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도산서당을 지을 당시 선조 벽오공(이문량)에게 건축 감독을 부탁하면서 쓴 퇴계의 편지 글이다. 그 조그만 두 칸 집을 지으면서 이런 장문의 글에 써서 세세한 부분들을 지시하고 있다. 이런 분은 동서고금에 없다. 이 글은 퇴계의 내면세계를 볼 수 있는 좋은 예의 글이라 생각되어 소개한다.

퇴계 글의 특징은 자신의 이름 ‘滉’을 자주 적시하는 점인데, 이 글에서도 네 번이나 썼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가장 분명한 자기표현이다. 이점도 유념하면서, 일독을 바란다.

與李大成

滉卜得陶山下棲息之地 最是晚幸 而未及結屋 遽有此行 一何造物者之多戲劇耶 其地雖已占斷 自度事力了然 未敢出意營構 蓮僧乃奮力擔當其事 是則一奇遇也 滉來時 面約蓮僧云 先燒瓦後結屋 前月中 得寯兒書 蓮意欲先結屋 開春 不違始役 屋舍圖子 須成下送 則於冬月無事時 稍稍鳩伐材料云云.

저의 거처를 도산에 마련함은 만년의 가장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집을 짓기도 전에 갑자기 이번 (서울) 걸음을 하게 되었으니, 조물주의 장난이 어찌 이렇게도 잦은가요? 그 땅을 마련했다 하더라도 저의 능력을 헤아려 본다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겠는데, 법련法蓮(龍壽寺 스님)이 그 일을 감당하겠다고 하니 정말 기이한 인연입니다. 저가 떠날 때 법련이 약속하기를 먼저 기와부터 구워 놓고 집을 지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지난달 준寯(아들)의 편지에는 “법련이 먼저 집부터 지으려고 하며, 봄이 되어 일을 시작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집 설계도부터 만들어 보내주시면, 겨울철 한가할 때에 하나하나 자재를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滉思之 蓮計似倒著 然堯以萬乘之尊 尚茅茨不剪而可 況山人隱約盤旋之所 寧辭姑草蓋以待瓦乎 又蓮之續以燒瓦 雖未可必 要以眼前突兀見此屋爲喜 故欲聽其所爲 已成圖子送于寯 令招蓮示而說之 不意寯以其外家葬事 下去宜春 不見其圖也

저가 생각해보니, 법련은 계획을 거꾸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堯 임금은 만승의 지존으로도 오히려 초가집의 처마 끝을 자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하물며 산촌 사람이 숨어 살면서 소일할 곳을 어찌 초가로 짓는 것을 마다하고 기와로 이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법련이 계속 기와를 굽겠다고 하니, 비록 아니라고 반드시 할 수도 있지만, 눈앞에 드러나는 집 모습을 보는 것으로 기쁨을 삼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따르려고 합니다. 이미 설계도를 그려 준寯에게 보내면서 법련을 불러 보이고 설명하라 하였더니, 뜻밖에 寯이 외가 장례일로 의춘宜春에 내려갔다니, 그것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寯還當在歲除春初之間 雖來見圖子 冬時已過了 且其圖未免疎脫不可用 今改寫一圖下送 但直付蓮僧 必未曉破 念惟梧翁與月川趙士敬在陶山相望之處 他日屋成 杖屨來往 必先必多於溫溪烏川諸君 其指授蓮僧以結構規畫, 宜無外視之意 故敢以呈浼 須速招蓮 詳細說諭 使其心歷歷知得而爲之 如有盛意未穩處, 亦望招士敬 與之消詳示及 爲佳

준이 돌아올 시기는 섣달그믐 경이나 초봄 무렵이 될 것인데, 비록 와서 설계도를 본다 하더라도 겨울철은 이미 지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설계도는 너무 엉성하여 쓸 수 없기에 이제 새로 고쳐 하나를 그려 보냅니다. 다만 바로 법련에게 전해주면 반드시 잘 납득을 못할 것이니, 생각건대 오옹梧翁(李文樑)과 ‘다래(月川)’의 조사경(趙穆)은 도산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살고 있으니, 뒷날 집이 완성되면 내왕하는 일이 남보다 먼저일 것입니다. 온계溫溪와 오천烏川에 계시는 분 들 보다도 반드시 잦을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법련에게 가르쳐 주어서 계획대로 집을 짓게 하고, 마땅히 이러한 뜻을 보는 마음이 없도록 하기에도 알맞기 때문에 감히 말씀드리오니, 빨리 법련을 불러 자세히 설명해서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만약 마음에 합당치 못한 데가 있으면, 또한 사경을 불러 함께 자세히 살펴보고 알려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其所以堂必南向正方位 便行禮也 齋必西偏對園圃 尚幽致也 其餘房室․廚藏․門庭․窓戶 皆有意思 恐此制不可易也 南邊三間 梁與楣長皆八尺 北邊四間 楣與南同 而梁長七尺 以其後有假簷故也 其中東西二間 梁八尺楣七尺 如此則其庭甚小如斗 然此二間 須極低棟短簷 使猶可以納明 則庭小何妨 況堂齋之用 皆不向內庭 但令可取明於廚竈等足矣 如何如何

堂은 반드시 정남향으로 하도록 하는 것은 예를 행하기에 편리하도록 함이고, 齋는 반드시 서쪽 정원을 마주보도록 한 것은 아늑한 정취가 있도록 함이며, 그 나머지 방 부엌 곳집 대문 창 등도 모두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니, 이 구조가 바뀌지나 않을까 염려 됩니다. 남쪽 변의 세 칸에 들보와 문미의 길이를 여덟 자로하고 북쪽 변에 네 칸의 문미는 남쪽과 같게 하되 들보의 길이를 일곱 자로 하는 것은 그 뒤편의 처마를 여유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중앙의 동쪽과 서쪽 두 칸의 들보는 여덟 자로 하고 문미는 일곱 자로 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뜰이 너무 낮아 말처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칸은 지붕이 매우 낮고 처마가 짧다 해도 오히려 햇볕이 잘 들어올 수 있는데 뜰이 작은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더욱이 당과 재의 쓰임은 모두 뜰 안쪽을 향하게 하지 말고 다만 부엌 등만 밝게 하면 될 듯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精舍之名 姑就山名 取弘景隴上多白雲之語稱之 未必爲定號也 壽樂堂擬其欲如此云耳 非今欲併成之 古人未成屋而先立名號 固有之 故戲效之耳 滉明春歸計懸懸 時未定早晚 若吾未歸前就役 須煩往與寯相度議處 庶無後悔 又幸之大也

정사의 이름에 대해서는 산 이름을 따서 ‘홍경弘景의 언덕위에 백운白雲이 많다’라는 말에서 취하여 명명하려 하나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수락당壽樂堂이라고 하는 것도 그저 이렇게 부르고자 할 뿐입니다. 지금 한꺼번에 다하자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들도 집이 완성되기 전에 먼저 이름을 지어놓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저 흉내 내어 보았습니다. 저는 내년 봄에 돌아갈 계획을 간절히 하고 있지만, 그 시기의 빠르고 늦음은 단정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저가 돌아가기 전이라도 일을 시작하게 되거든 모름지기 자주 가시어 寯과 함께 상의해서 처리하도록 한다면, 그나마 후회가 거의 없게 될 것이니, 이 또한 크나큰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