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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연곡개갈시추감록
 글 쓴 이 : 농암종택  등 록 일 : 2020-09-11 오후 4:14:16 조 회 수 :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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永川 李 家系 이야기

2017. 6. 4.

 

연곡개갈시추감록(燕谷改碣時追感錄)

  ...영천이씨 선조인 참의공(參議公)의 신도비를 1525년에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가 짓고,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글씨를 써서 비를 세웠으나, 세월이 오래 됨에 글씨가 마멸되어 알아볼 수 없게 되자,... 未詳 원문 역사/지리 > 한국역사(통사) * 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 『연곡개갈시추감록(燕谷改碣時追感錄)』은 영천이씨 선조인 참의공(參議公)의 신도비를 1525년에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가 짓고,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글씨를 써서 비를 세웠으나, 세월이 오래 됨에 글씨가 마멸되어 알아볼 수 없게 되자, 400여년 뒤인 1893년에 후손들이 비석을 다시 세워 중수하는 과정을 기록한 도서이다. 농암이 비석을 세울 당시의 연유와 선조를 추모하는 시와, 퇴계의 추모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신도비를 다시 세우기 위해 사천재사(沙川齋舍)에서 후손들이 모의 회의를 하여 재원을 각출하고 일을 분담하여, 비석을 세울 돌을 구하고, 퇴계의 글씨로 다시 비석의 글씨를 새기기 위해 퇴계가 쓴 다른 여러 비에서 탁본을 구해오고, 글씨의 크기가 다른 글자는 축소와 확대를 거듭하며 집자를 하는 과정과, 비를 중수하고 후손들이 향사를 올리는 과정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후손들의 추모시도 30여수 기록되어 있다.
    도산문집(道山文集)
      ...아버지는 휘찬(徽燦)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 진연(晉淵)의 딸이다.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이 책은 1969년 아들 윤종(潤鍾)과 문인 이영교(李英敎), 종질 문락(文洛) 등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문집 가운데...
    朴載憲 1969년 원문
    어문학 > 한국고전문학 * 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도산문집』은 조선 말기의 학자 박재헌(朴載憲 ; 1875∼1926)의 시문집이다. 박재헌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국빈(國斌), 호는 도산(道山), 아버지는 휘찬(徽燦)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 진연(晉淵)의 딸이다.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 책은 1969년 아들 윤종(潤鍾)과 문인 이영교(李英敎), 종질 문락(文洛) 등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문집 가운데 「인극도설후서(人極圖說後敍)」에서 조상우(趙相禹)의 심성도(心性圖)를 정양(靜養)이 수정한 것을 다시 수정하여 작성한 것임을 밝히고, 주돈이와 주희(朱熹)의 학설을 절충하여 태극도의 원리와 심성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독율곡집여우계성씨사칠왕복서(讀栗谷集與牛溪成氏四七往復書)」는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이 6년간이나 주고받은 성리에 대한 논변서를 읽고 소감을 밝힌 것으로, 학문에 대한 논변과 비평은 신중을 기해야 하며 논증을 확실히 갖춘 뒤에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자유변(自由辨)」은 근대에 일어나는 자유사상을 악용하여 사설(邪說)이 생기고 기강이 문란해져 전통적인 예절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개탄한 글이다
  • 하암문집(下庵文集)
      ...만사·애사·제문·행장·묘갈명과 부인 영천이씨(永川李氏)의 묘지명 등이 실려있다. 서문은 없고, 6대손 석희(錫羲)의 지(識)가 있다. 행장은 종질 이시수(李蓍秀), 묘갈명은 권상규(權相圭)가 각각 찬하였다.그는 300여편 이상의 많은 한시를 남기고...
    李宗休 1916년 원문
    어문학 > 한국고전문학 * 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 『하암문집』은 이종휴(李宗休 ; 1761~1832)의 시문집이다. 이종휴의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유정(幼禎), 호는 하암(下庵)이다.

    권1에 시 162수, 권2에 시 153수, 권3에 서(書) 60편, 축문 3편, 권4에 제문 29편, 서(序) 3편, 기(記) 5편. 제발(題跋) 13편, 권5에 잡저 9편, 유사 5편, 행록(行錄) 4편, 권6은 부록으로 만사·애사·제문·행장·묘갈명과 부인 영천이씨(永川李氏)의 묘지명 등이 실려있다. 서문은 없고, 6대손 석희(錫羲)의 지(識)가 있다. 행장은 종질 이시수(李蓍秀), 묘갈명은 권상규(權相圭)가 각각 찬하였다.

    그는 300여편 이상의 많은 한시를 남기고 있는 바, 만시와 더불어 주로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작자의 한가로운 심정을 다룬 시가 주류를 형성한다. 권4의 「봉정사덕휘루기(鳳停寺德輝樓記)」와 「귀래정중수기(歸來亭重修記)」등은 문화유적의 내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며, 잡저의 「남행일기(南行日記)」는 1812년 저자가 남행을 하면서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으로 의미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이종휴의 생고(生考)는 효경(孝慶)이며, 생모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적(適)의 따님이다. 뒤에 숙부 홍득(弘得)에게 출계하면서 주생(周生)으로 이름을 고쳤다. 일찍이 중부(仲父)인 동호(桐湖) 이홍저(李弘著)에게 배웠고, 뒤에 남야(南野) 박손경(朴孫慶)에게 수학하였다. 사서(四書)를 기본으로 하고 『심경』·『근사록』·『주자서(朱子書)』·『퇴계서(退溪書)』 등에 잠심하였다. 1783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잠시 성균관에 있다가 곧 귀향하여 부모를 봉양하는 일과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신야선생문집(新野先生文集)
      ...아버지는 관섭(觀燮)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덕상(德祥)의 딸이다. 영천(永川)에서 출생하였다. 1790년(정조 14)에 온릉참봉(溫陵參奉)이 되었고,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사헌부감찰 등을 거쳐 1800년에 형조좌랑·형조정랑, 이어서...
    李仁行 년도미상 원문
    어문학 > 한국고전문학 * 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신야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인행(李仁行 ; 1758∼1833)의 시문집이다. 이인행의 자는 공택(公宅), 호는 신야(新野)·만문재(晩聞齋)·일성(日省), 본관은 진성(眞城)이다.

    이 책은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경위를 알 수 없다. 시는 관직에 재임할 때에 보고 들은 당시 정치·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를 시로 표현한 것, 경포대(鏡浦臺)·죽서루(竹西樓) 등 명승지에 가서 지은 것 등이 많다. 「서연강의」는 1822년에 익위가 되어 세자에게 강의한 내용을 적어놓은 글이다. 서(書)에는 당대의 유명한 문신 또는 학자인 채제공(蔡濟恭)·정종로(鄭宗魯)·류주서(柳疇瑞) 등과 왕래한 것이 많다. 잡저 가운데 「침원만록(寢園?錄)」은 온릉참봉으로 재임할 때에 중종의 비 단경왕후(端敬王后)의 묘인 온릉을 수리한 말을 기록한 것이며,「논고산사민문(論高山士民文)」은 고산현의 백성에게 양자(楊子)·묵자(墨子) 및 서학(西學) 등 이단을 경계하고, 동규(洞規)의 실시에 대하여 칭찬한 글이다. 또한 「변비(邊備)」는 황해도 장연에 재임할때에 변방방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이다. 이 밖에 「이산서원강학소거재절목(伊山書院講學所居齋節目)」·「유불타산(遊佛陀山)」등이 있다. 「서천록」은 1802년에 강세륜의 소와 관련하여 유배된 전말, 유배지에서의 생활 등을 기록한 글이다.

    이인행의 아버지는 관섭(觀燮)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덕상(德祥)의 딸이다. 영천(永川)에서 출생하였다. 1790년(정조 14)에 온릉참봉(溫陵參奉)이 되었고,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사헌부감찰 등을 거쳐 1800년에 형조좌랑·형조정랑, 이어서 고산현감(高山縣監)이 되었다. 1802년(순조 2)에 강세륜(姜世綸)의 상소와 관련하여 유배되었다가 1805년 풀렸다. 1822년에 익위사익위(翊衛司翊衛)가 되었다.
  • 송담선생실기(松潭先生實紀)
      ...아버지는 홍(泓)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영(榮)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총명하여, 처음 세 살 아래인 이황(李滉)의 문인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을 사사하여 사서오경과 제자서에 통달하였다. 27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蔡應麟 1806년 원문
    어문학 > 한국고전문학 * 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 송담실기』는 채응린(蔡應麟 ; 1529~1584)의 시문집이다. 채응린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서(君瑞), 호는 송담(松潭)이다.

    이 책은 채필훈(蔡必勳)이 편집하고, 1806년(순조 6) 7대손 사목(師穆)이 간행하였다. 권1에 시 5편, 권2~3은 부록으로 행장·묘갈명·묘지명·유허비명(遺墟碑銘)과 상량문·봉안문 각 1편, 기문(記文) 2편, 축문 1편, 후서(後序) 2편이 수록되어 있고, 권4는 유보(遺補)이다. 시 중 「소유정(小有亭)」에서는 산과 나무, 물과 들판이 어우러진 거처를 노래하면서 무사태평함을 노래하였고, 「내동서재문간수성(內洞書齋聞澗水聲)」에서는 작은 샘물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마치 달빛 아래 듣는 거문고 소리와 같다고 하여, 맑고 깨끗한 시상을 펼쳤다. 그밖에 고향의 벗을 만나 잔춘(殘春)을 노래하거나, 승경을 찾아가 벗과 더불어 노니는 아취를 읊은 것도 있다. 부록에 실린 「유호리사기(柳湖里祠記)」는 지평 이만운(李萬運)이 지은 것으로, 저자 사후에 이 지방 사림들이 그와 곽재겸(郭再謙)의 도학과 행적을 기려 사우(祠宇)를 세운 경과를 소상히 기록한 내용이다. 이 밖에도 「달류재기(達流齋記)」는 이 지방 유림들이 유호리사를 유호서원으로 개칭하고 후진 교육의 전당으로 활용한 내용이 적혀 있다. 행장은 정범조(丁範祖), 묘갈명은 이윤우(李潤雨), 묘지명은 정종로(鄭宗魯), 유허비명은 채홍리(蔡弘履)가 각각 찬하였다.

    본 문집에 실린 저자의 작품은 권1의 시 5수 뿐이다. 그 나머지는 모두 붕우나 후인들의 글이므로 저자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채응린의 아버지는 홍(泓)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로 영(榮)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총명하여, 처음 세 살 아래인 이황(李滉)의 문인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을 사사하여 사서오경과 제자서에 통달하였다. 27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을사사화 이후 과거에 뜻을 끊고 학문에만 전념하여 후진을 양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괴헌(槐軒) 곽재겸(郭再謙),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등과 왕복하며 학문을 연마하였다. 뒤에 유호서원(柳湖書院)에 제향되었다.
    노노재선생문집(魯魯齋先生文集)
      ...유음(有音)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로 통덕랑(通德郞) 무(茂)의 딸이다. 김엄(金口)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고, 뒤에 김응조(金應祖)의 제자가 되었다. 외증조 이덕홍(李德弘)이 편한 『기선록(記善錄)』에 석의(釋義)를 붙여 간행하였고,...
    金萬烋 1938년 원문
    어문학 > 한국고전문학 * 출처 : 한국국학진흥원 
    『노로재선생문집』은 김만휴(金萬烋 ; 1625~1694)의 시문집이다. 김만휴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일(士逸), 호는 노로재(魯魯齋)이다. 안동출생이다.

    이 책은 1938년 9대손 道源과 悳源 등이 간행하였다. 4권 2책이고, 석인본이다. 권1은 시, 권2는 서(書)·잡저, 권3은 잡저·기(記)·발·찬·잠(箴)·제문·유사·행장, 권4는 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산정(孤山亭)」·「나학동(羅學洞)」·「연대사(蓮臺寺)」·「어풍대(御風臺)」·「총명수(聰明水)」·「치원암(致遠庵)」 등 자연경관을 두고 지은 시는 마치 실물을 보는 듯 묘사되어 있다.

    찬 중 「인심도심장(人心道心章)」에서는 이덕홍의 영향을 받아 『심경(心經)』에 대한 깊은 조예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성도교장(性道敎章)」에서는 성리학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자사(子思)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라는 말에서 성도교장이라고 이름붙였다고 말하고, 성리학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과 선현들의 이론을 토대로 하여 비교, 분석하고 있다. 잡저 중 「태극도론변설(太極圖論辨說)」에서는 자신의 태극도에 대한 이론을 남과 대화하는 형식을 빌려 전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태극 이전에 양(陽)은 어디에 있었으며, 태극 이후에 음(陰)은 어느 곳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선현들도 밝힌 곳이 없다고 하며 “태극이 생기기 전에도 양이란 없지 아니하였고, 태극이 생긴 뒤에도 음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있었다고 지목하여 말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심통성정도설(心統性情圖說)」에서는 ‘심통성정도’는 장횡거(張橫渠)의 말을 정임은(程林隱)이 그림으로 표시한 것이며, 그것에 따라 중도(中圖)·하도(下圖)는 이황(李滉)이 성현들의 격언(格言)을 모아 그린 것이라고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그의 시는 청절기묘(淸絶奇妙)하여 보는 사람의 심금을 상쾌하게 해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집에서 시를 제외하면 상당수가 성리학적 이론에 근거한 김만휴의 박학다식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유음(有音)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로 통덕랑(通德郞) 무(茂)의 딸이다. 김엄(金口)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고, 뒤에 김응조(金應祖)의 제자가 되었다. 외증조 이덕홍(李德弘)이 편한 『기선록(記善錄)』에 석의(釋義)를 붙여 간행하였고, 『대학질의』와 『맹자질의』를 『간재집(艮齋集)』에서 추려내어 4권으로 간행하였다. 1679년 성균관좨주에 임명되었다.
  • 출처 : 영천이씨 후손들이여!
    글쓴이 : 이창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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