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선생 유적지_분강촌 ::::::::: 농암종택

보물 제1202-6호

번역본

이현보종가문적

-애일당구경별록

《애일당구경별록(愛日堂具慶別錄)》

화산 양로연 시

花山養老宴詩

풍년 들고 시절 맑은 구월 하늘 아래歲稔時淸九月天

관청 마루에서 잔치 열어 노인들 모았네公堂開宴會高年

백발의 노인들 부축하여 모신 잔치 자리 霜髥雪鬢扶携處

붉은 단풍 누런 국화 난만하게 피었네赤葉黃花爛熳邊

존비 따라 자리 정하여 술잔 두루 돌리고位設尊卑酬酢遍

안팎 나눈 대청에 음악소리 이어지네廳分內外管絃連

술잔 앞 색동옷 놀이 이상할 것 없으니樽前綵戱人休怪

태수의 두 어버이도 잔치자리에 있다오太守雙親亦在筵

기묘년(1519, 중종14) 가을에 재임한 고을에서 양로연(養老宴)을 베풀고 경내의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찾아, 사족(士族)에서부터 천예(賤隷)에 이르기까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이가 해당되는 자이면 다 참여하게 하니 모두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이때 나의 부모님도 화산(花山)에서 한 나절 거리의 이웃 고을에 계시고 연세가 팔순이셨다. 《맹자(孟子)》에 이르기를 “내 집의 노인을 노인으로 잘 모시고 나서 남의 노인에까지 미친다.” 하였으니, 지금 좋은 날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고 빈객을 모아놓고 고을의 노인을 즐겁게 하면서, 내 어버이를 먼저 하지 않는다면 어찌 인정과 사리에 합당하겠는가. 이에 맞이하여 함께 참석시키고 안팎으로 대청을 나누어 나의 부모님을 주인으로 삼고, 성대하게 음식을 차려서 더없이 즐겁게 하니, 구경하는 이들이 아름답게 여겼고 나도 스스로 흐뭇하게 여겼다.

대개 벼슬하여 장상(將相)에 이르러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그 어버이를 영예롭게 봉양하는 자가 어찌 세상에 없겠는가만, 나와 같이 이웃 고을의 원이 되어 고을의 노인들을 모아놓고 두 어버이를 모셔와 같이 즐겁게 잔치를 연 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모르겠지만, 이후로 다시 이런 연회를 열 수 있겠는가. 감격스러운 나머지 한편은 기쁘고 한편은 두려운 마음이 자연히 생기게 된다. 드디어 4운(韻) 시를 지어 좌중에 보이고 화답을 구하여 훗날 길이 사모하는 자료로 남겨두는 바이다.

농암 애일당 시

聾巖愛日堂詩

작은 고을 선성은 바로 나의 고향으로十室宣城是我鄕

선조가 물려주신 경사가 길이 이어지네祖先餘慶積流長

백발노인 두 분 어버이는 여든을 넘으셨고皤皤雙老年踰耋

슬하의 자손들은 이미 마루에 가득하다오膝下雲仍已滿堂

어버이 연로하신데 어찌 왕궁을 사모하랴親老那堪戀帝鄕

임금 섬길 날은 길다고 옛사람이 말하였지古人猶說事君長

대대로 이어온 평천의 가업 분천 굽이에 平泉世業汾川曲

바위 가에 새로 터 잡아 구경당을 지었다오新作巖邊具慶堂

바위가 집에서 동쪽으로 1리 쯤에 있는데, 높이는 몇 길 남짓 되고 위에는 20명이 앉을 만하다. 앞에 큰 냇물이 있어 여울이 세차면 물결소리가 귀에 울려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인데, 아마도 ‘농암(聾巖)’이라는 이름은 이 때문에 붙여진 듯하다. 따라서 숨어서 세상의 출척(黜陟)을 따르지 않는 자가 산다면 이름과 뜻이 더욱 부합하니, 참으로 아름다운 경계이다.

선대에 이곳에 터를 잡고 산 이래로 아름다운 명절이면 자제들을 데리고 이곳에 놀았는데, 정자와 대(臺)를 만들어 더 아름답게 꾸미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지가 여러 대가 지났다. 나의 선친에 이르러 더욱 평소 마음을 두셨으나 미루다가 이루지 못한 채 노년이 되셨다. 내가 선친께서 뜻을 이루지 못하신 것과 아름다운 경계가 황폐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바위를 인하여 터를 삼고 돌을 쌓아 대를 만들고 그 위에 정자를 지어, 아버님께서 건강히 살아계실 때에 그 속에서 모시면서 여생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게 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름을 ‘애일당(愛日堂)’이라 하였으니, 그 마음과 뜻으로 볼 때 어찌 급히 서두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절구 두 수를 지어 여러분들에게 화답을 구하여 이전의 양로연(養老宴) 시와 함께 아울러 남겨두려고 한다.

애일당희환록(愛日堂戲戱歡録)

가정(嘉靖) 병술년(1526, 중종21) 여름에 내가 장악원 정(掌樂院正)으로서 남방의 진해(鎮海) 등의 관소에서 해산물을 실은 배가 난파된 데 대하여 추국하라는 명을 받고 가서 한 달 동안 분주히 쫓아다녔다. 미처 일을 다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유서(諭書)가 내린 것을 보니 당상관에 올려 병조 참지(兵曹參知)에 제수하였기에 깜짝 놀라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당시에 나의 부모님이 예안(禮安) 고향에 계셨기에 달려가 이별을 고하고 서로 마주보며 감읍하여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서울 친구가 보낸 옥환(玉環)이 때마침 도착하였기에 어버이 앞에 나아가 갓을 벗어 옥환을 다니 모친께서 손으로 만져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옥환에 구멍이 많으니 갓끈에 꿰는 것이 어렵지 않겠느냐?” 하시기에, 내가 농담으로 고하기를, “달기가 어렵지 꿰는 것이 어찌 어렵겠습니까.”하여, 온 집안이 즐겁게 웃었다. 내가 그 뜻을 인하여 절구를 지어 읊기를,

새로 내린 교서 먹도 아직 안 말랐는데 新降天書墨未乾

옥빛 찬란하게 찬 귀밑머리에 비추었네玉光輝映鬢毛寒

부모님 옥환 구멍 많은 것을 묻지 마소서爺孃莫問環多孔

달기 어렵지 꿰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요懸是爲難貫不難

하여 미담(美談)으로 전하였다.

해를 지나 이듬해 봄에 또 동부승지로서 휴가를 받아 내려와 근친하였는데, 어머님께서 내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언문으로 가사를 지어 여종에게 가르치고 말씀하시기를, “승지가 오거든 이 노래를 불러라.”하셨는데, 그 노래는 이러하였다.

먹기도 좋을시고 승정원 선반이야 먹디도 됴샤 승원 션반야

놀기도 좋을시고 대명전 기슭이야 노디도 됴샤 대뎐 기슬갸

가기도 좋을시고 부모님 향하는 길이야 가디도 됴샤 부모 다힛 길히야

대개 어머님께서는 일찍 부친을 여의고 외삼촌 문절공(文節公) 집에서 자라셨기 때문에 승지가 귀하고 드러난 벼슬인 줄을 아셨고, 또 당시 내간(內間)에서 평소 하는 말을 기억하셨던 것이다. 지금도 정원(政院) 관원의 아침저녁 식사를 ‘선반(宣飯)’이라 일컫고 있다. 내가 내려와 그 노래를 듣고 찬탄을 금치 못하고 그 노랫말을 인하여 절구 한 수를 지었다.

궁중의 선반에 배부르고口飽宫廚膳

대궐 계단에서 놀았네身遊靑瑣墀

기쁘게 남쪽으로 돌아오는 길南歸行色喜

어머님 향하여 말을 달렸네 䇿馬向親闈

이때 감사 동양(東陽) 신대용(申大用)이 와서 잔치를 베풀어주면서 이 사실을 들었는데, 그는 일찍 부모를 여의었기에 더욱 간절히 흠모하고, 뜻을 다하여 축수 술잔을 올리고 절구 한 수를 지었다.

부모님 늙지 않고 장수를 누리셔서椿萱不老占長年

두 분 학발 아래에서 경축 잔치를 열었네 鶴髮雙垂具慶筵

슬하의 효자가 새로 은총을 받아서膝下萊君新寵渥

머리에 이초 꽂고 서울에서 왔구려珥貂來自五雲邊

내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하면서 서울과 지방을 출입한 지 거의 40여 년이 되었다. 그 동안 두 분 어버이를 봉양하면서 옆에서 모시고 즐겁게 해드린 것이 한두 가지 일이 아니지만, 오직 이 두 가지 일이 가장 즐겁고 기뻤다. 우스개 이야기와 아까운 시문을 헛되이 버릴 수 없겠기에 이어서 작은 첩을 만들고 동양(東陽)의 시를 함께 기록하여 애일당에 보관하여 후손들이 보고 느끼는 바가 있게 한다.

애일당 구로회

愛日堂九老會

옛날부터 우리 고을은 연세 높은 어른이 많기로 일컬어졌다. 가정 계사년(1533, 중종29) 가을 내가 홍문관 부제학이 되어 내려와 수연(壽筵)을 베푸니 이때 선친의 연세가 94세였다. 내 생각해보니 전날 부모님이 모두 계실 때 연석을 마련하여 손님을 모아 즐겁게 해드린 일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만 계시고 기거(起居) 또한 수고로워 잡빈(雜賓)은 제외하고 다만 향중에 아버지와 동년배인 80세 이상의 노인을 초대하니 모두 여덟 사람이었다. 마침 향산(香山)의 고사(古事)가 있기에 ‘구로회(九老會)’라 하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의 소매가 이어져서 혹은 눕고 혹은 앉는 등 마음대로 편하게 자리를 잡으니 진실로 기이한 모임이었다.

술이 어지간히 무르익자, 생원 김효로(金孝盧) 공이 술잔을 잡고서 말하기를, “우리 고을이 작기는 하지만 멋진 일이 많소. 공같은 천상의 선관(仙官)이 와서 잔치를 올리니 마루에 가득한 고을 노인들이 축수 술에 다 같이 취하였으니, 이 어찌 다른 고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성대한 일이 아니겠소.” 하였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니, 생원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제학은 어찌 그런 말을 하시오?”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지금 내가 옥당의 장관으로서 역말을 타고 고향에 왔는데, 다른 고을이라면 사람들이 다투어 바라보며 신선 같은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고을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한림(翰林), 주서(注書), 대간(臺諫), 승지(承旨)를 지내는 자가 서로 이어져 왕래하니, 보는 자들이 그저 보통 일로 알고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내 나이가 예순에 일곱을 더 먹었는데, 다른 고을이라면 스스로 늙었다고 할 것이고 사람들도 노인으로 높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가정이나 고을이나 팔구십 노인이 마루에 가득하니, 저같은 반백의 나이로 어찌 감히 그 사이에서 노인이라 하겠습니까. 내가 이 고을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하니, 생원이 웃으면서,“이 말은 스스로 불만을 말한 듯하면서 실은 스스로 자랑한 것이니, 더욱 고마운 일이오.”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면서 기쁘게 놀고서 잔치를 마치고 자제에게 그 사실을 기록하게 하였다.

귀전록(歸田録)

효빈가(效顰歌)

돌아가리 돌아가리 말 뿐이고 가는 이 없어 歸去來歸去來 말이오 가리업싀

전원이 황폐해지니 아니 가고 어찌 할꼬 田園 將蕪니 아니가고 엇뎰고

초당에 청풍명월이 나며 들며 기다리나니 草堂 淸風明月이 나들 기드리니

위 시 설명: 가정(嘉靖) 임인년(1542, 중종37) 가을에 농암옹(聾巖翁)이 비로소 관복을 벗고 도성 문을 나와 돌아갈 배를 빌려놓고 한강에서 전송 술자리를 베풀었다. 배 위에서 취해 누우니 동쪽 산에 달이 떠오르고 산들바람이 잠시 불어 도 팽택(陶彭澤)의 “배는 한들한들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살랑살랑 옷깃에 불어오네[舟摇摇以輕颺, 風飄飄而吹衣.]”라는 구절을 외웠다. 이에 귀향의 흥이 절로 무르익어 흐뭇하게 웃으며 이 노래를 지었다. 노래가 본래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본떴기 때문에 효빈(效嚬)이라 하였다.

농암가(聾巖歌)

농암에 올라보니 늙은이 눈이 더욱 밝아져오네聾巖애 올아보니 老眼이 猶明ㅣ로다

인간사가 변한들 산천이야 변할까 人事이 變 山川ᅵㅣ 가가

바위 앞 저 산 저 언덕 어제 본 듯하여라巖前에 某水某丘이 어제 본 예라

위 시 설명: 농암옹이 오랫동안 서울에서 벼슬하다가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와 농암(聾巖)에 올라가 산천을 두루 살펴보니 영위(令威)의 감회가 없지 않았다. 아직도 옛날에 놀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기뻐하면서 또 이 노래를 지었다.

생일가(生日歌)

공명이 끝이 있을까 수요는 하늘에 달린 것功名이 그지 이실가 壽夭도 天定이라

금서대 굽은 허리에 여든에 봄맞이 몇 해던가金犀 구븐 허리예 八十逢春 긔몃오

해마다 오는 날이 또한 임금님 은혜로세 年年에 오나리 亦君恩ᅵᅵㅣ샷다

위 시 설명: 7월 그믐날은 이 늙은이의 생일인데, 자손들이 늘 이날이면 술잔치를 베풀어 늙은이를 위로하였다. 신해년(1551, 명종6) 가을에 특별히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고 고을의 부로와 사방 이웃 고을의 수령이 함께 모였다. 성대하게 놀이 도구를 베풀고 번갈아 일어나 술잔을 돌리고 마침내 취하여 춤추고 제각기 노래를 불렀다. 이 늙은이도 화답을 하였으니, 이것이 그때 지은 것이다. 늙은이의 나이 금년 87세이고,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지낸 지 열두 해가 되었다. 그 만년의 거취와 즐겁게 논 행적을 이 세 단가(短歌)에 다 표현하고, 써서 스스로 자랑하는 바이다.

가정(嘉靖) 계축년(1553, 명종8) 청화절 16일에 숭정(崇政)으로 치사한 영양(永陽) 이모(李某)가 농암(聾巖)의 작은 집에서 쓰다.

분천의 속구로회

汾川續九老會

향산의 고상한 모임 몇 년이나 지났던가香山高會幾多年

분천의 십 년 전 모임 다시 보게 되었네復覩汾陽十載前

다시 좋은 계절 만나 행운 하나 늘었고更此良辰添一幸

신선같은 당시의 노인들이 자리잡았네當時老子押群仙

호호백발은 가을 달빛인가 여겨지고婆娑皓髮欺秋月

출렁이는 술동이는 주천으로 통했네瀲灔芳樽徹酒泉

두 대를 곁에서 보다 도끼자루 썩었으니再世傍觀柯已爛

기이한 일 흥겹게 바깥사람들에게 전하리好將奇事外人傳

부친께서 계사년(1533 중종28) 가을에 옥당 학사(玉堂學士)로서 휴가를 받아 내려오셔서 조부님을 위하여 향중의 사족 중에서 나이 70세 이상인 분들을 초빙하여 구로회(九老會)를 열었는데, 그 뒤로 노인들이 다 세상을 떠나셔서 당시 모임에 참석하였던 이는 한 분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부친께서 임인년 가을에 벼슬을 그만두고 한가히 생활하셨는데, 올 가을 중양일에 또 70세 이상인 분들을 초빙하여 이어서 구로회를 여시니, 아버님 연세가 두 번째였다. 대개 사람이 살면서 일흔을 넘기는 것이 드물다고 하는데, 한집안 안에서 해마다 이 모임을 열게 되니 한집안의 성대한 일이고, 한 고을에 아홉 명이나 있었고 10여년 사이에 다시 가렸는데도 모자라지 않으니 한 고을의 성대한 일이다. 분천(汾川) 한 굽이에서 이 일을 여러 번 보게 되니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온다. 이에 장편시를 지어 축송하고 기도하는 바이다. 중량(仲樑)이 쓰다.

차운하다

次韻

오백 년 사실 날에 이제 겨우 팔십 년인데五百年纔八十年

고을 노인 고상한 모임 전날 이어 경사롭네鄕髦高會慶追前

노래자(老萊子)의 색동옷으로 장수하시는 어버이 받들고萊衣昔奉靈椿樹

모의의 격서로 늙지 않는 신선을 봉양하네毛檄今供不老仙

온 고을이 빠짐없이 국담의 이슬 마시고闔境儘餐潭菊露

온 집안이 응당 단사정의 물을 마셨으리全家應飮井砂泉

화답시를 지으며 홀로 끝없는 감회에 젖으니和詩獨抱無涯感

기이한 일 세상에 전하여 무슨 탈이 있으랴奇事何妨萬口傳

지사(知事)로 퇴임한 상공 합하가 고을의 노인 70세 이상 10인을 모아 계사년 구로회(九老會)를 이었다. 그의 아들 영천 군수(永川郡守) 공간씨(公幹氏 이중량(李仲樑))가 이미 고을원이 되어 봉양하면서 와서 축수 잔치를 베풀고 시를 지어 축송하고 기도하니, 가슴 깊이 사랑하고 공경하는 뜻이 말 밖에 넘쳐흘렀다.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으로서 일찍 고어(臯魚)의 슬픔을 안고 있기에, 시를 올리고 읊는 나머지 감회가 북받쳐 올랐다. 삼가 화답하여 재배하고 올리지만 감히 시를 지었다고 하지 못하겠고, 그저 앞장서서 화답하여 성대한 일을 널리 알리기를 바라는 바이다. 가정(嘉靖) 정미년(1547, 명종2) 중양일 며칠 뒤에 진성(眞城) 이황(李滉).

차운하다

次韻

세상에 태어나 세 번 노인잔치 보았으니生世三看饗大年

한 집안의 영광 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이라네一家榮幸更無前

낙사와 향산의 모임처럼 사람들이 많았고人多洛社香山會

홍교와 채악 속의 신선들 잔치에 견줄 만하네事擬虹橋綵幄仙

성대한 자리에서 이미 새 법곡을 들었고綺席已聞新法曲

단약 굽는 화로에는 국담의 물 떠 왔으리丹壚應挹菊潭泉

은근히 가문의 사업 잘 보존하여慇懃好保門䦨業

후손에게 전하여 길이 전하게 하리라貽厥相將永世傳

기묘년 가을에 아버님이 화산(花山)에서 양로연을 베푸셨고, 계사년에 또 분천(汾川)에서 구로회(九老會)를 베푸셨으니, 다 양친을 위하여 겸하여 축수연을 베푼 것이다. 지금에 공간(公幹)이 또 아버님을 위하여 향산(香山)의 고사를 이어 거행하여 한 집안에서 세 번 성대하고 아름다운 잔치를 보게 되니, 기쁘고 경사스러운 마음이 응당 어떠하겠는가. 앞서 지은 것을 뒤따라 화답하여 아우들을 면려하고 스스로 또 면려하려고 한다. 이문량(李文樑)이 쓰다.

차운하다

次

잔치 자리에 나이 순서대로 자리를 잡으니 當筵分座使之年

야인의 옷에 금장이 앞뒤로 뒤섞였네野服金章混後前

술잔 잡은 수령은 오마를 타고 온 손님이고執酌遨頭五馬客

옷깃 이어진 노인들은 한 줄의 신선일세連裾鶴髮一行仙

장수가 많음은 물에 뜬 국화로 징험하고壽多已驗潭留菊

온통 다 취하니 주천이 있나 의심하네醉遍飜疑酒有泉

작은 고을의 한 집에서 이 모임 이어지니十室一家連此會

옛날 강현 이야기는 자랑할 것이 못 되리休誇絳縣古今傳

계사년(1533, 중종28)의 모임은 아버님을 위하여 베푼 것이니, 구로회(九老會)라고 일컬은 것은 사람 수가 우연히 일치한 것이었는데, 향산(香山)에 비한 것은 참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의 모임은 바로 내 자신을 위한 것인데, 오히려 그 이름을 그대로 썼으니 잘못된 것을 답습한 것이 심하다고 하겠다.

내가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온 것이 지금 6년이 되었다. 인묘조(仁廟朝)에 특별히 정2품에 제수되었고, 조부님과 아버님도 증직되어 임금의 교지가 내렸으나 경축 행사를 할 겨를이 없었다. 이에 금년 중구절에 국상(國喪) 기간이 끝났고 명절을 맞이하였기에 감히 새로운 관복을 입고 가묘에 제사를 올려 고하게 되었는데, 신주를 다시 쓰고 차례로 관직을 올리니 유명(幽明)이 함께 영예로웠다. 이윽고 음복 잔치를 베풀고 고을의 노인 중에 나와 연배가 같은 자들을 가려 불러 나이 차례로 앉았으며, 잡다한 손님은 제외하였다. 아들 중량(仲樑)이 이때 영양(永陽)의 군수가 되었으므로 모든 잔치 물품을 그가 마련하였다. 잔을 잡고 주선하여 마음과 예절을 극진하게 표하니 노인들이 기뻐하여 마침내 취하여 춤을 추고 마쳤다.

중량이 감격하고 기뻐하며 드디어 사운시(四韻詩)를 지어 좌석에 올리니, 진성(眞城) 이 전한(李典翰) 황(滉)이 듣고서 화답하였고, 맏아들 문량(文樑)도 화답하였으며, 모두 서문이 있었다. 그런데도 미진한 뜻이 있어 이 늙은이에게 붓을 주기에 나 또한 차운하고 그 전말을 기록하였다.시를 지어보이며 화답을 하라는 분부에 감격하고 또 향산(香山)과 낙양(洛陽)의 성대한 모임을 오늘날 다시 보게 된 것을 하례하고, 졸렬함을 잊고 삼가 지어 올리다

旣感示詩求和之敎且賀復覩香山洛中盛事之美於今日忘其鄙拙録奉左右云

열 노인이 분천에서 나이 꼽아 모였으니十老汾川會序年

향산 만이 칭송하는 말 독차지하지 못하리香山不獨美專前

맑은 강 푸른 벽은 호리병 속의 경계이고 清江翠壁壺中界

창안에 백발을 한 분들 지상의 신선들이네白髮蒼顔地上仙

솥 속의 부용은 안주가 모두 옥이고鼎裏芙蓉肴盡玉

병 속에 구기 거두니 술이 샘물과 같네瓶收枸杞酒如泉

구루에서 고을살이 도리어 병이 많아割鷄句漏還多病

금단을 배우려 하는데 기꺼이 전해주려나欲學金丹肯許傳

서하(西河) 임내신(任鼐臣)

차운하다

次韻

낙양에서 천 년 전에 노인들이 모였었고洛中千載會高年

용산에서 구기자와 국화 앞에 모자 떨어뜨렸네帽落龍山杞菊前

푸른 잣나무와 소나무는 진정 그 기상이고翠栢蒼松眞氣味

동안에 백발을 한 이들 의젓한 신선이네童顔鶴髮儼神仙

찬란한 빛이 남극성에서 반짝이고星芒赫赫臨南極

맑고 시원한 신선의 물을 옥천에서 뜨네霞液泠泠挹玉泉

한 집안에서 아름다운 일 다시 보게 되었으니勝事一家今再見

하늘이 점지한 상서로움을 역사에 전하리라占天奇瑞史應傳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이 삼가 화답하다.

삼가 농암 상공의 고고한 시에 차운하다

敬次聾巖相公老爹髙韻

미천한 몸 높은 어른 뵈어 얼마나 다행인지賤生何幸揖耆年

십 년 전에 동호에서 한번 뵙고 헤어졌었네一别東湖十載前

백발은 전과 다름없이 하늘의 학과 같고白髮依然天上鶴

동안은 도리어 지상에 사는 신선이시네童顔還似地行仙

물소 뼈 띠 번쩍여 임금의 은총이 빛나고犀光耀帶誇君寵

맛난 술동이에 가득하니 주천에서 떠왔구려瓊液浮尊挹酒泉

옛날 향산의 모임 이었으니 참으로 성대한 일追會香山眞盛事

오늘의 풍류가 천년 동안 길이 전해지리라風流千古可堪傳

내가 외람되게 상공(相公)께서 알아주심을 입고서 종남산(終南山)에서 모시고 논 것이 여러 번이었다. 지난 임인년 가을에 상공께서 배를 타고 귀향하시게 되어 동호(東湖)에서 인사드리고 작별하였다. 그 뒤에 내가 조정에서 죄를 얻어 북쪽 변방에 유배되어 6,7년을 지냈는데,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니 꿈결 같았다. 지금에 다행히 은혜를 입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상공께서 체후가 건강하시다는 소식을 들었고 또 상공의 시가(詩歌)를 보게 되어 너무나 기쁜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감히 책 끝에 화답하여 나의 마음을 표하나, 다시 덕을 흠모하는 마음을 펼 길이 없는 것이 한스럽다. 황송한 마음으로 재배하다. 갑인년(1554, 명종9) 모춘 하순에, 후학 영가(永嘉) 권응정(權應挺) 삼가 쓰다.

삼가 차운하다

敬次

창안백발의 모습 몇 해나 뵙지 못하였던가白髮蒼顔隔㡬年

농암 강가에서 굽어보는 모습 덧없이 생각했네聾巖空憶俯江前

이미 일흔의 연세 인간세상의 복을 누리시니已知稀古人間福

세상 밖의 신선이라고 다투어 칭송하고 있네爭道當今物外仙

관직 다 내놓고 돌아와 세상사 다 멀리하고彭澤歸來遺世事

노인들 아름다운 모임으로 임천에서 즐기네香山勝集樂林泉

지팡이 들고 모시고 싶어도 이룰 수 없기에欲陪杖屨嗟無路

두 곳의 편지를 기러기에게 전하네兩地音書寄鴈傳

문하에서 뵌 지가 어느덧 10년이 지났는데, 나는 중간에 쫓겨나 먼 변방에 유배를 당하였었기에, 종남산에서 놀고 농암(聾巖)을 찾아갔던 일들을 꿈속에서 그리워할 뿐이었습니다. 지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왔지만 다시 뵐 길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지금에 고상한 모임을 열고 시를 엮은 것이 두루마리에 가득하니 마치 안석 앞에서 뵙는 것처럼 기쁨을 이기지 못합니다. 삼가 위와 같이 거친 구절을 엮었으나, 감히 시를 지은 것이라고 하지 못하겠고, 애오라지 높이 사모하는 뜻을 붙일 뿐입니다.

가정(嘉靖) 갑인년(1554, 명종9) 모춘 16일에, 화산 후인(花山後人) 권응창(權應昌) 재배하고 올림.

삼가 차운하다

敬次

분천의 기로회 당년에 성대하였는데汾川耆會詫當年

십오 년 지난 뒤에 다시 이어 열었네十五秋來更續前

관복은 지금에 장수하여 더 존귀해지고章服如今南極貴

벼슬은 지난날 옥당의 신선이었네簪纓伊昔玉堂仙

순임금 때와 같은 태평성대를 맞이하여欣逢姚聖無虞日

마고처럼 늙지 않은 분께 축하주를 올리네樂侑麻姑不老泉

노인 숭상하는 잔치 대대로 이을지니尚齒勝筵能世講

향산, 낙양과 함께 그 명성 전하리라賸追香洛共光傳

옛날에 분왕이 누렸다고 누가 말했던가誰道汾王享昔年

지금 분천에서 더 아름다운 것을 보았네汾川今見美居前

고을 원으로 삼생(三牲)의 봉양 번갈아 올리고三牲迭薦專城養

백년을 서로 계승하여 대대로 신선일세百祀相承奕世仙

한없는 복록이 높은 언덕처럼 풍부하고錫嘏重重崇峻阜

이어지는 경사가 샘물처럼 흘러나오네來休衮衮出原泉

음덕 쌓아 받은 보답 하늘이 정한 이치이니陰功顯報天還定

우리나라 온 세상에 성대한 일로 전하리라蔽盡吾東盛事傳

가정(嘉靖) 갑인년(1554, 명종9) 모춘 상현에 가야(伽倻) 후학 이문건(李文楗) 삼가 쓰다.

병으로 글쓰기를 그만두어 거듭 독려하시는 것을 어기겠기에 아름다운 시전지(詩牋紙)를 더럽히게 되어 두려워 등에 땀이 흐릅니다. 저는 청송(青松)에 살아 평소 교분이 있었으나, 늘 상공의 문하에 나아가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것을 한스럽게 여겼는데, 마침 이런 즈음에 외람되게 화답하여 직접 나아가 당신께 가르침을 받는 것에 비기려 합니다. 삼가 원하건대, 한 번 웃음거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황준량 [애일당구경별록 발문]

대저 솥을 널려 놓고 영예롭게 봉양하고 관직을 그만두고서 장수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화롭게 여기고 모든 사람이 다 원하는 바이다. 대개 입신양명하여 어버이를 드러내는 것이 효도의 일이지만, 이름이 나기도 전에 혹 풍수(風樹)의 슬픔을 겪기도 하고, 과감하게 물러나 한가로이 수양하는 것이 높은 절개지만 나라에 대한 보답을 마치기 전에 혹 망향의 한탄을 안고 품기도 한다. 이는 하늘에 달려 있어 기필하기 어렵고 인간사에 일정할 수 없는 것이다. 삼락(三樂)이 완전하고 오복을 갖추어 조금도 흠결이 없는 분을 찾는다면 오직 우리 농암(聾巖) 이 상공(李相公)일 것이다.

공은 선조 이래로 덕을 쌓고 경사를 마련하여 후세에 물려주었고 공의 몸에 이르러 크게 떨쳤다.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높은 지위에 올랐으니, 영예와 효도를 누리고 명예를 잘 마무리한 것은 공으로서 당연한 것이었고 소장부가 요행을 바라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다.

대개 50년 동안 벼슬길에 드나들면서 지방관으로 나왔을 때는 다 어버이를 기쁘게 하고 뜻을 봉양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이목에 훤히 드러난 것으로 큰 것이 있다. 그가 안동 부사가 되었을 때 온 고을의 노인들을 모아 양로연을 베풀었는데, 그 주인 자리는 내외가 다 가정의 어버이였고, 백발의 몸으로 재롱을 떤 이는 슬하의 수령이었다. 이에 구경한 사람들이 우뚝 사모하며 효심을 일으키지 않는 이가 없었고, 명현들이 축시를 지어 감탄하였으니, 영광스럽고 성대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었다.

승정원 승지가 되어 영남으로 근친을 왔을 때 구름을 바라보는 기쁨과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는 정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상상되니, 신 동양(申東陽)이 또 마루에 올라 절하고 영화롭게 여겼다. 훤당에서 모부인이 이날 시를 읊은 뜻을 보면 기쁜 낯빛과 온화한 목소리를 상상해 볼 수 있고, 바른 성정과 효성스러운 뜻도 부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닌 듯하니, 풍인(風人)이 이른바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 있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한 것이다. 또 옥당의 장관으로서 영예롭게 축수연을 베푸니, 팔구십 세의 노인으로서 부친과 같은 연배가 한 고을에 8명이나 되어, 동안백발의 노인들이 함께 취하여 즐기니, 그 자식으로서의 즐거움은 천하의 왕 노릇을 하는 것도 끼지 못할 정도였다. 옛날 고사에 빗대어 ‘구로회’라고 한 것은 참람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한 집안의 기이한 운수로서 천년에 보기 드문 일이며, 어찌 한 고을을 빛내고 한 시대에 자랑하고 말 뿐이겠는가.

아, 애일당(愛日堂)은 해가 백세토록 길어 기쁘게 해드리고 영예로움으로 봉양하는 것이 둘 다 지극하니, 어버이를 섬기는 데 상공만큼만 하면 충분하다. 그런데 오히려 슬픈 감회를 가지고 먼 조상을 추모하는 것을 잊지 않고 옛날 사적을 기록하여 끝없이 사모하는 뜻을 표하였으니, 자식으로서 효도하려는 마음이 무궁한 것을 볼 수 있고, 큰 효자는 종신토록 사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금의 은혜에 대하여 거의 갚고 나서 벼슬을 그만둘 때가 되어서는, 작록(爵禄)이 고고한 회포에 끼어들지 않고 멀리 꿈속에서 천석(泉石)을 찾았고, 도성의 먼지를 털고 멀리 세상 밖으로 나가니 도성 안의 사대부들은 흠모하면서 만류하지 못하였다. 그 과감하게 물러난 절개는 소부(䟽傅)와 공승(孔丞)보다 더 빛났다.

몸이 건강한 날 관직에서 물러나 10여 년 간 한가히 지내며 바위 가 냇물과 정자에서 즐거움을 다하여, 학림(鶴林)의 놀이를 본뜨고 요부(堯夫)의 수레를 이끌며,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고 영예로움으로 어버이를 봉양하며, 움직이거나 조용히 있거나 밥을 먹거나 쉬거나 스스로 즐거운 일 아닌 것이 없었다.

세 편의 가사를 지은 것과 구로회가 더욱 성대하였으니, 하나는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본떠서 명농(明農)의 그림에 부응한 것을 기뻐한 것이고, 하나는 옛날에 놀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에 감동하여 스스로 고향을 떠나지 않는 것을 기뻐한 것이고, 하나는 장수하고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을 스스로 행운으로 여겨 하늘과 임금에게 지극히 사례한 것이다. 만년의 거취와 남보다 먼저 걱정하고 남보다 뒤에 즐긴 자취가 이 세 가사에서 다 표현되었고, 풍류와 아량은 사람들이 무릎을 치면서 감탄하게 하기에 족하였다.

높은 벼슬을 받아 선조에게 영예를 고하고 임금이 내린 음식을 고을 노인들에게 미루어 주어, 9명의 노인을 나이에 따라 앉히고 잔치를 열어 향산(香山)과 낙양(洛陽)의 성대한 모임을 한 집에서 연속 세 번 베풀었기에 노인들이 온 고을에서 여러 번 참여하였다. 연회에 참여한 사람이 혹 서울의 제현들에게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상공의 덕망은 실로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과 앞을 다툴 만하다.

그 음악에 뜻을 붙인 것과 다정(茶鼎), 주표(酒瓢)와 거문고와 바둑을 가지고 달뜨는 밤에 도롱이를 입고 배를 타면서 마음이 내키는 대로 자적하였고, 물고기와 새와 서로 친하게 지내고 들 농부와 격의 없이 지냈으며, 〈어부사(漁父詞)〉와 〈적벽부(赤壁賦)〉를 흥겹게 높이 부르며 호쾌한 기분에 돌아오기를 잊고, 삼신산의 맑은 기운을 잡고 한 구역 아름다운 경치를 독차지하였다. 이로써 마음에 깊이 느끼는 경지가 되니, 득실(得失)을 똑같이 보고 사려(思慮)를 비워 내려놓고, 흐뭇한 희열과 적막한 고요 속에서 홍몽(鴻濛)보다 앞서서 조물주와 함께 논 것이다. 아홉 번 불러도 그 지조를 변하지 않고 만 종의 녹도 그 즐거움을 바꿀 수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 풍채를 바라보면 마치 신선이 노니는 듯하였다.

대개 그의 맑은 기풍과 높은 절개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역사를 빛내는 것은 바로 나라의 영광이지 일신의 사적인 영예가 아니다. 시편에서 상공을 곽 분양(郭汾陽)에게 비교하는 자가 많았는데, 나이와 벼슬이 덕에 꽉 찼던 것과 훌륭한 자손이 많았던 것은 참으로 비교할 것이 못 되니, 곽 분양의 이름이 우연히 일치한 것은 일시의 논의로서 덮어둘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늘 공의 책상 앞에서 뵈면서 서첩을 꾸미고 끝에 발문을 쓰라는 명을 받았기에 즐겁게 그 사실을 적게 되었다. 졸렬함을 헤아리지 않고 이와 같이 쓰다.

가정(嘉靖) 갑인년(1554, 명종9) 봄 정월 상순에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이 삼가 발문을 쓰다.

용산 높구나

龍山高

영숙(永叔)의〈여산 높구나[廬山高]〉 시를 본떠 차운하여 농암(聾巖) 이 상공(李相公)의 생신에서 축수하다.

우뚝 높이 치솟은 용수산이여巍乎高哉龍首山

소백산과 태백산에 뿌리를 두고 동해의 삼신산에 기운이 접하여根盤二白氣接海上之三山兮

성난 용이 발톱으로 움켜잡고 분강의 물을 마시도다怒虬攫挐渴飮乎汾江

강물이 은하수에 잇닿아 동쪽 바다로 들어가니江連銀漢東注海

도도하고 아득히, 근원이 멀어 물길이 길게 흘러가도다滔滔浩浩源遠而流長兮

평평하게 펼쳐지면 맑은 거울과 같고平鋪銅鏡磨

노하여 물결치면 옥 술잔을 치는 듯하네怒捲玉斗撞

박옥과 주옥을 간직하여 독차지하지 않고韞璞藏珠不自擅

맑은 기운이 정기 잉태하고 빼어남 길러扶輿淸淑孕精而毓秀兮

불세출의 호걸과 기특한 선비를 배출하였도다鍾爲間世之英物碩士之奇厖

고고한 분께서 골짜기 속 맑게 노닐 만한 땅이 마음에 들어高人雅量素契山水淸遊地

넓은 골에 집을 짓고 밭 갈고 낚시할 터를 잡으셨네卜築耕釣臨空谾

복사꽃이 강물에 뜨는 봄이면 신선계가 아스라이 열리고桃花泛春仙源杳

구기자 뿌리 맑게 씻는 신령한 샘물이 흐르네 枸根漱玉靈泉淙

강가에서 푸른 소나무 늙은 잣나무와 짝하여 읊고蒼松老栢伴吟乎崖澨

찬 징검다리에서 요초와 의란의 그림자를 희롱하도다瑤草猗蘭弄影乎寒矼

동산에서 창생을 위해 일어날 수밖에 없어東山不免起蒼生

놀과 안개와 새와 물고기와의 언약을 잠시 접어두고서暫辭煙霞魚鳥之舊盟兮

밭고랑 사이를 걷던 발길을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금 시험하셨네畎畝蹤迹少試世路之喧哤

안개 낀 하늘 아래서 평온히 살았던 쉰 해煙霄穩步五十載

바른 논의와 위대한 계책으로 네 조정에서 공적이 드러났고讜論訏謨著績乎四朝兮

한결같은 충효로 앞머리에 원당을 세우셨네一向忠孝前頭竪願幢

순챗국과 농어회가 맛날 때에 가을바람 속에 배를 타고 내려와秋風布帆趁蓴鱸

누워 명농당에 걸린 귀거래 그림을 바라보니臥對明農歸去之舊圖兮

고아한 풍모와 씩씩한 절개는 짝할 이가 없었네高風壯節落落無等雙

나는 평생 높은 산처럼 흠모하여伊我平生景高山

사정과 국담의 여파를 나누어 마시고飮分砂井菊潭之餘波兮

매번 평상 아래에서 노방에게 절을 하였네每從牀下拜老龐

농암의 대 아래에 작은 집이 환하여聾巖臺下小閣明

동안의 늙은 신선이 그 속에서 진솔하게 사셨네童顔老仙棲眞于是間兮

문화산 상쾌한 기운과 낙동강 빼어난 빛이文華爽氣淸洛秀色

밤낮으로 구름 어린 창가로 찾아왔네日夜拱揖乎雲窓

하연 호수 가에 돛에는 바람이 반쯤 불고賀淵湖邊風半帆

영지정사 안에는 한 항아리의 술이 익네靈芝社裏酒一缸

적벽을 노래하며 비파에 맞추어 춤을 추고歌赤壁舞琵琶

노래가 끝나면 노젓는 소리에 산과 물은 푸르고唱罷款乃山水綠

때로 보타와 진결이 마구 떨어져 옥 소리를 나는 것을 보네時見寶唾眞訣錯落鳴琳玒

누가 알랴, 아침에는 요순의 신하가 되고誰得知朝爲堯舜臣

저물녘이면 희황 시대의 늙은이가 되니暮作羲皇叟

보배 품고 끝내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배우지 않으셨네不學懷寶終迷邦

영남은 산수 좋고 인물이 많은 땅이라嶠南山水文獻地

옥순과 옥비녀처럼 빽빽이 빼어났지만玉筍瑤簪競秀而齊抽兮

다같이 모두 용수산에 머리를 굽혔네一頭盡向龍山降

공께서 부디 오래 살아 산이 무너지지 않듯 하여願公壽兮山不崩

우리가 영원히 목공을 배알할 수 있게 하시고使我長年拜木公

마치 뭇별들이 밤마다 북극성을 향해 두르듯이 하소서有如衆星夜夜環天杠

가정(嘉靖) 신해년(1551) 가을 7월 그믐에 준량(俊良)이 절하고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