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선생 유적지_분강촌 ::::::::: 농암종택

#온혜, 상계, 하계, 원촌으로의 여행

‘도산 길’은 와룡에서부터 도산서원까지가 1차 답사구간이다. 다음은 ‘2차 도산 길’이다. 그 길은 ‘도산서원’ 뒷산을 넘어 온혜, 상계, 하계, 원천 등의 지명을 가진 마을들의 답사하는 차례이다. 모두 퇴계와 연관 있는 마을이다. 온혜는 태어난 곳이고, 상계는 자신이 산 지역이며, 하계, 원촌은 자손들의 뻗어나간 마을이다. 온혜에는 태실인 ‘노송정’이 있고, 상계는 ‘종택’이 있고, 하계, 원촌에는 ‘수졸당’과 ‘원대구려’가 각각 있다.

‘온혜, 상계, 하계, 원천으로의 여행’은 퇴계와 퇴계후손들의 숨결과 체취를 느끼게 되는 직접적인 코스가 된다. 참된 인간의 길(道)이 무엇인지 판단이 잘 안 되는 혼돈시대, ‘도산’ 산천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이 길은 우리에게 ‘진정한 살만한 땅’은 어디이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시사를 줄 런지도 모른다.

8. 용두산 아래에는 옛 날부터 뜨거운 물이 나왔다.

- 온혜-

1) 노송정

도산서원 뒤 산길을 넘어 왼쪽 길로 5분 정도 가면 도산면 온혜리가 나온다. 온양, 온정이 그렇듯이 온혜溫惠 역시 따뜻한 물의 은혜를 받은 땅이었다. 《선성지》에는 “용두산 아래는 겨울 추위에도 얼지 않는 온천이 있었다”고 쓰여 있다. 16세기의 이 기록은 신뢰할 만하다. 그렇다면 온천은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지금 이 수수께끼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전설만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온천은 나병환자들에게 큰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그 결과 환자들이 몰려오자 주민들이 묻어 버렸다는 것이다. 한편 병든 자식을 위해 용두산 영은암에서 기도하던 어느 아낙이 어느 날 꿈속에 신령이 나타나 “온수를 찾아 자식을 치료하라” 해서 실행에 옮긴 뒤 자식의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따뜻한 물의 은혜’라는 뜻의 ‘온혜’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유온천有溫泉.’ 이 기록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사람들은 땅을 파고 팠다. 그 결과 마침내 온수를 발견했다. 도산온천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금 주차장엔 차량이 빽빽하다. 언제부터인지 목욕이 일상이 되었다. 온천은 현대의 풍요와 여유가 어우러지는 환락의 현장이다. 이곳도 차츰 그렇게 변모될 모양이다.

사진 : 도산온천

해설: 인근 예천온천, 풍기온천, 문경온천 보다 10여년이나 앞서 시작했고, 주변 환경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고 수질도 여간 좋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간이온천에 머물고 있다. 행정력의 빈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온천 반대편 산기슭엔 고즈넉한 한 무리의 고가가 석양 아래 을씨년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차량 한 대 보이지 않는다. 이 고가가 조선조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완성한 퇴계가 태어난 집이다. 1454년(단종 2)에 세워졌고, 당호는 노송정老松亭이다. 이 집에서 퇴계가 태어났기에 ‘퇴계 태실’이라고도 한다.

퇴계가 태어난 해는 1501년이므로 지금부터 500여 년 전이다. 퇴계의 조상들은 원래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 살았다. 그래서 ‘진성이씨’라 한다. 시조 이석의 아들 이자수가 조선 초기 안동으로 들어왔고, 그 증손에 3형제가 태어나서 풍산, 와룡, 도산으로 분가했다. 도산에 온 분은 이계양李繼陽(1424~1488)으로, 퇴계에게는 조부가 된다. ‘노송정’은 그러니까 이계양의 호이다. 이로부터 진성이씨 온혜파가 그 뿌리를 내렸다.

노송정이 왔을 때 온혜는 주민 한 집만 있고 대부분 황무지였다. 이를 개척하여 터전을 열었다. 아들 형제를 낳았는데 이름을 각각 식埴과 우堣라 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이 형제가 지방 향리에 불과한 진성이씨를 굴지의 명문으로 발돋움하게 할 줄을. 식은 아들을 잘 낳았고, 우는 그 자신 입신양명하여 가문을 일으켰다. 이런 결과는 과거를 단념하고 오로지 교육으로써 집을 일으키고자 한 노송정의 결실이기도 했다. 퇴계가 쓴 노송정의 사적事跡을 보면 “자손 교육을 업으로 하며 세상을 마치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고 했다. 노송정은 두 아들의 공부를 격려하기 위해 “차가운 절간에서 고생스럽게 공부하는 너희를 생각하니 보고 싶은 마음이 때로 눈앞에 어린다. 70세를 바라보는 부모는 날마다 너희의 입신양명을 고대한다”는 시를 쓰기도 했다. 자손들은 결국 그런 부모의 염원에 부응했다.

그런데 노송정의 생애에서 믿기 어려운 일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국망봉國望峯관련 사적이다. 노송정에서 서북쪽 산봉우리에 이 사적이 있다. 국망봉은 곧 ‘나라를 바라보는 봉우리’라는 뜻인데, 그 나라는 곧 단종을 말한다. 기록은 이러하다.

“훈도 이계양이 벼슬을 버리고 온혜로 들어와 봉우리에 단을 쌓고 항상 단종이 죽은 날 영월을 바라보며 절을 하니 후인들이 그 봉우리를 ‘국망’이라 하고 단을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노송정은 미관말직 훈도의 벼슬로 수양대군의 정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조가 별 것인가. 노송정은 바로 ‘생육신’이었고, 그런 갸륵한 나라 사랑이 훌륭한 자손을 낳게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시조에서 송재, 퇴계까지의 계보를 간추려 보면,

1) 李碩(시조) -子脩(문과, 송안군)- 云具

子芳云侯- 禎- 遇陽(와룡)

興陽(풍산)

繼陽(도산)- 埴-

- 堣 (송재) 문과급제

2) 李埴- 潛

河

漪

瀣(온계) 문과급제

澄

滉(퇴계) 문과급제

사진: 노송 아래 고즈넉한 노송정 모습(경상북도민속자료 제60호)

해설: 전에 사람들은 “저 집이 노송정이다. 저 집에 가보면 퇴계가 태어난 태실이 지금도 남아있단다”했다. 그런 집이 언제부터 ‘퇴계태실’로 되었다. 간판도 그렇다. 집안에도 ‘海東鄒魯’, ‘山南洛閩’, ‘臨聖門’ 등의 현판이 있다. 이런 현판들이 붙은 것은 100여년 전후로 지금 안채와 솟을대문이 다시 지어진 이후에 붙여졌다. 후손들이 퇴계 탄생의 의미를 그렇게 부여했다. 공자, 맹자, 주렴계, 주자 같은 성인이 태어난 곳이라는 뜻이다. 집주인은 손자가 추앙 받는 일이니 대견해할지 모를 일이나 손자로서 퇴계는 조부에게 미안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지금 안채의 가운데 돌출된 이른바 ‘퇴계퇴실’이라는 방은 퇴계가 실재 태어난 방이라기보다는 ‘퇴계탄생기념의 방’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2010년 6월 11일 종택을 방문하니 이창건 종손 말씀이 “퇴계가 태어난 장소는 바로 그 돌출된 방의 지점”이라 한다.

사진: 국망봉

해설: 근세 학자 이규호(友松李奎鎬-도산면 원촌출생)의 『우송문고友松文稿』를 보면 “경진년(1880) 13세 주손 동추 만임晩恁이 여러 족친들과 협의하여 단을 쌓아 표했고, 그 후 정미년(1907) 동추의 아들 통덕랑 찬화燦和가 조그만 돌에 ‘국망봉’이라 해 세웠다. 그 후 후손 향산 만도晩燾가 명銘을 썼다.”고 적혀 있다.

2) 송재 이우

노송정의 아들 식埴은 6남 1녀를 두었는데 막내가 퇴계였다. 퇴계가 도산 진성이씨를 굴지의 명문으로 도약시켰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우堣는 누구인가?

우는 호를 ‘송재松齋’라고 했는데, 진성이씨 두 번째 문과 급제자다. 첫 번째 문과 급제자인 고조부 이자수는 홍건적의 난에 공을 세워 송안군에 봉해졌지만 어디까지나 고려시대의 일로 자세한 기록이 없다. 퇴계 당시에도 이런 일이 이미 불분명하여 퇴계는 ‘송안군 관련의 의심스러운 사적’이라는 뜻의 <송안군 전의傳疑>라는 글을 쓰기까지 했다. 따라서 진성이씨 가문에서 송재 이전의 인물로 송재처럼 분명한 문과 급제와 출사 이력을 가진 분은 없다.

문과 급제는 신분을 수직 승격시키는 보증 수표였다. 송재의 문과 급제는 진보 고을의 향리에 불과한 진성이씨를 단숨에 양반 신분으로 전환시켰다. 진성이씨는 그야말로 송재의 발신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송재는 총명하고 청렴했으며 학문과 식견이 빼어났다. 불과 40대에 강원감사, 경상감사, 우부승지, 호조참판, 형조참판, 안동부사를 역임했고, 중종반정으로 정국공신에 들어 청해군에 봉해지기도 했다. 송재는 연산군을 모신 승지로서 뜻밖에 정국공신에 포함되었지만 그 영광은 아버지에게까지 돌아갔다. 아버지는 진성군에 추증되었다. ‘진성 이씨’라는 성씨가 이 봉군 추증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오지 도산에서 태어나 아무런 정치적 배경도 없고 과거성적도 병과에 불과한 송재의 입신과 양명은 그야말로 자수성가였다. 더구나 이런 화려한 정치 여정을 50세 이전에 성취했다. 송재는 49세에 타계했다. 퇴계가 49세에 풍기군수를 사직하고 50세에 토계에 한서암寒棲庵을 지으면서 인생을 시작했음을 상기하면, 송재가 얼마나 빼어난 인물이었는지 증명되고도 남는다.

나는 안동 인물 가운데 좀 더 수壽를 했으면 하는 세 분이 생각난다. 권수익의 아들 권운과 금란수의 아들 금각과 송재다. 권운은 22세에 문과 급제하여 수찬, 정언, 교리 등 요직을 거침없이 밟아 나갔고, 이 무렵 이미 ‘문장의 영수’라고 칭찬받았다. 원로들이 경연에서 임금과 문답하는 것을 ‘전적으로 권운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래서 장차 “문형文衡을 맡길 만하고 정승도 맡을 만하고 한 시대를 교화시킬 수 있으며 태평성대를 만들 수 있는 인물”이라 했지만, 불과 25세에 죽었다. 금각은 10대에 세상 이치를 터득한 천재 중의 천재였지만 18세에 요절했다. 송재도 마찬가지다. 송재 후손들의 “선조께서 10년만 더 사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정말 후손만의 안타까움이 아니다.

송재는 특히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자녀 교육을 중시했다. 조카, 사위들도 아들처럼 교육시켰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퇴계 형제들에게 숙부는 곧 아버지였다. 이마가 넓고 총명했던 퇴계는 더욱 사랑받았다. 송재는 일찍이 퇴계에 대해 “우리 집을 유지할 자는 반드시 이 아이일 것”이라 하고, 용수사, 봉정사, 청량산 등의 명소로 멀리 보내 공부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퇴계와 형 온계 이해가 문과에 급제했다.

퇴계는 이조판서, 예조판서, 대제학, 온계는 도승지, 대사헌, 예조참판 등의 관직을 지냈다. 사후에는 인신人臣으로서의 최고 영예인 문순文純, 정민貞愍이란 시호까지 내려졌다. 말하자면 3숙질이 대통령비서실차장, 재경부차관, 법무부차관, 경상도지사, 서울대총장, 내무부장관, 총무부장관, 대통령비서실장, 검찰총장 등에 해당하는 관직을 역임했고, 사후에도 국가적 인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로써 한 가문이 탄생했다.

길이 없는 곳에 최초로 길을 낸 자의 공로를 사람들은 망각하고 산다. 진성 이씨에게 송재는 가문의 길을 만든 최초의 인물이다. 퇴계 후손들이 더러 ‘퇴계는 스승이 없다’라고도 하는데 적어도 송재에게는 미안한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퇴계 자신의 ‘학문을 지도하고 인도해 줄 스승과 친구가 없다無師友啓發之人’란 고백은 적어도 송재가 타계한 17세 이후의 심정을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진: 송재 영정

해설: 송재의 인물에 대해서는 “平淡, 和易, 斬絶하고 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남을 대함이 훈훈하고 사랑스러운 기상이 있었다. 마음속이 곧고 웅혼하여 빼앗을 수 없었고 궁핍해도 자상하였다”라고 했다. 문학에 대해서는 “閑遠하면서도 沖邃하여 참으로 글을 짓는 사람들이 귀한 정취로 여겼다” 고 했다. 송재영정에 대해서는『송재집』에 임오년에 개모한 사실을 기록한 이이순李頤淳의 ‘개모고유문改摹告由文’이 있다.

3) 청음석

노송정을 돌아 나와 온혜 어귀로 오면 도산면사무소가 있다. 그 앞에는 퇴계 종택, 퇴계 묘소, 육사 생가, 왕모산성 등의 이정표가 보인다. 옆에 개울이 흐른다. 온계다. 따뜻한 온천수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온계를 따라 100미터 정도 내려가면 모퉁이 부근에 정자와 한옥 한 채가 보인다. 도계정사兜溪精舍라고 하는 이 정자는 뜻밖에도 송재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1511년, 송재는 강원감사로 잠시 말미를 내어 부모를 뵙고자 내려왔다가 퇴계 형제들과 이곳에서 함께했다. 이를 기념해 후손들이 근년에 지었다. 현판에 적힌 송재의 시는 이렇다.

계산의 아름다움 얻고자 欲得溪山妙

소나무 문을 홀로 배회한다. 松門獨自回

맑은 읊음 사라지게 淸吟還敗意

누가 관리를 보냈단 말인가! 誰遣督郵來

한옥은 재사다. 6.25 전후 잠시 송재종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집 앞에 역시 개울이 흐르고 있다. 그 개울은 적어도 여기서는 ‘도계’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도계에는 잊지 못할 바위가 하나 있다. 청음석淸吟石. 퇴계가 송재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한 바위다. 전에 이 바위를 찾기 위해 개울을 오르내린 적이 있다. 고만고만한 여러 개의 바위 가운데 어느 것인지 알 길 없었다. 그래서 이주동 종손께 여쭈니 현장 안내를 해 주시면서 하나의 바위를 지목해 주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지목한 바위와 일치했다. 이 바위를 ‘잊지 못할 바위’라고 한 연유는 이렇다.

온계 하류의 개울가에 반석이 있다. 1511년 숙부 송재부군께서 강원감사로 부모를 뵙기 위해 오셨다가 이 반석 위에서 놀았다. 내 그때 아이로서 곁에서 모셨다. 그때 숙부께서 시를 지으셨다. 이제 여러 형님과 조카들이 이곳에 다시 모여 옛 일을 추억하니 감격함을 가눌 수가 없다. 이윽고 그 돌을 ‘청음석’이라 하고 숙부 시를 따라 다시 시를 짓는다.

어린 시절 모시고 놀던 곳 總角陪游地

불러 보아도 오시지 않네. 吟魂去不回

오직 개울가 바위 소리만 唯餘溪響石

다시 찾아옴을 위로 하네. 似欲慰重來

퇴계의 기록이다. 숙부에 대한 추억과 추모가 서려 있다. 나이 11세, 일찍 아버지를 여읜 퇴계 형제들에게 강원감사 관복을 입으신 숙부는 하늘이었다. 퇴계는 13세, 15세, 16세에도 숙부의 지도를 받아 청량산, 용수사, 봉정사 등에 가서 책을 읽었다. 이 무렵 송재는 3년을 낙향해 있었다. 그리고 퇴계 나이 17세 때 세상을 떠났다. 이제 노년에 접어든 퇴계는 그때의 추억을 새삼스럽게 추모했다. 그래서 숙부가 한 것처럼 했다. 그 자리 그 바위에서. 아들, 조카들도 함께했다. 퇴계는 드디어 감격에 북받쳐 그 바위를 숙부의 시구인 ‘청음환패의淸吟還敗意’에서 글자를 따서 ‘청음석’이라 하고 숙부 시를 따라 시를 지었다. 그후 종질 빙憑에게 ‘송당松堂’이란 글씨를 써 주어 숙부가 거처한 집에 달도록 했다.

사진: 청음석

해설: 송재는 ‘도계반석兜溪盤石’이라 했다. 송재의 시는 퇴계 외에도 외손자 춘당 오수영(春塘吳守盈)과 손자 빙憑이 따라 지었다. 후손들에게는 추모와 추억의 장소였다. 후계 이이순(後溪李頤淳)은 “매번 이 곳을 지날 때마다 감격의 정회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4) 송당과 애련정

송당은 송재 당시의 집이었다. 송재가 죽고 오랜 세월 송재종택으로 사용했다. 그렇지만 지금 온혜에 송당은 없다. 잊혀진 지도 오래되었고, 아는 사람도 없다.

2003년 1월, 송재 종손을 모시고 온혜에 갔다. 묘소를 참배하고 내려와 송당을 찾으니 길에서 만난 어느 고로古老께서 노송정 고택 위의 한 곳으로 안내했다. 문득 크고 잘 다듬은 돌들이 밭가에 나란히 박혀 있음이 한눈에 들어왔다. 축대가 완연했다. 참판, 감사가 아니고는 놓을 수 없는 큰 돌들이었다. 축대 주변이 모두 집터였다. 상당한 규모였다. 아, 이곳이 송당 집터였구나!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송재종택 400여 년의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고로의 설명은 거침없었다. 축대 뒤 골짜기를 ‘송당골’이라 했고, 내가 궁금해한 ‘송당못’의 존재와 위치도 설명하셨다. 송당못은 최근까지 있었는데 도로 포장으로 매몰되었다고 했다. 축대 바로 앞 10미터 정도 되는 곳에 있었다. 당시 마당가에 만든 식수용 우물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송당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두 분 모두 모른다고 했다. 내가 너무 궁금하여 “그렇다면 종택은 주로 어디에 있었습니까” 하니, 종손은 최근 100여 년은 봉화 서벽과 예천의 어느 곳과 이곳 도계정사 등지에서 얼마간씩 살았다고 했다. 문헌 자료가 더 이상 없고 정말 종손의 말씀과 같다면 송당과 송재종택의 300여 년의 존재는 수수께끼가 되어 버리는데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온혜를 다녀온 후 우연히 집에 보관되어 있는 1800년대의 일기 자료를 보니 1827년 5월 3일조에 “온혜 송당으로 가서 송재 이 선생 영정을 첨배했다. 이 영정 또한 수년 전 다시 그렸는데, 원본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 선조들께서 산을 가로 하여 서로 바라보고 계시니 후손인 우리 또한 그 처연함을 깨닫지 못하겠다”는 기록이 보였다. 이로 보면 적어도 1827년까지는 송재종택이 온혜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사진: 온혜의 옛 송재종택의 터전

해설: 노송정 위 산기슭의 터전으로 축대의 돌이 완연하다. 또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남쪽 모퉁이에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있어 송재 옛 터전을 증언하는 것 같다.

지금 온혜초등학교 앞에는 근년에 세운 ‘송재신도비’가 있고, 학교 뒤 ‘수곡樹谷’이라 불리는 골짜기에는 노송정 묘소와 능선을 달리하며 송재 묘소가 있다. 이런 정황을 유추해 보면 송재는 둘째 아들로 큰집 옆에 분가하여 오랜 세월 큰집과 함께했다. 궁금한 것은 이 집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으며, 왜 이곳을 떠나게 되었는가 하는 일이나, 이것 역시 머지않아 누군가에 의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지금 송당 현판이 걸린 집은 안동 시내 옥정동에 있다. 사람들은 이 집을 ‘애련정愛蓮亭’이라 한다. 마당에 애련정이라는 집이 있기 때문이다. 애련정은 송재가 안동부사 시절 관아 뒤뜰에 못을 파고 그 위에 지은 정자였다. 부사가 공무 틈틈이 휴식도 취하고 자질들의 공부도 시킨 다목적 관아 부속건물이었다. 송재에 이어 부임한 농암이 정亭을 당堂으로 고치고 확장 수리를 했다. 이후 오랜 세월 관아의 객사로 사용되었다. 이곳에는 송재, 농암, 퇴계, 한강 같은 선현들의 시가 남아 있다.

애련정이 6.25 전후, 지금의 중앙파출소 부근 화재로 일부가 탄 상태로 방치되다시피 있었는데 종택에서 보다 못해 옮겨 놓았다. 송재종택은 이 무렵 도계정사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고, 애련정은 사랑채 겸 별당으로 사용했다. 종손은 얼마 전 애련정을 다시 안동시에 돌려주고자 했다. 그 자리에 종택 사랑채를 지으신다 하셨다. 훌륭하신 결단이다. 외람되게 필자에게 논의를 해 와서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에서는 지금 이 건물을 안동댐 부근으로 이건하고 있다. 당연히 복원된 안동관아 후원으로 옮김이 이치에 맞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잘 안 된다. 종손과 같이 담당자를 만나니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 어쩔 수 없단다. 참으로 잘못된 것 같아 시장께도 건의했지만 메아리가 없다.

송재의 업적으로 볼 때 종택이 아직도 온전한 터전을 갖지 못함은 여간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 문화재로 지정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송재 영정은 그 보관 상태가 매우 열악하다. 지난해 국학진흥원의 ‘문중유물전시’ 때의 조사자의 말로는 위험하다고 했다. 습기 때문이라 한다. 송재종택과 유물의 이와 같은 다난한 운명처럼 애련정 또한 기구한 여정이 시작될 모양이다. 어찌되었건 이제 우리는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송재를 만나게 되었다.

사진: ‘송당’과 ‘애련정’

해설: ‘송당’으로 당호가 정해진 송재종택이 안동시에 있음은 이정락李鼎洛 전 종손의 개성이 많이 작용했다. 종손은 서울에서 신학문을 하신 분으로, 도계정사의 종택을 떠나 선조가 안동부사를 지낸 시내로 과감하게 옮겨왔다. 안동에서 ‘불천위종택’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사를 나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