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도 글

병신년(1896년) 겨울 내가 성산의 화가에게 매화도 한 폭을 얻어 족자를 만들어 걸어두고 항상 마음의 양식으로 삼고자 했다. 어느 나그네가 지나가다가 묻기를 "자네는 매화를 볼 줄 아는가" 묻기에,  내가 놀라 말하기를 "무슨 말씀인가, 나에게는 그런 안목이 있지 않고 다만 느낌이 있을 뿐이다, 봄이 화창할 때 꽃망울들의  향기로운 냄새는 인仁에 가깝고, 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초연함을 잃지 않음은 의義에 가깝고, 달빛이 영롱한 가을에 나타나는 은은한 자태는 예禮에 가깝고, 온갖 꽃들이 다투어 아름다움을 뽐 낼 때 홀로 고고한 지조를 지킴은 지智에 가깝다, 이것이 주인의 마음과 같으며, 그 담담한 맛을 고치지 않음은 신信에 가깝다, 오직 이 다섯 가지가 매화를 보는 안목이 아니랴" 했다. 나그네가 다시 말하기를 "그대는 매화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이 매화는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비록 인의예지신의 이치가 있다 하더라도 누가 그 것을 알겠는가!"  내가 말하기를 "전연 그렇지 않다, 내가 한 말은 감물感物의 정情에서 말했을 뿐인데 나그네는 어찌 나를 관매자觀梅者로 보는가!" 했다.  이리하여 글을 지어 후일 정말로 매화를 잘 볼 줄 아는 사람을 기다리고자 한다.

                                                                                                                                                                   병신년 12월 洛厓 梅 主人 李裕憲 書

            발문

위 그림은 조부 낙애부군께서 남기신 매화도다. 상단에 주자, 퇴계의 매화 시 1편씩을 쓰고, 그 아래 부근의 소회 글과 시 한편을 쓰셨으니 그 뜻이 오묘하다. 슬프다. 부군이 큰 키에 옥같은 외모를 타고 나서 기대를 한 몸에 받으셨다. 행동이 모범 되고 학문에 뜻을 두며 가풍을 익혀 가기를 한결같았다. 그런데 하늘이 순조롭지 못해 홀연히 세상을 하직하시니 금년이 어언 87년이 되었다. 못난 손자에게 끝없는 슬픔으로 남아 있는데 오직 이 그림 1점이 친필 글씨와 함께 남아 있어 추모하게 한다. 불초 손자가 볼 때마다 마음이 다시금 새로워지니 진정 우리 가문의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이에 표구점에 부탁하여 수리를 하여 게시하니 벅찬 감격을 이길 수 없어 이에 그 소회를 적어둔다.

                                                                           不肖孫 李龍九 拜手 謹識

        낙애공은  1870년에 터어나 1900년에 돌아셨으니 불과 31살 돌아가셨다. 위 글씨 쓴 해가 1896년이니 27세에 쓰시어 남기셨다. 큰 키에 옥 같은 외모를 지녔고 천재적 재능이 있어 문중과 향중에 기대를 한 몸에 받았건만,  마을을 뒤덮은 장티프스 전염병에 요수하셨다. 문집 <낙애유고>를 남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