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이 서책과 목판 등을 주인에게 돌려준다. 퇴계 이황 선생이 생을 마감하기 전 “빌려온 책은 모두 돌려주라”며 제자들에게 남긴 당부를 500여 년 만에 실천하는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도산서원 측이 기탁한 ‘문헌통고(文獻通考)’ 133책과 ‘적선(積善)’ 목판 2점을 영천이씨 농암 종가로 반환한다고 30일 밝혔다.

최근 국학진흥원 연구원이 기탁 받은 책자를 보던 중 글귀를 찾아낸 것이 발단이 됐다. 책에는 ‘책 주인인 영양 이 공간(公幹)이 진성 이 경호(景浩)에게 보라고 주다 (冊主永陽李公幹 供覽眞城李景浩)’고 적혀있었다. 공간과 경호는 각각 이중량과 이황의 자(字·남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이는 이름으로 본명 외에 부르는 호칭)다.

이중량은 농암 이현보의 넷째 아들이다. 이중량과 이황은 1534년(중종 29년)에 문과에 동반 급제하는 등 막역한 사이로 알려졌다. 두 가문은 안동 예안에서 대대로 살며 집안끼리도 돈독하다고 한다.

또한 문헌통고 133책은 조선 명종이 1558년 당시 사헌부집의로 일하던 이중량에게 하사한 것이란 사실도 밝혀졌다. 이에 도산서원운영위원회와 퇴계 종가는 ‘빌려온 책은 돌려주라’는 퇴계 선생의 유지에 따라 반환을 결정했다.

도산서원 측은 이와 함께 선조 어필로 된 ‘積善(적선)’ 목판도 농암 집안에 돌려준다. 이 목판은 농암 선생의 여섯째 아들인 매암 이숙량이 선조 임금에게 하사받은 것이다.

국학진흥원 정종섭 원장은 “책이 귀하던 시절 133책이라는 이렇게 큰 규모의 책을 빌려주며 돌려볼 수 있었던 것은 두 선생이 서로의 학문을 깊이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국학진흥원은 내달 2일 도산서원 전교당에서 국학자료 반환 및 인수인계 기념식을 연다. 다만 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실제로 책과 목판을 농암 종택으로 옮기는 게 아니고, 퇴계 선생이 500년 전에 빌렸던 책을 돌려주는 의미에서 행사를 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두 집안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우정을 보여주는 뜻깊은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