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의 강호풍류(3)
8. 아! 선생은 이미 그 眞樂을 얻었습니다
- 분강촌도, 어부가, 어부가 목판,
■분강촌도
'분강촌도汾江村圖'는 1710년경, 월탄 김창석(月灘 金昌錫 1652-1720)가 그린 '도산도'의 부분이다. 분강촌은 ‘부내(汾川)’라고 부르는 농암의 고향마을이다. 그 산천은 매우 아름다워 농암은 ‘정승도 이 강산과 바꿀 수 없다’ 고 했고, 모재 김안국(慕齋 金安國)은 “부내마을은 그윽하고 산수가 맑고 고와 흡사 도원에 들어가 신선을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까닭에 월탄, 표암 강세황姜世晃 같은 화가가 그림으로 남기고 많은 시인이 노래했다. 지금 이 분강촌은 도산서원에서 1Km의 하류에 위치하나 1974년 안동댐으로 수침지역이 되었다. 도산서원 진입로 입구에서 아래로 보이는 마을이다
- 연세대 도서관 소장-
1. 어부가漁父歌
분강의 귀먹바위(聾巖), 사자바위(獅子石), 코끼리바위(象巖), 자리바위(簟石)로 이어지는 농암의 강호풍류는 드디어 전래의 어부가를 영詠할 수 있고 창唱할 수 있도록 새롭게 창작했다. 농암 서문과 퇴계 발문을 보면 당시 인기를 잃고 망각되어 가는 전래의 어부가가 농암에 의해 다시 음미되고 부활되었다. 농암 나이 83세, 퇴계와 금계 황준량이 적극 참여한 분강의 뱃놀이 풍류에서 창작된 농암의 어부가는 이후 이한진李漢鎭의 속어부사續漁父詞, 이형상李衡祥의 창부사傖父詞등의 허다한 작품에 전승되었고, 드디어 어부가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탄생하게 하였다.
● 어부단가 5장
① 이 듕에 시름 업스니 漁父의 生涯이로다 이중에 시름없으니 어부의 생애로다
一葉扁舟를 萬頃波애 띄워 두고 일엽편주를 만경창파에 띄워 두고
人世를 다 니젯거니 날 가는 주를 알랴 인간세상 다 잊었으니 세월 가는 줄 알리오
②
구버는 千尋綠水 도라보니 萬疊靑山 굽어보면 천길 파란 물, 돌아보면 겹겹 푸른 산
十丈紅塵이 언매나 가롓는고 열 길 티끌 세상에 얼마나 가렸던가
江湖애 月白하거든 더옥 無心하얘라 강호에 달 밝아 오니 더욱 무심하여라
③
靑荷애 밥을 싸고 綠柳에 고기 뀌여 연잎에 밥을 싸고 버들가지에 고기 꿰어
蘆荻 花叢에 배 매야 두고 갈대 꽃 덤불에 배 매어 두었으니
一般淸意味를 어느 부니 아르실고 한결같은 맑은 뜻을 어느 분이 아실까
④
山頭에 閑雲이 起하고 水中에 白鷗이 飛이라 산등성이 구름 일고 물가엔 헤오라기 나는구나
無心코 多情하니 이 두 거시로다 무심코 다정한 것 이 두 가지 뿐이로다
一生애 시르믈 닛고 너를 조차 노로리라 일생에 시름을 잊고 너를 좇아 놀리라
⑤
長安을 도라보니 北闕이 千里로다 서울을 돌아보니 대궐이 천리로다
漁舟에 누어신들 니즌 스치 이시랴 낚싯배에 누워있다 한들 잊은 때가 있으랴
두어라 내 시름 아니라 濟世賢이 업스랴 두어라 내 시름할 일 아니니 세상 구제할 현인이 없으랴
● 어부장가 9장
①
雪鬢漁翁이 住浦間 自言居水ㅣ 勝居山이라 하노라 겟가에 사는 백발 어부 말하기를
배 띄라 배 띄라 早潮纔落晩潮來 하는구나 물가에 사는 것이 산속에 사는 것 보다 낫고 말고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倚船漁夫이 一肩이 高로다 배 띄워라 배 띄워! 아침 밀물 다 빠지면 저녁 밀물 밀려온다
찌그덩 찌그덩 엇-샤!
뱃전에 기댄 어부 한쪽 어깨가 높아지누나
②
靑菰葉上애 凉風起 紅蓼花邊白鷺閒이라 푸른 수초 잎 위에 바람이 일어나고
닫 드러라 닫 드러라 洞庭湖裏駕歸風호리라 붉은 여귀 꽃가엔 헤오라기 한가롭다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帆急前山 忽後山이로다 닻 올려라 닻 올려! 산들바람 타고 아름다운 호수로 돌아가지
찌그덩 찌그덩 엇- 샤!
돛대가 앞산을 빠르게 지나니 벌써 뒷산이로구나
③
盡日泛舟烟裡去 有時搖棹月中還이라 종일토록 배를 띄워 물안개 속으로 들어갔다가
이어라 이어라 我心隨處自忘機라 삿대 저어 달밤에 돌아오도다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鼓枻乘流無定期라 저어라 저어! 내 마음 가는데 따라 만사를 잊으리라
찌그덩 찌그덩 엇-샤!
돛대 두들기며 정처없이 흘러가노라
④
萬事無心一釣竿 三公不換此江山라 만사 무심히 낚싯대에 뜻을 두니
돗 디여라 돗 디여라 山雨溪風捲釣絲라 정승도 이 강산과는 바꿀 수 없네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一生蹤迹在滄浪라 돛 내려라 돛 내려! 산야에 비바람 치니 낚싯줄 거두리라
찌그덩 찌그덩 엇-샤!
평생 자취가 푸른 물결에 있도다
⑤
東風西日楚江深 一片苔磯萬柳陰이라 봄바람 석양에 남녘 강물 깊은데
이퍼라 이퍼라 綠萍身世白鷗心라 이끼 낀 조각 낙시터엔 버드나무 그늘졌네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隔岸漁村三兩家라 읊어라 읊어! 부평초 신세 헤오라기 마음이여
찌그덩 찌그덩 엇-샤!
언덕 넘어 어촌엔 초가 두 셋 집
⑥
濯纓歌罷汀洲靜 竹逕柴門을 猶未關라 탁영가 노래 그치고 모래톱 고요한데
배셔여라 배 셔여라 夜泊秦淮近酒家로다 대밭 오솔길 아직 사립문이 닫히지 않았구나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瓦甌蓬底獨斟時라 배 세워라 배 세워! 밤에 남쪽 포구에 배를 대니 주막이 가깝구나
찌그덩 찌그덩 엇-샤!
배 바닥에서 질그릇 사발로 홀로 술을 머실 때로세
⑦
醉來睡著無人喚 流下前灘也不知로다 취해서 잠들자 불러주는 이 없어
배 매여라 배매여라 桃花流水鱖魚肥라 여울로 배 떠내려 갔어도 알지 못했어라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滿江風月屬漁船라 배 매어라 배 매어! 복사꽃 흐르는 물에 쏘가리 살찔 때라
찌그덩 찌그덩 엇-샤!
강 가득 바람 달에 배 붙어 두자꾸나
⑧
夜靜水寒魚不食거늘 滿船空載明月歸라 밤 고요하여 물결 차가우니 고기 물리지 않아
닫 디여라 닫 디여라 罷釣歸來繫短蓬호리라 온 배 가득 달빛만 싣고 돌아오네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風流未必載西施라 닻 내려라 닻 내려! 낚시 마치고 돌아와 다북쑥에 배 매어두자꾸나
찌그덩 찌그덩 엇-샤!
풍류에는 서시같은 미인을 태우지 않아도 좋을씨고
⑨
一自持竿上釣舟 世間名利盡悠悠라 한번 낚싯대 들고 배에 오르면
배 브텨라 배 브텨라 繫舟猶有去年痕이라 세상 명예와 이익은 아득히 멀어지나니
至匊怱 至匊怱 於思臥 欸乃一聲山水綠라 배 붙여라 배붙여! 배를 매고보니 지난 해 흔적이 여전하구나
찌그덩 찌그덩 엇-샤!
어기야 소리에 강산은 더욱 푸르러 가네
『농암집』 어부가漁父歌
농암의 어부가 서문의 일부는 이러하다.
“ 어부가 2편은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늙어서 강호로 물러나 마음이 한가하고 일이 없어 고인의 글을 모아 읊조리던 중, 노래부를 수 있는 시문 몇 수를 비복에게 가르쳐 때로 듣곤 하였다. 아들 손자들이 늦게 이 노래를 얻어 보이기에 살펴보니 노래말(詞語)이 한적하고 의미가 심원하여 읊조리니 사람으로 하여금 공명에 초월하게 함이 있고, 표표하고 아늑한 것이 탈속의 경지가 있었다. 이를 얻은 후에는 전에 감상하던 모든 가사는 버리고 오로지 여기에만 뜻을 두었다. 손으로 필사하여 꽃피는 아침과 달뜨는 저녁에 술잔을 잡고 벗을 불러 분강의 조각배 위에서 ‘영詠’하게 하면 흥미가 더욱 참되어 권태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다만 그 가사의 말이 불륜스럽고 중첩됨이 많음은 전해지는 과정에서 와전됨이 있었을 것이다... 이에 개찬하여 일편 12장 가운데 3장을 버리고 9장으로 장가를 만들어 영詠할 수 있게 하고, 일편 10장은 단가 5장으로 지어 창唱하도록 하여 합하여 ‘새로운 곡(新曲)’을 이루게 했다.
『농암집』 ‘어부가서漁父歌序’
퇴계의 어부가 발문 일부는 이러하다.
“전에 안동부의 늙은 기생이 어부가의 노래에 능통하여 숙부 송재 선생이 이 노기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여 수연을 돕게 한 적이 있다. 그때 기뻐서 그 대개는 기록해 두었으나 전조를 얻지는 못하였다... 그 후 서울에서 이 곡을 두루 찾았으나 비록 늙은 창기娼妓라도 이 곡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것으로 이 곡을 알고 좋아하는 자가 없음을 알았다. 이 사이 밀양의 박준朴浚이란 자가 이런 음악에 이름이 있어 속아俗雅의 구분 없이 모아 책으로 엮었는데, 그 속에 이 ‘어부가’와 ‘쌍화점’ 여러 곡이 함께 실려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저것(쌍화점 여러 곡)을 들으면 수무족답手舞足踏하고, 이것(어부가)을 들으면 권태로와 잠이 오는데 이는 웬 일인가?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그 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그 즐거움을 알 수 있으리오.
우리 농암 선생은 벼슬을 버리고 분수가로 염퇴했다. 부귀를 뜬구름처럼 여기고 회포를 물외物外에 붙였다. 항상 조각배를 타고 물안개 낀 강 위에서 즐겁게 읊조리거나 낚시 바위 위를 배회하며, 물새와 고기를 벗하여 망기지락忘機知樂했으니, 그 강호지락江湖之樂의 진眞을 터득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를 바라보면 그 아름다움은 신선과 같았다. 아! 선생은 이미 그 진락眞樂을 얻은 것이다.”
『도산전서』 서어부가후書漁父歌後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서문의 일부는 이러하다.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어부사’가 있었는데 누구의 작품인지 몰랐다. 어부사는 옛 시의 구절들을 모아 이루어놓은 것이었다. 그것을 읊으면 갑자기 강에 바람이 일고 바다에는 비가 와서, 사람으로 하여금 표표飄飄하여 유세독립遺世獨立의 정서가 일어났다. 이런 까닭으로 농암 선생께서 좋아하셨으며, 퇴계 선생께서도 탄상해 마지 않으셨다.”
『고산유고』 어부사시사발漁父四時詞跋
윤선도(尹善道 1587-1671) : 자 인지仁之, 호 고산孤山, 동부승지, 시호 충헌忠憲
5. 어부가 목판-사진
․어부가 목판 글씨는 퇴계의 친필이다. 퇴계는 농암의 어부가와 자신의 ‘도산12곡’에 발문을 각각 써서 남겼다. 도산서원에서는 이를 합하여 『도산가사陶山歌詞』라는 책을 간행한 바 있는데, 영남의 강호문학은 이와 같은 농암과 퇴계의 상호관련을 배경으로 형성되었다. 위의 글씨는 퇴계가 남긴 유일한 국문글씨로 그 필체가 돋보인다.
一葉片舟를 萬頃波에 띄워 두고 온 배 가득 밝은 달만 싣고 돌아오네
3. 분강의 암각서
분강에는 '분천汾川’을 비롯하여 벽오碧梧, 환암串巖, 행암대杏巖臺, 행암유원杏巖遊園, 강산명월江山明月, 청암靑巖, 전평前坪, 쌍암雙巖, 영지동천靈芝洞天, 광현廣峴 등의 암각서가 있다. 쌍암에는 옆에 ‘임오 6월’이라는 제작 년 월을 써 놓았다. 농암선생정대구장聾巖先生亭臺舊庄은 도산면 가송리로 옮겼다.
<더 읽어보기>
문화관광부 선정
2001년 7월의 문화인물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 / 조선 중기의 문신
선정배경
문화관광부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강호문학의 선구자인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 1467∼1555) 선생을 7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생애 및 업적
농암(聾巖) 이현보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암가(聾巖歌)」,「어부가(漁父歌)」같은 국문시가를 창작하거나 개작하여 영남가단을 창시한 인물이다. 그는 연산군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연산군 - 중종 - 인종 - 명종 등 4대를 섬기면서 무려 44년(32세에서 76세까지) 간이나 벼슬아치로 봉직하였다.
이 기간 동안 주로 외직을 자청하여 아홉 고을의 수령과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는데 치적이 우수하여 여러 차례 포상을 받았으며, 청렴 결백하여 청백리로 선발되기도 하였다. 그는 외직을 역임하는 동안 향토에 기반을 둔 사대부 계층의 향촌 자치기능 강화에 역점을 두고 고을을 다스렸는데, 벼슬에서 은퇴한 뒤에는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처사적(處士的) 삶의 방식을 개발해 내는데 몰두하여, 후배인 이황이나 이황의 제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강호생활(江湖生活)의 풍류(風流)를 즐기는데는 읊기만 하는 한시 보다도 노래로 부를 수 있는 국문시가가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스스로 「효빈가(效嚬歌)」,「농암가」,「생일가」같은 단가(당시는 아직 시조창이 나오기 이전이므로 시조라는 명칭이 없었음)를 짓기도 하였다. 또한 83세 때 잊혀져 가던 「어부가」(12장)를 재발견하여 이를 개작하였는데, 이현보에 의하여 개작된 「어부가」(9장)는 흔히 농암 「어부가」로 불리며 조선후기의 한국문화(문학과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원래 중국의 악부시(노래로 부를 수 있는 시)인 사(詞)에서 유래한 기존의 「어부가」(12장)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사(詞)와 함께 사라져 가고 있었는데 이현보는 이를 재발견하고 다듬어 놓음으로써 「어부가」가 우리나라 노래인 장가(당시에는 가사를 장가, 시조를 단가라고 불렀다)로 재창조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이다. 이 농암 「어부가」는 뒷날 궁중의 무용극인 정재(呈才)에서부터 민간의 뱃노래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불려졌고 조선말엽에는 십이가사(십이잡가라고도 함)의 하나인 「어부가(일명 어부사)」로 정착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요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현보는 또 기존의 어부단가 10장을 5장으로 개작하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이현보에 의하여 다듬어 진 「어부가」(「어부단가」와 구별하기 위하여 「어부장가」라고 부르기도 함)와 「어부단가」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이중경(李重慶)의 「오대어부가(梧臺漁父歌)」, 이형상(李衡祥)의「창부사( 父詞)」, 이한진(李漢鎭)의 「속어부사(續漁父詞)」, 신재효(申在孝)의「어부사」같은 작품의 창작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쳐서 조선 후기 문학사에서 「어부가」라는 하나의 작품 계열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현보의 국문시가 작품들이 영남의 후배들에게 국문시가의 필요성을 일깨워 줌으로써 이황에 의하여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창작으로 계승되고, 다시 이황의 제자인 권호문(權好文)의 「독락팔곡(獨樂八曲)」과 「한거십팔곡(閑居十八曲)」, 이숙량(李淑樑)의 「분천강호가(汾川江湖歌)」의 창작으로 이어져 내려가면서 국문학사에서 영남가단이라고 불리우는 국문시가 창작의 전통으로 확립되어, 송순 - 정철 - 윤선도로 이어지는 호남가단과 함께 조선후기 한국문학을 풍성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농암 이현보의 생애와 문학 조명한다
한국문학
어부가
[ 漁父歌 ]
| 구분 |
고전시가 > 가사 |
| 저자 |
이현보 |
| 창작연대 |
1549 |
| 원문 수록 |
농암집 |
작품해설
어부가는 이현보(李賢輔)의 문집인 ≪농암집(聾巖集)≫ 가사편(歌詞篇)에 수록되어 있다. <효빈가(效嚬歌)>와 <농암가(聾巖歌)>, <생일가(生日歌)>가 서문을 붙여서 앞에 있고, 뒤에는 유명한 <어부장가(漁父長歌)> 9수와 <어부단가(漁父短歌)> 5수가 실려있다. 이들은 당대의 유행 곡조였던 시조(時調)로 가창되었던 노랫말이다. ≪농암집≫에서 이를 가사(歌詞)라고 이름한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그는 산수(山水)를 특히 좋아하여 죽장망혜(竹杖芒鞋)로 산림을 헤매고 산을 오르며 분강(汾江)에 배를 띄우고 당대의 명사들과 어울려 시를 짓고 노래 부르기를 즐겨했다. <어부가> 양편(兩篇)은 이 같은 그의 강호생활을 솔직하게 반영한 노랫말이다. <원어부가(原漁父歌)>는 두편으로서 그의 손자사위인 황준량(黃俊良) 등이 구해서 바친 것으로 <어부장가> 12장은 9장으로, <어부단가> 9장은 5장으로 산정(刪正)했다. 농암은 이들 어부가는 성현의 경전이 아닌데다가 언어의 난삽하고 뜻이 중첩되기 때문에 산정한 것이니 독자들은 허물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어부장가> 9장은 한시에다 토를 단 것으로, 중국 시인의 악부체(樂府體)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작품으로서는 이인로(李仁老)와 이제현(李齊賢) 등의 싯귀가 간혹 들어있다.
<어부가> 양편의 완성년대는 그의 나이 83세인 1549년으로써 만년의 작품이다. 농암의 어부장가는 농암과 농암 주변의 인물들이 분강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하면서 함께 불렀던 노랫말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어부가> 산정에 퇴계(退溪)가 깊이 관련했는데, 이는 <어부가>가 농암 이후 남인계(南人系)의 대표적 가요로 자리잡은 원인이 되었다. 16세기 이후 남인계의 대표적 가요는 <어부가>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이고 서인계(西人系)의 주된 가요는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였다. <어부장가> 9장은 음영(吟詠)으로, <어부단가>5장은 창(唱)으로 주로 활용되었다. <어부가>는 세속을 벗어나 부귀공명 등의 일들을 뜬구름처럼 인식하는 물외한적(物外閒適)이 주된 모티프이다. 이는 자칫 세간의 비난을 받을 소지가 많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도 <어부가>계열인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와 관련된 강호생할에 대해 비방을 받은 바있다. 농암도 이 같은 현실을 의식했던 듯하다. 그리하여 그는 <어부단가> 종장(終章)에서 “장안(長安)을 도라보니 북궐(北闕)이 천리로다. 어주(漁舟)에 누어신달 니즌스치 이시랴, 두어라 내시름 아니라 제세현(濟世賢)이 업스라.”라고 노래했다. 강호에서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그린 <어부가>와 왕이 계시는 북궐은 어울리는 말이다. 몸은 비록 강호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나라를 생각하고 임금님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밝힐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어부가>는 농암에 의해 재평가된 작품이 있다.
이는 당시의 귀거래(歸去來) 풍조와 어울려 사대부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야기시켰다. 향리(鄕里)에서 일정한 경제적 기반을 향유한 사대부들이 벼슬길에서 얼마만큼의 명예를 얻은 후 고향으로 돌아와 마치 신선(神仙)같은 강호생활을 누리는 것이 당대의 팽배한 풍조였는데, 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어부가>류의 작품이 자연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어부장가> 중의 “세상의 모든 일 떨쳐버리고 낚싯대를 드리우니, 삼공(三公)도 이 강산과 바꾸지 않겠다. 산 기슭 비내리고 냇물에 바람일어 낚싯줄은 마는구나. 일생의 종적을 창랑(滄浪)에 붙였다. (萬事無心一釣竿, 三公不換此江山, 山雨溪風捲釣絲, 一生蹤跡在滄浪)” 등의 시상은 당대의 사인(士人)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퇴계는 <서어부가후(書漁父歌後)>에서 <어부가>를 자신도 소시부터 좋아했다고 밝히고 <쌍화점(雙花店)> 등의 당시 유행 음악인 속요와 대비시켜 진성(眞聲)이라고 평했다. 퇴계가 <어부가>를 강호의 진락(眞樂)과 관련된 좋은 음악(眞聲)으로 단정한 것은 <어부가>에게는 크나큰 영광이었다.
농암은 <어부가>를 얻은 후 이를 ≪농암야록(聾巖野錄)≫으로 명명했다. 농암이 어부가와 어부단가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묶은 것은 음영과 창을 함께 중시하여 이를 겸비하겠다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어부가>의 미의식(美意識), 즉 품격(品格)은 ‘한적(閒適)’이다. 티끌세상에서 벗어나 부귀공명 등을 초개처럼 여기는 물외진락(物外眞樂)을 형상한 작품으로서 1549년 창작된 후, 16세기 이후의 대표적인 사대부가요(士大夫歌謠)로 자리를 굳혔다.
- 저자
- 권영민 | 교수
- 1948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버클리에서 한국문학 초빙 교수를 역임했다. 1990년 현대문학평론상, 1992년 김환태평론상, 2006년 ...자세히보기
| 교과단원 |
국어(상), Ⅵ. 노래의 아름다움, Ⅵ-2 어부사시사 |
1. 교과서 속 주개념
어부가
어부가(漁父歌)는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세속적 가치를 좇지 않는 삶을 노래한 작품을 말한다. 어부가의 ‘어부(漁父)’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부(漁夫)와 달리 어업에 종사하며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세속을 떠나 자연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은일지사(隱逸志士)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어부가〉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고려 때의 작자 미상의 가사에서이다. 충목왕 이전에 만들어진 듯하며, 어부의 생활을 읊은 속요로서, 《악장가사》 〈가사(歌詞) 상(上)〉에 수록된 24편 중에 들어 있다. 〈어부가〉는 모두 12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형식은 각 수가 6절로, 절은 4구나 3구 또는 2구로 이루어져있다. 각 연은 운자(韻字)나 평측(平仄)에 관계없는 한국과 중국의 7언 한시(七言漢詩) 4구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1, 2, 4, 6절은 칠언에 한글로 토를 달고, 3절과 5절에는 일종의 후렴인 ‘이어라 이어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닫 드러라 닫 드러라’ 등의 조흥구를 넣었다.
이 노래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문인들이 즐겨 읊었는데, 조선 명종 때 이현보가 이를 9수의 장가(長歌)와 5수의 단가(短歌) 각각 다듬어 개작하게 된다. 이현보는 《악장가사》의 〈어부가〉 12장과 다른 〈어부가〉 10장이 말이 많고 순서가 정연하지 못하고 중첩이 있는 것을 옮겨 쓰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전자는 3장을 제거하여 9장으로 장가(長歌)를 지어 읊을 수 있게 하였고, 후자는 축약하여 단가(短歌) 5결(价 : 곡을 이르는 말)로 짓고 엽(葉)을 하여 창(昌)으로 부를 수 있게 하였다. 한글토를 생략하고 ‘지곡총 지곡총 어嗜와 어嗜와’를 ‘지곡총 지곡총 어사와’로 축약하였으며, 일부 행의 삭제와 첨가, 장의 배열 순서나 가사의 일부를 바꾸거나 삭제하기도 했다.
이현보의 〈어부가〉 혹은 〈어부사〉는 《농암집》에 실려 있으며 자연을 벗하는 풍류적인 생활을 동경하며 자연에 은거하는 어부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끊임없이 나타난다는 데서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를 엿보게 하기도 한다.
이후 효종 때 윤선도는 이현보의 〈어부가〉가 ‘소리가 서로 응하지 않고 말뜻이 잘 갖추어지지 못하였으니, 대개 옛 글을 모으는 데에 얽매였던 관계로 옹색해지는 결함을 면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하며 순수한 우리말만으로 이루어진 시조 〈어부사시사〉 40수를 지어 내놓는다.
〈어부사시사〉는 춘하추동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시상이 전개되고 있으며 각 10수씩, 총 40수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마다 삽입되어 있는 여음(餘音)은 출범에서 귀선까지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조리 있게 보여준다. 먼저 배를 띄우고, 닻을 들고, 돛을 달아놓고 노를 저으며 노래를 읊는다. 그러다가 돛을 내리고 배를 세우고, 배를 매어 놓고, 닻을 내리고, 배를 뭍으로 붙여놓는 것으로 여음이 짜여 있다. 적절한 후렴구가 흥취를 돋으며 사실감을 부여하고 있고, 대구, 반복, 의성법 등의 다양한 표현 기교를 구사하고 있다. 〈어부사시사〉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매우 잘 살리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여유와 흥취를 말하면서 자연과 인간 사회의 조화와 합일을 추구하고 있다.
2. 확장 개념
동아시아 문학에서의 어부(漁父)
앞서 말했듯이 어부(漁父)는 어업을 생계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강태공처럼 자연을 즐기고 세월을 낚는 은사를 나타내는 말로, 취미로 고기잡이를 하는 풍류객을 의미한다. 따라서 생계에 대한 불안이나 어려움 등은 나타나지 않고 자연을 관조하고 완상하며 즐기는 사대부의 입장에서 관찰자나 유람자로서 어부의 생활을 노래하고 있다.
어부와 관련된 소재는 동아시아 문학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고 작품 또한 다양하다. 어부에 관련한 소재로 처음 글이 쓰여 진 것은 전국시대 《초사》에 실린 굴원의 〈어부〉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어부에 관련된 한시들이 많이 있는데 김극기의 〈어옹〉이나 이규보의 연작시인 〈어부〉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