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선생 유적지_분강촌 ::::::::: 농암종택

일동산수기
( ‘선성지’에는 ‘日洞錄’이라 되어 있으나 ‘성재집’에는 ‘日洞山水記’라 되어 있다.)

예안의 북쪽에 산이 있으니 ‘청량산’이라 하고, 청량산 남쪽에 봉이 있으니 ‘축융봉’이라 한다. 축융봉의 아래는 ‘일동日洞’이라 한다. 일동의 ‘일日’은 마을에 ‘월담月潭’이라는 못이 있는데, 항아리 같은 별천지의 마을 모습에서 해와 달 가운데 하나만을 거론함이 옳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은 그윽하고 봉우리들은 우뚝하여 마치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축융봉으로부터 세 능선을 내려와 마을의 우측에 솟은 것이 ‘자운봉紫雲峯’이라 하고 , 거기서 두 번 솟아 마을의 좌측에 높이 솟은 봉우리가 ‘일출봉日出峯’이다. 일출봉과 더불어 서로 마주보면서 자운봉의 우측에 솟아 있는 것이 ‘송휘봉送暉峯’이다. 송휘봉으로부터 동쪽으로 흘러와 북쪽으로 마을의 앞을 끓어 안은 것이 ‘내병산內屛山’이다. 일출봉이 남쪽으로 달려 내려와 꺾어져 서쪽으로 내병산의 바깥으로 흘러간 것을 ‘외병산外屛山’이라 한다. 내병산을 등지고 자운봉을 마주하며 돌연히 가운데에 솟은 것이 ‘고산孤山’이다.

고산의 뒤로 흐르는 강을 ‘낙강洛江’이라 한다. 낙강의 남쪽에 절벽이 있으니 ‘취벽翠壁‘이라 한다. 취벽의 높이는 천 길이며 길이는 수 백보나 되는데, 자운봉의 서쪽 산록에서 강에 다다라 끊어졌다. 전해온 이야기로는 “취벽과 고산은 본래 둘이 아니었는데, 용이 단애를 처서 갈라졌고, 그런 연유로 물이 그 가운데로 흐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 믿을 수 없지만, 그 모양을 보면 흡사 그런 것 같다.

낙강은 송휘봉 아래 취벽과 아울러 동쪽으로 흘러 단애에 부딪치고 소용돌이가 일면서 깊은 못이 되었다. 맑고 맑은 물속에 푸른 산 그림자가 서려 이른바 ’도영담倒影潭‘이라 했다. 또 여기서 남쪽으로 내병산의 발꿈치에서 외병산 아래에 이르기까지 강변을 따라 얼마 내려가면, 깊이가 열 길 정도 되고 푸른빛과 감색의 옥 같은 금모래와 자갈들이 깔려있는 내병산과 외병산이 합세한 곳이 있어 이들 이름들이 마을과 아주 잘 어울리고 있다. 마을은 그윽하면서도 답답하지 않고, 산들이 높으면서도 터전이 좁지 않아 그야말로 “인자가 요산하고 지자가 요수할 만하니 진실로 고반의 낙지”라 아니할 수 없으니, 그 또한 중국의 전설적인 선경 서른여섯 곳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비록 그런 낙지樂地가 있어도 그 사람이 있지 않아 별천지의 경계도 거칠어져 그 얼마의 세월이 흘렀는지도 몰랐는데, 드디어 내 선조들을 기다린 이후에야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다. 이는 곧 하늘이 땅을 만들어 감추어 둔 것이 아니겠는가! 농부들이 그 가운데에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돈을 주고 사서 집을 지었으나 얼마 안 되어 허물어졌다. 아버지 금란수(1530-1604): 본관 봉화, 자는 문원, 호는 성재, 퇴계문인, 사마시에 합격하여 봉화현감 등을 역임. 산수를 사랑하여 청량산 남록아래 ‘고산정’을 짓고 자적함. 임란공로로 좌승지에 증직.
가 이에 다시 취벽 곁의 바위에 돌을 쌓아 초가를 기와로 바꾸고 ‘일동정사日洞精舍’ 일동정사: 성재 금란수가 1563 청량산 기슭 일동에 지은 정자로 현 ‘고산정’을 말함.
라 했다. 정사 서쪽 암록으로 두 층의 대가 있는데, 아래를 ‘선학대仙鶴臺’라하고 위를 ‘소요대逍遙臺’라 했다. 바로 도영담 위였다. 굽어보면 맑은 물이 보이고, 바로 보면 푸른 산이 읍을 하고 있어, 강과 산의 경치를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고산의 위에는 또한 두 대가 있으니, 동쪽은 ‘수운대水雲臺’고 서쪽은 ‘망선대望仙臺’이다. 그 가운데 매화와 소나무, 회나무를 심고, 처음 여기에 정자를 지으려고 했으나, 시간만 흐르고 그렇게 되지 못했다.

고산의 허리 가파른 절벽 바위가 도영담으로 튀어나와 낚시를 할 수도 있는데, 이를 ‘조대釣臺’라 했다. 조대 아래에는 바위의 뿌리가 강심에 드리워 있어 배를 묶을 수 있는데, 이를 ‘계선암繫船巖’이라 한다. ‘교암橋巖’은 두 못 사이에 걸쳐있는데 바위의 맥이 뻗어 마치 다리 같아서 그런 이름이 되었는가. ‘와룡암臥龍巖’은 ‘월명담月明潭’에 있는데, 그 기이하고 빼어난 모습은 ‘계선암’과 흡사하다. 대는 물새와 짝할 만하여 ‘반구대伴鷗臺’라 하고 바위는 낚시를 드리울 만하여 ‘낚시바위(漁磯)’라 했다. 그리고 아지랑이 숲과 구름 골짜기, 들판 주점과 산촌의 집들, 언덕과 옹달샘, 물가의 모래와 버드나무들 모두가 생각날 때마다 찾아가서 둘러보고 배회하니 여간 기쁘지 않다.

이로부터 아버지가 매달 왕래했는데, 어느 때는 한번 가면 며칠씩 돌아옴을 잊기도 했다. 그때 퇴계선생이 왕래하면서 쉬어가곤 했는데, 지금도 층 벽에 이름과 직접 쓴 시도 아직도 선명하다. 선생께서 항상 이를 글로 지어 기념하고자 하고 시를 짓기까지 했지만 미처 완성하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후 십여 년 뒤, 각恪이 하곡荷谷(許篈1551-1588)에게 배움을 허락받았으니, 하곡은 곧 시를 잘 짓는 사람이었다. 또 일찍이 퇴계선생에게 글을 배웠으니 선생께서 하지 못하신 것을 지금 하곡에게 받지 않고 누구에게 부탁하겠는가! 이때 아버지가 시와 글로서 각에게 명령하여 하곡에게 요청하기로 했으니 일동의 산수는 더욱 높아지고 더욱 맑아질 것이다. 이를 기록하여 하곡에게 나아가기로 했다.

금각琴恪 금각(1571-1589): 자는 釣臺, 성재 금란수의 4째 아들로 어릴 때부터 천재라고 소문이 났으나 불과 18 세에 요절했다. 7세에 글을 지을 줄 알았고, 15세에는 이미 문장을 지었다. 당시 사람들이 ‘등왕각서’를 지은 왕발과 견줄 정도였다. 하곡 허봉에게 수학했다. ‘일동산기수’는 금각이 16세에 지었는데, 하곡이 보고 감탄해 말하기를 “이 글을 기문으로 삼아도 충분하다. 하필 다시 나의 글을 구할 것이 없다”하고, 드디어 기문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