣妙合 theory that 李珥 emphasizes of 理 and 氣 theory.

He gave emphasis to the principle of existence and the principle of value ; this is the way to represent the character of two groups which aren't unified, that is the way to overcome the internal dissension. Therefore he said 理 and 氣 ought to be united into on e thing even if they were separate things. As it was the most serious pending question and absolute problem to be overcome in his time that 士林 groups divided into East and West must be in harmony, he made it the theory of 理 and 氣 that they should be united into on e thing in spite of the contradiction between them. 理氣妙合論 of 李珥 established under these conditions.

His theory was being arisen from the process of investigating the historical features of the calamity of savants(士禍), the first experience of the faction(朋黨). He said that it was not a normal state and disobeyed the will of Heaven that the evil men lived long and success or failure was controlled by the power, on the other hand he said that if 理 and 氣 worked on that situation, it might be possible, and those situations were another 理 and Heaven's will. The reason why he diagnosed the historical situation like this that he paid attention to the reality of life which good was rejected but evil was encouraged and those who did good were scolded by their family. He also could not but admit the historical reality that foolish, false men had been in power, not admitting the mixed state of wisdom with fool(賢愚混淆) and coexiatence of 邪(false) and 正(justice).

3. 綜合

After all the argument about 主理 and 主氣 in the former term of 朝鮮 was the different kind of logic and the opposition between the two groups for them to overcome and understand the experience of 士禍(the calamity of savants) and 黨爭(the party strife) which were unfolded in their time through the respective point of view.

李滉‘s 理氣分屬論 has the logic to overcome 士禍(the calamity of savants) and 李珥’s 理氣妙合論 implies the logic to overcome 黨爭(the party strife). That is the logic about conflict and this is the theory of reconciliation. 李滉 claimed 理氣分屬 by the principle of existence and 理선氣악 by the principle of value. However 李珥 claimed 理氣妙合 because he thought that the principle of existence and that of value were not apart from each other but mixed together. These thoughts of theirs are mirrors of 士禍(the calamity of savants) and 黨爭(the party strife).

According to the outlook on the world of 主氣論, it stands to reason that the evil who deserve it are punished by Heaven, while according to that of 主氣論 it may be possible that the evil are not punished by Heaven under the work of 氣. That is 李滉‘s theory and this is 李珥’s. Like this as 主理論 and 主氣論 advocate the definitely different outlook on the world, the way of understanding human being is basically different from each other. 主理論 doesn't adimit the coexistence of good and evil but 主氣論 does. Therefore the concept of Heaven is accepted by 主理論者 through the principle of value, but by 主氣論者‘s point of view Heaven is the principle of existence itself. The different outlook on the world of this sort was established under the connection with the change of political trends and implied the comprehensive intention to save the people from their sorrowful real lives.

For 李滉勳舊group is evil. He was sure that they must be ruined because they were a temporary group in history. So he emphasized 理 which had the concept of good, on the contrary he prescribed 氣 as the opposite concept such like evil, humbleness, vulgarness, and so on. Considering 李滉‘s personality and political situation in those days, the concepts of evil, humbleness, and vulgarness were not able to be interpreted logically without being connected with the character of 勳舊 group opposed to 士林 group. As 李滉 had the deep political intent like this, not on ly So Kyong-dock who insisted on 主氣論 was criticized, but also Ki Dae-sung’s and Lee Yi‘s insistences were not accepted to the last.

While 李滉 perceived the concept of 氣 as the principle of value connecting with the character of 勳舊 group, 李珥 understood this as not the principle of value but that of existence. The reason why 李珥 did so that though the evil deserved punishing in accordance with Heaven's rule, it was not so in real situation. The evil lived long and the good men -士林 which replaced the evil 勳舊 were divided extremely disputing which part was good or bad. The internal dissension of 士林 required 李珥 to interpret and to examine humanity and 당쟁(the party strife) that had been experienced before by him. Therefore he paid attention to the work of the power and the influence of 氣 and named this another 理 and Heaven.

李珥 judged the thought of 主理論 insufficent to settle the political crisis as it held fast to 理優位名分論的(in moral justice). He couldn't expect change of the political situation until he penetrated real aspects of the generation and changes of 氣 whose existence could not be denied. He emphasized 氣 with the meaning that they should face up to the reality. 理氣妙合론 advocated with this point of view was the philosophic logic was from the needs of times so as to reform the national administration and to solve the problem concerning public livelihoo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