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안동문화원 제출 원고

 

 

 

K-POP의 세계화를 보면서 생각되는 안동문화

 

 

 

글 이성원

 

 

 

 

1. 트와이스와 일본

 

나는 60대 중반 안동 사람이고, 600년 역사의 고택에 살고 있다. 집은 산촌 오지에 있고, 근년 개방하니 적지 않은 사람이 자고 먹고 간다. 산촌의 고요함이 좋아 사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사람 만나는 재미도 없지 않다.

지난 해 가을, 이 집에서 음악회를 했다. 이른바 ‘고택음악회’다. 매년 사양했지만, 대구 TBC 어느 PD의 진정성을 받아들였고, 그때 온 가수가 놀랍게도 라이브의 황제라는 이승환이었다. ‘천일 동안’,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등의 곡을 애창한 나로서는 조금 설레기도 했다.

당일 저녁, 천여 명이 넘게 운집했고, 우리 내외는 한복을 차려입고 저만치 거리에 앉아 있었다. 공연 시작에 즈음하여 사회자가 나에게 ‘집 소개를 간단히 해 달라’ 한다. 그런데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전연 달랐다.

 

“저는 트와이스를 좋아합니다. 내 인터넷 초기화면에 ‘TT’ 라는 곡을 올려놓고 거의 매일 듣고 있습니다. 저의 인생에 가장 충격적인 목격이 몇 년 전 K-POP 가수의 파리 공연이었습니다, 비틀즈가 공연하지 못한 유일한 곳이 프랑스라는 말도 있습니다. 거기 우리나라 가수가 공연을 했습니다. 문화강국이 문명강국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위대한 뮤지션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여러분들 때문입니다...동편 밤하늘을 보십시오. 아름다운 밤입니다. 감사합니다.”

 

그 날 밤은 동편 하늘에 휘영청 달이 떠올라 그야말로 낭만적인 밤이 되었다. 이승환은 처음 시국에 대한 소견을 잠시 피력했고, 마지막은 ‘사랑이 어떻게 그래요’로 마쳤다. 이승환이 지성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행동하는 가수라는 생각은 들었다.

나는 그 동안 동방신기, 샤이니, 빅뱅, 액소, 레드벨벳 등등. 많은 K-pop 가수들의 공연을 트위트를 통해 보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트와이스를 발견했고, 그들의 일본 활동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트와이스가 NHK에 방영되고 있었다. 유심히 보니 일본 사람들이 혐한의 출구를 트와이스를 통해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화면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뜨지 않은 j-pop으로 속상해하는 일본인들에게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3명, 즉 미나, 사나, 모모는 큰 위안을 주고 있었다. 일본 전역의 소년, 소녀들이 TT를 불렀다. 놀랍고 신기한 현상이었다. 어린 소녀들이 어른들이 못하는 큰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곧 그것이 문화의 힘이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소녀들의 외모와 노래와 춤들이 어우러진 퍼포먼스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우리말로 노래를 함께하는 이른바 ‘떼창‘이 있었고, 그 ’떼창문화‘는 곧 우리나라가 창출한 금세기 최고의 문화상품이었다. 그렇게 팬이 되어갔고, 그래서 이날 이런 인사말을 이렇게 한 것 같다.

 

 

2. 방탄소년단과 미국

 

그 즈음 방탄소년단(BTS)을 발견했고, 다시 이들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틈틈이 소식과 공연들을 찾아보았다. 2017년 일본, 동남아. 호주, 남미, 미국공연은 장관이었다. 동남아와 남미의 칠레, 브라질 등은 거의 광란의 주순이었고, 미국 공연도 엄청났다. 'DNA'와 ‘마이크 드롭’같은 곡은 경이로왔다. 사실 이 공연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가운데 내가 주목한 것은 미국 관객들이었다.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도 조용한 것이 미국 관중인데, 이들이 한국말의 가사를 2시간의 공연시간 내내 떼창으로 이어갔다. 충격이었다. 저럴 수가! 나의 입에서 신음이 저절로 나왔다. 전에 빅뱅의 공연도 대단했지만 떼창은 아니었다.

그 사이 BTS는 미국 3대 음악상인 ‘아메리카뮤직어워드’ 시상식장에서도 팬들이 떼창을 하여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방송은 비틀스 이후 처음이라 했다. BTS가 가는 곳마다 팬들이 절규했고, 이 현상을 미국은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전인미답의 길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2018년 초 이동수 안동문화원장 당선 축하 식사 자리에서 나는 “세계문명사는 스마트 폰 이전과 이후를 나누며, 한국문화사는 K-pop 가수 방탄소년단 이전과 이후를 나누니 안동문화는 이동수 원장 이전과 이후를 나눈다고 하는 평가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했다.

사실 그 자리에는 김병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김종길 학봉종손 내외분, 이옥비 이육사 따님, 이미령 이창동 감독 누님 등 거의 80대와 그 아래 여러 70대 분들이 모인 자리여서 방탄소년단을 거의 모르는 분이었다. 나의 말로 조금 생각은 하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10월 어느 날 다시 모인 이분들의 모임에는 임하 출신의 천재 칼럼니스트로 10월 6일 타계한 김서령 작가와 방탄소년단이 주 화제가 되었다.

방탄소년단은 금년 8월, 서울을 시작으로 미국, 케나다, 영국, 내델란드, 독일, 프랑스 투어를 기획하고, 지금 미국 전역의 투어를 했다. 모든 티켓이 불과 3분, 혹은 10분 이내에 매진되었다. 추가된 10월 6일 뉴욕 시티필드 공연은 5만 여장에 가까운 티켓 역시 순식간에 매진됐다.

그 사이 NBC의 ‘아메리카 갓 탤런트’와 ‘투나이트 쇼’, ABC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하며 황금시간대에 방영되었다. 또 유엔본부에 초청되어 24세의 리더 RM은 명연설을 해서 전 세계 BTS 팬덤인 ‘아미(Army)’들을 열광하게 했다. 아미들은 이 연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면 과연 BTS의 무엇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많은 진단이 쏟아지고 있다. 외모, 칼 군무, 미디어 활용 등등, 나는 그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이들의 인생 그 자체였다. 그들은 그들이 걸어온 길을 SNS 등 미디어를 통해서 실시간 소통했다. 소통은 인생을 함께 걸어가도록 했고, 그 핵심은 겸손과 예의였다.

그 다음은 노래 가사이다. 가사들은 전 세계 젊은이들의 고뇌와 아픔과 좌절을 함께하고 있다. ‘불타오르네’ 같은 곡은 기성의 낡은 가치를 격렬한 군무와 더불어 태워버리자고 하는가 하면, ‘봄날’같은 곡은 추운 겨울의 현실에서도 언젠가 다가올 따뜻한 봄날의 희망을 아름다운 선율로 속삭이기도 한다.

모든 가사는 투어 제목처럼 ‘Love Yourself'이다.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이다. 실패한 당신, 좌절한 당신, 그런 당신이 바로 자신입니다. 그 자신을 사랑하십시오. 그런 자신이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해주느냐가 메시지다. 리더 RM이 유엔에서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고 한 연설 대목이 바로 그 주제이다.

BTS는 멤버 7명 모두 지방 출신으로 흙 수저 출신처럼 느껴진다. 회사 신생 1인 기업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다. 작곡가 방시혁이 JYP에서 나와 만든 회사이며, BTS는 그 첫 배출 그룹이다. 지금 빅히트의 기업가치는 2조5천억을 넘어선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BTS가 우리민족에게 준 은택은 이 금액의 천 배도 더 넘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문화를 세계 정점에 찍었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 처음이다. 길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 어려운 그 길을 방시혁과 BTS가 만들었다. 길이 나면 많은 사람들이 걷기 마련이다. 제2, 제3의 BTS가 탄생하리라 확신한다.

그래서 년 간 9천여만명이 찾는 프랑스 같은 문화1등 국가가 되고, 그 혜택을 우리 후손들이 마음껏 누릴 그런 날이 오기를 정영 기원해마지 않는다. 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그런 날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3. 아이즈원 탄생

 

그 사이 금년 여름부터 M net 방송이 K_POP 걸 그룹 선발오디션을 하고 있었다. 제목이 ‘프로듀스 48’이었다. 선발방식은 서바이벌 오디션 경쟁이다.

한국 54명, 일본39명, 중국2명, 재미교포1명으로 모두 96여명이 시작해서 100일 동안 처음 투표에서 58명을 방출하고, 다음 투표 순위에서 30, 다음 투표에서 20명이 남아 최후 경쟁에서 12명을 선발했다.

20명이 선발된 마지막 회에 한국 12명, 일본 8명이었다. 한국인들이 일본 연습생들에게 많이 투표를 한 결과다. 조금 뜻밖이었다. 일본 연습생들은 우리 연습생들에게 비해 모든 면에서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일본 네티즌은 “제발 한국 사람들아 자국민을 뽑아달라”고 한다. 그들 눈에도 일본 연습생들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이 프로는 매주 금요일 한, 일 동시 방송했고, 양국 네티즌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일본은 ‘실시간 1위’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비상한 관심이었다. 마지막 선발 과정의 일본 반응은 뜨거움 자체였다. 일본 연습생은 최종 3인이 선발되었는데, 2위로 선발된 사꾸라는 우리나라 이채연이 당선되기를 희망한다며 눈물을 흘렸는데, 마지막 12위로 이채연양이 선발되어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결국 진실 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연습생이 선발되었다. 선발 된 12명 그런 연습생 들이었다. 12등 턱걸이한 이채연, 9등을 한 강혜원 등은 더욱 그러했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교훈도 이러해야 한다고 믿는다. 진선미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그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라고. 그런 요소를 가지는 것만이 약사에 남는다고.

이런 교훈은 방탄소년단이 우리에게, 아니 전 세계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이기도하다.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어느 외국 분석가의 평가는 유교적 겸손이 방탄소년단을 만들어냈다고 썼다.

방송 상황을 조금 더 써 보면, 96명의 소녀들이 100일을 합숙하며, 매주 한 번 그 진행 과정을 일본과 동시 방영했다. 그리고 바로 국민투표로 순위를 발표했다. 순위가 투표할 때마다 요동쳤다. 매주 박진감과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학예회 수준의 공연에 익숙한 일본 아이돌을 보아오던 일본인들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마 크나큰 문화충격을 받은 것 같다.

지금 그 과정의 유튜부 영상은 셀 수 없이 올라와 있고, 현재 일정의 일거수일수족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고 있다. 트와이스의 일본소녀 3명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과연 트와이스를 넘어서느냐 어떠냐로 전망이 분분하다. 내가 보기에는 트와이스를 넘어서지 않을까 생각된다.

참고로 지금 트와이스의 소속의 JYP엔터테이먼트의 주가는 1조 2천억으로 Y.G의 8천억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이들 소년, 소녀들이 창출하는 유무형의 부가가치는 계산이 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노래’ 를 말하지만 사실 ‘개임’ 부문은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한국 최고의 두뇌들이 몰려들어 밤을 세워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제품을 세계의 젊은이 들이 즐기고 있다. 이것 역시 우리 젊은 세대들이 열어가고 창조해가는 새로운 세계의 지평의 한 단면이다. 시비선악은 잘 모르지만 현실이 그렇다. 이들 세계에 대한 적어도 최소한의 이해가 없다면, 혹은 이해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우리는 미래와 미래세대에 대해서는 장님이나 다름없다.

 

나는 지난해 어느 목사부부와 식사를 했다. 한옥을 개방하나 여러 사람을 만난다. 가끔 아침 식탁머리에서 정담이 오고 가기도 한다. 목사는 자신이 청소년 인성교육을 하라고 하느님의 소명을 들었다고 했다. 여생의 목표라고 했다. 대화를 해보니 인문학에 대한 학식이 매우 해박하셨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아닌 듯하여 “혹시 K-POP가수 방탄소년단이나 트와이스를 아느냐”하니, ‘전연 모릅니다’ 한다.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은 아이들 인성교육을 하지 마시라”했다. 청소년을 모르는 사람이 어찌 청소년 교육을 하시려고 하느냐, 그만두시라“ 하니, 목사께서 바로 일어서서 큰 절을 했다. 그리고 말씀이 ”저는 오늘 아침 진리를 들었습니다“하고, 떠날 때 들어와 다시 큰절을 했다. 그리고 공자의 ‘朝聞道 夕死可矣’을 말을 그대로 다시 했다. 목사님의 인품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의욕에 불과했다.

공자께서 “젊은이는 두려운 존재(後生以可畏)”라 했다. 신을 모르는 자, 신을 말하면 안 되듯, 젊은이를 모르는 자 젊은이의 교육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4. 문화1등국

 

방탄소년단의 최근 대표 히트 곡은 ‘idol(아이돌)'이다. 가사에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 덩기덩 쿵더러러‘등의 한국 고유의 가락과, “멀 어쩌고저쩌고 떠들어대셔, 넌 너나 잘하셔”등이 있다. 들으면 어께가 들먹이고, 흥이 저절로 일어났다. 이 곡은 빌보드 차트에 올랐고, 폭발적이 반응을 받았다. 한국적 정서와 가락이 춤에 잘 녹여든 일품이었다. 전통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곡이었고, 그 전통은 ‘노래하고 춤추는’ 우리 민족이었다.

원래 우리민족이 그러했다. 중국 역사책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동이東夷의 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뒤에 “며칠을 계속해서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連日飮食歌舞)”고 했고,『후한서 동이전』에 "해가 지면 늘 남녀가 무리를 지어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暮夜, 輒男女群聚爲歌舞)"고 하고, 역시 “밤낮으로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晝夜,飮食歌舞)“고 했다.

신명이 나면 무엇이든 하는데, 그 신명은 결국 노래와 춤으로 승화되었다. 신명은 한자로 ‘神明’으로 쓰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신명’은 아주 유쾌해서 저절로 일어나는 흥과 멋을 말한다. 주로 그 흥취를 춤이나 노래 따위로 푸는 경우에 쓴다. ‘어떤 일로 하여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의 흥이 생기다’라는 뜻이다.”

 

우리 민족은 사실 ‘문화1등 국가’였다. 삼국시대 이후 적어도 천년은 문화1등 국가였다. 몽고 침략, 일제 강점기 동안 2등 국가, 혹은 등외국가로 전락한 기간이 있었지만 유구한 역사로 볼 때는 순간에 불과했다. 끝내 중국에 합병, 동화되지 않았음이 그 증좌이다. 동방에 조그마한 나라가 그 오랜 세월 정체성을 지켜 온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나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일로 500년 전부터 기록한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생각한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최고통치자의 일언일동, 숨소리 같은 미세한 것까지 기록했다. 더욱은 이를 왕이 생전에 볼 수 없도록 했다. 이런 기록을 남긴 나라가 동서고금 어디에 있는가? 이런 기록을 지금까지 온전히 남긴 국가가 어디에 있는가?

1484년 『경국대전』이 완성되고, 1485년 반포한 이후부터 우리나라는 확고한 문화1등 국가였다. 6품의 사간원 정언, 5품의 사헌부 지평이 임금과 독대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아니 되옵니다’했다. 지금의 과장, 국장이 항상 임금과 독대하여 ‘아니되옵니다’했다. 이들의 입에 ‘지당하옵니다’의 말은 듣기 어려웠다.

그들이 ‘임금을 능멸했다’는 이른바 ‘능상지죄陵上之罪’로 귀양 가고 죽고 했지만,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국가를 만들고 수호하려는 정신은 변함이 않았다. 중세시대에 이런 체제를 갖춘 나라가 과연 있는가? 그런 나라가 우리나라였고, 그런 문화를 간직한 나라가 우리나라였다.

근년 K_POP을 비롯한 우리 문화는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문화를 리드하는 위치로 올라서고 있다. 그런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외국인들이 매년 폭발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런 시대 안동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안동과 안동문화는 국가 문화발전을 고양시키고 기여하는데 어떻게 그 일익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앞서 나는 “안동문화는 이동수 원장 이전과 이후를 나눈다고 하는 평가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했다는 말을 소개했다. 이 말은 안동문화가 보다 국가문화의 선두에서 리드하는 그런 문화 창출지로서 안동이 자리매김 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한 말이다.

나는 사석에서 좀 더 ‘스마트한 안동’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안동의 이미지는 무겁다. 왠지 조금 무거운 느낌이다. 그런 요소가 없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본질과 다르게 우리들 자신들이 그렇게 유도한 측면이 없지 않다.

가령 ‘정신문화의 수도-안동’도 그렇다. ‘정신’이란 윤리, 도덕, 교양 등의 무거운 주제의 포괄적 개념인데, 이런 무거움이 내재된 슬로건이 과연 이 시대의 적합한 등록상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윤리, 도덕, 교양 등은 기성세대가 강조하고 싶은 개념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가장 듣기 싫은 단어이기도 하다. 기성세대는 말세를 말하지만, 세상은 저만치 가버리고 있다. 보호하고 지켜야 할 보수保守는 없고, 옛 것만 지키는 수구守舊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차라리 ‘한국문화의 수도-안동’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울이 한국정치의 수도이고, 세종이 한국행정의 수도라면, 안동은 ‘한국문화의 수도’로 자리매김 되면 안되는 일일까?. 그야말로 ‘한국문화의 종가’로 매진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안동은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너무나 풍부하게 많이 있기 때문이다. 흔한 말로 차고 넘치는 것이 안동문화의 콘텐츠이다. 아마 수백 년을 가공해 사용해도 다 못 쓸 것이리라.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안동은 가능하다. 나는 우리 안동이 문화적 측면에서 잘 가꾸어 나간다면, 갈수록 내, 외국인의 주목을 받으리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우리문화의 원형과 그 축척이 보고처럼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구문화, 부산문화는 없어도 안동문화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안동문화는 결국 참되고 진실 되고 아름다움의 보편성이 내재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리라 믿어진다. 그런 요소가 없었다면 벌써 도태되고 소멸되었지 않았을까.

‘안동양반’이란 단어가 안동 사람들을 규정하는 상징인 것처럼, 안동에는 ‘안동’을 붙이는 것이 적지 않다.

가령 음식들만 보아도 그렇다. ‘안동’이란 이름에 이미 엄청난 브랜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 결과이다. 안동소주, 안동식혜, 안동문어, 안동찜닭, 안동국수, 안동헛제삿밥, 안동간고등어 등이 그렇다. 한결같이 ‘안동’이 접두어로 붙어 있다. 최근에는 안동버버리찰떡도 대박이라 한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지금 시쳇말로 뜨고 있는 ‘안동간고등어’는 사실 안동 가난의 상징이었다. 간고등어 정도밖에 못 먹는 가난, 간고등어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여유가 곧 안동이다. 제삿날이 많은 안동 양반들에게 제상 차림은 숙명적 일과였고, 어떤 경우에도 이 과제는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제삿날이 다가오면 흔히 “고등어 마리나 놓고 지내지 뮈” 했다. 이에 부응해서 영해, 영덕 등의 동해 바닷가에서 소금 친 고등어가 안동으로 보내졌고, 그런 그 고등어가 지금 그 유명한 ‘안동간고등어’가 되었다. 맛도 맛이겠지만, 거기 안동문화가 배어있기 때문에 더욱 주목받는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가난은 안동 전체의 문제였지만 그 가난은 인물을 낳았다. 가난은 생존을 위협했고 그 대안은 공부였다. 안동의 놀라운 공부 열풍은 이러한 환경 조건도 그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나는 그 가난을 ‘아주 적절한 가난’으로 본다. 인간은 동기유발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중환이 목격한 당시 “안동 사람들은 외딴 마을, 가난한 사람 할 것 없이 누구나 글을 읽었으며, 도덕과 품성을 소중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이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18세기의 인물, 이중환이 정치 염증을 느끼고 살만한 땅을 찾아 전국을 발로 밟아 가며 쓴 글이 『택리지』이다. 그 조건으로 기름지고(지리), 환경 좋고(생리), 인심 좋고(인심), 경치 좋은(산수) 네 가지를 들었는데, 그런 조건으로 가장 이상적인 곳이 바로 경상도의 ‘안동’이었다.

‘안동양반’은 이런 환경 조건에서 명명된 이름으로, 인문학적 예禮와 문文으로 무장된 성숙된 ‘교양 안동인’, 혹은 ‘문화 안동인’이 내재된 영광스러운 이름의 면류관이다. 이 문화의 내재적 콘텐츠 속에 안동 한옥이 있고, 안동 음식이 있다. 종택이 그것이며, 『수운잡방』 같은 요리서가 그것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한국문화의 수도-안동’, 혹은 ‘한국문화의 종가- 안동’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지난 달 11월 27일, 안동을 비롯한 경북 유수한 종가 집 종부들이 농암종택에 모여 음식을 만들고 품평회를 했다. 모이기 어려운 모임이기에 뜻이 깊었다. 귀한 손님이라 인사를 하니 문득 나에게 한 말씀 해 달라 한다. 그래서 대략 이런 말을 했다.

 

“최근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고 있다. 우리가 외국에 가면 골목 구석을 찾아가듯, 이제는 지방으로도 오고, 놀랍게 우리 집에도 매주 한 가족 정도 온다. 노래, 드라마, 영화, 개임 같은 우리나라 문화들의 매력과 품격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 문화강국이 되면 저절로 그 나라 문화원형을 보고 싶어 한다. 문화원형은 입고, 먹고, 자는 것으로, 곧 의식주이다. 곧 한복, 한식, 한옥이다. 우리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북은 이들 세 가지 요소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그 중심에 여기 종부들이 계신다. 지금 종부들께서 하시는 일은 국가 문화 발전에 너무나 중요한 부문을 감당하고 계신다. ‘종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브랜드가 아닐 수 없다. 종부와 함께하는 한옥과 한식은 정말 더 할 수 없는 멋진 문화 활동이 아닐 수 없다. 종부들께서는 충분히 긍지를 가지실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하시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2018년 12월 10일 가송 올미재에서

-끝-

 

 

 

 

사진: 음식품평회와 종부들의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