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향내 혼인관련
15. 감사가 가면 가는 것이지 나와 무슨 상관이냐
-도산향내 혼맥, 안동가문의 영주이주, 천재들의 탄생과 어머니들, 이현보와 이황 가문, 도산장수와 『수운잡방』
1. 도산향내 혼맥
15세기 안동 도산(옛 예안禮安)의 혼맥을 알려면 예안김씨 이조판서 김담(金淡1416-1464) 가문을 떠올려 볼 수 있다. 김담의 아버지 김소량이 영주 ‘푸실(草谷)’의 ’평해황씨 공조판서 황유정의 사위가 되어 이주했지만, 그때까지 도산 성씨들과 통혼관계에 있었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가문의 인물들이 8촌 이내의 당내 촌수였다.
예안김씨는 그 무렵 도산으로 전입해 온 봉화금씨, 영천이씨, 영양김씨, 진성이씨, 광산김씨, 안동권씨, 횡성조씨로 이어지는 성씨들의 가족같이 얽혀진 계보의 선두에 있었다. 예안김씨는 예안이씨가 이미 안동 풍산으로 이주한 이후였으므로 유일한 토성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 도산서원에서 2Km 하류 부내에 영천이씨, 거기서 3Km 하류 부포와 다래에 안동권씨, 봉화금씨, 횡성조씨, 거기서 3Km 하류 외내에 예안김씨, 광산김씨가 있었다. 내륙 서편으로 영양김씨가 있었고, 도산서원 상류 온혜, 토계로 진성이씨가 있었다.
김담 가문을 중심으로 한 도산향내의 혼인관계를 대략 표시해보면,
가). 김담 가문의 도산 가문과의 혼인관계
金小良-金潧(문과, 교리)
金淡(문과, 이조판서)- 金萬石(무과)
金萬鈞(현감)-金綏(시양자, 광산김씨)-金富仁(무과, 병사)...탁청정종택
金富倫-金坽(문과, 정랑)..설월당종택
金萬秤(생원)-金佑-金士文(문과, 형조정랑)-金玏(문과, 이조참판)..백암종택
女 琴致湛(생원)- 琴榟-琴應夾(진사, 현감)...금재는 광산김씨 金孝盧 사위
琴應壎(생원, 현감)
女 李寯(李滉 맏아들)..퇴계종택
女 李寘(李瀣 넷째아들)
金洪-金萬鎰-女 朴珩(진사)-朴承任(문과, 대사간)..소고종택
女 朴承阜-女 李彦迪(문과 ,좌찬성)..회재종택
女 權受益(문과, 호조참판)...金洪의 생질
女 權謙-權受益(문과, 호조참판)-權雲(문과, 정언)
女 趙大椿-趙穆(생원, 공조참판) -趙錫朋(문과, 주부)..월천종택
女 琴蘭秀(생원, 현감)-琴업(忄+業,문과, 승지)..성재종택
琴愷(문과, 목사)
琴恪
權受福(무과, 북병사)-權則- 權洙(문과, 학유)
女 李欽(현감)-李賢輔(문과, 지중추부사)-李文樑-李元承(진사)-李士純...농암종택
女 柳仲淹...파산종택
女 黃俊良(문과, 현감)..금계종택
女 金箕報(현감)..소산 양소당
李仲樑(문과, 감사)..영덕 인량 삼벽당
李叔樑(진사, 왕자사부)
女 金富仁(무과, 병마절도사)...탁청정종택
李賢佑-李忠樑-李德弘(유일, 현감) -李蒔 - 李榮久(문과, 학유) ...간재종택
李笠(문과, 설서)
李茳(문과, 교리)
李蒧(문과, 한림)
李慕(문과, 수찬)
女 李誠孫...이현보 종조부
나). 도산향내 성씨들과 김담 가문과의 혼인관련
A) 광산김씨
*金崇之-金淮-金孝盧(광산김씨입향조)-金緣(문과, 감사))-金富弼(진사)-金垓(문과, 의병대장)..후조당종택
金綏(생원)-金富仁(무과, 병마절도사)..탁청정종택
金富倫-金坽(문과, 정랑)..설월당종택
女-琴榟-琴應夾(진사, 현감)..금재는 金淡 외손자
琴應壎(생원, 현감)
女 李寯(李滉 맏아들)..퇴계종택
女 李寘(李瀣 넷째아들)
金澗-女 金萬鈞
B) 영천이씨, 진성이씨
*李軒(영천이씨입향조)-李坡(현감)-李孝孫-李欽(현감)-李賢輔(문과, 지중추부사)-李文樑-李元承(진사)..농암종택
女 黃俊良(문과, 목사)..금계종택
女 金箕報 (현감)..소산 양소당
李仲樑(문과, 감사)...영해 삼벽당
李叔樑(진사, 왕자사부)
李賢佑-李忠樑-李德弘(유일, 현감) -蒔 -榮久(문과, 학유)..간재종택
女 權模-權錫忠-權春蘭(문과,사간)-權泰一(문과, 형조참판)학봉 김성일 사위
女 金有庸(현감)-女 李繼陽(진성이씨입향조)-李埴-李寅..노송정종택
李瀣(문과, 감사)..온계종택
李滉(문과, 판중추부사)..퇴계종택
李堣(문과, 감사)..송재종택
女 金洪-金萬鎰
女 朴承阜..소고종택
女 權受益
李塢(예문관직제학)....女 金彦璣...유일재종택
.....女 朴毅長(무과, 경상수사)...무의공종택
C) 영양김씨
*金遂生(영양김씨입향조)-金智老(문과, 신주지사)-金有庸(현감)-女 李繼陽(진사)..노송정종택
女 琴滌(현감)-琴嵇(생원)-琴衍(생원)- 琴致湛 -琴榟
D) 봉화금씨
*琴以和 -琴滌(현감)-琴嵇(생원)-琴衍(생원)- 琴致湛(생원) -琴椅(문과, 부사)-女 權東美(權橃 子)...충재종택
琴榟(봉화금씨입향조) -女 李寯..퇴계종택
女 李寘
琴淑(봉화금씨입향조, 문과, 관찰사)-琴崑(문과, 감찰)
琴嵩(문과, 대사간)
琴嶒(무과)-琴致韶-琴憲-琴蘭秀(생원, 현감)-琴憬(생원)..성재종택
琴업(忄+業,문과, 승지)
琴愷(문과, 목사)
琴恪
琴峻(무과, 만호)
사진: 선성김씨 족보
김담의 외손자가 봉화금씨 훈도 금재琴榟인데, 금재는 광산김씨 생원 김효로金孝盧의 사위이다. 진성이씨 관찰사 온계 이해李瀣, 판중추부사 퇴계 이황李滉(1501-1570) 형제와 사돈이고, 질서는 안동권씨 권동미權東美인데, 권동미는 의정부우찬성 충재 권벌權橃(1478-1548)의 장남이다.
김효로의 아들 생원 탁청정 김유金綏는 김담의 아들이며, 종고모부인 현감 김만균金萬鈞으로부터 전 재산을 물려받았다. 김유는 영천이씨 지중추부사 농암 이현보李賢輔(1467-1555)와 이황의 숙부 관찰사 송재 이우李堣와 사돈이기도 하다.
김담의 사위 우계이씨 이수형李秀亨은 단종절신으로, 순흥 도계서원에 금성대군과 충장공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제향 되었다.
김담의 생질은 안동권씨 호조참판 권수익權受益(1452-1544)인데, 권수익의 외손자가 횡성조씨 공조참판 월천 조목趙穆이고, 외손서가 현감 성재 금란수琴蘭秀이다.
김담의 생질서는 영천이씨 현감 이흠李欽과 이성손李誠孫인데, 이현보의 아버지와 종조부이다.
김담의 외조부 공조판서 황유정의 5대손이 현감 금계 황준량黃俊良(1517-1563)인데, 황준량은 이현보의 손서이며, 이현보의 종증조부 예문관직제학 이오李塢는 황유정의 손서가 되기도 한다.
김담의 동생 김홍金洪이다. 그 외손서가 여강이씨 좌찬성 회재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고, 아들 김만일金萬鎰의 외손자가 반남박씨 대사간 소고 박승임朴承任(1517-1586)이다. 김홍은 이황의 조부 이계양李繼陽과 동서인데, 영양김씨 김유용金有庸이 장인이다. 김유용은 이현보의 증조부 현감 이파李坡의 사위이다.
흥미로운 것은 김홍이 생질 권수익을 사위로 삼은 일이다. 김담의 아버지 김소량의 입장에서는 외손자가 친손녀와 결혼을 한 셈이다. 또한 김담의 생질녀들이 이현보의 종조모와 어머니가 되었으니, 이는 친정 자매가 시댁 숙질이 된 경우이다. 이는 도산 향내의 예안김씨, 안동권씨, 영천이씨의 중첩적인 혼인의 한 단면이다. 아니 전 도산의 성씨들이 중첩적인 혼인관계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토성인 예안김씨를 선두로 이 무렵 입향한 안동권씨, 봉화금씨, 영천이씨, 영양김씨, 광산김씨, 진성이씨, 횡성조씨 등이 집단적 통혼관계에 있었던 셈이었다.
놀랄 일은 아니다. 이 무렵은 아직 성리학적 가치관이 확립되기 이전이라 중첩적인 혼인은 물론이고 동성동본혼인, 자녀균등상속, 윤회제사, 외손봉사 같은 것이 보편화된 시대였다. 양자제도도 없었다. 이런 시대상은 조금 뒤 『주자전서』가 읽혀지고, ‘서원’이라는 건물이 지어지면서 급격히 변모했다. 종법제도가 확립되기 전의 일이었다.
『선성김씨족보』를 보니 문절공의 둘째 아들 김만균이 죽자 “부인의 종질 김유(광산김씨)를 시양자로 하고 제사를 지내게 했다(夫人從姪金綏以侍養子奉祀)”는 기록이 보인다. 양자를 하지 않아 대가 끊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김담 가계는 셋째 아들 김만칭金萬秤으로 이어졌다. 양자 제도는 이 기간이 매우 과도기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혹시 이런 점에 대해 궁금한 사람은 1476년 발간된 한국 최초 족보인『안동권씨성화보』를 읽어보기 바란다. 이 책을 보면 ‘안동권씨와 안동권씨의 혼인’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우선해서 볼 수 있다. 선악을 떠나 동성동본혼인은 우리 조상들에게 생소한 방식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그러했다.
1565년 발간된 『문화유씨가정보』에는 친손, 외손, 사위, 외예손이 모두 등재되어 있고, 그 후 등장하는 대부분의 족보가 그렇게 썼다. 외가와 처가는 당연한 가족이었다. 처향으로 이주 역시 상속이 그 원인이었다.
이런 인척 관계가 아니더라도 이현보, 이언적, 이황은 이미 남이 아니었다. 이현보 증조부 이파李坡의 외손녀가 곧 이황의 조모였다. 이현보와 이황은 7촌 인척이 되고, 이현보 조모와 이언적 증조모가 청주양씨 자매여서 또한 7촌이 된다. 지금 통념은 가족 범주를 벗어나고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김담 가문의 재산이 광산김씨 김유에게 상속되고 제사를 지내게 한 사실이 당시 가족 개념을 보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김담 가계 계보에서 후손 김륵과 더불어 박승임, 이언적, 조목, 금란수, 권수익, 김연, 김유, 김령, 이현보, 황준량, 이덕홍, 이계양, 이우, 이해, 이황 등이 당내堂內의 촌수였다고 했는데, 기적의 문과급제가 이 무렵 속출했고, 몇 분은 국가적 인물로 발신했다는 점이다.
문과, 무과, 생원, 진사, 음직으로 학자, 관료들이 우후준순처럼 솟아났다. 능문能文, 능리能吏의 인물들이 춘산의 진달래처럼 한꺼번에 피어난 셈이었다. 도산 역사에서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영남 남인의 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들 인물들이 오늘날의 영남 종택, 종가를 남기는 원인이 되었고, 지금까지 한 결 같이 전통을 지켜오고 근원이 되었다.
영주지역의 문절공종택, 백암종택, 금계종택, 소고종택과 봉화지역의 충재종택, 경주 양동의 회재종택, 그리고 안동 도산의 월천종택, 성재종택, 후조당종택, 탁청정종택, 설월당종택, 농암종택, 간재종택, 노송정종택, 송재종택, 온계종택, 퇴계종택이 그런 집들이다.
참고로, 고령으로 이주해 간 해주오씨 죽유종택(竹牖 吳澐 家)도 도산 사람으로 이들 가문과 인척이다. 오운은 송재 이우의 사위 오언의의 손자로, 『송재집』원집을 간행하고 발문을 쓰기도 했다. ‘선성3필宣城三筆’의 일인인 오수영吳守盈이 숙부이다.
2. 안동가문의 영주이주
향리鄕吏에 불과했던 김담 아버지가 판서 황유정의 사위가 된 사실은 상상이 잘 안 되는 혼인이었다. 어떤 연유로 맺어졌는지 추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황유정의 집이 너무나 어마어마한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황유정黃有定(1343-1421)은 본인이 판서인데, 장인이 형조판서 정운경이고, 처남이 삼봉 정도전鄭道傳이다. 5대 조부 황유중黃裕中과 아들 황서黃瑞는 양대 문하시중이다. 외조부는 안향安珦의 삼종인 안축安軸으로, 정도전과 사돈이다. 양대 문하시중인 우팽禹伻의 외증손이 되기도 한다. 우팽은 역동 우탁禹倬과는 4촌이며, 우현보禹玄寶 와도 당내 촌수였다.
이런 집에 장가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이조판서 김담이다. 황유정에게는 외손자가 된다. 그래서 정운경, 황유정, 김담이 한 집에서 태어나 ‘삼판서댁’이 되었고, 지금은 ‘삼판서고택’이 되었다. 이현보 어머니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이 집에서 생장했는데, 외가였다. 김담 형제가 외삼촌이었다.
황유정의 조부는 영해부사 황원로黃原老이며, 아버지는 직제학 황근黃瑾이고, 아들은 지평 황전黃銓, 대사성 황현黃鉉과 황연黃鋋이었다. 황연黃鋋이 항준량의 고조부가 된다. 황원로가 영주 ‘푸실(草谷)’로 복거했다. 영주 평해황씨 금계가문은 2012년 세거 700년, 그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개최된 바 있다.
후손에 선조 대 명신, 해월헌 황여일黃汝一이『평해황씨대동보』를 처음으로 간행했다. 그런데 『금계집』에 ‘서족보미序族譜尾’라는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황준량이 최초 간행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아무튼 예안김씨는 200년 고향, 안동 도산을 떠나 영주의 ‘푸실(草谷)’로 이주했고, 처가살이와 더불어 파천황의 변화가 왔다.
처가살이는 일반적이었다. 재산 균등상속 때문이었다. 김담 가문만이 아니다. 안동에서 영주로 이주한 또 한 집이 있다. 박승임 가문이 그렇다. 아버지 박형朴珩이 김담 동생 김홍의 사위가 되어 영주로 이거했고, 영주사람이 되었다. 이현보가 박형을 유일遺逸로 나라에 천거할 당시에는 안동사람이었다, 이황은 만사를 했고, 부인 예안김씨 묘갈명도 지었다.
박승임은 황준량과 더불어 ‘영유소고榮有嘯皐 풍유금계豊有錦溪’라 말처럼, 영주 최고의 인물이다. 박승임이 이황을 만나 제자가 되기 전까지, 자신이 영주의 퇴계로 존재했다. 문인록에 오른 제자가 52명인데, 일대 쟁쟁한 인사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황준량과는 나이도 같고, 문과급제도 함께 했다. 박승임이 “말을 하지 않아도 뜻이 통했다”고 했다. 그래서 2017년 탄신500주년 행사도 문중을 달리할 뿐 같이 했다.
뿐만 아니다. 7형제 모두 빼어났다. 박승문은 훈도, 박승건은 생원, 박승간은 소고와 함께 문과급제 했고, 박승준은 진사였다. 박승임은 여섯째였다. 이로써 소고 박승임 가문이 형성되었다. 박승임 가문은 김담 가문과 더불어 영주 최고의 가문으로 번창했다. 명촌 무섬을 공유하여 더욱 그런 상징성이 더해졌다.
그런 집이 또 한 집 있다. 이현보 조카이며, 이덕홍의 아버지인 이충량李忠樑이 박승임의 종형 박승장朴承張의 사위가 되어 이주하였다. 이덕홍은 영주에서 태어났고, 이덕홍을 모신 오계서원도 안동과 개울을 사이에 두고 영주에 소재하고 있다.
이덕홍은 설명이 필요 없는 계문溪門의 고제高弟이다. 특별 사랑을 받았다. ‘간재艮齋’라는 호도 지어주었다. ‘德’의 글자 설명도 해주었다. 그 만큼 빼어났기 때문이다. 바다를 가보지 않은 이덕홍이 귀갑선도를 그렸으며, 이황의 명으로 혼천의, 선기옥형을 제작했다. ‘천문天文을 통달했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덕홍의 아들들도 그러했다. 맏아들 이시李蒔는 뛰어난 학자로 많은 제자를 두었다. 동생들 이입李苙, 이강李茳, 이점李蒧, 이모李慕 등 이른 바 ‘초두 4형제’, 맏손자 이영구李榮久와 함께 ‘5숙질 문과급제’했고, 3형제가 같은 날 급제하여 오래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로써 간재 이덕홍 가문이 형성되었다.
영주 푸실은 이황에게도 잊지 못할 곳이다. 이황은 21세 1521년, 푸실의 진사 허찬許瓚 따님에게 장가갔다. 허찬은 문경동文敬仝의 맏사위인데, 경남 의령에서 와서 처부모를 봉양했다. 이황이 허찬의 사위가 될 수 있었음은 문경동이 숙부 이우와 교분 때문이었다.
허씨부인은 1522년 준寯, 1527년 채寀를 낳고, 한 달 후 27세에 돌아가셨다. 3년 후 1530년, 안동 가일 권씨부인을 맞이했다.
처남 허사렴許士廉의 맏사위가 고창오씨 공조참의 오운吳澐이고, 둘째 사위가 박승임의 맏아들 박록朴漉이었다. 오운吳澐은 이황의 숙부인 이우李堣의 사위 오언의吳彦毅의 손자이기도하다. 초년과 만년 푸실에서 살았고, 이런 연유로 허씨부인의 묘갈명을 썼다.
문경동의 둘째 사위는 장응신張應臣인데, 김담의 증손자 김사문金士文이 그 사위였다. 김사문의 아들이 관찰사 김륵金玏이니, 이황에게는 처제종질이 된다. 이황 맏아들 이준李寯과 관찰사 이해李瀣의 아들 이치李寘는 김담의 외증손서가 되기도 한다.
영주는 고려시대 안동을 압도했다. 국정을 좌우할 인물들이 속출했다. 따라서 안동에서 영주로 이주함은 전연 이상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선진지의 정착이었다. 그렇지만 영주의 위상도 오래가지 못했다. 조선개국과 더불어 쇠락하기 시작 했고, 16세기에 오면 안동에 완전 역전 되었다.
흥망성쇠는 개인, 가문, 지역, 나라의 그 어는 것도 불변일 수 없다. ‘易’은 변함이고, 고대 전설적인 군주, 주나라 문왕이 지었다는『周易』은 그래서 인기가 있다.
영주에 판서 황유정 가문이 있었다. 그 주변에 정도전, 안축, 우팽 등 거물들이 있었다. 이들 존재를 두고, 안동에서 제일 먼저 김담 가문이 들어갔고, 뒤따라 박승임 가문이 김담 가문에 들어갔고, 이덕홍 가문이 박승임 가문에 들어갔다. 멀리 김해에서 올라온 허찬도 갔다. 모두가 갔지만 이황은 가지 않았다. 황준량은 이현보 집으로 장가든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역시 이주하지는 않았다.
이로써 안동 가문 일원이 영주 가문이 되었다. 영주 반가의 잦은 안동 혼인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이황은 이 모든 가문들을 다시 묶어 버렸다. 황준량, 박승임, 김륵, 이덕홍 등이 모두가 제자가 되었다, 그것도 두드러진 제자들이었다.
참고로 황준량은 어떻게 농암 손서가 되었나? 기록은 없고, 일화는 이렇다.
이현보가 경상감사가 되어 풍기를 지나가며, ‘게 물럿거라.’ 하는데, 어느 소년 혼자 전연 관심이 없었다. 가을 추수에 날아오는 새만 쫓고, 한편으로 책만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는 감사가 지나가는데 보지도 않느냐” 하니, 말하기를 “감사가 가면 가는 것이지 나와 무슨 상관이냐.” 했다.
이현보가 기이하게 여겨 물어 들어가니, 나이 비슷한 조부가 계셨다. 말하기를 “저의 손자가 버릇이 없어 무례했으니 용서 바랍니다.” 했다. 이현보 답변이 “손자의 기백이 마음에 쏙 들고, 마침 내 손녀가 혼기가 되었으니 양가 인연을 맺어 봅시다.” 하여 이루어졌다 한다. ‘기동奇童’은 기동이었다.
이현보의 감사 부임이 1536년 10월이고, 황준량 나이 19세이니 그럴 듯하다. 황준량의 집이 풍기 창락역昌樂驛 부근이어서 더욱 그럴 듯하다. 오고가는 벼슬아치들이 얼마나 많았으랴. 창락역은 단양-풍기-영주-도산(예안)으로 이어지는 중간 기착지 였다.
황준량 조부는 황준량에게 “훌륭하게 되어 집안을 일으키라” 했으니, 혼사를 적극 주선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현보가 1529년 영주군수를 역임했으니, 그 때 봐 두었을 수 도 있다.
76세 이현보가 귀로에 풍기 우계愚溪에 우거寓居한 진사 황한충黃漢忠의 집에 묵어간 기록이 보인다. 시도 한 수 지어주었다. 오랜 친구였다. ‘애일당구로회’ 축하 친필 글씨가 남아 있으니, 두 분 우정은 25년은 더 넘었다.
진사는 창원황씨로 황준량의 외종조부가 되니,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황준량은 외조부 황한필黃漢弼에게 글을 배우고 만사輓詞를 한 것으로 보아, 외조부가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현보는 이미 모두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현보 종증조부 예문관직제학 이오李塢가 황준량 조부의 고모부였다. 그러니까 이오는 황유정에게는 손서孫壻였다. 이현보 어머니가 황유정과 그 외손자인 이조판서 김담이 생장한 '삼판서택'에서 성장했으니 모를 까닭이 없었다.
3. 천재들의 탄생과 어머니들
김담, 김증 형제는 20세, 23세에 문과급제 했다. 역사상 손에 꼽을 만큼 빠르다. 조선시대 문과급제 평균연령이 36세임을 감안하면 엄청나다.
황준량은 25세에 합격했다. 황준량을 ‘기동奇童’이라 했듯이, 이 무렵 천재들이 한꺼번에 태어났다. 활짝 꽃을 피운 천재들도 있었지만, 만개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김담, 이현보, 이언적, 김연, 이황, 박승임, 김륵 등이 전자라면, 김증, 이우, 이해, 황준량, 이덕홍, 김해, 김령 등이 후자들이라 할 수 있다.
전자의 인물들은 설명이 필요 없지만 후자의 인물들은 조금 설명이 요청된다. 이황의 숙부인 이우李堣의 경우, 후손들이 “우리 선조가 10년만 더 사셨더라면” 하고 아쉬워하는 인물이다.
이우는 49세에 죽었는데, 그때 이미 승지, 안동부사. 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49세 이황이 풍기군수에 있었음과 비교하면 여간 빠른 발신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수를 했더라면 또 다른 이황이 있었을 런지도 모를 일이다.
김해는 39세에 죽었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죽었기에 제문도 애절하다. 그 가운데 조목의 제문은 ‘슬프다’는 뜻의 ‘희噫’자를 여섯 번이나 썼다. 글을 이러하다.
“먼 길 뜻이 높았으나 갑자기 이렇게 되었으니 슬프고, 변란의 때를 맞아 의병을 모집할 수밖에 없으니 슬프고, 한원翰苑(한림원과 예문관)에서 포부를 펼쳤으나 죽어 돌아오니 슬프고, 어린 아이들이 앞에 있고 부모가 계시니 슬프고, 부부가 같은 시기에 죽었으니 슬프고, 양대兩代를 사귀면서 늙은 내가 비통하니 슬프다”
원문: 長途遠志遽至於斯 噫, 遭時之變糾旅興師 噫, 翶翔翰苑草裏尸歸 噫, 幼穉盈前鶴髮在堂 噫, 夫兮婦兮一時具亡 噫, 兩世交契老我悲傷 噫
전연 꽃을 피우지 못한 분들도 있다. 권수익의 아들 권운權雲, 금란수의 아들 금각琴恪, 이덕홍의 아들 이강李茳 등이 그들이다.
권운은 22세에 급제했는데, 원로들이 경연에서 임금과 문답하는 것을 ‘전적으로 권운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래서 장차 “문형文衡을 맡길 만하고 정승도 맡을 만하고, 한 시대를 교화시킬 수 있으며 태평성대를 만들 수 있는 인물”이라 했지만, 불과 25세에 죽었다.
금란수 아들 금업, 금개가 모두 문과급제 한 재사였지만, 금각은 하늘이 내린 천재였다. 『선성지』에 “萬理皆備 朝廷得失 世上人事 皆已理會”라 쓰여 있다. ‘萬理’는 학문이며 ‘朝廷’은 정치이고, ‘人事’는 사회문제인데 금각이 7, 8세에 ‘이미 이를 터득했다(皆已理會)’고 했다.
허균의 형, 허봉이 금각에게 선물한 시에 “금각의 시는 이태백을 능가했다”고 했다. 저 유명한 ‘등왕각서’를 쓴 ‘왕발과도 비견 된다’고 했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하다”고도 했다. 금각은 18세에 요절했는데, 외삼촌인 조목은 “천재가 쓰이지 못하고 사라졌다”고 했다.
이덕홍의 아들, 손자 5숙질이 문과급제 한 제사였지만, 특히 이강은 “당시에 보기 드문 명경현사明經賢士의 재주가 있었다”고 했다. 도산서원에 조목을 종향하는데 김중청과 더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대 천재 허균과도 매우 가까웠으니, 서로를 알아보는 안목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그 활기찬 기상과 포부도 인조반정과 더불어 결정적으로 꺾어버렸다.
이들 천재들은 김담 가문의 뛰어난 DNA와 연관되고, 사색적인 환경이 조성된 도산9곡의 빼어난 산천이 그 배경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황유정 가문이 그 앞에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가운데 좀 더 시야를 넓혀보면, 이들을 낳은 어머니들의 존재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모두 상상이 잘 안 되는 장수를 했음도 주목되는 일이다.
김담 어머니 평해황씨는 생몰 연대가 없다. 1449년 남편이 60세 돌아가셨을 때, 그때 살아있었고, 그 이후 3년 뒤에도 살아있었다. 김담의 상소문으로 확인되는 사항이다. 이로 보면 60세는 넘겼을 것 같다.
그런 평해황씨는 시댁의 아들 이조판서 김담, 김증 형제, 친정아버지 공조판서 황유정, 동생 지평 황전, 대사성 황현, 외가의 외할아버지 공조판서 정운경, 외사촌 정도전 등이 문과급제 하여 발신하는 것을 보았다.
이황 조모 영양김씨는 93세를 살아 시댁의 아들 이우, 손자 이해, 이황 등이 문과급제 하고 외가의 외종질 이현보, 외종손 이중량 등 5명이 급제 하고 발신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우는 49세 1517년 몰했는데, 그 해 80대의 나이였다. 친구 최숙생崔淑生이 지은 묘갈명에 “아, 명중明仲이 죽었단 말인가! 80 노모가 집에 계시는데, 어디로 돌아갔단 말인가”하는 애도 구절이 보인다.
김유 어머니 양성이씨는 91세를 살아 친정아버지 군수 이지, 할아버지 판중추원사 이순지, 시댁의 아들 관찰사 김연, 무과급제로 병마절도사가 된 손자 김부인을 비롯한 이른바 ‘오천7군자’의 성장과 증손자인 김해, 김령, 김탄 등 7명이 급제로 발신함을 지켜보았다.
이현보 어머니 안동권씨 85세를 살아 외가의 외삼촌 김증, 김담 형제, 친정의 동생 권수익, 권수복(무과급제) 형제와 조카 권운과 종손자 권수, 시댁의 아들 이현보, 손자 이중량 등 8명이 급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당대 이런 영광을 누린 여인들은 천지에 없었다. 그 일이 감격적임은 모두가 각 가문의 최초 문과급제로, 그들 씨족의 문호를 열었기 때문이다. 이현보가 특별한 효자가 되었음은 98세를 사신 아버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85세를 사신 이 인자하고 총명한 어머니의 존재가 더욱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이황이 당대 5편의 행장行狀, 일대기를 쓴 인물 가운데 이현보, 권벌, 이언적, 황준량이 포함되어 있었음은 인척관계의 영향으로만은 설명되지 않는다.
충재冲齋 권벌權橃 역시 이들 인물들과 아주 밀접했다. 이현보가 안동부사 시절 안동양로연을 베풀 때 그 아버지를 모시고 나왔고, 그 때 축하시를 썼다. 그 해 이현보가 권벌의 안동 도계촌(도촌) 경로잔치 집을 찾아갔다.
서울 동대문 밖 권벌의 신축 집에서도 만났다. 지금의 닭실 복거卜居도 이현보의 강호자연의 풍류와 귀거래에 영향을 받았다. 주고받은 몇 수에도 두 분 사이의 정감을 감지할 수 있다.
이현보의 권벌 만사는 노구에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애잔하다. 그 한 부문은 이러하다.
나의 벗 권 상공은 吾友權相公
젊어서부터 비범하였네 自少非凡儔
나보다 열한 살이 적으나 少我十一歲
같이 놀기를 허락하였네 猶許爲從遊
산중의 글방과 향교에서 山堂與學舍
봉마처럼 서로 도와주었네 蓬麻互相須
그리고 두루 인척관계였다. 이황이 쓴 ‘충재행장’에 자신을 ‘중표후생中表後生’이라 했으니, ‘中表’ 는 이종姨從, 고종姑從, 외종外從을 아우르는 호칭이다. ‘윗대 한 때 4촌 사이인가’ 하여 조사해보니, 이건 조금 복잡하다. 그러니까 권벌 증조부인 현감 권계경權啓經의 사위가 이시민李時敏이고, 이시민의 맏사위가 박치朴緇이고, 둘째 사위가 송재 이우李堣이다. 박치의 사위가 진사 이식李埴인데, 이분이 곧 이황 아버지이다.
즉 권벌 증조부는 이황 외조부의 외조부였다. 그런 관련으로 ‘중표’라 한 것 같다. 지금 촌수로는 따지지도 않는 관계이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들 청암 권동보, 석정 권동미는 이황 제자가 되었고, 이황 손자 동암 이영도李詠道는 권동미의 사위였다. 권두경權斗經은 오늘의 ‘퇴계종택’과 ‘추월한수정’이 존재하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권동미의 맏아들 권채權采는 이현보의 증손서가 되고, 권채의 사위가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아들 류진이다. 둘째아들 권래權來는 큰 집으로 양자를 가서 충재 가통을 이었는데, 김담의 고손자 김늑金玏의 사위가 되었다. 권래의 아들 권상충權尙忠은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손서가 되었다. 그렇게 연실처럼 얽혀있다.
이황의 충재종택의 청암정靑巖亭 방문 기념 시는 이러하다.
酉谷先公卞宅寬 충재께서 닭실에 터를 잡아
雲山回復水灣環 구름 산 둘러 있고 물굽이 둘러있네.
亭開絶嶼橫橋入 외딴 섬 정자, 다리로 건너도록 했고
荷映淸池活畵看 연꽃 맑은 연못, 살아있는 그림 같네
稼圃自能非假學 채전 밭 가꾸며 즐기는 생애
軒裳無慕不相關 벼슬길 연모하지 않았다네.
更燐巖穴矮松在 바위틈에서 솟아난 조그만 소나무
激勵風霜老勢盤 풍상 세월, 바위와 함께 늙어가네
4.. 이현보와 이황 가문
농암 이현보, 퇴계 이황 가문을 좀 더 살펴보면, 이현보 증조부 이파李坡에게 이황 조부 이계양李繼陽은 외손서이다. 이현보는 증손자이고 이황은 외현손이니, 7촌 척질戚姪이 된다. 이황은 ‘족질族姪’이라 한 바 있다. 1549년 2월 한식일, 이파의 묘소 입석고유(焚黃告由)에 풍기군수로 제수를 준비하고 참석하여 묘갈문을 짓고 표석 글씨를 썼다.
노송정종택에는 이황의 조모 영양김씨가 남긴 분재기分財記가 있다. 이현보 숙부 이균李鈞의 집필하고 보증 서명했다.
분재는 이황의 조모인 영양김씨가 했고, 이균이 문서 작성과 서명을 했다. 이쪽에서는 고종4촌이고, 저쪽에서는 외4촌이니 말하자면 내외종 사이였다. 부인에게 이현보 아버지 형제는 외 4촌이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영양김씨는 1430년 10월 4일 출생하시어 1522년 9월 5일 돌아가셨고, 이균은 1442년 출생하시어 1540년 돌아가셨다. 93세, 99세를 사셨다. 분재는 1510년 4월 했으니, 80대 영양김씨가 70대 외사촌에게 분재를 주관하도록 한 듯하다. 여기에 98세, 85세를 사신 농암 부모 역시 자주 왕래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이계양의 동서 김홍(김담 동생)은 이현보의 증조부의 외손서이며, 이현보 어머니 안동권씨에게는 외삼촌이었으니 한 집처럼 자주 만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계양의 아들이며 이황의 숙부가 되는 이우는 이현보와 동방 급제했고, 다음세대 이중량과 이황이 또 다시 동방급제 하여 양대 남다른 인연을 맺었다. 이황은 이현보와 아들 6형제, 사위 등과도 모두 친밀했다. 제자 가운데 진성이씨 다음으로 많다.
황준량 장인은 이현보 맏아들 이문량李文樑이다. 이황이 도산서당 건축의 감독을 맡겼으며, 150여 편의 편지가 남아 있다. 처삼촌 관찰사 이중량李仲樑은 이황은 50여 편의 편지가 남아있다. 이중량과 이황 두 분 우정을 지켜본 황준량이 “하연이 퇴계가 칠월 기망에 장난삼아 지은 시에 삼가 화답 한다(謹和賀淵戱退溪七月旣望之作)” 는 제목의 시를 짓기도 했다.
내의원판사로 퇴계 최후를 진맥한 이윤량李閏樑, ‘선성3필宣城三筆’로 유명한 이숙량李叔樑은 아들이다. 이황 종손서인 이국량李國樑은 조카이며, 계문고제溪門高第로 명성 높은 이덕홍李德弘은 종손자이다. 무과급제 한 김부인金富仁은 사위이고, 황준량과 동서이고, 현감을 지낸 김기보金箕報는 손서이니, 모두 이황 제자이다.
진사합격 한 맏손자 이원승李元承은 이황과 동서이니, 관찰사 안동 가일의 권주權柱는 이들 처조부이다.
참고로 권주의 부인은 좌의정 이원李原의 증손녀이고, 둘째 손서가 이황이며, 셋째 손서는 이원승이다. 권주의 7대 종손이 병곡 권구權榘인데, 외조부는 서애 류성룡柳成龍의 손자 류원지柳元之이고, 류원지는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증손녀와 혼인했다. 권구는 갈암 이현일李玄逸의 손녀와 결혼했다. 대산 이상정李象靖은 이현일의 외증손자이며, 정재 류치명柳致明은 이상정의 외증손자가 되기도 한다.
이현보, 이황 관계는 34세 연령의 차이가 말해주듯, 이황에게는 대선배이고, 이현보에게는 아들과 같은 연령이다. 가까운 인척이며, 아들들이 친구거나 제자가 되었고, 맏손자는 동서이다. 근본적으로 횡적이기보다는 종적관계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두 분 관계는 이현보는 이황에게 자상한 어른의 자세를 넘어서는 각별한 것이었고, 이황에게는 이현보는 인척이나 친구의 부친에 대한 예우를 넘어서는 뜨거운 관계였다. 이현보는 죽음의 순간에도 이황에게 시를 짓고, 이황은 이현보에게 장문의 제문과 만사를 짓고, 제자들 앞에서 추억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행장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추모사이기도 하다. 이황의 이현보 추모 시 한편은 이러하다.
西望巖崖勝 서편 깎아지른 절벽 승경 바라보니
高亭勢欲飛 우뚝한 정자, 날아가는 듯
風流那復覩 풍류 어찌 다시 뵈올까
山仰只今稀 산처럼 높은 덕, 지금 다시 할 수 없네
이현보가 몰했을 때 이황이 아들 준寯과 황준량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지사선생께서 마침내 돌아가셨으니, 나라와 집안의 불행으로, 우리 부자는 이제 의지할 곳이 없다. 산이 무너지는 슬픔과 시국의 어려움이 겹치니, 금년은 무슨 운명으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문: 知事先生竟至損館 邦家不幸 我輩無所依仰, 答黃錦溪書曰 山頹靡仰 時事搶揚 不知今是何年何運而至此耶
도산서원 동광명실 위에 현판이 있는데, 그 주인공은 주부主簿 벼슬을 한 이운李芸(1568~1638)이라는 분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황 위패를 온몸으로 지켰다. 지금 도산서원에 보관되어 있는 서책, 집기, 고문서의 보존은 주부의 공로가 적지 않다. 개인 공로로 경내에 있는 유일의 현판이다.
이황 10대 종손, 이휘영이 쓴 현판 추모 글에, “공은 자나 깨나 도산에서 생활했고, 도산에서 죽었으며 생사가 도산에 있었다”고 했다. 이에 그를 영원히 추모할 것을 결의했다. 근년 『이주부공실기』를 <국학진흥원>에서 번역했는데, 그 서문을 이근필 퇴계종손이 썼다. ‘서원완의書院完議’는 이러하다.
“농암 선생의 증손자인 주부공께서 왜란 당시 서원 위패를 받들어 병화를 피하도록 했으니 그 공로는 잊을 수 없다. 이에 서원당회는 매년 3월 11일 기일, 쌀 한 말, 고기 몇 마리, 꿩 한 마리를 보내 영원토록 존모하도록 결의한다.”
원문: 聾巖先生曾孫主簿公 當壬辰亂 奉出本院位版 以避兵禍 其功勞不可忘 玆以堂會齊議 每年三月十一日忌日 自院中米斗魚尾雉首備送 以爲永久遵行之事
참고로, 도산서원 광명실에 하연의 내사본內賜本 『통전通典』200권 75책이 완질로 보존되어 있다. 내사기內賜記에 “嘉靖 三十九年 九月 日 內賜 禮曹參議 李仲樑 杜氏通典 一件 命除謝恩 副承旨 李(手決)”이 있다. 우리나라에 단 2질만 남아 있다.
다른 한 질은 이우성 교수가 가지고 있다가 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러나 완질로 보존된 것은 “일본 경도대학본과 더불어 광명실본이 유일하다”고 한다.
또 다른 하연의 내사본內賜本, 『문헌통고文獻通考』348권 136책(4권 결본)도 보존되어 있다. 『통전』과 비슷한 내용의 내사기가 있고, 책 끝에 ‘永陽李公幹供覽’이란 이황 친필이 남아 있다. “이중량에게 빌려 보았다”는 뜻이다. 아마 두 책 모두 빌려보시고 그대로 보존된 듯하다. 임종 당시 아들 이준, 제자 이덕홍이 있는 자리에서 "빌려온 서적과 간찰 등은 남김없이 모두 원주인에게 돌려주라" 유언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국학진흥원>에서 발간한 『선비, 그 멋과 삶의 세계』에 ‘문중 유물의 성격과 특징’이라는 보고서에 자세히 실려 있다. <국학진흥원>에서 발간한 『도산서원 고전적』에 이 책들이 소개되어 있고, 이 책 조사와 보고서를 최초 쓴 분이 이정섭 전 문화재전문위원이다.
위원께서는 한국의 온 갓 고문서, 고 전적을 조사하여 문화재로 지정했다. 당시 위원장은 임창순 선생이었다. 만년에 국학진흥원에 오시어 연구원들의 한문독해 교육과 여러 고서번역의 교열, 교감과 해제의 글을 감당하셨다. 한문 해석과, 초서 해독은 당대 제1인이다. 인품도 그렇다.
위원께서 어느 날 말씀이, “수많은 고가의 고서를 만졌지만, 한 번도 사지는 않았다”하셨다. 그 연유를 “전문가로서 혐의스러웠다” 하셨다. 이현일李玄逸 선생의 후예다운 말씀이셨다. 인연이란 알 수 없는 일이어서, 위원께서 농암종택 고문서와 전적들을 문화재로 지정할 때 그 책임자이셨고, 그 때 죽유종택도 함께 했다.
다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도산서원 고전적』을 다시 보니, 『문헌통고文獻通考』의 결본이 7책으로 되어 있어, 보고서와는 다르다. 그 연유는 알 수 없다.
이황이 쓰신 유일한 친필 우리말, ‘농암 어부가’와 ‘퇴계 도산12곡’의 목판은 농암종택에 소장되어 있다. 지금은 모두 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있다.
일제시대, 이충호李忠鎬 퇴계종손이 주도하고, 여러분이 함께한 ‘농암선생영정각’의 건립에 전 퇴계자손이 1량씩 부조했고, 그 부조기는 김호길金浩吉 박사의 고모부인 이탁李鐸이 써서 작첩했다. 합방직전, 화재로 소실된 퇴계종택의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 복원에 농암종택에서 애일당, 분강서원을 합해 200량을 부조 했다. 양가에 부조기扶助記가 남아 있고, 최근 이근필李根必 종손은 ‘한수정부조기’를 영인하여 관련 집집마다 반질한 바 있다.
1000원 권 지폐 한 면은 도산서원 전경이다. 그 좌측 상단에 아주 작은 모습의 애일당愛日堂이 보인다. 그 그림만큼 두 가문은 오랜 세월 지척을 함께 했다.
사진: 노송정종택 분재기(한국국학진흥원 소장)
해설: 퇴계 이황의 조모 영양김씨가 1510년 나이 80대가 되어서 아들, 사위에게 분재한 분재기이다. 보증인이며 문서 작성자인 이균李鈞은 직장直長 벼슬을 한 농암 이현보의 숙부인데, 영양김씨에게는 외사촌이 된다. 그때 이균은 70대였는데, 이쪽에서는 고종사촌이니, 말하자면 내외종간이다.
이계양, 영양김씨 부부가 65세, 93세이며, 이현보 아버지 이흠, 안동권씨 부부가 98세, 85세이고, 동생 이균, 봉화금씨 부부가 99세, 76세이며, 이황이 70세 수를 했는데 모두 동시대 인물이었다. 분재기 상단에 ‘직장농암숙부(直長聾巖叔父)’라고 쓰여 있는데, 아마 후대에 자손들이 쓴 듯하다.
5. 도산 장수와 『수운잡방』
음식은 장수와 연관된다. 장수를 담보하지 않는 음식이 무슨 음식이랴. 장수는 무병과 연관된다. 무병하지 않는 장수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무병장수의 음식이어야 진정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도산 혼맥’에서 김효로, 금란수, 권수익, 조목, 이현보, 이황 등이 당내 촌수라 했다. 당내堂內란 ‘집안’으로 ‘8촌 이내’를 말하며, 서구적 개념의 ‘패밀리’이다. 본가와 외가의 고조부까지 가족의 범주에 있어 ‘동고조8촌同高祖八寸’이라 했다. 궁금하여 ‘8고조도八高祖圖’를 살펴보니 과연 그러했다. 이들은 이른바 ‘도산9곡’의 한 곡씩을 차지하여 세거하며 오랜 세월 이웃으로 살아왔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두 무병장수했는가?
도산1곡 운암곡의 외내(烏川) 김효로 가문은 어떤가? 족보를 보니 과연 무병장수했다. 김유가 65세이며, 그 아버지 김효로 81세, 어머니 양성이씨 91세였다. 아들 김부인 73세, 김부륜 68세, 김부생 76세, 조카 김부필 62세이다. 다음세대의 김호 83세, 김령 65세, 김지 69세, 김삼 80세이며, 그 다음 세대인 김광계 67세, 김광악 88세였다. 형 김연도 58세이고, 조카 김부의도 58세였으니 당시로는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도산2곡 월천곡의 다래(月川) 권수익 가문은 어떤가? 권수익 93세인데, 그 아버지 권겸 93세, 동생 권수복 73세였다. 조카 권구 85세, 권속 72세이고, 종손자 권시중 73세였다.
조목 가문도 그러하여 조목 83세인데, 그 아버지 조대춘 87세, 아들 조석붕 73세, 동생 조정 83세였다.
도산3곡 오담곡의 부포浮浦는‘예로부터 수향壽鄕이라’할 만큼 장수마을이었다. 금란수 가문을 보면, 금란수 75세, 그 아들 금업 82세, 금개 68세이며, 족친 금보 66세, 금응협 64세, 금응훈 77세였다.
이웃 마을 분천의 이현보 가문에서 주관한 경로잔치인‘애일당구로회愛日堂九老會’참석자의 참석년도의 나이를 보면, 금치소 74세, 금희연 84세, 금헌 77세, 금희 72세였다.
주세붕周世鵬이 청량산 기행문인‘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에 보면, “돌아오는 길에 용수사龍壽寺에 모였는데, 이때 금치소는 나이가 85세였고, 함께 춤을 추는 금숙은 90세이니 세상에 드문 일이었다”고 했다.
부포에 이거하여 만년을 보낸 역동易東 우탁禹倬도 81세였다. 그 후손에 우경현 69세, 우희신 71세, 우치무 70세, 우의현, 우성적 등이 장수했다. 이들 역시 ‘애일당구로회’회원으로, 참석 당년의 나이이니 이보다 더 장수 했으리라 생각된다.
도산4곡 분천곡의 부내(汾川) 이현보 가문은 도산 장수의 상징이었다. 89세 장수한 이현보를 중심으로 보면, 부인 안동권씨 65세, 부인 순흥이씨 73세이며, 그 아버지 이흠 98세, 어머니 안동권씨 85세, 숙부 이균 99세, 숙모 봉화금씨 76세, 조부 이효손 84세, 조모 청주양씨 77세, 증조부 이파 76세, 고조부 이헌 84세였다.
동생 이현우 91세이고, 아들 이문량 84세, 이희량 65세, 이중량 79세, 이계량 83세, 이윤량 74세, 이숙량 74세이였다. 조카인 이충량 71세, 이수량 89세이며, 이문량의 증손자 이영운 94세, 고손자 이양직 82세였다. 이현보 가문의 장수는 상상이 잘 안 될 정도였다.
도산5곡 탁영곡의 토계土溪 이황 가문은 어떤가? 이황은 70세를 살았는데, 그 조부 이계양 65세, 조모 영양김씨 93세였다. 형 이징 85세, 아들 이준 61세, 조카 이완 85세, 이빙 66세였다. 이황의 70세도 당시로는 대단한 장수였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의 ‘稀’는‘거의 없다’는 뜻이다.
조금 정리해보면, 김효로 부부가 81, 91세이며, 권수익 부자가 모두 93세이고, 금란수 부자가 85, 82세이며, 조목 부자가 87, 83세이고, 이현보 부모가 98, 85세이며, 이황의 조부모 가 65세, 93세였다.
그러니까 광산김씨의 외내, 안동권씨, 횡성조씨의 다래, 봉화금씨, 단양우씨의 부포, 영천이씨의 부내, 진성이씨의 온혜, 토계 모두가 장수마을이었다. 도산 전체가 놀라운 장수고장인 셈이었다.
이현보의 ‘애일당구로회’ 서문에 “예로부터 우리 고향은 노인이 많았다”고 했고, 이황의 ‘농암행장’에 “예안禮安 고을에는 늙고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 상공께서 일찍이 구로회九老會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사실이었다.
『수운잡방』은 도산 장수와 장수 문화가 저술의 토대가 되었다. 이미 혈연으로 이어졌으니 더욱 그러하다. 특히 김유 맏며느리가 강호문학의 창도자로 불리며, 89세를 산 이현보의 따님이니, 친정 가문의 특별한 장수음식과 연관이 없을 수 없다.
이현보 가문의 ‘특별한 장수음식’이 문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상하기 어려운 장수는 음식과 무관하지 않다. 1500년대 평균 연령 80세, 그것도 7대 200여년 계속되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이황이 이현보를 평가하여 “강호지락江湖之樂과 인간지락人間之樂을 누렸다”고 한 표현은 우연이 아니며, 사람들이‘농암종가 장수음식’을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도산 향내 전체가 효도와 경로정신이 가득한 강호지락의 고장이었고, 거기 각 성씨마다 누려온 무병장수는 인간지락의 지극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당시 도산은 그런 곳이었다.
탁청정 김유(1491-1555)가 쓴 한국 최초의 음식요리서, 『수운잡방』은 이런 도산 장수의 산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