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암의 강호풍류(1) 

6. 농암이 지은 노래를 부르게 하니 또한 산중의 기이한 흥취였다

- 신재 주세붕의 ‘유청량산록’, 농암, 퇴계의 발문, '유청량산록'의 농암 관련, 송암 권호문의 추모시, 청량산 농암묘소, 청량사와 지현 스님

1. 신재 주세붕의 ‘유청량산록’

안동 도산면 가송리에서 봉화 명호면 도천리에 이르는 35번국도 길은 너무 아름답다. ‘대한민국 3대 강변길’에 전연 손색없다. 더 멋진 길이라고 한 사람도 있다.

‘낙동강 청량산 강변길’, 나는 이 길을 따라 봉화-태백-사북-고한-정선-하진부-진고개-주문진의 길을 역으로 내려오는 길을 좋아한다. 그 이전의 길은 백담사-구곡담계곡-봉정암-대청봉-천불동 계곡-비선대로 이어지는 전행이다. 봉정암 1박, 주문진 1박의 2박 3일 길이다. 지금 많이 변형되었지만 그래도 내가 이 땅에서 가장 사랑하는 길이다.

‘청량산강변길’이 주목받음은 근년이고, 청량산은 천년 이상 주목받았다. 그 연유는 경상도 산은 대부분 육산肉山인데 청량산은 주왕산과 더불어 유일한 악산嶽山이다. 바위들이 문득 융기하여 신령스러움마저 지녔다. 결코 다른 산에는 없는 모습니다. 그런 연유로 청량산은 수많은 시인, 학자들이 찾아들어 이루 셀 수 없는 유산기遊山記를 남겼다. 금강산과 버금간다. 그래서 명산이 되었다.

지금 청량산 입구에는 앞 강가에서 옮겨 온 우아한 수석 하나가 전시되어 있고, 그 곁에 ‘퇴계 시비’가 있다. 2001년 ‘퇴계탄신 500주년’ 기념으로 봉화군에서 세웠다. 기존에 ‘퇴계 작’이라고 하고 세운 ‘청량산가’는 그 진위 논란으로 교체되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청량산가’는 퇴계 이황의 작품이 아니라고 함이 훨씬 합리적으로 보인다. 문집에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도무지 퇴계의 맛이 나지 않는다. 한 번 감상해 보기 바란다.

청량산 육육봉六六峯을 아느니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마는 못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가지 마라 어부魚舟子가 알까 하노라

퇴계는 청량산에서 공부한 바 있다. 그리고 혹애한 나머지 ‘우리 집의 산’이란 뜻으로 ‘오가산吾家山’이라 했다. 그리고 자신을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 했다. 이를 기념하여 후손과 유림들이 힘을 모아 청량사 옆에 오산당吾山堂이라는 집을 지었다. 1832년 일이다. 그런 연유로 청량산은 지금도 그 소유가 퇴계종택으로 되어 있다.

퇴계는 “산에 대한 소유는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하면서 그 욕심을 경계했다. 그런데 청량산과 더불어 도산서당 터에 대해서는 ‘도산잡영’ 글 끝에 ‘산주기山主記’라 하여 도산서원 일대와 청량산의 소유권을 결정짓게 했다. 산 소유권과 재산 개념이 희박하던 시대에 이런 표현은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청량산의 진가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신재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다. 김생, 최치원, 원효, 의상도 이곳에 머물렀다지만 기록은 없다. 퇴계 역시 이 산을 좋아했지만 어디까지나 유산지처遊山之處를 넘지 않았다. 신재는 놀랍게도 이 산을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 삼각산 등 5대 명산에 비견되는 하나로 보았다. 그래서 거듭거듭 찬양했다. 신재가 쓴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의 기록은 이러하다.

"우리나라 산 중에 웅장하기로는 지리산이요, 청절하기로는 금강산이며, 기이하고 빼어나기로는 박연폭포와 가야산 계곡이다. 그러나 단정하고 엄숙하며 상쾌하고 경개한 산으로는 청량산으로, 비록 규모는 작지만 가볍게 여길 수 없다. "

"우리나라의 명산을 묻는다면 반드시 저 다섯 산을 이를 것이니, 북은 묘향산, 서는 구월산, 동은 금강산, 가운데는 삼각산, 남은 지리산이다. 그러나 작으면서 선경仙境의 산을 묻는다면 반드시 청량산을 꼽을 것이다."

규모는 작으나 선경의 명산이 신재가 본 청량산이다. 사실이 그러했다. 여러 명산들을 계획적으로 등산한 안목이기에 이 평가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청량산 등반은 오랜 준비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행해졌다. '치밀한 계획'이란 1년전인 1543년, 한국 최초 서원, 백운동서원(후일 소수서원)의 창건에 이어지는 일련의 개혁 시간표에 의한 실행이었다. 청량산이 불가의 산임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이를 청산하고자 했다. 영남의 상징적인 청량산이 불가의 산이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백운동서원을 '숙수사'의 절터에 지음과 같은  의도에 의한 일이었다.

신재의 청량산 입산은 1544년 4월 11일이고, 하산은 17일이며, 글은 19일에 완성했다. 꼬박 일주일 동안 온 산을 밟아 가며 글을 썼다. 글은 장문이며 세밀하게 묘사했다. 산행 중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필력이다. 그때 신재는 이 산에서 무려 열 아홉의 절과 암자를 직접 만났다고 했다. 문헌에는 스물 일곱이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 기록이 의문스러웠다. 도대체 이 작은 산 어디에 그런 많은 집이 지어졌단 말인가? 그런데 차츰 청량산을 오르내리며 유념해 살펴보니 등산로 곳곳에 기와 파편이 산재해있고, 조금 편편한 곳은 절터의 흔적이 완연했다. 근년 응진전 부근에서 습득한 기와 조각에는 '수산 청량사'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청량산은 산 전체가 법당인 불가의 산이요, 사찰과 암자의 바다였다.

'불가의 산' 청량산은 신재를 만나면서 '유가의 산'으로 변모했다. 한마디로 혁파해 버렸다. 청량산의 여러 봉우리를 육육봉六六峰(12봉우리)으로 새로 작명하고, 나머지 허탄한 불교적 잔재를 그야말로 쓸어버렸다. 천하의 명산 청량산에 올라와 보니 온통 불가의 산임이 불만스러웠다. 이는 16세기의 극심한 숭유억불과 맥을 같이한다. 이를 결산하는 글이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이다.

이 글은 청량산 기행문으로는 전무후무한 명문이다. 청량산의 진면목을 거울처럼 드러냈다. 퇴계는 발문에 "청량산은 바로 선생의 문장을 기다려 세상에 드러났다(直待先生之文而發之)”고 했다. 나아가 '유가의 산이 되어야 한다'는 비전마저 제시했다.  

글은 문인들을 매료시켰다. 아니 열광했다. 여기에 농암, 퇴계의 찬양 발문은 기름을 부었다. 이후 수많은 문인들이 청량산을 찾았고 글을 썼다. 그렇지만 그 어느 것도 신재의 글을 넘어서지 못했다. 불가사의한 작품이었다. 이로써 명산이 되어갔다. 

백운동서원이 지어진 5년 후, 퇴계가 사액 요청을 했고, '유청량산록'이 지어진 9년 후, 퇴계가 발문을 지었다. 지금 소수서원과 도산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됨도 우연이 아니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는 사람이 인물인데, 신재가 그런  인물이었다.

사진: 청량산 

사진: 신재 주세붕 영정

2. 농암, 퇴계의 발문

'유청량산록'의 저술을 마친 신재는 바로 농암 이현보에게 발문을 요청했고, 농암은 지었다. 퇴계는 5년 뒤 1549년 풍기군수 시절, 백운동서원 유사 김중문에게 이 글을 얻어 보고 감격하여 3번이나 읽었다. 그 3년 뒤 1552년, 서울에서 신재가 보여 준 증보 편을 보고 다시 감동하여 전문을 필사한 뒤, 그 끝에 스스로 발문을 지었다. 그래서 발문이 2편이 되었다.

발문에 농암은 청량산과 신재의 만남을 '주자의 천 백년만의 다시 만남(再遇朱侯於千百載之下)'이라 했고, 퇴계는 '산의 일대 만남(山之一大遇)’이라 했다. 청량산이 임자를 만나 그 진가를 비로소 얻었다는 뜻이다. 글의 빼어난 문장력과 심미안을 극찬하며 농암은 '어찌 위대하다 않으랴(豈不偉哉)'했고, 퇴계는 '위대하시다(偉哉)”했다.  농암의 발문 마지막은 이러하다.

"곧이어 선생을 수행한 6, 7인의 유생들이 미친 듯 흥겨워하며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고, 간혹은 읊고 간혹은 노래도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공자께서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돌아오는 모습과 흡사했다."

공자에게  "최고의 멋진 인생이 무엇입니까'"한 질문에 대해 한 답변이 "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夫子喟然歎曰 吾與點也"이다.   

퇴계의 발문 마지막은 이러하다.

“吾將筆寫一通 藏之石室之中 其必有呵禁守護 垂千祀而不朽者矣 而滉之託名其末 顧不爲大幸也耶‘. 번역하면, ”내 장차 한 통을 필사하여 석실 속에 넣어 갈무리하여, 반드시 수호하도록 하고, 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도록 하리라. 그리하여 황滉이란 이름이 그 글 끝에 의탁될 수 있다면 그런 큰 행운이 어디에 있겠는가!"

농암은 '공자의 기수의 목욕과 흡사하다'고 했고, 퇴계는 '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얼마나 큰 격찬들인가! 이 땅에서 글에 대한 찬양으로 이보다 더한 평가는 없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두 분 평가가 비슷하다. ‘선생' 은 더욱 그렇다는 느낌이다. 두 분 모두 신재를 '선생’이라 했다. 농암은 9번, 퇴계는 6번 했다. 퇴계는 따라한 것일까? 이때까지 모든 글은 ‘주경유周景遊’라 했다. 충격적 표현이다. 아니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기행문(유산기)’이란 장르의 글을 본 적이 없던 두 분에게 '유청량산록'은  미지의 경의적인 글이었다. 

지금 읽어봐도 명문이다. 사람들은 외국의 글은 알고 찬양하면서 정작 500년 전 쓰여진 우리 조상들의 멋진 글은 모른다. 일독을 바란다. 

농암의 '선생' 9번 표현은 이렇다.

첫 번이 ‘豊郡太守周先生景遊雅好山水’이다. 번역하면, “풍기태수 주 선생 경유는 산수를 좋아했다”이다. 다음은 ‘先生芒鞋野服率子弟過余曰將往淸凉’이니, “선생이 집신에 평복으로 자제들과 함께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곧 청량산으로 가려고 합니다”이다.

다음은 ‘先生馳簡于余曰’이니, “선생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고 말하였다”이다. 다음은 ‘先生隨行六七儒輩’이니, “선생에게 일곱, 여덟 명의 선비들을 따랐다”이다. 다음은 ‘先生封寄遊山錄一帙’幷醉時歌和篇‘이니, “선생이 유산록 한 편과 취시가 화답 시를 보내왔다”이다.

다음은 ’先生之遊山非尋常遊士徒慕名勝尋僧問舍‘이니, “선생의 유산은 일반 유산자들의 한갓 명승을 사모하고, 중들과의 절 집에 대한 질문과는 전연 다르다”이다. 다음은 ’先生一入洞門勞其頸‘이니, “선생이 한 번 산에 들어가면 그 몸을 수고롭게 한다”이다. 마지막은 ‘先生之胸次或播諸詩章’ 이니, “선생의 흉중에 있는 것을 시로 나타냈다”이다.

퇴계의 6번 표현은 이렇다.

첫 번이 ‘幸得周先生景遊遊山錄郡人’이다. 번역하면, “다행히 주 선생 경유의 유산록을 군 주민에게 얻었다”이다. 다음은 ‘今來京師 得與先生添下僚相驩也’이니, “지금 서울에 와서 선생과 하급관료로 친밀하다”인데, 그 다음이 ‘先生一日 惠然來訪 示以一卷書’이니, “선생이 어느 날 황송하게 오시어 한 권의 책을 보여주셨다”이다. 

다음은 “喟而言曰 偉哉 先生之有得於玆山也”이니, “내가 감동해서 말하기를 ‘위대하시다, 선생이 이 산에서 얻음이여!”이다. 다음은 ‘天藏其勝 地秘其奇 直待先生之文而發之’이니, “하늘이 그 경치를 감추어두었고, 땅이 그 기이함을 비장했는데, 바로 선생의 글을 기다려 드러났다”고 했다. 다음은 ‘斯固爲仙區之辱 吾輩之羞也 今先生歷改而痛湔之’이니, “이것은 진실로 신선 구역의 욕됨이요, 유자들의 수치이다. 지금 선생이 차례로 고치서 폐단을 씼어버렸다” 이다.

농암 발문은 파격을 넘어섰다. 짧은 글에 '선생' 일색이다. 상식 밖의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개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제는 28세 연하이다. 글 속에 '농암상공'이라 거듭 존칭했다. '상공'은 극존칭이다. 아무리 양보해도 그렇게 쓸 수 없었다. 써서는 안 되는 용어였다. '주자의 다시 만남'과 '공자의 기수의 목욕' 도 엄청나다. 신재의 글은 신재를 주자, 공자를 연상하게 했음이 틀림없다. 

퇴계의 발문은 더욱 놀랍다. 글, 책 앞에 쓰는 것이 서문이며, 마지막에 쓰는 것이 발문이다. 개요를 쓰니 전채를 보는 안목이 요구된다. 글을 알아야 되고, 사람을 알아야 된다. ‘자서自序’가 없지 않지만, 대부분 타인에게 청탁한다. 그러니 당대 문장에게 받는다. 요청으로 쓰니 겸양 하면서 쓰고, 요청 없이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퇴계는 발문은 스스로 지었다. 그것도 8년 뒤에 지었다. 원문 필사 기념으로 지은 것 같다. 그래서 저자에게는 보여주지도 않았다. ‘석실 속에 넣어두겠다’ 한 고백이 근거이다. 이런 경우도 정말 흔하지 않다. 퇴계가 청탁받지 않고 쓴 유일한 발문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이무렵 농암, 퇴계는 왜 이런 글을 쓴 것인가? 농암,신재,퇴계의 관련은 어떠했던가? 

‘유청량산록’은 2가지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청량산이 명산임과 ‘유산기’가 명문임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 반응이 퇴계 발문에 적시한 ‘吾家山’ 과 '先生之文'이었다. '우리 집의 산'으로 하고 싶었고, '선생의 문장'으로 인정했다. 후속 반응이 ‘청량산인’이고, 다음  반응이 '유소백산록'의 저술이었다.

농암이 발문에 자신의 시 '취시가'의 화답시를 요청함으로써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 것임에 비해 퇴계는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 접근해갔다. 그 논리는 ‘산행=공부’의 등식인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이다. 퇴계는 “독서가 유산 같다 말하지만, 이제 보니 유산이 독서 같다(讀書人說遊山似 今見遊山似讀書)”라고 하기도 했다.

이때 나이는 신재가 퇴계보다 6살 많았고, 관직은 퇴계가 신재보다 1품계 높았다. 풍기군수는 종4품이고, '사인'은 의정부사인인데 정4품이다. 퇴계는 1542년 의정부사인에 있었다. 호칭도 서로 ‘주경유周景遊’, 이경호李景浩라 했다. 모두 '자'를 썼다. 22세 연하인 금계 황준량도 '주경유'라 했다. 퇴계도 '선생'은 써서는 안 되는 용어였다. 

'청량산인淸凉山人'이 이 무렵 나왔다. '호'가 하나 더 생겼다. 신재의 글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 일찍이 영지산 북쪽 기슭에 '영지와사'라는 집을 짓고, '영지산인靈芝山人'이라 한 바 있었지만, 그 이름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없었다. 산 남록에 농암이 '영지정사'를 짓고 '장구지소'를 삼았기 때문이다.

『농암집』에 보면, 이때 농암은 "산천의 풍광 소유를 두고 시비하니 껄껄 우습다" 했고, 퇴계는 "영지산과 영지산인의 이름을 진은眞隱에게 드리겠습니다"했다. 요컨데 산천의 풍광 소유는 '진은眞隱'과 '가은假隱'에서 결정된다는 논리였다. 이런 견해의 차이를 시 한 두 편을 주고 받으며 해소해버렸다. 스스로 '산야의 기질이 있다'고 고백한 퇴계에게 '청량산인'의 미호를 얻기까지는 그런 과정이 있었다. 

농암의 시는 이러하다.

我自退閒專一壑      내 한가히 물러나 한 구렁을 오로지 했는데

君胡早歲亦云乎      그대 어찌 젊은 나이에 또한 그런다고 하는가?

自知理屈供雖在      스스로 이치의 어긋남의 알고 바친 글이 있으니

他日還爭未信無      다른 날 돌아와 다툴 일은 없으리라

퇴계의 시는 이러하다.

嫌於仍執爲遷居       집착함이 혐의스러워 거처를 옮겼으니

豈敢還爭再度乎       어찌 감히 돌아와 두 번 다시 다투겠습니까?

已戒兒孫知我意       이미 자손들에게도 저의 뜻을 알렸으니

烟霞從此斷猜無       연하는 이로부터 단정코 시기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후 퇴계는 영지산을 떠나 천사로 이주했다. 그 후 다시 퇴계로 이주했고, 최후 상계로 완전 이주했다. 천사로 이주한 퇴계에게 농암이 쓴 시는 이러하다.  

何若芝山訟舊居       어찌하여 영지산 옛 거처를 다투다가

川沙猶可卜新墟       천사에 새 터전을 잡게 되었는가

從知理屈分明甚       이치에 어긋남을 분명히 알았음이랴

聞盡輸移四壁書       듣거니 사면 벽에 서책을 옮겼다지

(聞景浩移卜川沙 有中藏萬卷之絶 賡其韻以續舊戱 경호가 천사로 이사하며 ‘만권 서책을 소장했다’는 절구 시를 지었다기에 그 시를 차운하고, 전날의 우스개를 잇는다.

참고로, '영지산인' 농암이 영지정사에서 금계 황준량에게 보낸 시가 있다. 내용은 “오직 청량산을 보기 위해 높은 대를 쌓았다”고 했는데, 그 연유가 “소나무 한 그루를 벨 수 없기 때문"이라 했다. 농암의 문학을 학자들은 ‘자연미의 발견’이라 했지만, 이 시를 보면 '자연사랑의 선구'처럼 보인다. 청량산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시는 이러하다.

山腰屈曲路欹斜         산허리 굽고 길은 경사지니

緣路爲臺眼界遐         산 길 옆에 대를 만드니 멀리까지 보인다.

遊客尙嫌眺望礙         찾아 오는 손님들 멀리 보는데 어려울까

更新高築對文華         다시 높이 축을 쌓아 청량산을 바라본다.

(仲擧曾臨以不見淸凉  爲恨請斫東嶺孤松  松不可斫  乃移築高臺  使通望眼  冀來再登也: 중거(황준량)가 전에 와서 청량산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며, 동쪽 능선에 홀로 선 소나무를 자르자고 했다. 소나무는 자를 수 없어, 옆으로 옮겨 높은 대를 쌓아 바라볼 수 있게 했으니, 다시 올라 오기 바란다.)

 『농암집』

퇴계는 청탁하지 않은 글을 지었고, 그 글을 신재의 글 끝에 의탁해 영원히 보존하고 싶다고 했다. 더구나 그 글에는 자신의 글이  '유부지작'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실려 있음에도 말이다.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자세가 퇴계의 인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단초가 된다. 모두가 신재가 쓴 '선생의 문장'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다. 퇴계는 나아가 ‘소백산기행문(遊小白山錄)’을 쓰고,  글 끝에 "후인들이 이 글을 보고 내가 주경유의 글을 볼 때처럼 감동을 받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신재 글의 빼어남과 효용성을 역설했다. 그 부문은 이러하다.

" 내가 그 시문(유청량산록)의 뛰어남을 감상하니, 마치 홍안의 백발노인과 더불어 말하고 서로 수창酬唱하는 듯했다. 이에 힘입어 감흥을 일으키고 정취를 얻은 것이 진실로 많았다. 유산遊山을 하는 자는 유록遊錄을 남겨야 한다. 왜냐하면 유록은 유산에 유익함을 주기 때문이다."

 『퇴계집』

유산은 등산이며 유록은 기행문이다. “유산하는 자 유록을 써야 한다”는 퇴계의 언급은 산행 지침이 되었다. 신재의 기행문은 이후 지어진 기행문 저술의 전형이 되었다. 퇴계의 '유소백산록'을 비롯하여 허목의 ‘청량산기', 정범조의 '청량산기', 이익의 ‘유청량산기’, 이상룡의 ‘유청량산록’ 등 100편이 넘는다. 시는 아마 5000수는 넘으리라 생각된다. 이로써 청량산 산행과 청량산기행문을 쓰는 것이 유행처럼 전파되었다. 명문이 명산을 만들었다.  

불가의 산 청량산은 드디어 유가의 산으로 급격히 변모했으며, 이후 퇴계의 명성과 함께 영남 유교의 메카와 같은 성지로 인식되었다. 선비들의 청량산 유산과 유록 작성은 일종의 성지순례와 순례보고서 제출의 의미마저 지니게 되었다.

사진: 청량산 낙동강변길

사진: ‘너분돌(廣石)’과 광석나루

해설: 청량산 입구 지명이 '너분 돌'이다. ‘넓은 돌’을 그렇게 불렀다. 그렇지만 '넓은 돌'이라고 하기에는 좀 작다. 그러나 배를 묶어두는 돌의 효용성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도로공사 당시 관리사무소 옆에 옮겼다. 예전에는 ‘너분돌’ 앞 ‘광석나루’에서 강 건너 ‘말 바위’로 나룻배가 오고갔다.  마지막 뱃사공은 ‘양삼마을’에 살았던 이면주씨였다고 국도확장공사 당시 입회했던 김덕호씨가 증언했다.

3. '유청량산록'의 농암, 퇴계 관련

'유청량산록'은 신재의 연출작품이다. 주연은 신재와 청량산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주연 또 한 사람이 있다. 농암이다. 글 전편에 등장하는 의미있는 단 한 사람이 농암이다. 신재의 산행은 농암의 만남에서 시작되고, 농암과 작별로 끝이났다. 입산 전 농암종택의 따뜻한 환영오찬과 하산 후 용수사의 성대한 답례연회가 그것이다. 

산행 중에도 뜻깊은 일이 있었다. 농암이 이국량李國樑, 오수영吳守盈을 시켜 자신이 작곡한 신곡新曲을 보내 신재를 위로했다. 신재가 보현암에서 그 신곡을 연주하게 했다. 기록은 “이생을 시켜 농암의 신곡을 노래하게 하니, 이것 또한 산중의 기이한 흥취였다(使李生歌聾巖之歌 亦山中一奇興)"고 했다. 오늘날의 '청량산산사음악회'는 500년 전 신재의 '산중음악회'를 잇는, 그야말로 '산중기흥'이 되었다. 

글 마무리도 의미있다. 청량산은 안동의 산이 아닌, 예안(도산 옛 지명))의 산이라 하고, 그 연유를 송재 이우, 농암 이현보가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명시했다. 이백, 두보, 한유, 유종원, 주자, 장식의 거명도 이채롭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인걸지령을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를 두 번이나 썼다. 글 전계에 농암을 서두와 가운데와 마지막에 등장시킴도 역시 의도적 기술이었다. 왜냐하면  농암이 바로 청량산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즉 신재에게 농암은 '신선'이었고, 청량산이 곧 '신선의 산'이었다. 그래서 분강의 물이 청량산에서 나온 신선의 물이라고 하기도 했다.

『농암집』에 보면, “경유가 전에 분강의 배 위에서 술에 취해, ‘분강의 물은 청량산에서 나왔으니 바로 신선의 물이다(汾江源出淸凉 乃是仙水)’라 하고, 수 없이 손으로 움켜 마신 적이 있었다"고 한 기록이 보이기도 한다.  

  '유청량산록'의 농암 관련 글은 이렇다.

"1544년 4월 9일, 소게정召憩亭에서 밥을 먹었다. 정자는 영주와 안동의 경계에 있는데, 농암 이상공李相公께서 영주 수령으로 있을 때에 지었다.  그 후 공이 도백이 되어 다시 이곳에 와서 쉬었다. 나무 가지와 잎이 무성하고 녹음이 가득하다. 길을 걷다가 목이 마르고 뜨겁게 내리쬐는 더위를 피해 찾아드는 것이 마치 부모에게 가는 듯하여 '소게召憩'라 하였다.

용수龍壽 고개를 넘어 온계溫溪를 지나 진사 오언의吳彦毅를 만나보고, 농암을 분수汾水의 집에서 뵈니, 공이 문밖에 나와 맞아주셨다. 자리에 앉아 바둑을 두는데, 곧 밥과 술이 나왔다. 큰 계집종은 거문고를 퉁기고, 작은 계집종은 아쟁을 겼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노래하기도 하고, ‘귀전원부歸田園賦’를 노래하기도 하고, 이하李賀의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노래하기도 하고, 소설당蘇雪堂의 “살구꽃 문발에 날아들고 남은 봄 흩어진다(杏花飛簾散餘春)”는 ‘月夜與客飮杏花下’를 노래하기도 하였다.

아들 이문량李文樑의 자는 대성大成인데, 모시고 있다가 축수 곡을 노래했다. 내가 대성과 함께 일어나 춤을 추니 공도 일어나 춤을 추었다. 공의 나이가 78세이니, 바로 나의 아버지와 같으시다. 이 때문에 흥이 날수록 슬픈 생각이 들었다.

공이 사는 집은 협소하지만 좌우에는 그림과 책이 있고, 마루 앞에는 화분이 나란하였다. 담장 아래는 화초를 심었고, 뜰의 모래는 눈과 같이 깨끗하여 마치 신선의 집에 들어온 것 같았다."

"4월 14일, 보현암에 들어가니 마루 앞에 두 사람이 앉을 만한 바위가 있었다. 내와 오인원과 앉으니, 유생들은 흩어져 앉았다. 흰 옷을 입고 술을 가져 온 사람이 있었으니, 예안현감 임조원任調元(임내신)이 보낸 것이었다.

술자리가 한창일 때 두 젊은이가 왔는데, 한 사람은 농암 조카 이국량李國樑이고, 한 사람은 오인원 아들 오수영吳守盈이었다. 이생李生이 소매에서 농암의 편지를 내놓으니, 이는 공이 장난삼아 지은 노래였다. 이생에게 신곡들을 직접 부르게 핬다. 고을원이 보낸 예안의 술을 마시고, 안동의 악기를 연주하고, 이생에게 농암의 다른 노래를 부르게 하니 또한 산중의 색다르고 기이한 흥취였다."

"4월 17일, 연대사를 나오니 이문량이 광석나루에서 맞아주었고, 오인원이 나를 위해 길 옆에 천막을 설치하였다. 이문량이 가지고 온 술에 취하고, 오인원이 준비한 밥을 배불리 먹었다.

오인원과 용수사龍壽寺에 묵었다. 절은 고려시대 지은 큰 절인데, 회나무와 잣나무가 하늘을 찌른다. 마루의 반은 무너지고, 중 두 셋이 거처하는데 남루하여 접근하기 어려웠다."

"4월 18일, 고려학사 최선崔詵의 비문을 읽었다. 임금을 속이고 부처에게 아첨 한 죄가 바닷물을 부어도 씻기 어렵다. 마땅히 들불처럼 태워 끊어야 하리라.

아들 주박과 이국량, 오수영, 이원, 박숙량, 김팔원 다섯 유생은 온계에서 자고 왔다, 농암 상공께서는 이문량이 모시고 견여를 타고 오셨다. 금 만호(금치소)는 85세인데도 찾아 오셨다. 절에서 술자리를 열고 서로 인사의 예를 행하였다. 농암 상공께서 유산구遊山具를 내놓으니 아주 간소하면서도 다 갖추었다. 여러 음식을 차려 놓았는데, 더 구할 것이 없었다. 탁한 막걸리를 권하며 마시니 신선의 맛이었다.

술이 반쯤 되어 이문량과 이국량에게 노래를 시키니, 노래 소리가 금석에서 울려 나온 듯했다. 유생들이 모두 일어나 춤을 추었다. 금숙琴叔은 90세인데도 춤을 추었으니, 인간 세상에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날 저녁 풍기로 돌아왔다.

아! 이 산이 중국에 있었다면 이백과 두보가 시를 지어 읊었을 것이며, 한유와 유종원이 글을 지어 서술했을 것이며, 주자와 장식이 올라가 보았으면 천하에 크게 이름을 날렸으리라. 그런데 천 년 세월 김생과 최고운 두 사람의 의해 한 나라에만 알려졌으니 탄식할 일이다.

이 산이 비록 안동에 속해 있지만, 산 아래는 모두 예안 땅이다. 송재(松齋 李堣)와 농암 이후에 큰 선비들이 서로 오르면서 ‘청량산은 안동의 산’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예안에서 나왔다.  ‘신령한 땅에 인물이 난다’는 ‘인물지령’을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어찌 속일 수 있겠는가!"

 『신재집』

농암과 신재는 매우 친밀했다. 서로를 알아 본 듯하다. 발문에 보면, "신재가 분강으로 나를 찾아와 함께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고,  또  "약속을 했다가도 오지 못하고, 더러는 오다가도 돌아가기를 너 다섯 번이나 하였으니 얼마나 답답했으랴" 했다.   이번 청량산 길에 그 숙원을 동시에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런 기획을 했다. 저간의 그런 사정들이 아래 소개한 시에 나타나기도 한다.

제목이 "청량산에 오지 못한 경유를 놀리며(嘲景遊未遊淸凉)"이다. 그 이유를 “풍기군수 주경유가 12일 안동으로부터 농암을 거쳐 청량산에 간다고 굳게 언약했는데, 10월이 되어도 오지 아니하여 시로 묻는다" 라고 했다. 시는 이러하다. 

歷向淸凉約己堅          청량산에 간다고 굳게 약속했는데

米鹽多苦久遷延          일에 시달려 오래 늦어지는가

庭前落葉簫簫響          뜰 앞에 소슬한 낙엽 지는 소리 나니

時候將遵小雪天          계절도 장차 소설 때가 되었구나

'놀린다'고 했지만, 본심은 '간절히 보고 싶다'이다,  '소슬한 낙엽'이 나다. 마음을 시로 묻는다. 그리고 시로 답한다. 우리 선인들은 그런 삶을 살았다. 하산 후 용수사의 성대한 잔치, 즉 "6, 7인의 유생들이 미친듯이 흥겨워하는 분위기의 연출"은 오로지 농암을 위로하기 위한 신재의 마지막 연출이었다.  농암이 정계를 은퇴 할 때 죽령에서 만남처럼 이런 두 분의 기질과 우정과 존경이 함축되어 있다. 신재가 자신을 '무릉도인武陵道人'이라 했음도 전연 어색하지 않다.

참고로 농암의 청량산 입산은 『농암집』에 보이지 않는다. 청량산 사랑과 신재와의 약속 등을 보면 당연히 갔을 것 같은데 없다. 퇴계와 약속을 하고 못 간 적도 있다.『농암집』 간행이 110년이 지난 1665년, 먼 외손에 의한 간행이므로 많은 원고 누락이 추정된다. 퇴계의 농암 제문에 “편지는 대나무 묶음처럼 많고(書如筍束)”, “시는 금경같이 쌓여있다(詩積金賡)”고 했지만, 그 글들은 지금 없다.  

다만 당시 절친한 친구였던 농수聾叟 금원정(琴元貞, 1472∼1557)의 『문촌세고文村世稿』(필사본, 소수박물관 소장)의 ‘次棐仲和東山二詩韻’라는 시 소서小序에 산행 사실이 확인된다. ''비중'은 농암의 자이다. 86세 장수한  금원정은 막역한 친구로 그때 동행 했다. 소서 내용은 이러하다.

“내가 앞서 신사에 도착하니, 공(농암)이 나분들 여울을 건너 연대사에 묶고 계셨다. 다음날 아침 가마를 타고 신사에 와서 만났던 까닭에, 그 다섯째 시 구절은 ‘심우현현망’이라 했다.(僕前期到新寺 公則渡廣石灘 宿蓮臺 翼朝乘肩輿 來會新寺故 五句云 心友懸懸望"

'유청량산록'의 퇴계 관련 글은 이렇다. 신재가 산행 중에 백운암에 올라 퇴계가 일찍이 쓴 ‘백운암기白雲庵記’를 보고 그 소감을 썼다. 단 한마디, ‘幼婦之作’이라 했다. 중국 고사에서 인용했지만, 그저 덕담 정도 한 것이 아닐까?. 원문은 “重探白雲庵 讀李舍人景浩記 眞幼婦之作也”이다. 번역하면, “거듭 백운암을 찾아 사인 이경호의 ‘백운암기’를 읽어보니 진실로 묘한 작품이었다”이다. 

‘백운암기’는 백운암을 중수한 스님 도청道淸이 청탁하여 썼다. 글 가운데 “저 암자가 무너지고 지어지는 것이 유가와 무슨 상관이랴만, 이 일에 대해서는 함구할 수 없었다” 하고, 글 끝에는 “암자의 중수에는 도청의 공이 적지 않다”고 했다. 청탁의 글이어서 그렇게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유청량산록'의 퇴계 관련 글을 다음과 같다.

"10월 16일, "드디어 연적봉에 올라 지팡이를 짚고 한참동안 서북쪽 모든 산을 바라보고 크게 휘파람을 불고 돌아왔다. 거듭 백운암을 찾아 사인 이경호의 기문을 읽으니 진실로 묘한 작품이었다. 만월암을 경유하여 동쪽 개울을 따라 돌면서 내려갈 때 가끔 능수버들 그늘에서 쉬니 좌우가 모두 푸른 석벽이었다." 

‘幼婦之作’ 은 불가에 대한 퇴계의 태도와, 지금 막 '백운동서원'을 창건하고 왔고, 불가의 산, 청량산을 혁파하기 위해 글을 짓는 신재의 입장, 그리고 글 전반에 대한 평가의 압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선인들이 잘 인용하지 않은, '묘하다'는 뜻인데, 정말 묘한 표현을 했다.

4. 송암 권호문의 추모시

농암 발문은 제목이 '書周景遊淸凉山錄後兼示醉時歌'이다. 번역하면, “주경유의 청량산록 발문을 쓰고, 아울러 '취시가'를 보여주었다”이다. 퇴계 발문은 “周景遊淸凉山錄跋”이다. “주경유의 ‘청량산록’에 대한 발문”이다. 보통 이렇게 쓴다. 그렇게 보면 농암 발문은 '書周景遊淸凉山錄後'까지만 써야 한다. 뒤에 붙어 있는 '兼示醉時歌'가 특이하다. “아울러 ’취시가‘를 보여주었다”가 붙어 있다. 일반 발문 양식이 아니다. 왜 그렇게 쓴 것일까?

제목을 뜯어보면, “그대 글은 정말 명문이다. 그렇지만 내 시도 볼만하다. 내가 발문을 쓰는 것처럼, 그대도 시를 지어 보내라”이다. 거의 명령이다. 제목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용도 그렇다. 첫 대문부터 '취시가'를 언급했다. 그리고 글 가운데와 마지막, 노인의 관심은 내 시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 글들은 이렇다.

“발문에 앞서 말하는데,  ‘취시가醉時歌’는 곧 농암 늙은이가 예안 고을원(任鼐信)과 황금계(黃俊良) 등과 더불어 귀먹바위, 자리바위에서 놀 때, 취한 나머지 배 위에서 지은 것으로 모두가 따라 지었다.

"선생이 사람을 시켜 ‘유산록 한 질(遊山錄一帙)’과 ‘취시가 화답 시’를 보내고, '원운 시를 보냅니다. 아울러 저의 유산기의 발문을 지어주십시오' 했다. 내가 받아보고 발문을 지어 보냈다."

"나는 이제 늙어서 글을 짓지 못하는데, 어찌 발문을 지을 수 있으랴! 다만 ‘취시가’ 의 화답시와 유산 당시에 오고 갈 때의 일들을 회고하여, 후일에 잊어버리는 일이나 없도록 하고자 함이다."

왜 이런 청탁을 하는가? 청탁을 받았으면 청탁자의 의도에 부합한 글을 지어야 하는데, 어떻게 자신의 글 이야기를 서두에 쓰는가? 농암은 글을 모르는 분인가? 어떤 다른 뜻이 있는가?

‘취시가’는 1544년 4월 23일 지은 회심의 작품이다. 분강 자리바위 풍류의 절정에 쓴 장편으로, 어부가 창작의 전 단계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농암의 작품 설명 가운데 퇴계에게 쓴 한 부분은 이러하다.

"전일 바람이 두려워 자리바위 유상을 함께 못함이 유감스러웠는데, 지금 시를 보내온 것이 비록 아이들에게로 되어 있으나, 뜻이 나에게 주로 한 것이므로 감히 욕되게 할 수 없어 화답하고자 한다. (前日畏風  未諧簟石之遊 懈謝之餘 獲覩寄豚兒長律  詩雖寄兒意主於翁  故不敢虛辱奉賡耳)

『농암집』‘취시가醉時歌 소서小序’

그대 글에 최대의 경의를 표했지만, 나의 시에 대해서도 예우를 받고 싶다. 보여주고 싶고, 당당하게 평가받고 싶다.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황혼의 노인에게 그 정도 자존심은 있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의도를 읽은 신재가 바로 차운 시를 보내왔다. 내용은 지극한 존경심을 담고 있다. 아니 존경을 넘어서고 있다. 호칭부터 '영지산대선시사靈芝大仙侍史'라 했다. 전체 제목은 "분강의 취시가 시를 차운하여 공경히 '영지대선시사'에 사례하다(次汾江醉時歌韻 敬謝靈芝大仙侍史)" 이다. 농암은 곧 신선이다. 그것도 '큰 신선'이다. 시 일부에는 ‘仙’자만 7번이나 썼다. 그 구절을 보면,

仙女哦詩協宮商       선녀는 시를 읊으니 가락이 맞고

仙童解楫工前却       선동은 삿대를 알아 앞을 해처가네

源花杳杳出洞來       복사꽃은 아득히 골자기로 나오고

飛絮雪落侑仙酢       흩날리는 버들개지 신선 술잔에 떨어진다.

大仙時作鸞鳳吟       큰 신선께서 때로 난봉같은 큰 시를 지어 읊으시면

衆仙和之蒼壁裂       뭇 신선들은 창벽이 찢어지듯 화답하네.

仙乎仙乎氣成霞       신선이여, 신선이여 그 기가 노을을 만들어

崖彬岸柳森幢節       단애 언덕 버들가지 무성히 흔들리네

  『신재집

신재에게 농암은 절대적으로 존경한 당대 유일의 인물이었다. 여러번의 분강풍류의 회동과 계속되는 신선의 표현, '유청량산록'의 발문 요청이 이를 증명한다. 

아무튼 신재의 농암 회동을 전후해 퇴계 이황, 벽오 이문량, 하연 이중량, 어은 임내신, 금계 황준량, 송암 권호문 등이 농암의 시를 따라 지었다. 농암에게는 28세 연하의 신재, 34세 연하의 퇴계, 50세 연하의 금계가 모두 벗이었다. 벽오와 하연은 아들이다. 벽오는 금계의 장인이고, 하연은 퇴계와 동방급제 하여 강원감사를 역임했다. 이들 사이 상호간에 주고받은 시문을 지금 모두 합하면 500편은 넘을 것 같다. 이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망년지우'는 그렇게 하는 것이었고, 발문 청탁은 그래서 이루어졌다.

신재에게는 당대 자기 글을 읽어 줄, 발문을 써 줄 단 한 사람이 농암이었다. 그 8년 뒤 퇴계에게 보여주었으니, 퇴계는 두 번째 보여 줄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세 분 모두 청백리에 녹선 된 인물들이니 세속적 가치에는 관심이 적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금계 역시 조금만 수를 하였다면 청백리에 녹선되었음은 틀림없을 일이었지만, 요수한 까닭에 안타깝게도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다..  

여기서 '취시가'의 차운 가운데 송암의 시 전편을 소개한다. 자신의 문예적 재능을 마음껏 구사했다. 송암이 왜 '안동 3처사'의 한 분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시가 아닐 수 없다.

시적 국면은 전편이 농암의 생애를 추모하면서, 말미에 신재와의 만남을 회고하고 있다. '풍류태수'는 분강 풍류에 참여했던 예안현감 임내신을 말하고, '암선巖仙을 찾아 돌아오는 발길'과 '용수사의 언약' 은 '유청량산록'의 기록에 대한 언급이다. 이런 일련의 모습, 즉 농암의 분강 풍류와 신재의 청량산 유산은 공자의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과 주자의 무이산武夷山에 연원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송암은 농암, 신재가 그런 범주에 있는 인물로 보고 있다. 그래서  " 상계上界의 진인眞人이 세말世末에 태어났다"고 하고, "지금 누가 그 풍류를 흠모하지 않으리라" 했다.

아래 송암의 멋진 시 한 편 감상하기 바란다.

上界眞人生世末        상계上界의 진인眞人이 세말世末에 태어나서

卜築巖阿烟水碧        바위 언덕 푸른 곳에 집을 짓고

仕看宦榮薄似紗        벼슬 보기를 엷은 비단 같이 하네.

高臥剩得胸襟豁        높이 누워 가슴 속을 활짝 열고

垂綸自許渭濱老        낚시 드리운 위빈渭濱의 노인같이

閉門不喜車騎客        문을 닫고 벼슬아치 찾아옴을 기뻐하지 않았네.

昔者飛勝接龍光        옛날에 입신하여 나라 은혜 입으매

經綸庶事元非錯        경륜의 일들이 그릇되지 않았네.

當時抱負東海深        당시의 포부는 동해보다 깊었으니

窺涯誰得容杯勺        누가 술잔으로 그 마음 깊이 알 수 있을까?

爲國款丹長耿耿        나라를 위한 충성심 길이길이

分符歲作西南客        인끈을 나눈 고을살이 얼마인가?

晩來自退汾一曲        만년에 분천 한 구비로 물러나니

風謝雲亭宛兜率        풍사風謝, 운정雲亭에 완연한 도솔일세.

閑佯漁翁與樵父        한가히 어옹과 초부의 벗이 되었으니

棲息不啻壺天闊        좁은 분천의 삶이 활짝 열리었네.

輿來揮毫碎瓊思        흥이 일면 구슬 같은 시를 지어내고

岸幘江皇月正白        두건 비스듬히 쓴 강 언덕 달빛은 빛나니

幽情眞趣知幾許        유정幽情, 진취眞趣가 짐작컨대 얼마나 되는고!

杖可登高般可涉        지팡이로 오르고 배로 건너가며

多年仙境足優遊         오랫동안 선경에서 우유優遊하니 정녕

獨樂生涯甘淡泊         독락한 생애에서 담백한 참 맛을 얻었네.

有時超邀盡耆舊         때때로 벗을 불러

淸樽相倒花前席         꽃자리에 술잔을 기울이며

自適雲泉保鶴骨         스스로 강호에서 성명을 지키니

何處塵途戰驂角         달팽이 싸움 같은 인간사를 염려하랴.

風流太守自何處         풍류 태수는 어느 곳으로 가고

一夕尋山歸思急         하루 저녁 산을 찾아 돌아가는 급한 마음

文華雲表獨飄然         표연하기가 청량산의 구름 같네.

十二峯前風驅促         바람을 몰아 열두 봉 앞을 달리니

幘鷺無術去不返         돌아오지 않는 백로와 같네.

回首巖仙肯忘却         암선巖仙(농암)을 찾아 돌아오는 발길

相期一宿龍門寺         어찌 용수사의 언약을 잊으리!

霞醴淸宵酌言酢         맑은 술 깨끗한 밤 수작은 무르익어

爭吟雅韻聲散落         다투어 시를 읊조리니 소리는 흩어져 떨어지고

春鵑哭月山竹裂         봄 두견새 소리에 산죽은 달빛에 찢어지니

三矛勝會世無竝         삼모三矛의 좋은 모임 이 세상에 짝할 것이 없네.

至今孰不歆風節         지금 누가 그 풍류를 흠모하지 않으리!

吾能好奇仰高芬         성격 기이한 이 몸 드높은 유풍을 우러러

欲尋遺囑溪鳴咽         유촉을 찾아오니 물소리만 목메어 우는 듯

武陵千里隔音容         천리 밖 무릉武陵(주신재)은 소리, 얼굴 막히었고

巖仙又奈幽明別         암선巖仙은 또한 어찌 유명을 달리했는가!

繪章空慙續狗尾         보잘 것 없는 시구로 따라 지음 부끄러우나

永世可起騷人億         영원히 후세 시인들 추억을 상기시키려 함이네.

 『송암집』,

권호문(權好文 1532-1587) 자 장중章中, 호 송암松巖, 처사로 일관, 한거閑居18곡 등 국문가자 창작, 안동 청성서원 제향

사진: 축융봉에서 본 청량산

해설: 신재가 청량산 유람에서 만난 절과 암자는 모두 열아홉으로, 자소봉 아래 열 하나로 白雲庵, 滿月庵, 元曉庵, 夢想庵, 普賢庵, 文殊庵, 眞佛庵, 蓮臺寺, 別室庵, 中臺庵, 普門庵이고, 경일봉 아래 셋으로 金生庵, 上大乘庵, 下大乘庵이며, 금탑봉 아래 다섯은 致遠庵, 克一庵, 安中寺, 上淸凉庵, 下淸凉庵 등이다.

‘청량산육육봉’의 이름을 그대로 한 것은 금탑봉과 연적봉이고, 고친 것이 대봉-장인봉, 보살봉-자소봉, 의상봉-연화봉이다. 새로 작명한 것은 선학봉, 자란봉, 경일봉, 축융봉, 향로봉, 탁립봉이며, 옛 이름 필봉은 탁필봉으로 명명했다. 이로 보면 청량산은 신재의 백락같은 혜안으로 부터 명성을 얻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5. 청량산 농암 묘소

농암 묘소는 청량산에 있다. 정확하게는 축융봉 아래 있다. 원래 도산의 진산 용두산에 있었는데, 1791년 10월 이장했다. 종택과 문중에 액운이 겹쳤고, 그 원인으로 놈암 묘소의 불길不吉함이 계속해서 재기되었기 때문이었다. 농암 몰 후 237년이 지난 일이었다.

이장은 경상감사 정대용鄭大容이 7개 군(안동, 예안, 의성, 영양, 예천, 청송, 영주)에서 장정 300명을 징발하도록 지시하고, 안동부와 예안현에서 관리들이 파견되어 관리하는 거도적 토목공사의 성격을 띠게 된다. 도산서원에서는 안동으로 대형 상여喪輿를 주문하고 있다. 지금의 청량산 묘소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광중을 헤치고 관곽을 열어보니 당시의 장례 복식이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으며, 당시 대표적인 관료들의 만사輓詞 35점이 고스란히 발견된 점이다. 이 부분의 처리과정이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아있어 당시의 장례절차 및 예법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묘 터는 전라도의 한광지韓光祉라는 풍수가 잡았는데, 그 형국에 대해서는 장비길혈藏秘吉穴, 대현길지大賢吉地라는 표현이 보인다. 감영의 관리가 산역을 지키는 가운데 3동의 임시막사가 지어지고 안동부사가 제수를 장만하며, 영양군수가 치제致祭하고 수많은 인사들이 치전致奠했다. 이날 참석자는 무려 800여명에 이르러 방명록의 종이가 부족했다고 했다.

지금도 접근이 쉽지 않은 오지 산 중택인데, 교통이 전무한 당시 그 많은 사람들이 물 건너, 산 너머 걸어가서 조문했음은 상상이 잘 안된다. 그 모습이 과연 어떠했을까?

이장의 전 과정은 주도한 농암 9세손 구완재苟完齋 이만흡李萬흡(1740-1811)이 남긴 일기(『亭子洞緬禮日記』)에 그 시말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의 묘소를 옮기는데 다소 무리하게 느껴질 만큼의 규모와 예법 절차를 갖추는 데서 이 일기가 하나의 기록을 넘어서 당시의 유교적 문화와 향토적 정서의 한 단면을 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구완재집苟完齋集』, 정자동면례일기亭子洞緬禮日記

     농암묘소

■안동시 예안면 신남리 정자골 남청량산 남록

■장례시 관계자 및 조사하신 관료와 후손 

*국왕사제문國王賜祭文: 弘文館 直提學 吳祥

*국왕치제관國王致祭官: 禮曹佐郞 朴仁元

*사의司儀: 奉化縣監 裵增

*축祝:     禮安縣監 李鳳壽

*장설掌設: 安東判官 李夢犀

*만사輓詞하신 분

右贊成 安玹, 大提學 鄭士龍, 礪城尉 宋寅, 吏曹判書 趙士秀, 戶曹判書 任虎臣, 刑曹判書 金明胤, 禮曹判書 洪暹, 右參贊 申瑛, 知中樞府事 柳辰同, 同知中樞府事 尹思翼, 同知中樞府事 鄭世虎, 同知中樞府事 李夢亮, 同知中樞府事 權應挺, 吏曹參判 宋麒壽, 吏曹參判 權應昌, 戶曹參判 尹釜, 刑曹參判 趙彦秀, 京畿道觀察使 丁應斗, 副提學 鄭惟吉, 僉知中樞府事 鄭裕, 同知中樞府事 宋希奎, 同知中樞府事 任鼐臣, 同知中樞府事 李英賢, 同知中樞府事 尹鉉, 吏曹參議 金鎧, 兵曹參議 李滉, 兵曹參議 金弘胤, 刑曹參議 朴忠元, 兵曹參知 魚季瑄, 承旨 朴公亮, 承旨 朴永俊, 承旨 李文楗, 大司成 任說, 大司諫 兪絳, 漢城左尹 權纘, 慶州府尹, 柳智善, 弘文典翰 吳祥, 軍器僉正 朴承侃, 府使 宋純, 府使 金希參, 府使 金就文, 郡守 黃汝獻, 郡守 張應旋, 郡守 陳瓘, 郡守 金世良, 縣監 盧禛, 縣監 黃俊良, 吏曹正郞 姜士尙, 刑曹正郞 張文輔, 工曹正郞 金慶元, 進士 琴元貞, 進士 李玠,

* 제문하신 분

僉知中樞府事 李滉, 慶尙道觀察使 權轍, 都事 梁應台, 縣監 黃俊良, 豊基郡守 韓琦

*비 전면: 退溪 李滉,

*지석誌石: 錦溪 黃俊良

*신도비 : 글- 大提學 洪暹,

              글씨- 礪城君 宋寅

〈이장 후 개갈〉

*묘비전면 :영의정 채제공蔡濟恭, *묘갈명; 형조판서 한치응韓致應, 

*묘갈명: 이조판서 이가환李家煥, *묘지후면: 설서設書 李家淳, 

*속지續誌: 동지중추부사 이수정李守貞, *고유문告由文: 광뢰廣瀨 이야순李野淳

■묘소 이장 당시

〈이장 후 개갈〉

*묘비전면 :영의정 채제공蔡濟恭, *묘갈명; 형조판서 한치응韓致應, 

*묘갈명: 이조판서 이가환李家煥, *묘지후면: 설서設書 李家淳, 

*속지續誌: 동지중추부사 이수정李守貞, *고유문告由文: 광뢰廣瀨 이야순李野淳

* 만사하신 분 

觀察使 鄭大容, 同知 李守貞, 通家後生 李泰淳. 縣監 李世聞, 郡守 李龜星, 進士 趙宜陽, 冲齋後孫 權思浩, 進士 金象九, 通家後孫 金台翼. 後生聞韶 金鎭東, 外裔漢陽 趙運道, 後學鳳城 琴養純, 外裔眞城 李綸, 後學眞城 李學培, 後學眞城 李鎭慶, 外裔寧海 申正義, 後生眞城 李後淳, 後學鳳城 琴宗漢,

* 제문하신 분

儒生 琴疇錫, 儒生 李龜裕, 儒生 李儒模,儒生 金是瓚,儒生 李龜疇,儒生 金思翼, 儒生 李泰淳, 儒生 李龜蒙, 儒生 李龜澤, 儒生 琴象濩, 儒生 金朝玉, 生員 金台翼, 幼學 李龜容, 幼學 李得淳, 幼學 金瑩, 幼學 金詠儒, 儒生 李儒黙, 儒生 權思黙, 幼學 李學淳, 幼學 金應銓, 幼學 李宅淳, 幼學 沈聖權, 幼學 金是珪, 幼學 李聲駿, 持平安東 金養根, 外裔生員 權思浹, 外裔幼學 權思極, 外裔鳳城 琴讜, 外裔鳳城 琴穬, 契家後生 李弘弼, 外裔後孫 李世伯, 英陽縣監 安東鎭, 節制都尉 李龜雲, 通家後生 李養淳, 禫制人 李志淳, 後學眞城 李綸,後學眞城 李學培, 後學眞城 李濟翕, 後學眞城 李鎭慶, 後學眞城 李濟龍, 後學眞城 李師瓘, 後學眞城 李學時, 後學眞城 李學靖, 同鄕後學 李龜洙, 同鄕後學 李民淳, 愚谷齋舍 李鎭

* 제문 한 후손

傍孫 李東馨, 傍孫 李質穬, 傍孫 李鴻泰, 傍孫 李樟, 傍裔孫 李慶宅, 傍裔孫 李質實, 傍裔孫 李賁, 從八世孫 李錫鳳, 從八世孫 李錫胤, 從八世孫 李春光, 傍裔孫 李震炯, 傍裔孫 李翊駿, 傍裔孫 李聲駿, 從後孫 李穬彙 . 從後孫 李思黙, 從後孫 李指黙, 從後孫 李亮黙, 從後孫 李寅黙, 傍孫 李元林, 傍孫 李龍泰, 九代孫 李潤흡, 九代孫 李慶흡, 九代孫 李萬흡(火+翕), 九代孫 李宗흡, 九代孫 李寅흡, 九代孫 李始春, 九代孫 李師錫, 九代孫 李鼎錫, 九代孫 李東煥, 九代孫 李東幹, 八代孫 李稀允, 八代孫 李澤龍, 七代孫 李元龍, 七代孫 李應龍, 七代孫 李亨龍

 6. 지현 스님과 ‘청량산산사음악회’

지금 청량사는 옛 청량사와는 관련 없는 건물이나 언젠가부터 그렇게 불렸다. 청량산 청량사라고. 일주문도 짓고 누각도 지었다. 옛 청량사는 응진전 터전에 있었고, 지금의 터전에는 연대사가 있었다. 그렇지만 청량사는 청량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손색없다.

공민왕 친필로 알려진 현판이 달린 유리보전이 있고, 그 안에 모셔 둔 약사여래불은 종이를 녹여 만든 특이한 지불紙佛이다. 그 앞 너럭바위 위에는 전설 얽힌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어떤 중이 이 절을 짓다가 죽어서 뿔 셋 달린 소, 즉 삼각우三角牛가 되어 재목을 실어 날랐다. 그 수고로움이 너무 커서 어느 날 죽자 돌을 쌓아 묘를 만들었다”고 했다. <유청량산록>에 나오는 기록인데, 말하자면 삼각우의 한이 가지 셋 뻗은 소나무로 환생해 그렇게 자란 것이라고 한다.

신재는 당시 중들과 이 전설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오직 절을 짓고자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죽은 어느 이름 모를 중의 애환이 그런 전설을 만든 것이라고. 오랜 세월, 암반 위에서 모진 고행을 견디고 자라난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는 지금 청량사의 운치를 빛내는 너무나 멋진 그림이다.

삼각우의 전설이 있고 옛날 연대사蓮臺寺가 자리했던 유리보전 앞 너럭바위에 앉아서 운무가 올라가는 청량산 봉우리들을 둘러본다. 저 봉우리들 아래에 저마다 자리한 제비집 같은 암자들과 그 암자에서 인생의 그 무엇을 찾고자 정진했을 수많은 영혼을 떠올려 본다. 그 영혼이 지금 운무가 되어 피어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청량사는 바야흐로 중흥하고 있다. 그야말로 청량한 산사로 변모하고 있다. 이는 지현이라는 스님의 역량 때문이다. 그는 20여 암자 터를 확인하고는 김생암 등의 암자를 복원하려고 노력하는가 하면, 신도와 주민이 함께하는 사찰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지현은 영주에 <장애인복지회관>을 운영하며, 부처의 가르침을 속세에서 구현하고자 한다. 받는 절에서 베푸는 절로 변모하려는 이러한 포교 자세는 신도들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지현은 시를 쓰는 매우 낭만적인 정서를 지닌 사람으로, 비가 오는 올미재 강변을 걷기 좋아하며, 청량사 앞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예쁜 찻집을 지었고, 몇 해 전부터는 일반 사찰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이른바 산사음악회를 개최하여 좁은 청량산 골짜기에 모인 수천여 명의 관객을 열광케 했다. 실로 산중의 기흥奇興이었다.

올해는 소리를 주제로 한 음악회를 기획하여 청량사 골짜기를 미어터지게 했다. 나는 도저히 현장에 갈 수 없어 멀리서 화상으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벌써 그 날이 기다려진다.

청량산은 불가의 산으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지현은 나와 함께 '청량산문화연구회'를 결성하여 청량산의 자연과 문화를 지키고 가꾸어나가고자 의기투합하여 한 때 여러 일을 했다. 무척 행복한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우리 유교와 불교가 함께하고 함께 가기를 희망하며, 이 모임이 그 조금만 씨앗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우리 안동은 문학만이 폭발한 고장이 아니다. 문화가 폭발한 고장이다. 고려 이전에 안동 사람들은 불교를 받아들여 그 유래가 드물게 발전시켰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봉정사 극락전, 국보 16호인 법흥동 7층 전탑, 그 밖에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사찰, 암자들이 그것을 말해 준다. 청량산은 그런 안동 불교문화의 보고이자 신화였다.

왕조가 바뀌면서 새롭게 들어온 유교를 안동 사람들은 창의적으로 발전시켰다. 안동의 유교 문화는 조선 500년을 선도했다. 유교문화권 개발이란 사실 안동문화권을 염두에 두고 나온 개념이다. 도산서원, 병산서원을 비롯한 수많은 서원과 종택, 정자들이 이를 증명한다. 청량산은 그런 유교 문화의 메카였다.

불교애 관심이 있는 자 청량산을 올라보기를 바란다. 유교에 관심이 있는 자 청량산을 올라보기를 바란다. 청량산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마력을 지닌 산이다. 왜냐하면 안동 문화는 이 청량산을 중심으로 실질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이 문화는 민족문화 창달에 적지 않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사진: 청량사산사음악회

<더 읽어보기>

1. ‘유청량산록’에 대한 농암의 발문

                                   주경유의 ‘청량산록’ 발문을 쓰고, 아울러  ‘취시가’를 보여주었다.

                                                            (書周景遊淸凉山錄後兼示醉時歌)

발문에 앞서 말하는데, ‘취시가醉時歌’는 농암 늙은이가 예안 고을원(任鼐信)과 황금계(黃俊良) 등 여러분과 귀먹바위, 자리바위에서 놀 때 취한 나머지 배 위에서 지었고, 참석자 모두가 따라 지었다.

풍기군수 주경유 선생은 본래 산수도 좋아하고 벗들도 친애 하여 내가 유상하던 분강汾江과 영지산靈芝山으로 몸을 굽혀 놀러온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오직 신령한 청량산淸涼山은 바라보면 두어 번 쉬면 갈만한 거리에 있었지만 부임 이후 마침 기근과 흉년을 만나 이를 수습하고, 옛터에 문성공 사당을 짓고 새 터에는 선성학사를 옮기느라 여가가 없었다. 그런 연유로 약속을 했다가도 오지 못하고 간혹은 오다가도 돌아가기를 너 다섯 번이나 하였다. 어찌 답답하지 않았으랴!

1544년 4월 초, 선생이 집신과 평복 차림으로 자제들을 데리고 나에게 와서 ‘청량산에 가려고 합니다’ 한다. 기뿐 나머지 신발을 거꾸로 신고 나가 ‘소원을 풀었습니다’ 하고, 초당草堂으로 안내했다. 작은 술잔에 회포를 풀고 난 뒤 보내드렸다. 청량산에 도착한 며칠 후, 선생이 편지를 보냈는데 '회로에 용수사龍壽寺에서 다시 뵙기를 바란다'고 했다. 날짜가 되어 가니 선생이 먼저와 있었다. 군청 관리들이 와서 음식을 준비했고, 모인 사람들이 마시고 환담했다. 곧이어 선생을 수행한 6, 7인의 유생들이 미친 듯 흥겨워하며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고, 간혹은 읊고 간혹은 노래도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공자孔子께서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맞으며 돌아오는 모습과 흡사했다. 즐거움이 고조되고 취기와 춤이 무르익은 이후 모두 헤어졌다.

그 후 몇 달 뒤, 선생이 사람을 시켜 ‘유산록 한 질(遊山錄一帙)’과 ‘취시가 화답 시’를 보내고, “원운 시를 보냅니다. 아울러 저의 유산기의 발문을 지어주십시오” 했다. 내가 받아보고 발문을 지어 보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선생의 청량산 유산은 일반 선비들이 명승을 찾고 중이나 만나고 집이나 방문하는 그런 가벼운 여행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한 번 산에 들어가면 힘써 육체를 수고롭게 하면서 자세히 관찰하고, 가파르고 험준한 곳까지 7, 8일간 찾아다니며 고승, 현사들의 수양 유적들을 변석하고 그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았다. 그리고 해괴하고 허탄한 이야기들은 조리 있게 분석하여 여러 봉우리 가운데 이름이 없던 것은 이름을 부어하고, 불합리한 것은 고쳐서 높은 봉우리, 그윽한 암자들이 모두 선생의 흉중에 있는 시로 나타내어, 드디어 산천초목이 모두 빛이 나게 하였다. 청량산의 신령이 아마 그 늦게 만남을 한탄할 일이지만, 다행히 남악저주南嶽櫧州의 주자朱子를 천 백 년 후에 다시 만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어찌 위대하지 않으랴!

나는 이제 늙어서 글을 짓지 못하는데, 어찌 발문을 지을 수 있으랴! 다만 ‘취시가’ 의 화답시와 유산 당시에 오고 갈 때의 일들을 회고하여, 후일에 잊어버리는 일이나 없도록 하고자 함이다.

2. 유청량산록에 대한 퇴계의 발문

                                                    주경유의 청량산록에 대한 발문

                                                           (周景遊淸凉山錄跋)

안동부의 청량산은 예안현의 동북쪽 수십 리 지점에 있는데 황滉의 선려(先廬)가 그 곳으로 가는 중간쯤에 있다. 새벽에 출발하여 산에 오르면 한낮이 채 안 걸리고, 배도 고프지 않을 정도였다. 이 산은 비록 다른 지방에 있으나 실은 우리 집 산이다.

나는 어릴 때 부형을 따라 작은 노을 짊어지고 이 산을 오가며 글을 읽은 것이 몇 번인지 알 수가 없다. 고요한 속에서 경서를 연구하여 깊이 깨닫지 못하고서 가벼이 세상에 나아가 이리저리 오고 갔으니, 심경지(沈慶之)와 공치규(孔稚圭) 같은 무리들이 옆에서 몰래 비웃고 기롱했으리라.

돌아보건대, 신선의 산은 연하(烟霞)의 밖에 옥처럼 아름답게 솟아 있는데, 수십 년 이래로 산에 들어가 본 것은 겨우 한두 번에 불과했다.

1549년 봄, 나는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주 경유 선생의 유산록을 고을 사람에게서 얻어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풍기군수를 그만두고, 산 아래 전원으로 돌아가 4년 동안 와병 중에 있어서 역시 한 번도 동문을 찾아 보지 못했는데, 이제 뜻밖에 서울에 와 선생과 더불어 낮은 벼슬에 있으면서 사이좋게 되었다.

하루는 선생이 찾아 오시어 한 권의 책을 보여 주셨는데, 바로 전번의 보았던 유산록이었다. 전의 글과 비교해보니 10분의 4, 5를 더 보탠 것인데, 책에서 보지 못한 것들을 더 보게 되었다. 이애 감탄해 말하기를,

“위대하도다. 선생의 이 산에서 얻은 것이여! 혼돈상채에서부터 천지의 형체가 이루어진 시기에 이르기까지는 몇 천 만 겁이 흘렀는지 모른다. 하늘은 경치를 간직하고, 땅은 기이한 것을 숨겼다가 바로 선생의 문장을 기다려서 드러났으니, 어찌 이 산의 일대 만남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산의 여러 봉우리는 모두 불가의 황망한 말과 음혼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것은 참으로 신선지역의 욕이며, 우리 유가의 수치이다. 이제 선생이 차례로 고쳐서 통쾌하게 씻어 버렸으니, 산의 혼령을 위로하고 정채를 빛나게 한 일이 얼마인가? 후일에 돌아가면  내 장차 한 통을 필사하여 석실 속에 넣어 갈무리하여, 반드시 수호하도록 하고, 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도록 하리라. 그리하여 황滉이란 이름이 그 글 끝에 의탁될 수 있다면 그런 큰 행운이 어디에 있겠는가.  "

                                                                       임자년 9월 8일에 진성 이황李滉 쓰다

 3. 신재 주세붕의 유청량산록

진불암(眞佛庵)에 들어가니 승려가 없었던 것이 오래된 듯 하였다. 철벽이 뒤에 있고 나는 듯이 떨어지는 폭포가 왼쪽에 있어 역시 좋은 볼거리였다. 배회하며 남쪽으로 금탑봉(金峯)을 향해 가니 길이 좁아 위험하고 미끄러워 자주 나무 그늘에 쉬면서 따르는 자에게 나물을 캐도록하였는데, 산이 모두 주름이 진것과 같은 돌이고 흙이 없어서 캔 나물이 매우 적었다. 치원대에 이르니 피리 소리만 들리고 사람은 보이지 아니하니 왕자진(王子晉)이 후(緱)에 오른 듯이 황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