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추부사 이현보(李賢輔) 가 전(箋)을 올리기를,

“임금이 명하여 부르시면 수레에 말 메우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하니, 이는 성인(聖人)¹⁴⁷³⁾ 이 임금을 공경하는 정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늙어서 조정으로 달려가지 못하여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예를 잃었으니, 일이 이미 잘못되어 죄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신은 산골의 미천한 사람으로 거칠고 서투르며 학식 역시 천박하나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공부를 하여 다행히 과거에 급제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버이는 늙고 집은 가난하여 여러번 간청하여 외직(外職)을 맡아 누대에 걸쳐 섬겼으나 부끄럽게도 털끝만큼도 보필한 것이 없었으며 70세가 되어서야 사퇴를 하였으니 욕심없이 물러 난 절조가 어디 있기에 포소(褒召)하는 은명(恩命)이 어찌 갑자기 멀고 먼 궁벽한 곳에까지 미치는 것입니까. 견마(犬馬)의 정성은 비록 서둘러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나 쇠약한 몸인지라 진실로 먼길을 떠나기 어려워 구중궁궐을 바라보며 눈믈을 흘리니 은혜는 일생을 다해도 갚기 어렵습니다.

이에 어진이를 친히 하는 것을 급히 힘쓰시고 노인을 우대하는 정사를 먼저 하시며 맹장자(孟莊子) 의 추효(追孝)를 본받아 선왕의 신하를 바꾸지 않으시고 주 성왕(周成王) 의 계모(稽謨)를 몸받아 늙은이를 버리지 않으시는 때를 만나, 신은 삼가 성택(聖澤)에 젖어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밥 한 술을 먹을 때도 초야에서 조정을 근심하는 마음을 항상 잊지 못하고 있는데, 숭악(崇岳)의 수를 빌매 감히 삼호(三呼)¹⁴⁷⁴⁾ 를 소홀히 하겠습니까.”

하고, 전문 끝에 대략 아뢰기를,

“성지(聖旨)에 ‘더구나 나는 많은 어려움을 견딜 수가 없는데 하늘은 우리 나라에 재앙을 내린다.’ 하셨는데, 천재지변이 잇따르고 백성들은 곤궁해지고 재화가 흩어짐이 절박하니 이는 과연 성상께서 진념(軫念)하실 일이요 신민들이 함께 근심해야 할 바입니다.

전하께서 보위를 이으신 이래 서정(庶政)을 걱정하여 부지런히 하시고 미명(未明)에 일어나 의관을 갖추고 해가 진 뒤에 저녁을 드시면서 다스리기를 꾀하셨으며, 농사를 힘쓰시고 곡식을 중히 여겼으며 백성 돌보기를 다칠까 염려하듯 하셨으니, 계절이 고르고 풍년이 들어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며 재변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해마다 흉년이 들어 굶어 죽은 시체가 즐비하며 도적이 횡행하고 백성들은 편안히 생업에 종사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연전에 일어난 궁궐의 화재는 천고(千古)에 없던 큰 변이니, 이것은 시운(時運)의 우연으로 그러한 것인지 천심(天心)이 인애(仁愛)로 전하를 경계하려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시골의 늙은 백성이 물러나와 한가롭게 지낸 지 이미 오래되었고 귀가 더욱 심하게 먹어 시정(時政)의 잘못과 곤직(衮職)의 부족함에 대해서는 감히 어느 일이라고 지적해 말할 수는 없사오나 다만 들으니 전하께서 청간(聽諫)하시는 데 물흐르듯이 하는 미덕이 좀 부족하다고 합니다.

전일 선과(禪科)를 다시 열고 사원(寺院)을 수축한 일로 대간과 시종 및 관학(館學)의 유생들까지 한 해가 다 가도록 다투어 간했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고 새로 세운 과조(科條)의 폐단 역시 간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이단(異端)과 오도(吾道)는 서로 소장(消長)하는 것이며 범사(凡事)에 조짐 없는 일이 없으니 지금은 비록 자만(滋蔓)하기까지는 않았고 전하 역시 혹신(惑信)하시기까지는 않지만 뒷날 소장의 기미와 자손을 위해 남기실 계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로 세운 과조는 역시 번다한 것 같습니다. 맹가(孟軻) 가 가락(假樂)의 시를 인용하여, 선왕(先王)의 법을 따르다가 잘못된 사람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새로 세운 조항이 옛날 것보다 얼마나 이로울지 모르겠으며 또한 봉행하는 데 폐단이 하나도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옛사람은 대간의 직책을 나무가 먹줄을 따르고 물이 모양을 비추는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먹줄이 아니면 곧게 할 수 없고 물이 아니면 비춰 보기 어려우니 이것 역시 임금이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충성스러운 말과 곧은 논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때가 많은데, 전하의 선(善)을 향하는 마음이 끊어지는 때가 있어 그러한 것입니까? 정이(程頤) 는 ‘임금이 어진 선비나 대부들과 있는 때가 많고 환관이나 궁첩을 친히 할 때가 적으면 기질을 함양하고 덕성을 훈도할 수 있다.’ 하였고, 맹가 도 ‘하루만 볕을 쬐고 열흘 동안 춥게 한다면 싹트는 게 있다 한들 내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고명(高明)한 학문으로 즙희(楫熙)의 공(功)을 더하셔서 성지(聖志)를 굳게 정하시고 다른 논의에 흔들리지 않게 되시면, 충성스러운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고 사특하고 바른 것이 혼동되지 않고 조정의 기강이 문란해지지 않아 서정(庶政)이 닦이고 만사가 다스려져 태평한 다스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는데,전교하기를,

“ 이현보 의 덕이 귀하게 여길 만하므로 올라오라고 했었는데 오지 않으니 내 매우 섭섭하다. 소장(疏章)의 일은 마땅히 살펴 유념하겠다. 본도(本道)로 하여금 식물(食物)을 갖추어 주게 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