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고택 발행

                                        <東方의 횃불 三代 그날 그 세월> 책의 서문

 

 

 

 

                                                     서문

 

 

 

퇴계退溪선생은 안동이 배출한 세계적인 학자이다.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고, 조선시대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완성했다. 퇴계의 학문은 당대에 일본에 전해저서 일본유학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은 전 세계 유수한 대학에 ‘퇴계학연구소’가 설립되어 그 연구가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2001년 ‘퇴계탄신500주년기념’의 한 행사에는 퇴계관련서적 수백 권을 모아 고유告由를 한 바도 있다. 퇴계의 학문과 생애는 한국인의 정신사에 커다란 산맥으로 존재하고 있다.

퇴계의 광영은 퇴계에게만 그치지 않았다. 자손들도 번성했다. 문과급제자만 무려 서른 세분이나 된다. 그러니 후손들의 의한 명촌, 명문들이 속속 생겨났다. 그 가운데 가장 빼어난 한 마을이 ‘하계下溪마을’이고, 그 가운데 가장 빼어난 한 가문이 ‘향산 이만도 가문’이다.

향산가문은 문과급제자가 다섯 분, 추서 받은 독립운동가 아홉 분을 배출한 가문이다. 이세사李世師, 이가순李家淳, 이휘준李彙濬, 이만도李晩燾, 이만규李晩煃는 문과에 급제한 분이고, 이만도李晩燾, 이만규李晩煃, 이중언李中彦, 이중업李中業, 김락金洛, 이비호李丕鎬, 이동흠李棟欽, 이종흠李棕欽, 이원일李源一은 독립운동으로 국가로부터 추서 받은 분이다.

안동속담에 “진사 한 장에 양반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었다. ‘진사댁’은 곧 향촌사회 유수의 집을 의미했다. 이는 그만큼 과거가 어려웠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진사합격이 이러하니 문과합격은 바로 명문출현을 의미하는 말과 다름없다. 그런 문과합격자를 다섯 분이나 배출했으니 이 집의 영광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영남 전 지역에 이런 가문이 많지 않다.

‘명문’으로서의 ‘향산가문’은 일제치하에 그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애국충절에서 그 진정한 빛이 났다. 3대에 걸쳐 온 집안이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국가로부터 추서 받은 분만 아홉 분이다. 이 가운데 두 분이 단식 순국하여 전 하계마을을 독립운동의 전진기지로 만드는 도화선이 되었다. 전국을 둘러봐도 이런 가문은 없다. 향산가문의 독립운동은 향산가문을 한국의 명문으로 인식하게 했다.

필자는 일제치하의 인물들을 “부끄러워하는 자와 부끄러움이 없는 자”로 구분하는데, 전자는 독립 운동가이고 후자는 친일파라고 보고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분이 바로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1842-1910) 선생이다. 향산은 ‘부끄러움’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우리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준 분이다. 향산은 24일의 단식斷食 끝에 순국殉國했다. 말이 단식이고 순국이지 그 누가 그런 뜨거운 저항을 할 수 있는가! 단식의 한 단면은 이러하다.

  

 

 "단식 10여일 째, 제자이며 영양 의병장인 김도현이 찾아왔다. 그날 밤, 두 분 방 등잔불은 밤 새 꺼지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다. 날이 밝아 스승이 밥을 먹지 않으니 김도현도 그대로 떠났다. 향산이 ‘잘 가게’하니, 김도현은 '선생님 그럼 쉬 - 뵙겠습니다' 했다."

 

 

1914년, 11월, 7일 김도현은 동해 바다 속으로 영화처럼 천천히 들어가 순국했다. ‘쉬- 뵙겠습니다’는 ‘곧 이렇게 뵙겠다’는 뜻이었다. 그 누구도 그 말뜻을 몰랐지만 두 분만은 알고 있었다. 향산은 선비의 지성적 기개를 온몸으로 보여준 대표적 지식인이었다.

이런 집안의 전통과 정신은 후손인 이동석李東奭 형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동석 형은 그 동안 안동지역의 사회운동에 선도하며 그 청춘을 다 보냈다. 1984년 ‘동기생돕기운동’을 시작으로 ‘평준화교육폐지운동’, ‘경북북부지역도청유치운동’, ‘안동충효비건립’, ‘순국열사추산권기일선생기념비건립’, ‘농암이현보선생시비건립’, ‘하계마을독립운동기적비건립’ 등등의 허다한 일을 했다. 10여년을 끌어온 ‘도청유치운동’은 비록 그 실체적 성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하더라도 동석 형이 보여준 그간의 치열한 행동과 정열은 향산가문의 전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며, 한편으로는 안동의 선비정신을 보여주는 생생한 본보기가 되었다.

동석 형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형은 지금 일제에 의해 방화 소실된 ‘온계선생종택’의 복원사업을 하고 있고, 이미 그 가시적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아마 이런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 동석 형이 최근 향산가문과 관련된 여러 글을 모아 책으로 묶어내는 일을 했다. 하계마을과 더불어 향산가문의 찬란한 자취를 거의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없지 않지만 아무튼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이 다 묶여져 갈 무렵 필자에게 그 ‘서문序文’을 지어달라고 한다. 산간오지에 종적을 묻고 사는 사람에게는 외람된 일이어서 사양했으나 더욱 말씀하신다. 양가兩家의 오랜 세의世誼를 생각해보니 더 이상 못쓴다고는 할 수 는 없는 일이라 이렇게 두어 자 써서 서문에 가늠하고자 한다.

  

                                                                                   2006年 12月

                                                                          文學博士 永川 李 性 源 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