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선생 유적지_분강촌 ::::::::: 농암종택

분강가단의 풍류와 후대의 수용

최 재 남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 서언

2. 분강가단 풍류의 성격과 그 계승

3. <어부가> 현장 흥취의 후대 수용

4. 소결

<요약문>

본 논문은 이현보가 분강을 중심으로 <어부가>를 산정하고 뱃놀이를 즐겼던 생활을 분강가단이라 명명하고 그 현장의 흥취 혹은 풍류를 정리하고, 후대에 이러한 분위기를 수용하는 양상을 점검하고자 한다.

분강가단의 풍류는 이현보를 중심으로 이해․이황을 초대하고 관리로 온 임내신․조사수 등, 그리고 자제들과 손서인 황준량이 참여하여 꽃 피는 봄과 달 밝은 가을에 분강의 뱃놀이로 펼쳐지며, <어부가>와 <적벽부>를 부르면서 낭만적 서정 공간을 마련한 것으로 정리된다. 이현보가 죽은 뒤에는 그의 아들들인 이문량․이중량․이숙량 등을 중심으로 분천사호의 모임을 갖는 등 1580년까지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면서 선대의 풍류를 계승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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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이화여자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그런데 17세기 이후에도 <어부가>를 중심으로 이현보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 누렸던 분강가단의 풍류를 환기하여 계승하는 것으로 확인되는데, 1662년 9월에 김응조․금성휘․김시온․이휘일․김계광 등의 분강 뱃놀이와, 1718년 중추에 권두경․김용․김대․이집․이수겸 등의 분강 뱃놀이를 주목할 수 있다. 모두 <어부가>를 부르거나 들으면서 분강가단의 풍류를 이어가고 있다.

16세기 중반 이현보에서 시작하여 18세기 초반까지 분강가단의 풍류는 향촌사회의 생활문화를 조절하고 선인들의 여유로운 삶을 본받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제어; 분강가단, 이현보, 풍류, <어부가>, 생활문화

1. 서 언

농암 이현보(李賢輔, 1467～1555)는 벼슬에서 물러난 뒤 꽃 피는 봄과 달 밝은 가을에 여러 사람을 초청하여 분강에서 뱃놀이를 하고 <어부가> 등을 산정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가단의 형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할 수 있고, 서울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향촌을 중심으로 한 문화로 이동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향촌의 생활문화로서의 시가향유라는 점에서도 크게 주목할 수 있다. 그리고 <어부가>의 산정을 통하여 내면적인 풍류로의 전환을 꾀한 점도 중요하게 평가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지금까지 검토한 성과를 바탕으로 하되, <어부가> 현장의 풍류를 검토하면서, 뱃놀이를 하고 <어부가>를 불렀던 현장의 흥취 혹은 풍류를 후대에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어부가>로 대표되는 이현보의 풍류를, 이황은 <장육당육가>를 염두에 두면서 <도산십이곡>으로 확고하게 학문으로 전환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후에도 이현보의 <어부가>와 뱃놀이 현장의 흥취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와 견주어 그 성격을 이해하는 시도는 있었지만, 현장에서 후대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분강가단의 풍류는 이현보가 중심이 되어 활동했던 중종 37년(1542)에서 명종 10년(1555)까지 14년이 중심이 되지만, 다음 시기 선조 3년(1570)까지는 이황을 중심으로 한 활동으로 연결되었다가, 그 이후에는 이현보의 아들 이숙량 등을 중심으로 다시 펼쳐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분강가단의 이러한 풍류는 그 이후 18세기 초반까지 현장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혹은 간헐적으로 수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본 논문은 <어부가>를 중심으로 현장의 풍류를 후대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구체적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려는 것이다.

2. 분강가단 풍류의 성격과 그 계승

분강을 중심으로 한 뱃놀이 현장의 풍류는 이현보가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하여 시회를 마련하고 뱃놀이를 하면서 즐긴 풍류를 말한다. 분강(汾江)․농암(聾巖)․점석(簟石) 등의 자연 지소와 애일당(愛日堂)․긍구당(肯構堂) 등 직접 구축한 주변 공간을 배경으로, 보름을 전후한 달밤의 뱃놀이가 이러한 풍류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풍류는 낭만적 서정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소식의 <적벽부>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뱃놀이 현장의 풍류에 참가한 사람은 이현보를 비롯하여 같은 고을의 이해(李瀣)와 이황(李滉), 관리로 온 임내신(任鼐臣)과 조사수(趙士秀), 그리고 자제들과 손서인 황준량(黃俊良)이다.

분강가단의 풍류는 이현보 스스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꽃피는 아침이나 달뜨는 저녁에 술잔을 잡고 벗을 불러서 분내의 작은 거룻배 위에서 읊조리게 하면, 흥취가 더욱 참되고 힘써 싫증을 잊는” 세계이고, 황준량이, “달밤에 거룻배를 타고 안개가 자욱한 곳에 도롱이를 걸치고 <적벽부>를 부르고 <어부가>를 노래하며, 진세를 벗어나 날개가 돋는 흥이 나고, 바라보면 신선의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이 하기를 거의 14년이었다” 라고 한 바와 같이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구성원들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농암연보｣에 상세하게 기록된 자료를 확인하면, 74세인 중종 39년(1544) 4월에 임내신․황준량 등과 분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취시가>를 짓고, 81세인 명종 2년(1547) 7월에는 이황․황준량 등과 뱃놀이를 하면서 점석에도 올랐으며, 82세인 명종 3년(1548) 6월 보름에 임내신과 뱃놀이를 약속했으나 실행하지 못하지만, 다시 9월 보름에 분강에서 예안현감, 안동부사, 이중량 등이 참석한 가운데 뱃놀이를 하였다. 83세인 명종 4년(1549) 9월에 이해․이황 등과 뱃놀이를 하고, 그해에 <어부가>를 찬정하였다. 또 84세인 명종 5년(1550) 윤6월 보름에 이황․조사수 등과 뱃놀이를 하였다. 이렇듯 보름을 전후한 달밤에 분강에서 뱃놀이를 즐기면서 <어부가> 등을 비롯한 노래를 즐긴 것이다.

분강의 뱃놀이에 함께 참가하거나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러한 생활을 풍류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황이 남긴 몇몇 글에서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명종 11년(1556)에 쓴 ｢농암행장｣에서 “술을 마심은 두세 잔에 지나지 않고 담소하면서 싫증을 느끼지 않고 종일 게으르지 않았다.”(󰡔농암집󰡕 부록)라고 하였고, <만사> 둘째 수의 수련에서는, “총권은 세 조정에 두텁고, 풍류는 일대에 높네.”(󰡔퇴계집󰡕 권2)라고 하여 풍류가 한 시대에 높았음을 환기하고 있으며, 명종 16년(1561)에 쓴 <도산잡영>에 차경으로 수록한 <농암>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니 바위 벼랑이 빼어난데, 높은 정자의 형세는 날아갈 듯하네. 풍류를 어찌 다시 보겠는가? 높은 산을 우러러봄이 이제 드물리.(西望巖崖勝高亭勢欲飛風流那復覩山仰只今稀)”(󰡔퇴계집󰡕 권3)라고 하여 높은 산과 같은 풍류를 강조하면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현보를 중심으로 중종 37년(1542)에서 명종 10년(1555) 사이의 열친(悅親)과 유완(遊玩)으로 요약되는 분강가단의 풍류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끊어지지 않고 아들들이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현보가 세상을 떠난 뒤에 같은 고을의 이황의 도산서당을 중심으로 한 이업(肄業)과 유식(遊息)의 세계에 포함되는 일면도 있지만, 이문량(李文樑, 1498～1581)․이중량(李仲樑, 1504～1582)․이숙량(李叔樑, 1519～1592) 등이 중심이 되어 분강의 풍류를 계승하고 있다. 이현보가 중심이 된 분강가단에서 달밤의 뱃놀이에 함께 참석하여, 이중량은 중종 39년(1544)의 <취시가>에 차운하기도 하고, 명종 2년(1547) 중양일에는 속구로회를 마련하기도 했는데, 이현보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선친에 대한 그리움과 형제간의 우애를 더욱 절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문량은 명종 13년(1558) 선친의 생신을 맞아 느꺼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형제들 사이에 서로 시를 주고받으면서 안부를 묻거나, 이숙량의 건물조영을 축하하기도 하였다. 이들 형제들은 특히 명종 17년(1562) 여름에 상주목사인 이중량과 함창군수인 이계량(李季樑)을 찾아가 함창에서 여러 형제들이 모임을 갖고, 이문량(65세)․이희량(62세)․이중량(59세)․이계량 (55세)등 4형제가 머리가 허옇게 센 것을 상산사호(商山四皓)에 견주어 사호회(四皓會)를 결성하여 형제의 모임으로 삼고 고향에서 계속 모임을 갖자고 다짐하였고, 명종 19년(1564) 가을에는 이중량이 관직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회포를 말하기도 하며, 명종 21년(1566)에는 선친의 신도비를 세워 위선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였다. 또 이문량은 선조 2년(1569)에 구로회를 다시 열어 선대의 구로회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다.

한편 이숙량은 달성에서 지내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선조 9년(1576) 애일당(愛日堂)을 중신하여 영모당(永慕堂)으로 이름을 바꾸어 선친에 대한 그리움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였고, 선조 11년(1578) 답청일에는 이문량(81세)․이중량(75세)․이계량(71세)․이숙량(60세) 등 4형제가 모여 상산사호의 모임을 이어받아 분천사호(汾川四皓)라 이름하고 형제의 모임을 가진 뒤에, <분천사호가>를 짓는 등 분강의 풍류를 재현하고 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 및 활동을 이숙량이 <분천사호가 병서>에서 구체적이고도 자세하게 정리하고 있다.

환암(이계량) 형님이 남쪽에서 오고 하연(이중량) 형님이 양양(예천)에서 도착하여, 먼저 환암 어른의 지당(止堂)에 들러 균옹(이문량)과 매수(이숙량)가 가서 만났다. 친근한 네 신선이 전과 다름없이 돌아와 만나니 슬프고 기쁜 마음이 어찌 다함이 있으랴? 그리하여 이곳에서 이틀밤을 묵었다. 이튿날 긍구당(肯構堂)에서 모였는데, 술과 음식을 마련하였으나 머무르지 않은 것은 마침 바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에 애일당에 올라가 함께 잤다. 이튿날 외종인 권진기(權盡己)가 두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각각 술통을 가지고 따랐다. 때는 봄의 강물이 푸른빛으로 넘실거리고, 바위의 살구꽃이 붉은 빛을 쏟아, 이른바 일년 가운데 가장 좋은 봄날이었다. 또 그 다음날 하연 형님이 작은 거룻배를 저어 안개 낀 물을 건너 만대정(晩對亭)에 투숙했는데, 옛날 살던 곳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이튿날 아침에 도로 강을 건너 농암(聾巖)에 올랐는데, 지주와 만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지주가 누구냐 하면 호남의 사문 나신국(羅藎國)이었다. 또한 술과 안주를 마련하니, 곧 하연 형님을 위해서 차린 것인데, 우리 세 노인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일행의 학발이 아름답게 서로 비추는 것을 나공이 처음 보는 것일 것이다. 이날 저녁에 긍구당(肯構堂)에 다시 모여 잤는데, 이튿날이면 헤어지기 때문이다. 모여 만난 것이 무릇 여드레인데, 비록 그 지내는 곳이 바뀌고 옮겨 한결같지 않아도 이미 갖추어진 즐거움은 일정한 때와 장소가 없이 서로 물리치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는 밥상을 잇닿았고, 누워 잘 때에는 베개를 이었으며, 걸을 때에는 푸른 등나무 지팡이가 쟁그랑거리며 뒤섞였고, 말을 타면 헐어빠진 수레와 대로 엮은 가마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뒤서거니 앞서거니 했다. 아손과 늙은 종이 바쁘게 부축하여 보호한 것은 누대와 정자에 오르내릴 때요, 산에 거친 푸성귀가 섞여서 앞에 펼쳐진 것은 각각 닭을 잡고 기장밥을 마련할 때요, 큰 소리로 크게 웃으며 때때로 스스로 막지 않는 것은 말이 젊은 시절의 일에 미칠 때요, 기거에 일정한 때가 없고 배고픔과 배부름을 스스로 임무로 삼아 각각 그 뜻에 맞게 되었다. 술자리를 마련하여 서로 권하지 아니하고, 화평하게 즐기면서 음란함에 이르지 않는 것은 이미 태평의 뜻이 없기 때문인가?

아는 사람은 신선과 같이 바라보고,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 기괴한 형상이 있다고 생각하여 서로 몰려든다. 참으로 분천(汾川)의 천고의 한결같은 풍류이다. 한 마디가 없어서는 기억할 수 없는 까닭에 노래하고 읊으며, 또 글로 적어서, 다시 일설로 여러 형님들에게 빌고자 한다.

형제들의 모임인 사호회(四皓會)에 참석한 사람은 이문량․이중량․이계량․이숙량의 4형제를 포함하여 외사촌인 권진기(權盡己)와 그의 두 아들, 그리고 당시 예안현감이었던 나신국(羅藎國) 등이다. 여기에 아손과 늙은 종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이현보 시대에 어버이를 기쁘게 하기 위한 모임을 자주 가졌던 것과 견주면 이 시대 사호회의 특징은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면서 분강의 풍류를 계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그해의 중추에도 이레 동안 함께 모여 분강의 풍류를 되살리고 있다. 오랜 장마 끝에 사호회의 모임을 열게 된 기쁨과 현장의 흥취를 적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중추의 모임을 형상화한 시를 보도록 한다. 차례대로 이문량, 이중량, 이숙량이 지은 것이다. 세 사람 모두 봄의 모임에서 지은 <분천강호가>의 진운(眞韻)을 차운하였는데, 이문량은 모임의 흥취에, 이중량은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에, 이숙량은 형제간의 우애에 중점을 두고 있다.

봄에 꽃이 피는 곳에서 일찍이 함께 취했는데

가을에 달이 밝은 때에 다시 모였네.

어지러운 세상에 재물을 모으는 사람 가운데

이 맛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인가?

春花發處曾同醉秋月明時更會親

世上紛紛乾沒子能知此味幾多人

눈과 달 같은 마음에 얼음과 눈 같은 몸으로

세월을 아끼는 당을 열어 대대로 어버이를 사랑하네.

하늘이 흰 머리를 천 길이나 고르게 하니

산 속의 적막한 사람이 아니라네.

雪月襟懷氷雪身堂開愛日世親親

天敎白髮均千丈不是山中寂寞人

석 달 뒤에 쌓인 물이 막 걷히니

오랫동안 헤어졌던 한 집안이 겨우 모였네.

예나 이제나 중추의 달은 끝이 없는데

형제가 함께 읊음이 또 몇 사람인가?

積潦初收三月後久離纔合一家親

古今無限中秋月兄弟同吟又幾人

그런데 이중량의 <차후회중추운 병서>와 이숙량의 <시세중추지회갱용전운상제형 병서>에서 이 모임의 분위기를 상세하게 정리하고 있다. 앞의 것은 이중량의 <병서>이고 뒤의 것은 이숙량의 <병서>이다.

(…) 그 뒤에 여름을 거쳐 가을이 지나도록 검은 구름이 벗겨지지 않고, 새끼줄과 같은 빗발이 석 달이 지나서야 그쳤다. 진창이 매우 험하고 길이 열리지 않아, 환해지기를 살피는 마음이 날로 쌓이고 한 번 멀리 생각하며 탄식함이 적어, 싣지 않는 글이 없었다. 중추가 되어, 하늘의 해가 확 열리고, 갠 뒤의 경치가 맑고 새로워, 느긋한 흥취가 일어나, 한 번 채찍질하여 곧바로 애일당(愛日堂)에 다다라, 두루 초청하여 함께 묵었다. 때는 마침 보름이라, 사방에 조금도 구름이 끼지 않고, 맑은 강물은 누인 듯한데, 흰 달은 하늘에 흘러, 위와 아래가 서로 적셔 광대하며, 희끗희끗한 흰 머리는 달과 광채를 다투었다. 창을 열고 난간을 굽어보니 운몽(雲夢)과 동정호 위와 같았다. … 주인이 아이를 불러 술을 데우고, 각각 한 잔씩 들어 서로 권하니, 이에 술기운에 취하여, <적벽부>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라는 노랫말을 낭랑하게 읊조리고 “산의 그림자가 강물에 뒤집히네”라는 구절을 읊는다. 서로 이불을 안고 발을 걸치고 잠자리에 드니, 요대의 한 꿈이 황홀하다.

지난번에 헤어짐은 2월 그름이요, 오늘의 만남은 8월 보름이다. 󰡔시경󰡕 <상체>의 즐거움이 무릇 이레 밤인데, 애일당에서 지낸 것이 3분의 2에 해당한다. 그 사이 기쁜 즐거움은 일상적인 일로 말할 수 없다. 석 달 동안의 장마가 이에 이르러 그치고, 마침 보름날을 만나, 두꺼운 구름이 비로 쓴 듯 사라지고, 달빛이 곱고 성대하다. 난간에 기대어 길게 읊으니,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듯이 시원하다. 이 사이의 의취는 아마도 말과 글로 그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늘이 우리들을 돕는 것이 많다고 하는데, 하늘이 우리를 도움이 이와 같아서 그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만남이 장차 다 끝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뜻이 일에 따라 움직이고, 말이 뜻에서 나오는 것이라, 다시 앞의 운을 써 송도(頌禱)의 뜻을 칭탁한다.

봄에 모임을 가진 뒤에 오랫동안 장마로 길이 막히면서 만나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장마가 걷히고 중추를 맞아 형제들이 다시 모이게 된 것인데, 달밤에 소동파의 <적벽부>를 부르면서 신선이 된 듯한 흥취를 느끼고, 형제간의 우애를 다짐하면서 선대의 풍류를 재현하고 있다.

해마다 꽃 피는 봄과 달 밝은 가을에 이러한 모임을 갖기로 약속하고, 그 이듬해인 선조 12년(1579) 봄에도 이러한 모임을 마련하였는데, 이계량이 중도에 물에 막혀 참석하지 못하자 세 사람만 모이기도 하였으며, 또 이계량이 상을 당하여 일년 이상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기도 하였지만, 선조 13년(1580) 여름에도 4형제가 모임에 참석하였다.

이현보가 죽은 뒤에 그의 자손들이 계승한 분강가단의 풍류는 선친에 대한 그리움과 형제간의 우애로 요약할 수 있다.

3. <어부가> 현장 흥취의 후대 수용

이현보가 중심이 되어 여러 사람을 초청하여 봄의 꽃놀이와 가을 달밤의 뱃놀이를 즐긴 분강가단의 풍류는 이현보가 죽은 뒤에도 그의 아들들이 주동이 되어 선조 13년(1580)까지 지속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집안 대대로 조상의 생활문화를 계승하면서 향촌사회의 기반을 굳건하게 마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어부가> 현장의 흥취로 대표되는 분강가단의 풍류는 17세기 이후에도 영천이씨 집안에만 한정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영지정사를 비롯하여 점암․농암․애일당․분강 등의 지소와 <어부가>를 중심으로 이현보와 그 주변 인물들이 누렸던 분강가단의 풍류를 환기하고 새삼 되새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몇몇 예를 들면, 오수영(吳守盈, 1521～1606)은 영지암에서, 김택룡(金澤龍, 1547～1627)은 점암에 들러서, 김득연(金得硏, 1555～1637)은 농암에 올라서, 김령(金坽, 1577～1641)은 애일당을 찾아 지나간 일을 회상하였으며, 이만부(李萬敷, 1664～1732)가 분강을 찾고, 채팽윤(蔡彭胤, 1669～1731)도 분강서원과 그 주변을 찾아서 형승과 풍류를 되새기고 있다. 이 가운데 분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당시의 풍류를 계승하려고 하거나 <어부가>를 수용하고 있는 경우를 특히 주목할 수 있으며, 이를 <어부가> 현장 흥취의 수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종 3년(1662) 9월에 김응조를 비롯한 몇 사람이, 숙종 44년(1718) 중추에는 권두경을 비롯한 몇 사람이 분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어부가> 현장의 풍류를 계승하였으며, 이보는 <어부사>를 지어 풍류를 환기하고 있다.

우선 현종 3년(1662) 9월 20일에 김응조(金應祖, 1587～1667)를 비롯하여 금성휘(琴聖徽)․김시온(金時榲)․이휘일(李徽逸)․김계광(金啓光) 등이 분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당시의 풍류를 재현하려고 한 내용을 주목할 수 있다. 금성휘가 <어부사>를 노래하고, 김응조가 <등애일당(登愛日堂)>․<애일당정제익(愛日堂呈諸益)> 등의 시를 짓자, 김시온․이휘일․김계광 등이 차운을 했는데 모두 <어부가>를 중심으로 한 농암 이현보의 풍류를 환기하고 있다.

호를 학사(鶴沙)라고 한 김응조는 이상정이 쓴 <행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속세의 기운을 벗어나 학을 탄 신선과 같은 생활을 하였으며, 삼허당(三虛堂, 1612;26세), 남애정사(南厓精舍, 1634;48세), 학사정(鶴沙亭, 1641;55세) 등을 조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로회(1644;58세), 구선계(1655;69세) 등을 마련하였고, 74～5세인 현종 1년(1660)～현종 2년(1601)에 학사정․수락대․애일당 등에서 사우회를 가지기도 했다.

김응조의 <애일당정제익>은 다음과 같다.

선정(仙亭)에 벌려 앉은 이가 모두 명류인데

좋은 날의 청아한 즐거움에 술잔을 기울였네.

예나 이제나 어부노래가 끊어짐을 까닭 없이 시름하니

억새꽃과 단풍잎이 가을 강에 가득하네.

仙亭列坐摠名流勝日淸歡倒玉舟

今古閒愁漁唱斷荻花楓葉滿江秋

우운(尤韻)으로 된 이 시는 애일당에서 동행한 여러 사람들에게 준 것인데, 지난날 분강가단에서 농암에 모여 청아한 즐거움을 누리던 광경을 상상하는 동시에, 동행했던 금성휘가 부르는 <어부사>를 들으며 노래의 내용을 환기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금성휘는 직접 <어부사>를 불러서 <어부가> 현장의 흥취를 살렸고, 김시온(1598～1669)은 <임인구월이십일야자애일당범주향천연대봉차학사선생응조운>(󰡔표은집󰡕 권1)으로, 이휘일(1619～1672)은 <분강주중경차학사김선생운>(󰡔존재집󰡕 권2)으로, 김계광(1621～1675)은 <배학사선생범월분강경차>(󰡔구재집󰡕 권2)로 각각 차운하였다. 이휘일의 <분강주중경차학사김선생운>을 함께 제시한다.

지금 분강 호수에서 옛날 풍류를 잇는데

가벼운 어부노래에 달빛이 배에 내리네.

새 노래를 잡아 점석에 새기고 싶으니

분명히 천 년 뒤에도 남으리.

汾湖今繼舊風流漁唱冷然月下舟

願把新詞鐫簟石分明留與後千秋

분강에서 100여년 전의 풍류를 계승하는 모임을 마련하고 <어부가>를 부르면서 이러한 풍류가 천 년 뒤에까지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날 이현보가 좌장이 되어 여러 사람들을 초청했던 것에 견주면, 이날 애일당에서 천연대(天淵臺)로 향하는 분강의 뱃놀이는 김응조가 좌장이 되고 금성휘․김시온․이휘일․김계광이 초대된 셈이다. 실제 이들은 당시 영남지역에서 지명도가 높았던 인물이란 점에서 분강가단의 풍류를 재현하고, <어부가> 현장의 흥취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다시 50여 년이 지난 뒤인 숙종 44년(1718) 중추에 권두경(權斗經, 1654～1726)이 김용(金鏞)․김대(金垈)․이집(李集)․이수겸(李守謙) 등과 애일당 아래에서 달밤에 뱃놀이를 하면서 분강가단의 풍류를 환기하고자 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중추공김명구김사종대이백생익경수겸범월분강애일당하(中秋共金鳴久金士宗垈李伯生益卿守謙泛月汾江愛日堂下)>와 <주중성일률기승유(舟中成一律記勝遊)>가 그것인데, 뒤의 시에는 “이날 밤 애일당에서 묵었는데 배 위에서 늙은 뱃사공이 농암이 산정한 <어부사>를 노래불렀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어서, 사공이 부르는 이현보의 <어부가>를 들으면서 달밤의 뱃놀이를 즐긴 사실과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주중성일률기승유>를 보도록 한다.

천연대 아래에 거룻배를 놓으니

순식간에 농암에 옥 거울이 흐르네.

빗물이 불어나니 맑은 호수에 특이한 정경을 보태고

구름이 열리니 중추에 밝은 달을 보내네.

술잔을 잡고 누대에 올라 바람 앞에서 바라보고

벗을 데리고 노를 저으며 밤놀이에 드네.

누런 머리에 도리어 일을 벗음이 더욱 기쁜데

흰 개구리밥 물가에 어부노래 소리가 가득하네.

天淵臺下放扁舟瞬息聾巖玉鏡流

雨漲澄湖添別境雲開明月餉中秋

登樓把酒臨風望擊汰携朋入夜遊

更喜黃頭還解事漁歌響滿白蘋洲

같은 우운(尤韻)으로 된 이 시는 수련과 함련에서 중추에 천연대 아래 분강 위에 배를 띄우고, 고요한 강물과 밝은 달빛이 어우러진 광경을 제시하고, 경련과 미련에서 달밤의 뱃놀이 현장에서 <어부가>를 들으면서 지난날의 풍류를 상상하고 있다.

권두경의 행적을 살피면, 숙종 35년(1709) 이황의 후손인 이집의 정자에 수월헌(水月軒)이라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해 8월 13일 밤에 만정호(幔亭湖)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퇴계의 <탁영담범월(濯纓潭泛月)>에 차운하기도 하였으며, 숙종 43년(1717) 겨울에는 김용(金鏞), 이집(李集) 등과 월란암(月瀾菴)에서 노닐었다. 이와 함께 숙종 29년(1703) 삼월의 양로회(養老會), 경종 3년(1723) 중양의 구로회(九老會) 등에서 어른을 모신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분강가단에서 확인되는 풍류의 내용을 두루 갖추고 있다.

분강의 뱃놀이에서 김용이 차운을 하였고, 권두경은 다시 화답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현종 3년(1662) 9월 20일의 김응조의 분강 뱃놀이와 숙종 44년(1718) 중추의 권두경의 뱃놀이에서 모두 <어부가>가 불려지고 있는데, 앞의 놀이에는 금성휘가 직접 노래를 불렀고, 뒤의 모임에는 뱃사공이 노래를 불렀던 것으로 확인된다.

다음으로 이보(李簠, 1629～1710)가 지은 <어부사>는 위의 두 경우와는 차이가 있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 분강의 풍류와 <어부가>를 수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분강의 번화가 노선(老仙)에게 속하는데

계수나무 배와 목란 배가 멋대로 물가를 오르내리네.

세월이 넉넉하고 겨르로워 세 가지 즐거움이 온전하고

구름과 안개에 수답하는 몇 편이 있네.

오늘까지 악부에 우아한 곡조가 전하고

천 년 뒤에도 풍류에 전현을 우러르리.

잔치를 맞아 다시 강호의 흥취를 일으키니

어찌 그대를 데리고 낙천에 배를 띄우랴?

汾江繁華屬老仙桂舟蘭棹恣洄沿

優閒歲月全三樂酬答雲烟有數篇

樂府至今傳雅曲風流千載仰前賢

當筵更起江湖興安得攜君泛洛川

선운(先韻)으로 된 이 시는 수련과 함련에서 신선으로 비견되는 이현보의 생활을 분강의 번화로 보고 그곳에서의 삶을 제시한 뒤, 경련에서 당시까지 전승되는 <어부가>와 천년 뒤에도 우러를 풍류를 예견하면서, 미련에서 강호의 흥취를 계승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정확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어도, 현종 3년(1662) 9월 20일의 김응조의 분강 뱃놀이와 숙종 44년(1718) 중추의 권두경의 뱃놀이 사이의 어느 시점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응조, 권두경, 이보 등에서 확인되는 분강의 뱃놀이를 통해, <어부가>가 불리어지던 현장의 흥취와 분강가단의 풍류가 16세기 당대뿐만 아니라 18세기 초반까지 이어지면서, 향촌사회의 생활문화를 조절하고 선인들의 여유로운 삶을 본받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소 결

지금까지 검토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마무리로 삼을 수 있다. 농암 이현보를 중심으로 분강에서 달밤에 뱃놀이를 하면서 <어부가>를 향유한 분강가단의 풍류는 열친(悅親)과 유완(遊玩)을 내용으로 1542년에서 1555년까지 이현보를 중심으로 펼쳐지다가, 농암이 죽은 뒤에 농암의 아들들이 이어받아서 1580년대까지 선친에 대한 그리움과 형제간의 우애를 내용으로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풍류는 향촌의 생활문화의 일부로 문화를 조절하는 역할까지 맡았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17세기 이후에도 <어부가> 현장의 흥취와 분강가단의 풍류의 수용이 지속적으로 혹은 간헐적으로 전개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특히 현종 3년(1662) 9월 20일의 김응조를 비롯한 몇 사람의 분강 뱃놀이와 숙종 44년(1718) 중추의 권두경을 비롯한 몇 사람의 뱃놀이에서 <어부가>를 부르거나 들으면서 지난날의 풍류를 환기하고 선인들의 여유로운 삶을 계승하고자 하는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이렇듯 분강가단의 풍류는 16세기 중반 이후 18세기 초반까지 <어부가>가 정리되고 향유된 현장을 중심으로 생활문화의 일부로 지속적으로 계승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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