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깊은 종택에서 종질이 백년가약을 맺는다. 가송리 솔미재에 자리 잡은 농암의 고택에서다.

일찍이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해오던 종질은 어느듯 성인이 되어 고향에서 혼례를 치른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백부님 생전에 가서 뵐때는 유생(幼生)으로서 천자문 달인이 되어 한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랐었다. 벌써 장가 간다니 세월속에 묻혀 지나간 시간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종제는 십수년 전 수몰된 분천땅을 떠나 솔미재에 자리 잡았다.  그 아름다운 곳을 고향으로 삼아뿌리를 내렸다. 화려 하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교직에서 하차를 하고 종손의 자리를 지키느라 그동안 수 많은 고초를 겪었다. 집터를 마련하고 유적을 옮기느라 고생을 했으니 그것이 오늘의 영광이다.

단풍이 곱게 물든 고향 산천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종제는 며느리를 맞이하는 달콤한 꿈에 젖어 행복 할것이다.

사당에 고하고 고풍스러운 내 집에서 아들을 장가 보내니 그 감회가 무량해 할것이다.

마을에 들어서니 고향 내음이 물씬난다. 코스모스 길 따라 들어서는 소슬 대문 앞에는 잔치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옛날 같으면 시월 상달 가을 걷이에 바쁜 계절이다.

즐비한 화환들과 낯익은 일가 친척들의 반겨주는 분위기도 예나 다를 바 없었다.

문중의 대사(大事)이다.

안채로 들어서니 든든한 종부의 화장한 얼굴에도 화색이 만연하다. 일가 친척들이 하객들을 맞이하는 음식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며 시끌벅적한 잔치분위기였다.

마주본 사랑채 넓은 마당 식장은 자연속에 파묻힌 단풍으로 한결 돋보였다.

청사초롱에 꽃가마와 어가(御駕)로 차일(遮日) 안은 오색찬란한 목단 병풍으로 화려하다.

초례상 위에는 화촉을 밝히는 촛불이 눈에 띠고 정갈스런 실물들에 청홍 보자기로 드린 닭이 길일(吉日)을 축복해 주고 있다.

주례자와 진행자도 선비 차림의 엄숙한 복장이다. 해맑은 가을 청명한 하늘 아래 갈대 바람과 코스모스 향기로 덮어쓴 야외 혼례 식장은 아름다운 한옥과 한층 어울렸다. 

양가 하객들과 신랑 신부 친구들이 모인 가운데 예식의 팡파레가 울려 퍼졌다.

식이 시작되었다. 악귀를 몰아낸다는 국악의 잔치가 벌어지고 풍물놀이가 흥겹게 잔치 분위기를 돋우었다.

영원한 사랑의 상징인 기러기를 안고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은 뒤따라 들어오는 꽃 가마에 눈이  쏠린다. “사랑한다. 단비야! 이리오너라” 하며 크게 외쳤다. 한바탕 하객들의 폭소가 터져 나왔다.

예쁜 신부가 시자에 의지하고 사뿐이 들어온다. 원삼 족두리에 연지 곤지 찍고 색동 옷으로 입장하는 아리따운 신부의 모습은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신랑도 관복을 입고 사모관대를 쓰고 맞절하는 모습은 보기드문 모습이었다. 시종일관 지켜보는 분위기는 예사로운 장면이 아니었다. 향교에서나 고궁에서 보는 분위기와는 또 다른 고풍스러움이었다.

카메라 후렛쉬가 여기 저기서 터지고 방송국에서 나온 사람들이 부지런히 찰영을 했다. 한 시간 가량 걸린 예식은 분위기 있는 전통 혼례였다. 가문의 자랑이며 영광인 차(次) 종손 종부 한쌍이 탄생하였다. 

정성이 담긴 종부의 푸근한 음식 대접에 융숭한 접대를 받고 돌아서는 하객들은 전통혼례의 진미(眞美)를 보였다고 했다. 시대에 흐름은 빠르게 변한다지만 고유문화인 전통 혼례만은 영원히 한국적인 우리것으로 지켰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