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은퇴
14.아! 백성의 이런 고통은 그 연유가 있는 법이다.
- 재야재상, 강호지우, 청백리녹선
■농암종택 소재 마을 어귀-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가송리 마을 어귀, 강 건너 절벽 뒤로 '한국 10대 정자의 하나인 고산정孤山亭'이 있으며, 강 우측길로 내려가다가 모퉁이를 돌아 조금 내려가면 종택, 서원 ,애일당, 강각 등의 건물들이 차래로 나온다.
1. 재야재상
조선후기 재야재상在野宰相은 흔했다. 산림처사山林處士가 임명되었는데, 아예 ‘산림山林’이라 했다. 산림이 정치를 좌지우지 했다. 그래서 ‘10정승보다 1산림이 낫다’고 했다. 정인홍, 송시열은 그 대표적 인물이다. 산림은 조선말기까지 위세를 떨쳤다. 그렇지만 조선전기는 거의 없는 일이었다. 다시 부르는 일도 없었지만 관직 임명은 드문 일이었다. 조선전기 재야재상은 농암이 거의 유일한 인물이 아닌가 한다.
1542년 은퇴 이후, 그해 76세 동지중추부사, 다음해 77세 지중추부사, 79세 자헌대부지중추부사(資憲大夫 정2품 하), 기로소耆老所 입소, 1549년 83세에는 정헌대부지중추부사(正憲大夫 정2품 상), 숭정대부지중추부사(崇政大夫 종1품)의 교지가 연이어 내려왔다. 이어서 금서대와 금포가 내려왔다.
그런데 엄밀히 보면, 농암은 은퇴가 허락된 것은 아니었다. 온천욕의 휴가가 허락되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농암의 은퇴는 이미 국가차원의 전별연을 통해 공식 은퇴한 것이었다. 영원한 휴가가 내려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벼슬이 계속 내려졌고, 상경하라 독촉했다. 휴가기간이 끝났으니 업무에 복귀하라는 의미였다. 사태가 그러하니 사직소를 올릴 수 밖에 없었다. 전후 12번 사직소를 올렸다. 물론 수리된 적이 없다. 사직했지만 사직되지 않았고, 은퇴했지만 은퇴되지 않은 특이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숭정대부지중추부사' 직함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유지되었다. 심지어 88세 죽음의 직전에도 '빨리 상경하라' 는 국왕유서가 내려졌다. '효절공'이라 시호 역시 몰후 2년만에 내려졌다. 역사상 가장 빠른 시호내림의 하나였다. 예우라 하더라도 매우 의례적 현상이었다.
명예는 이어졌다. 농암이 죽자 국왕은 애도 제문과 함깨 치제관을 보냈고, 전 관료들이 추도문(만사, 제문)을 보냈다. 최고의 추모수사를 썼다. 국왕은 이미 "천하대로天下大老요 당세원구當世元龜라" 했지만, 사제문 또한 " "적막한 청사에 소광,소수와 나란히 빛난다(寂寥靑史 二疏齊光)"고 했다.
우찬성 안현安玹은 "높은 명성은 햇빛과 함깨하며 만고에 우주에서 남으리라(高名不與年光盡 萬古長留宇宙間)"했다. 대제학 정사룡鄭士龍은 "소광疏廣의 은퇴처럼 100량의 수레가 따랐고, 도연명陶淵明의 집에는 술이 잔에 넘첬다"고 했다. 첨지중추부사 이황은 "산같이 높고 물같이 맑다(山之巍峩 水之淸冷)"고 했다. 예조판서 홍섬洪暹은 "인간세상에 달존達尊이 있음을 보았다"고 했다. 이조판서 송기수宋麒壽는 "공과 같은 유선儒仙은 다시 없다"고 했다. 호조판서 임호신任虎臣은 "선비들은 다투어 산중재상이라 하고 민간에서는 지상 신선이라(士林爭仰山中相 閭巷皆傳地上仙) " 했다. 지중추부사 류진동柳辰仝은 "산이 무너지고 들보가 부러졌다"고 했다.
부사 송순宋純은 "재주와 덕망이 당년의 진신들 가운데 제일이었다"고 했다. 부사 김희삼金希參은 “문장은 금세今世의 이백李白,두보杜甫요, 낭묘廊廟에서는 시귀蓍龜였다”고 했다. 목사 황준량黃俊良은 "산은 무너질 수 있고(山可砥), 돌도 훼손될 수 있지만(石可毁), 큰 명성을 사라지지 않으리라(大名不墜)"했고, 경기관찰사 정응두丁應斗는 "남극성과 복덕을 다투었고, 우리나라 태산이 무너졌다"고 했다. 참봉 이귀성李龜星은 "덕업은 태산북두같아 천년을 우러러보게 한다"고 했다.
농암은 비록 영감 신분으로 물러났지만 대감도 되었고 결국은 정승반열에까지 올랐다. 숭정대부는 종1품의 부총리에 해당하는 품계이다. 그래서 재야재상이 되었다. 명예를 멀리하니 더욱 큰 명예가 왔다. 농암은 우리에게 행복한 인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교훈을 준다. 그래서 농암이 ’농암선생‘이 되었다.
퇴계에게도 이런 측면이 있다. 끊임없이 사직소를 올렸고, 끊임없이 벼슬이 내려졌다. 사직소는 퇴계 특유의 정치 행위였다. 사직소는 편지였고, 그 편지는 국왕과의 대화창구였다. 소통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퇴계는 편지의 효용성을 진작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대제학에 임명되었고 역시 취임하지 않았다. 국가의 ‘글’을 총괄하는 대제학-문형文衡-이야말로 진정 선망하는 자리이다. 임금이 임명하지 않은 유일한 자리이기도하다. 그가 쓰는 모든 글은 불후不朽의 성사盛事가 되어 역사에 남는다.
학자로 발신한 관료 가운데 그 누가 대제학을 마다하랴. 그래서 인신 최고의 영예는 생전에 대제학大提學이고 사후에는 시호諡號라 했다. 그런 관직을 포기했다. 조선 500년 대제학에 취임하지 않은 단 한 분이 퇴계였다. 명예의 절정에서 명예를 포기했다. 퇴계 역시 우리가 어떻한 인생을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커다란 교훈을 준다. 그래서 퇴계가 ‘퇴계선생’이 되었다.
농암, 퇴계에게 사직과 승진의 반복은 명예욕이 없던 두 분에게는 큰 고통을 주고 있다. 이런 고민을 곳곳에서 토로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간절히 벼슬에서 풀어주실 것을 요청하지만 역으로, 그 간절함이 더욱 붙잡아두는 구실을 했다. 여기 농암의 진솔하고 간절한 소회가 담긴 사직서의 두 구절과 비답을 소개한다.
“신은 산골의 미천한 사람으로 거칠고 서투르며 학식 역시 천박하나,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공부하여 다행히 과거에 급제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버이는 늙고 집은 가난하여 여러 번 간청하여 외직을 맡아 누대累代에 걸쳐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털끝만큼도 보필한 것이 없었으며, 70세가 되어서야 사퇴를 하였으니 욕심 없이 물러 난 절조가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포상해 부르시는(褒召)’ 은명恩命이 어찌 갑자기 멀고 먼 궁벽한 곳에까지 미치는 것입니까? 견마犬馬의 정성을 다해 서둘러 달려가고 싶은 생각 간절합니다만 쇠약한 몸이라 진실로 먼 길을 떠나기 어려워 구중궁궐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니 은혜는 일생을 다해도 갚기 어렵습니다...
전교하기를, '이현보의 덕은 매우 귀하게 여길 만하므로 올라오라 했지만 오지 않으니 내 마음 매우 서운하다. 소장에 지적한 일은 마땅히 유념하여 살피겠노라. 본도는 음식을 갖추어 내려주라.'하였다."
『명종실록』16권, 지중추부사 사직소
“신이 치사致仕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도 이제 10년이나 되었고 천한 나이 85세나 되었습니다. 벌써 3대의 조정을 지나는 동안에 계속 은총을 받아 그 직위가 숭품崇品에 이르렀는데, 초야에서 실직實職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현능한 사람들의 길을 방해해서야 되겠습니까. 비록 녹은 받지 않는다 할지라도 항상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고 여러번 사직하였으나 윤허받지 못하였으니 마음에 미안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은사의 물품을 내리시니 늙어서 초야에 물러난 신은 더욱 황공합니다. 요즈음은 더욱 심하게 쇠약해지니 신을 체직하라고 명하셔서 안심하고 죽음을 기다리게 해주소서...
전교하기를, '경이 초야에 있으면서 그대로 작록을 가지고 있으므로 미안해하지만, 내가 경을 체직시키지 않는 것은 곧 어진이를 높이고 덕을 숭상하는 일이니, 사직하지 말도록 하라.'하였다."
『명종실록』
농암의 전 생애를 지켜본 퇴계는 고봉 기대승에게 쓴 편지에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 고장 선배인 농암 이선생은 나이 75세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와서 89세에 돌아가셨는데,돌아가시는 날까지 중추부의 관직이 제수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매년 한 두 차래 사면을 청했지만, 번번이 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도리어 이따끔 포사의 은전이 내렸으므로, 뒤에는 사면을 청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말씀하시기를, '무익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장 미안함은 은명이 내리심이다, 사면하지 않은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지금 내 몸이 그런 일을 당한 뒤에야 선생의 말이 과연 하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퇴계집』 '기주서시사'
사관은 평은 이렇다.
"지중추부사 이현보가 죽었다. 이현보는 영천永川 사람이다. 약관에 글 읽기를 시작했지만, 글을 지으면 곧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연산조에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었다. 사관은 임금의 말씀과 행동을 기록하므로 엎드려 멀리 있음은 불편하다는 것을 들어 조금 가까이 있게 하기를 계청하였다.
폐주廢主는 마음에 거슬리면서도 그대로 윤허했었는데, 얼마되지 않아 일을 말하다가 뜻을 거슬러 귀양갔다. 중종조에는 여러 관직을 거쳐 사간에 이르렀다. 그 뒤 여러 차례 부모 봉양을 위해 외직外職으로 나갔는데, 부임지마다 명성과 공적이 있었다. 호조참판으로 은퇴하여 고향으로 물러갔다.
중종조와 인종조에 염퇴恬退를 아름답게 여겨 품계를 올려 불렀지만 모두 오지 않았다. 금상조今上朝에도 명소命召했지만 또한 극력 사양하고, 상소하여 논계하니 당시의 병폐를 정확히 지적햇다.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있었으며, 담박하고 욕심이 없었다. 시골에 있을 때에는 일찍이 사사로운 일로 관에 청탁하는 일이 없었다. 오직 유유자적햇으니, 근래에 지조가 완전한 사람으로 이현보를 으뜸으로 친다
○知中樞府事李賢輔卒。賢輔, 永川人。 弱冠始讀書爲文, 爲流輩所推。 燕山朝, 登第爲史官。 以史官記人主言動, 而俯伏在遠爲不便, 啓請稍近。 廢主心咈而且許之, 未幾言事忤旨被竄。 及中廟朝累官至司諫, 其後屢爲便養乞外, 皆有聲績, 以戶曹參判, 退老于鄕。 中廟、仁廟朝, 嘉其恬退, 陞秩召還, 而皆不至。 今上朝命召, 又力辭, 仍上疏論事, 切中時病。 爲人天性孝友, 恬淡寡慾, 居鄕未嘗以私干公, 唯以閑適自娛。 近來能全晩節者, 以賢輔爲稱首。
『명종실록』18권 (1555년 6월 28일, 3번째 기사)
■금서대金犀帶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63호)
1549년 숭정대부지중추부사 교지와 함께 '금서대'(물소뿔과 금으로 만든 관복 띄)와 금포를 받았다.
2. 강호지우江湖之憂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암의 강호생활은 근본적으로 전통유가의 구도적인 경敬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래와 같은 관대이좌冠帶而座하는 모습은 이 무렵 핍박받는 사림집단의 도학주의 사상과 의식화 운동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농암의 은퇴후의 일상을 목격한 퇴계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선생은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정침에 나가 종일토록 거처하였으며, 주렴과 책상이 깨끗하고 춥거나 덥더라도 그러하였다.”
『퇴계집』 ‘농암선생행장’
농암의 다음 시는 '천하중용'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시 내용을 보면 사화의 시기에 대신들로부터 태산북두 처럼 존경받은 바탕이 어디에서 연유하는가를 시사받을 수 있다. 그것은 중용을 온몸으로 체득실천하며 경敬 사상의 생활화에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爾體直兮 可整我儀 내 몸 곧아 바르게 거동하고,
爾容正兮 可整我思 내 얼굴 단정하여 너 생각 바르게 한다.
爾在我手兮 斯須不離 내 내 손에 있어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아,
敬我心 正我容兮 惟爾之功 내 마음을 공경하게 하고 얼굴을 바르게 하는 것은 오직 너 공이다.
操則存 舍則亡兮 與爾爲同 잡으면 있고 버리면 없으니, 너와 더불어 같이 하고자 한다.
『농암집』 천하중용부天下中庸賦
농암의 일생을 목격한 퇴계의 지적처럼, 농암은 스스로 ‘농부’로 자임했으며, ‘일개의 서생’으로 자처했다. 한편 농암은 ‘화산양로연’에 귀와 천을 함께 초청한 기록이 있으며, 가정에서도 ‘자제들과 비복들을 편애하지 않았다’고 했다. 농암의 이런 측면은 당시 사대부들의 일반적 사고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이는 농암이 당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으며, 오늘에도 가치 이월적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농암의 이런 사상과 시각은 애민과 우국에서 멀어질 수 없다. 따라서 농암에게 ‘강호지락江湖之樂’은 자신의 표현처럼 ‘강호지우江湖之憂’의 현실적 문제와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예안향약’의 서문에 퇴계는 “농암 선생의 고민은 실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여 농암이 강호의 풍속이 아름답지 못함을 늘 근심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성균관대의 이민홍 교수의 평은 이러하다.
“농암이 중앙의 경직京職보다 향직鄕職을 원했던 이유 중에 강호에 대한 유다른 사랑과 애착을 지녔기 때문이다. 권력에 연연하기보다는 실재로 민중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지방의 방백이나 수령을 선호했다. 중앙의 당쟁이나 권력투쟁에 대한 혐오감과도 관계가 있다.
농암이 방백이나 수령으로서 선치를 했기 때문에, 민중들로부터 길을 막고 퇴임을 막는 사건들(주: 성주목사 재임 중에 경상도관찰사 김당金瑭의 장계狀啓)에서 농암의 입과 붓이 아닌 행동으로 보인 애민사상을 접할 수 있다. 필화로 나타난 현란한 수사와 말장난은 준렬하게 평가절하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입과 붓의 들랄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왔다. 농암이 대구부사로 재임 중 덕흥서숙德興書塾에서 생도를 교육시키기 위해 봉급을 털어서 비용을 충당한 예가 그것이다. 농암이 봉급을 털어서 교육에 힘쓴 사실로 인해 경내의 주민들이 흠앙했다는 기록은 감동적이다.
당대에 누렸던 농암에 대한 인기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계층을 초월한 흠앙의 정은 계층을 초월한 농암의 인간적 애정에서 나온 것이다.”
‘聾巖詩歌의 理念과 美意識’
이런 농암의 정신은 농암이 안동부 안기역으로 유배되었을 때 유배지에서 쓴 시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其雨其雨日 비야 비야 바라지만 햇빛만 쨍쨍,
天心豈識民心勞 임금이 어찌 백성의 고초를 알리오.
萬口待哺方 수많은 입들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만,
我欲上天天路高 나라도 임금께 아뢰고자 하나 길이 없구나.
嗟玆之旱誠有由 아! 이 가뭄은 진실로 연유가 있는 것,
安得淑問如皐陶 어찌 고도皐陶같은 문옥問獄을 얻으리오.
雲師欲作風伯怒 구름이 일어나고자 해도 바람이 방해하고,
助勢黨惡 音豪 악한들이 무리 지우니 올빼미소리 요란하다.
『농암집』 적중우한謫中憂旱
그리고 중구일(9월 9일)에 쓴 다음과 같은 시는 온통 애민, 우국으로 가득 차 있다.
憂國憂家憂歲歉 나라 걱정 집 걱정 흉년 걱정,
百憂叢裏度炎凉 온갖 걱정 속에 세월을 보낸다.
『농암집』 시詩
이 글들은 농암의 강호문학을 중심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강호지락’과 관련된 시문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졌다. 그러나 농암의 강호문학은 ‘강호지락’과 더불어 애민, 우국의 ‘강호지우江湖之憂’라는 양면적인 측면을 이루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강호지락’의 탈속한 세계의 낭만적 이미지의 이면에는 강호의 선의 세계(사림집단의 존재양상)와 제성의 악의 세계(훈구집단의 존재양상)에 대한 내면적인 긴장이 조응하고 있다.
농암이 79세에 올린 자헌대부상호군 사직소에는 "요순시대에도 정치를 시작하는 처음에 밝게 판단하는 것이 미진한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사가 서로 섞이어 등용이 일관되지 못해 마침내 후회한 일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미 전하께서도 목격한 일입니다. 어찌 경계하지 않을 것입니까" 하며 직언을 하고 있다. '현사의 서로 섞임(賢邪之相混)'이 파행정국의 핵심문제로 선의집단이 악의집단을 축축해야하는 당위가 있다.
‘농암’이란 호가 바로 이런 사상을 집약하고 있다. 퇴계의 ‘이선기악理善氣惡', ‘이기분속理氣分屬'의 이론은 가치와 존재의 측면에서 이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고려대 김흥규 교수가 쓴 농암의 ‘어부가’에 대한 평은 이런 시각을 보여준다.
“맹사성의 ‘강호사시가’는 당대 정치상황을 이끌어간 사대부층의 도덕적, 정치적 낙관주의 안에서 세계를 보았다. 따라서 현실정치의 차원과 강호자연의 사이에는 상호배제의 이념적 단절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반면에 이현보는 두 세계가 공간적으로만이 아니라 심리적, 도덕적으로도 단절되어 있다고 보고, 이 분열이 쉽사리 초극될 수 없음을 노래하였다. 그는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는 시기에 살았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련을 체험하였다.
강호자연은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그가 마침내 정착하게 된 탈정치의 공간이자 부패한 세속의 세계에 대립하는 도덕적 완전성의 영역으로 형상화되었다. 따라서 ‘구버는 천심녹수 도라보니 만첩청산’의 청정한 이미지는 도심과 인심, 선과 악, 정치이상과 정치현실 등 대립적 분할을 전제로 한 비타협적 결의의 완강함과 더불어 이해되어야 한다.”
김흥규, 『강호자연과 정치현실』
이런 시각은 당시 애일당으로 찾아와 만나지 못하고 짧은 시를 남기고 떠난 신재 주세붕의 시 속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若問主人心所樂 만약 주인에게 즐거워하는 바를 묻는다면
一生忠孝兩全哉 일생 동안 충효를 완전하게 하고자 했음일진져!
3. 청백리 녹선
조선시대 청백리淸白吏 관해서는 여러 기록과 연구가 있고, 농암에 관한 글도 있다. 그 가운데, 『두산백과사전』에는 농암을 청백리의 대표적인 인물로 소개했기에 글 그대로 소개한다.
"청백리는 관직수행 능력과 청렴淸廉, 근검勤儉, 도덕道德, 경효敬孝, 인의仁義의 등의 덕목을 겸비한 이상적인 관료상이다. 고려시대부터 청백리제도가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최영崔瑩 등 소수 관료들에서 청백함이 칭송되고 있고, 자식들에게 청백한 관리가 되어 가문의 전통을 이으라고 당부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제도적으로 청백리제도를 운영하였다. 의정부·육조六曹의 2품 이상 당상관과 사헌부·사간원의 수장이 천거하고 임금의 재가를 얻어서 의정부에서 뽑았다. 조선 초, 중기에는 생존자 가운데서 선발하여 염리廉吏로 대우하였고, 후기에는 염리로 녹선錄選되었다가 사망한 자나 사망한 자 가운데서 염명이 높았던 관리를 청백리로 녹선하여 우대하였다. 사림士林이 득세하던 시기에는 청백리 사상이 강화되어 많은 사람이 녹선되었으나, 후기에는 격감되었다. 청백리가 되면 후손들에게 선조의 음덕을 입어 벼슬길에 나갈 수 있는 특전도 주어졌다.
1695년(숙종 21)에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이 청백리를 뽑으면서 살아 있는 경우에는 '염근리廉勤吏', 죽은 후에는 '청백리'라고 호칭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정확히는 명종 대부터 살아 있는 자는 염근리라는 명칭을 붙여 선발했고, 특별한 과오가 없는 한 사후에는 청백리로 녹선하였다.
청백리는 총 217명이 배출되었는데, 맹사성孟思誠, 황희黃喜, 최만리崔萬理, 이현보李賢輔, 이황李滉, 이원익李元翼, 김장생金長生, 이항복李恒福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동장고大東掌攷』,『청선고淸選考』,『전고대방(典故大方』 등에 청백리에 관한 자료가 전한다."
"네 몸 곧아 바르게 거동하고, 네 얼굴 발라 내 생각 바르게 한다"
■금서대金犀帶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63호)
1549년 숭정대부지중추부사 교지와 함께 '금서대'(물소뿔과 금으로 만든 관복 띄)와 금포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