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으로의 귀향 

5. 聾巖에 올라보니 老眼이 猶明이로다

- 분강, 농암, 농암가, 농암각자

 

 

 

 

 

 

  

■분강과 농암 - 도산서원 하류( 안동시 도산면 분천리)

 

도산서원 하류를 구비치는 강이 분강이고, 가운데 커다란 바위가 농암이 인취하여 자호로 삼은 귀먹바위- 농암이다. 강 가운데 바위가 코키리바위이고 그 아래 사지바위가 있지만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다. 강건너 자리바위-점석이 하얗게 보인다. 귀먹바위 좌측 바위층에 농암각자가 있었고, 그 위로 애일당이 있었지만 안동댐에 수침되면서 원형이 사라졌다. 바로 이곳이 농암이 농암가, 어부가를 지은 문학현장이기도 하다.

사진은 댐 호수물이 빠진 2014년 5월 어느날 모습으로 꺽지, 쏘가리 낙시꾼과 강 건너 저 멀리 시사단과 도산서원 입구가 보인다.

 

  사진-농암바위만 크게 확대 

 

1. 농암가聾巖歌

 

1542년 10월, 고향(안동시 도산면 분천리)으로 돌아온 농암은 고향 강변 분강의 귀먹바위 ‘농암聾巖’에 올라 감격적인 시조 한 수를 읊었다. 그 시조가 ‘농암가’이다.

 

 

聾巖애 올라보니 老眼이 猶明이로다                                 농암에 올라보니 노안이 더욱 밝아지는구나

人事이 變 山川이 가가                                       인간사 변한들 산천이야 변할까

巖前에 某山 某丘이 어제 본  예라                              바위 앞 저 산, 저 언덕 어제 본 듯 하여라

   

  

“농암 늙은이 오랜 벼슬길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와 농암에 오르니 영위令威의 감회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옛날 놀던 자취가 의연하여 이 노래를 짓는다”

『농암집』 가사歌詞

 

* 영위의 감회 : 정영위丁令威가 영허산靈虛山에서 선술仙術을 배워 천 년만에 학이 되어 고향을 찾아온 감회로, 오랜 시간이 지나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이제 티끌세상을 벗어난 기쁨을 뜻한다.

 

  

2. 농암聾巖, 분강汾江

 

농암은 농암, 분강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바위는 원래 이름이 없었다. 속언에‘귀먹바위(이색암耳塞巖)’라 했다. 바위 앞 큰 강이 상류의 빠른 물살과 합류하여 향응하며 사람들의 귀를 막아버리니 정녕, 귀먹바위의 이름은 이로써 유래한 것인가. 은둔하여 승진과 좌천에 달관한 은자가 산다면 진실로 어울리는 곳이다. 이런 까닭으로 이 바위를 ‘농암’이라 하고, 늙은이가 스스로 자호로 삼았다...바위 위에 대臺가 있고, 대 위에 또 대가 있어서 마치 층탑과 같다. 소나무 그림자 드리운 작은 돌사다리로 사람들이 한번씩 숨을 몰아쉬고 올라갔다. 북쪽은 높은 산에 의지해 있고, 서쪽은 구름에 닿을 듯, 긴 숲이 무성하게 감싸 안았다. 동쪽은 긴 강이 유유히 흐르는데, 멀리 청량산으로부터 만학천봉 사이를 구비 돌아 반나절 정도 흘러와 ‘관어전官魚箭’에 이른다. 그 빼어난 모습은 긴 성과 같고, 그 앞에서는 충격으로 아래에 깊은 소(沼)를 이루는데, 이 소를 ‘별하연別下淵’이라 한다. 소는 절벽을 베개로 하는데, 절벽 위에는 ‘병풍암屛風庵’이라는 옛 암자가 있다. 좌우로 기암괴석이 뾰족한데 그 그림자가 소에 떨어져 쳐다보기조차 어렵다. 이곳으로부터 물결은 점점 완만해져서 그 모습이 징홍청격澄泓淸激의 경계를 이룬다. 이 물굽이가 농암 아래에 이르면 넓고 가득하게 퍼져 조그만 배를 띄우고 노를 저을 수 있게 되는데, 이를 ‘분강(汾江)’이라 한다. 강 가운데 반석이 있는데 마치 비단자리와 같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점석簟巖’이라 한다.

『농암집』 ‘애일당중신기愛日堂重新記’

 

 

*관어전官魚箭: 분강 상류, 지금 도산서원 주차창 아래 강가의 여울에는 예안관아에서 은어를 잡기 위해 어망을 설치해둔 것이 있었다. 예안관아 부근에 '석빙고(보물 305호)'가 있어 잡은 은어를 보관했고, 수시로 나라에 올렸다. 은어공급은 이곳 고을원의 주요 임무였다. 

 

 

  

 

3. 농암각자聾巖刻字(경북 유형문화재 43호)

 

분강의 기슭에는 예로부터 ‘귀먹바위-이색암耳塞巖-’라고 불리는 무명의 바위가 있었다. 농암은 이를 인취引取하여 자호로 삼고, 이 바위 옆 자연암석 위에 ‘어버이 살아 계시는 날을 아끼는 집’이란 뜻의 애일당愛日堂이란 집을 지었다. 그 후 낙동강 범람으로 애일당이 유실되자 그 위로 대를 쌓아 올려짖고 이 자연암석에는 기념으로 '농암聾巖 선생先生 정대亭臺 구장舊庄’이라고 따로따로 조화롭게 음각했다.‘농암 선생 정자 옛 터’라는 뜻이다.

한말 진사進士 이강호李康鎬의 글씨로 한 글자의 크기가 75cm가 되는데, 이와 같은 큰 암각서는 다른 곳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어렵다. 댐으로 수몰위기에 처하자 농암 바위는 그대로 두었고, 이 암각서는 글자 부분만을 절단하여 옮겼다. 농암이 이 귀먹바위에 올라 지은 시조가 유명한 ‘농암가’다.

 

 사진-농암 선생 정대 구장

 

"은둔하여 관직의 승진과 좌천에 달관한 은자가 산다면 진실로 어울리는 곳이다"

 

 

 

<더 읽어보기>

 

 

 

                     -연구 교수 논문 일부

 

 작품 분석
  

 

1) 농암가

聾巖 (농암)애 올라보니 老眼 (노안)이 猶明 (유명)이로다.
人事(인사)이 變(변)한들 山川(산천)이 똑 가샐가
巖前(암전)에 某水某丘(모수 모구)이 어제 본 닷하예라.

농암에 올라보니 노안이 유명이로다.
인사가 변한들 산천이야 가실까.
암천의 모수모구가 어제 본 듯하여라.

인사에 휩쓸려 어두워진 늙은이의 눈이 변하지 않는 산천을 돌아보니 다시 밝아진다고 했다. 그동안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물이고 언덕이고 어제 본 듯한 느낌이라고 해서 변화를 다시 부정했다. 나아가서 세상일에 휩쓸리려는 것은 힘이 들고 노쇠를 자초하는 짓이니 그만두고 물러나 자연과 일체를 이루어야 자기 발견의 흥취를 맛본다고 하는 뜻을 적절하게 나타냈다.
삶에는 두 국면이 있다는 것을 “인사”와 “산천”이라는 말로 나타냈다. 인사는 시간의 흐름을 좇아 살아가는 이해상충의 영역이다. 산천은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서 움직이지 않는 적연부동(寂然不動)의 경지이다. 앞의 것에서 뒤의 것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산천을 찾는 것이 구도의 길임을 명확하게 해서, 이 작품 한 편으로 강호가도를 이끄는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각기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세 줄의 상관관계를 살피는 놀라운 원리가 있다. 첫째 줄에서 늙은 눈이 오히려 밝아진다고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다. 종결어미가 단정이어서 의문이 더 커지게 한다. 둘째 줄에서 산천을 바라보니 눈이 다시 밝아진다는 이해할 수 있는 역설이다. 종결어미가 반문이어서 쉽게 수긍하지는 않게 한다. 셋째 줄에서 노인의 지혜를 갖추어야 시간의 경과를 넘어선다는 의미가 심화된 역설이다. 종결어미가 감탄이어서 발견의 감격에 동참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