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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현존 最古 ‘안동권씨족도’ 단종 외가 가계도로 확인
 글 쓴 이 : 농암종택  등 록 일 : 2018-02-17 오후 6:04:01 조 회 수 : 73
 
 
 
 
                                                       현존 最古 ‘안동권씨족도’ 단종 외가 가계도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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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 최고 족보로 알려진 ‘안동권씨성화보’보다 20년이나 앞선 ‘안동권씨족도’가 오는 16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된다. ‘안동권씨족도’ 보존처리 전(위)과 후(아래) 모습.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인공열화견으로 보존 처리
학술ㆍ문화재적 가치 높아… 일반에 첫 공개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현존 최고 족보로 알려진 ‘안동권씨성화보’보다 20년이나 앞선 ‘안동권씨족도’가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2012년 박물관형 연구과제’의 하나인 ‘안동권씨족도’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기 위해 오는 16일 박물관 본관 대강당에서 학술 세미나를 열고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한다.

족도는 고려시대부터 15~16세기까지 자신의 친가 및 외가의 가계를 그린 것으로, 한 장의 장지나 두루마리 형태를 하고 있다. 현존하는 ‘해주오씨족도(1401년)’ 이외에 족도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족보 이전의 가계기록이나 족보의 초기 형태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 왔다.

또 조선 초기 족보자료일수록 그 신빙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15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는 ‘안동권씨족도’는 현존 여부만으로도 주목되는 역사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 족도는 비단 바탕에 권여온(權呂溫, 생몰년 미상)의 자녀와 자손들 340여 명의 관계를 붉은 색계선(界線)으로 표시한 두루마리 형태다.

족도에는 현덕왕후(顯德王后)와 단종(端宗)이 포함돼 있는데, 이들의 이름은 사육신 사건과 관련 있어 폐위됐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떼어진 부첨(附籤) 흔적만 남아 있다. 이에 현덕왕후는 조선시대에 유일한 안동 권씨 출신의 왕비임에도 ‘안동권씨성화보’에는 빠지게 됐다.

국립민속박물관 측은 “족도에 기재된 인물과 비단 바탕에 붉은 색 계선, 그리고 두루마리 장황 규모 면에서 이것은 왕실의 외가 혈통을 밝히기 위해 제작한 단종의 ‘외증외가(外曾外家)’의 족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족도 변아(가장자리, 위)와 각필(쓰던 글을 중간에 그만두고 붓을 내려놓음, 아래) 흔적이 보인다.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족도는 조선 전기 족보와 같이 남녀 구별 없이 출생 순으로 직함과 이름만 기재돼 있지만, 조선 후기 족보와 같이 적서(嫡庶)가 구분돼 있다. 또 5대에 걸친 조선 초기 안동 권씨 동성혼 양상은 물론 진성 이씨, 의성 김씨, 예안 김씨, 영천 이씨 등 안동 명문가와의 중첩적인 통혼 관계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친손녀와 외손자가 혼인한다든가, 친자매가 시집의 숙질지간에 각각 시집을 가는 등의 혼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안동권씨족도’는 1999년 국립민속박물관에 입수됐을 당시 화견(畵絹)의 열화(劣化)가 심하고 두루마리 장황(粧䌙) 일부가 손실된 상태였다. 그러나 족도의 붉은색 계선 부분에 각필(刻筆) 흔적이 남아 있어 두루마리를 제작한 후에 필사된 것으로 확인됐고, 개장이 안 된 최초 제작 시기의 두루마리 장황의 원형으로 밝혀졌다.

족도의 상하 양변에 자주색 비단을 가늘게 댄 변아(邊兒, 가장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는 ‘악학궤범’ ‘몽금척족자(夢金尺簇子)’ ‘손소 적개공신교서(1467년)’ 등과 같은 장황 형태를 보인다.

족도는 만지면 부서질 정도였으나 자외선(UV) 인공 열화견(2008~2009년 박물관 제작, 2010년 특허청 출원)을 개발해 보존 처리했다.

‘안동권씨족도’는 오는 26일까지 ‘새로운 자료와 보존처리’ 벽부장에 처음 공개, 전시된다.

이 족도의 보존처리 관련 자문을 한 박지선 용인대 교수는 “이번 안동권씨족도 사례는 제작 당시의 형태를 유지한 상태에서 철저한 과학적 보존 및 복원을 거쳐 조선 초기 서화 복원의 기준 형식 제공과 장황 양식의 한 획을 그었다”며 학술ㆍ문화재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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