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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약사] 600년 장수 대물림… 농암종가 밥상의 힘 - 중앙일보 2012.5.11
 글 쓴 이 : 농암종택  등 록 일 : 2012-05-29 오후 5:42:23 조 회 수 : 5300

 

 

                         600년 장수 대물림… 농암종가 밥상의 힘

                                                                                             [중앙일보] 입력 2012.05.11 04:00 / 수정 2015.01.06 13:30

 
 
 

 

 
 

밥상은 소박했다. 주재료는 채소. 전으로 부치고, 장아찌로 절이고, 찜통에서 쪄 내왔다. 고운 가루처럼 만든 북어 보푸라기와 실처럼 가느다란 다시마 튀김은 오늘의 별미다. 여기에 물김치와 쑥국, 그리고 제사상에 올렸던 북어와 방어를 구워 상을 차렸다. 농암 이현보(1467~1555)의 17대 종손 이성원(59)씨 집의 아침 상이다.
 

 

농암종가 아침밥상. 부추찜, 데친 두릅, 장아찌, 전, 다시마 튀김, 북어 보푸라기, 물김치, 방어 구이, 북어 구이(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등과 흑미찹쌀을 약간 섞은 쌀밥, 쑥국을 내왔다. 장아찌는 더덕·곰취·가죽(참죽의 새순)·매실 등 네 가지, 전도 호박·두릅·표고·우엉 등 네 가지다.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농암 가문은 예부터 이름난 장수 집안이다. 농암 이현보는 89세, 농암의 아버지는 98세, 어머니는 85세, 조부는 84세, 증조부는 76세, 고조부는 84세까지 장수했다. 또 농암의 동생 현우 91세, 현준 86세, 농암의 아들 문량 84세, 희량 65세, 중량 79세, 계량 83세, 윤량 74세, 숙량 74세 등 기록은 이어졌다. 조선 시대 평균수명이 40세 남짓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이적인 수치다. 장수의 전통은 현재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종손 이성원씨의 아버지는 91세, 어머니는 89세까지 수명을 누렸다. 농암 종가만의 장수 비법이라도 있는 걸까. 경북 안동 농암 종택을 찾아간 이유였다.

농암 종택이 있는 마을은 ‘가송리(佳松里)’다. 아름다운 소나무가 있는 마을. 청량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풍광이 한 폭의 그림처럼 수려했다. 강호 시인 농암이 “굽어보니 천 길 파란 물, 돌아보니 겹겹 푸른 산…”이라며 ‘어부가’를 불렀을 법한 곳이다.

“욕심을 버리고 살아서겠죠.”

장수 비법에 대한 종손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러면서 제철 음식으로 차린 담백한 밥상을 보여줬다. 진귀하고 기름진 재료는 아예 없었다. 600여 년을 이어온 농암 종가의 밥상을 현재 책임지고 있는 이는 종부 이원정(53)씨다.

“음식에 콩가루를 많이 써요. 간은 집간장으로 하고. 우리 집 간장은 안 끓인 생간장이죠. 김치는 1년에 한 번, 김장 때만 담가요. 가을배추는 농약을 안 쳐도 되고, 달고 맛있거든요. 요즘은 딱 장아찌 담글 때네요….” 종부는 약보(藥補)보다 한 수 위라는 식보(食補) 비결을 공개했다.

농암 종택은 고택체험용으로 일반에 열려 있다. 종부가 직접 차린 ‘장수 밥상’은 매일 아침 농암 종택 투숙객들도 함께 먹는다. 밥값은 1인 7000원(미취학 어린이는 3000원). 80세 이상 부모와 함께 온 가족에게는 무료로 제공한다.

 

 

흑미밥·쑥국·부추찜·두릅전·북어·방어구이 한 토막 소박해서 더 귀하다

 

              농암종택 종부 이원정씨가 차린 장수 밥상 받아보니
 

 

1 종택 마당에서 말리고 있는 동치미 무. 겨우내 먹고 남은 동치미 무를 말려 간장장아찌를 만든다.

 

 

“고기가 어디 있어야지요.”

농암 종가의 밥상에는 육류가 없다. 그 이유를 두고 종부 이원정(53)씨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요즘 고기가 얼마나 흔한 세상인가. 뒤죽박죽 날씨 탓에 천정부지로 값이 올라 선뜻 장바구니에 담지 못했던 찬거리는 오히려 채소가 아니었던가.
농암 종가의 밥상은 고기가 귀했던 시절, 그때 그대로다. 철 따라 새순 돋고 열매 맺는 집 주변 자연에서 반찬을 얻는다. 동물성 단백질을 보충하는 통로는 아직도 여전히 제사상이다.

 

 

 

2 농암 이현보의 17대 종손 이성원(왼쪽)씨와 종부 이원정씨가 경북 안동 가송리 종택 앞길을 산책하고 있다. 담장 너머로 종택의 사랑채와 별채, 긍구당 등이 보인다.


 

 

 

제철 밥상, 나물이 주인공

얼핏 단출한 듯 보이지만 손이 많이 간 밥상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 아침, 전만 네 종류가 상에 올라왔다. 호박전·우엉전·표고전·두릅전 등 모두 채소전이다.

“우엉은 껍질 깎은 뒤 길쭉하고 얇게 썰어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칼등으로 자근자근 두드리고. 밀가루에 물·소금 넣어 되직하게 만든 ‘즙’(묽은 반죽)에 우엉을 적셔서 프라이팬에 부쳐요. 표고는 삶아서 국간장·참기름·후추 넣고 조물조물 간을 해놓고요. 우엉 부칠 때 사용한 ‘후룸한’ 밀가루즙을 아주 작은 찻숟가락으로 떠서 표고 안쪽에 살짝 바르고 부치면 되죠. 부칠 땐 숟가락으로 꼭꼭 눌러주고요….”
 

 

 

3 후식으로 나온 안동식혜. 밥에 무ㆍ고춧가루ㆍ생강 등을 넣고 엿기름에 삭혀 만든다.

 

 

“시집 와서 30년 동안 한 일이라곤 시어른 모신 것밖에 없다”는 종부는 음식 하나하나마다 한끝 맛을 더하기 위한 과정을 집어넣었다. 흔한 음식, 북어구이도 두 번 구워 차별화시켰다.

“바짝 마른 북어를 물에 푹 적셨다 물기를 꽉 짜내고요. 머리·지느러미 떼내고 뼈 발라 다듬어야죠. 껍질은 그대로 둬요. 껍질 홀라당 벗기면 구울 때 살이 다 갈라져 지저분해지거든요. … 우선 간장·참기름·물을 섞어 삼삼하게 만든 유장(油醬)을 살짝 발라 프라이팬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요. 그 다음엔 고운 고춧가루와 마늘·생강·참기름·설탕·물엿·매실청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구워둔 북어에 발라 다시 굽죠. 고명으론 잣가루를 뿌리고요.”

콩가루를 많이 쓰는 것도 농암 종가 음식의 특징이다. 이날 상에 올라온 부추찜과 쑥국에도 생콩가루가 들어갔다. 해마다 추수철에 흰 콩을 한 가마니씩 사다 놓고 빻아 쓴다.
영천 이씨 농암 종가의 종부. 1년에 16번씩 제사를 지내야 하는, 어깨 무거운 자리다. 종손 이성원(59)씨가 1981년 결혼하기 전 30여 차례 선을 봤을 만큼 종부감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주 양동 회재 이언적(1491~1553)의 후손인 이원정씨는 타고난 종부인 모양이다. 이씨는 “먹을 게 많아 제사가 좋다”고 말했다. “문어·쇠고기·조기·방어·상어·가오리 같은 귀한 음식을 제사 덕에 흔하게 먹을 수 있어요. 커다란 대구 말린 ‘고대포’로 찜도 해먹고, 국도 끓이고…. 다 제사 지내는 덕이죠.”
때마다 제철 재료로 저장음식을 만들어 두는 것도 종부의 일이다. 가죽(참죽의 새순)과 더덕은 고추장 장아찌로, 두릅·곰취·당귀는 간장 장아찌로 담근다.

“일단 물에 북어·다시마·무·파·홍고추를 넣고 푹 끓여 육수를 만들어요. 거기에 간장·식초·설탕을 1대 1대 1로 넣어 간장물을 만들어 달이죠. 이때 청주도 약간 넣어요. 청주가 두릅 잎을 연하게 만들거든요. 끓인 간장물은 잠깐 놔둬 한 김만 나가게 한 뒤 뜨거운 상태에서 두릅에 부어요. 그래야 줄기의 아삭아삭한 맛이 살죠. 어느 정도 익으면 간장물을 따라내 다시 끓여 붓고, 또 다시 끓여 붓고… 이렇게 세 번만 반복하면 절대 곰팡이가 안 피어요.”

섣불리 레시피 묻기가 겁날 정도로 간단치 않은 과정이 이어졌다. “사람 손이 많이 가야 맛있다”는 게 종부의 음식 철학이다. 비교적 쉬운 음식은 더덕장아찌. “초봄에 담갔죠. 더덕을 절반 갈라 두드려서 동량의 물엿에 하루 재워뒀어요. 그러면 숨이 죽고 잠이 들거든요. 그걸 고추장에 버무리면 돼요.”

음력 정월 장 담그기와 초겨울 김장 하기는 종가 밥상의 맛을 지키는 연례행사다. 배추김치는 김장 때 500~600포기씩 담가 1년을 먹고, 물김치는 시시때때로 담가 떨어지지 않게 한다. 열무와 엇갈이 배추가 물김치의 주 재료다.
 


 

4 농암이 1512년 지은 별당 애일당(오른쪽 앞). 애일당 뒤에 보이는 건물은 ‘강각’이다. 강각은 그림과 문헌에만 남아있던 정자인데, 2001~2008년 농암종택을 복원하면서 새로 만들었다.

 

 


소박·담백… 밥상을 닮은 농암의 삶

먹는 게 바로 그 사람이라더니, 농암의 삶도 농암 종가의 담백한 밥상을 닮았다. 중종실록은 “현보의 고향 생활은 담박(淡泊)했다”고 전하고 있다. “한가할 때 이웃 사람을 방문할 경우 걸어가서 만났고, 스스로 농부로 자임(自任)했다”는 것이다. 또 “영달을 좋아하지 않았다”면서 “식자들은 현보를 ‘만족을 아는 지족지지(知足之志)의 식견이 있다’고 했다”고 적었다.
이런 삶의 자세야말로 농암 종가 장수 비결의 핵심이란 게 종손 이성원씨의 해석이다.

“특히 명예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돼요. 돈 욕심 버리는 건 쉽죠. 쾌감도 있거든요. 명예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게 무병장수의 비결이죠.”

체면에 연연해하지 않는 농암의 소탈한 성품은 1533년 ‘애일당구로회’에서 두드러졌다. ‘하루하루 날을 아낀다’는 뜻의 ‘애일당(愛日堂)’은 1512년 농암이 부모를 위해 지은 별당이다. 선친의 나이가 94세였던 1533년, 농암은 이웃의 80세 이상 노인 여덟 명을 애일당으로 초대해 수연을 베푼다. 애일당에 노인 아홉이 모였다 해서 ‘애일당구로회’다. 그 자리에서 농암은 어린아이처럼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춰 노인들을 즐겁게 했다. 그의 나이도 이미 예순여섯. 더욱이 2품 대부의 벼슬을 지닌 양반이었으니, 체통과 허식을 중시했다면 못할 일이었다. 1542년 임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낙향해 강호에 묻혀 유유자적한 만년을 보낸 것도 농암의 욕심 없는 천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후손들의 삶도 담백·소탈했다. 종부 이원정씨는 1998년 작고한 시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검소하고 부지런하셨어요. 평생을 책 읽고 글 쓰며 선비의 삶의 사셨죠.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 몇 번이나 ‘여한이 없다’고 말씀하셨을 만큼 세상 무엇에도 탐욕이 없으셨죠. 음식 앞에서도 그러셨다니까요.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 많아도, 또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늘 정량을 드셨어요. 오죽하면 자식들이 ‘아버지는 저울’이라고 했을까요.”

종택을 지키고 있는 종손·종부의 삶도 욕심을 버려 여유가 있다. 2만여㎡ 부지에 펼쳐져 있는 안채와 사랑채, 별당·정자·사당·서원 등을 관리하며 손님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는 생활이 피곤할 법도 한데, 부부의 표정은 맑고 순하다.
종손은 “부부가 화목하면 힘든 일이 없다”며 그 비법을 알려줬다. “화목하려면 서로 충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상대가 내 욕심대로 되기를 바라지 말라는 뜻이니, 결국 핵심은 ‘욕심 버리기’였다.

 

 

 

5 무청으로 만든 시래기. 매년 11월 초부터 말려 1년 내내 콩가루시래기국으로 끓여 먹는다. 6 장독대. 농암종가의 음식은 이곳에서 4년 이상 묵힌 생간장으로 간한다. 흑미밥·쑥국·부추찜·두릅전·북어·방어구이 한 토막 소박해서 더 귀하다

 

이지영 기자  

 

 

 

 

 

 

 

 

 

 

 

 

 

 

 

 
 첨부파일 : 농암종가 아침밥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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